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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74화 (174/224)

#174. 되돌아갈 순 없지만 (4)

내 말에 다들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사건 당사자니까 그게 제일 나은 그림이지 않나. 나는 태연하게 덧붙였다.

“어디로 가면 돼요? 시설 담당자나 연출 책임 그쪽으로 가서 말씀드려야 하나 싶은데.”

그러자 매니저가 놀라서 서둘러 나를 말렸다.

“인수 씨가요? 놀란 마음은 알겠지만 별로 좋은 대답은 못 들을 것 같은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게 웃었다.

“그래도 최소한 정식으로 강하게 항의해 보고 싶어요. 저희가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가면 분명 다음 피해자가 또 나올 것 같아서요. 리프트가 고장 났으면 왜 고장이 난 건지. 고장이 나 있던 걸 강제로 돌린 건지 아니면 오늘 사용하던 도중에 고장이 난 건지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나 하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다른 피해를 언급하니 매니저도 타당성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매니저로서도 뒷수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겠지. 매니저를 설득하기 위해 더 강하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맞아요…! 인수 형 혼자만 가서 항의하는 건 저희도 마음에 걸리니까 다 같이 가서 말씀드려 볼게요.”

지원이 모처럼 기특한 말을 했다. 두 번째 당사자인 지원도 그렇게 말하니 매니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러면 저도 같이 가요. 저도 다시 한번 강하게 말씀드려 볼게요.”

그렇게 우르르 9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행하자 현장 디렉터로 보이는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아니 뭐 이렇게 단체로…. 아까 리프트 사고요? 그거 다친 사람도 없는데 뭐 그렇게 궁금해해요. 기계 자체가 오래돼서 낡은 건데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는 웃는 낯으로 비유하자면 침을 뱉었다.

“그럼 이제 정상 작동 안 되는 거 리허설이며 실제 촬영 때 확인했으니까 완전히 폐기 처분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나. 이유를 단순히 오래돼서로 퉁 치려면 그 이후에 확실한 대처가 있어야 할 거 아냐. 단순한 정비로는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자 디렉터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다시 손보면 괜찮은 걸 왜 폐기를 해. 인수 씨 저거 리프트 장비 하나에 얼마나 하는 줄 알아?”

여기서 돈을 언급하겠다 이거지? 나는 여전히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디렉터 님. 저 아까 정말 천만다행으로 지원이가 잡아 주지 않았으면 최소 등부터 떨어졌을 거고 정말 운이 나빴으면 머리부터 떨어졌을 텐데요. 척추나 머리 다치면 어쩔 뻔했는지 거기에 대한 사과는 없으신 건가요?”

단순히 결과적으로 안 다쳤으니까 괜찮다, 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망 사고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아차 하면 불구가 될 수 있었던 상황에 안이한 대처라니. 실시간 중계였던 탓에 지켜본 눈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정식으로 공론화를 하면 어쩌려고?

내가 당당히 고개를 들고 묻자 디렉터가 귀찮아졌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래서 대체 원하는 게 뭔데? 사과했잖아. 뭐 보상이라도 바라고 이러는 거야?”

어쩌면 이렇게 예측에서 벗어나지를 않냐. 아무렴 내가 이 시점 손대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리는 1군 아이돌인데 돈을 노리고 항의를 하겠어?

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돈이니 냅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고 트집 잡는 게 아니냐 결론이 널을 뛰는 게 너무 노골적이었다.

“아뇨, 보상은 필요 없고요. 리프트가 고장이 났으면 어디가 문제였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지 원인 규명과 후속 대처를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디렉터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원인 규명?”

“네. 아까 보니까 설비 해체하고 뒤로 빼 두셨던데. 그럼 최소한 어디가 고장 났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디렉터가 하,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무슨… 인수 씨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장비들 저렇게 한 번씩 덜컹거리는 건 정말 부지기수야. 그때마다 장비 까 재끼고 난리 치면 대체 우리는 언제 쉬라는 건데?”

역시, 애초에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 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네.

“그럼 다음에 또 비슷한 일 발생해도 그대로 두시겠네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말을 참 이상하게 하네, 인수 씨.”

디렉터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귀찮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2부 촬영 끝나고, 다른 설비들 해체 작업 끝나야 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까지 인수 씨가 기다릴 거야 뭐야? 그렇게 해 줘야 마음이 놓이겠어?”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내가 시간적 제약에 지쳐 제풀에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면 오산이었다.

시간이 문제라고 오히려 이쪽은 말하기가 훨씬 편했다.

“그럼 기다릴게요. 다른 설비 해체 작업 끝나고 봐 주셔도 돼요.”

그러자 움찔, 다른 멤버들이 조금 놀란 기색이었으나 반대하는 대신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네. 저희 대기실에서 기다릴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혜성도 나서서 거드니 더 할 말이 없는지 디렉터가 혀를 찼다.

“허, 나 참. 아니…. 뭘 이렇게까지 해요. 이게 이렇게 유난을 떨 일이야?”

나는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건 정말 길고 긴 대기였다.

‘일부러 엿 먹어 보라고 시간 끄는 거 아닌가.’

이어서 2부 엔딩인 출연진 단체 무대까지 마치고 장비들을 해체하기 시작한 지도 2시간째.

아직도 디렉터에게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주차장에서 퇴근길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도 모두 떠나가고 다른 출연진들은 하나둘 인터넷에 퇴근짤이 올라오는데 우리만 아무런 기별이 없으니 팬들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 K사 오늘 행사 다 끝난 거 아니야? 왜 엔카운터만 안 나와?]

[ㄴ 지금 내 친구 대기 중이라는데 다른 출연진들은 다 나갔는데 엔카운터만 안 나온다는데]

[ㄴ 다른 문으로 나갔나???]

[ㄴ ㄴㄴ 거기 주차장 메인 입구 말고는 나갈 수 있는 문이 없음]

[- 엔카운터 퇴근짤 왜 안 올라오지 원래 이런 무대 하면 바로바로 슨스에 올려 줬는데]

[ㄴ 코드비 뭐 하냐 일 좀 해라]

[ㄴ 무슨 일 있나 불안하게 왜 안 올려]

그렇게 한참을 시간을 끌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디렉터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대기실에 들이닥쳤다.

“나오세요. 지금 장비 해체해 볼 거니까.”

디렉터와 스태프를 따라 최소한의 조명만 켜 둔 무대로 향하자 작업자 몇 명이 리프트의 뚜껑 부분을 들어내고 내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 이거네요. 이거!”

한참을 안을 뒤적거리던 작업자가 찾아낸 건 볼펜 한 자루였다.

“이게 지금 저기 보이시죠? 저쪽 결합부 사이에 끼어 있었어요. 그래서 이게 요렇게 걸려서 끌어 올려져야 하는데 고정이 안 되니까 훅 아래로 빠진 거고요.”

고장의 원인을 알아내고 나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저게 원인이라면 아까 리허설 때부터 고정이 안 돼야 했지 않나. 리허설이 끝났을 때는 멀쩡했던 게 언제부터 저기 끼어 있었던 거지.

스태프로부터 건네받은 볼펜은 끼어서 눌린 흔적은 있었으나 물건 자체는 새것인 듯 표면에 광택이 반질거렸다.

“이게 언제부터 거기 껴 있었던 건지는 확인할 수 없는 거죠?”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자 작업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좀 큼직하고 그러면 누가 어디서 떨어트리는 게 CCTV에라도 잡힐 텐데 이 정도로 작은 건 안 보여요.”

“그럼 이제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가 굳은 표정으로 묻자 작업자가 후,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쩌긴요. 이물질 제거했으니까 내부 청소 싹 하고 정비하면 되죠. 낡아서 작동이 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있는데 그건 정비하면서 기름칠 좀 해 주면 괜찮아져요.”

조금 전 디렉터가 했던 설명과는 완전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장비가 낡아서 오작동을 일으키긴 개뿔. 안에 이물질이 낀 게 원인이었잖아.

나는 그것 보라는 듯 디렉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인이 따로 있었네요. 이번에 못 찾고 넘겼으면 다음에 또 사고가 일어날 뻔한 거고요.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됐습니다.”

그러자 디렉터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정말 그냥 원인이 궁금했던 거라고?”

“네.”

내 산뜻한 대답에 디렉터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디렉터 님께는 저희가 그냥 트집 잡는 것처럼 보이셨을지 몰라도 저희가 바란 건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이었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꼭 붙어 있던 혜성이 재빨리 덧붙였다.

“이번엔 운이 좋아서 다치지 않았지만 다음은 어떨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사고는 순간이에요. 다쳐서 누가 불구가 되면 그때는 다시 돌이킬 수 없어요.”

어째 그냥 상투적으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신경이 쓰이긴 했으나 얼른 현장을 마무리하고 귀가하는 것이 우선이라 일단은 그렇게 종결지어졌다.

“솔직히 사과가 개운하진 않은데…. 뭐 거기서 더 따져 봐야 우리만 갑질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지.”

규민이 한숨을 내쉬며 한 말대로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들 덩달아 너무 고생했어. 얼른 들어가서 쉬자.”

연달아 스케줄이 있는 탓에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다섯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용케 다들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가슴 어딘가가 울렁거렸다.

“이열. 리더 감동받았어?”

그러니까 이런 짓만 안 하면 정말 감동이었을 텐데. 내가 째릿 눈을 가늘게 뜨고 규민을 노려보자 규민이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앞으로 이 정도로는 감동 안 받아도 돼. 우리가 남이냐. 어쨌든 한솥밥 먹는 동안에는 식구나 마찬가지지.”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도 될지는 모르겠다만. 옆에서 열심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지원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됐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씻어. 조금이라도 더 자야지.”

“응…!”

그렇게 사고는 일단락되고 모두가 피로에 전 채 잠이 든 그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커뮤니티를 점검했다.

‘우리만 퇴근길 포토존 없었던 거 때문에 다들 좀 신경 쓰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타이밍 좋게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웬 출처 미상의 수상한 게시글이 올라온 것이 눈에 띄었다.

[제목] 신인 보이 그룹 갑질 때문에 개고생하고 퇴근함 (+4)

이제 막 올라온 게시글이었으나 그 본문에서 말하는 그룹이 누구인지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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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방송사 대형 행사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리허설이랑 생방 중에 잠깐 기계 오작동으로 이슈가 있었거든.

다친 사람 아무도 없고 행사도 잘 마무리됐는데

당사자 아이돌이 자기는 꼭 진상 규명해야겠다고 스태프들 윽박지르고 물고 늘어져서 새벽 3시까지 확인 작업하고 귀가했다.

지 아버지뻘 어른들한테 바락바락 원인 찾아내라고 하기 안 쪽팔린가 이런 인성으로 아이돌이라니 팬들이 불쌍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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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후 내가 클릭했을 때만 해도 한 자리였던 댓글이 수십 초 만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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