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되돌아갈 순 없지만 (3)
[올해 가장 뜨거운 신드롬을 일으킨 대형 신인! 엔카운터의 멋진 무대 어떠셨나요!]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의 주연 배우가 명랑하게 멘트를 외치자 그 옆에 있던 상대 MC가 웃으며 진행을 이어받았다.
[너무너무 멋있었죠~! 눈부신 매력을 지닌 분들이신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 번 더 매력에 풍덩! 빠져 버렸다니까요?]
대본에 맞춘 진행도 얼추 마무리가 되어 가고. 나는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이며 단체 인사를 준비했다.
“그럼, 저희는 오늘 준비한 무대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다음에 또 멋진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유어 뉴 유니버스!”
“엔카운터!”
“엔카운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조금 후에 2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침내 길고 길었던 1부가 마무리되고 인이어며 마이크를 모두 풀어헤친 채로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지방 방송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괜찮아? 어디 다친 거 아니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제일 먼저 혜성이 거의 사색이 다 된 얼굴로 나와 지원을 붙들고 물었다. 나는 재빨리 혜성을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다친 곳도 없고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다행히 지원이가 늦지 않게 잡아 줘서 별일 없었어요.”
“뭐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고?”
“네. 리허설 때부터 불안하긴 했어요. 계속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장비가 말썽을 부리는데 이유가 있을 게 뭐가 있어. 정비 불량이거나 노후화된 걸 교체를 안 했거나. 뻔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큰 사고 안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낫지.’
이미 방송국 측에는 매니저가 한참 전에 따지러 간 상황이었다. 여기서 나까지 열을 내고 맞불을 들기보다는 일단 눈앞의 급한 불부터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저 괜찮다고 SNS에 안내부터 할게요. 후속 무대 생방으로 나갔으니까 다들 괜찮은 건 얼추 알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요.”
그러고는 공식 계정이 로그인되어있는 공용 핸드폰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으로 올린 게시글의 댓글이 평소에도 만선이었으나 오늘은 거의 세 배 이상 폭발하고 있었다.
[- 인수야 괜찮은 거 맞지?ㅠㅠㅠㅠㅠㅠ]
[- 인수야ㅠㅠㅠㅠㅠ 다치지 말고 건강이 제일이야 조심해 ㅠㅠㅠ]
[- 아프지 마 제발ㅠㅠㅠㅠㅠ]
공식 SNS의 댓글은 물론 내 개인 메신저와 개인 계정의 알림창도 모두 온갖 걱정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이거 답장하는 것도 일이겠네.’
걱정해 준 메시지를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시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 하나하나 답장을 할 걸 생각하니 제법 까마득했다.
‘…그래도 걱정해 주시니까 엄청 고맙고… 기분 좋고 그렇긴 하다.’
문득 이전에 유명 연습생에서 듣보 가수로 전락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렸을 때도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응원해 주시고 생계까지 걱정해 준 팬분들이 계셨지….
굳이 그때와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들도 혹 내가 고꾸라졌을 때 옆에서 응원해 줄 이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층 더 훈훈해졌다.
[안녕하세요, 서인수입니다. 오늘 생방송 무대에서 설비 고장으로 인해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특별히 부상을 입은 곳은 없으며 무사히 후속 무대를 마치고 현재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조금 놀랐지만 다친 곳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보내 주신 응원과 걱정은 감사히 받고, 마음에 잘 품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또 멋진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장문의 메시지를 올리고 나니 다시 한번 핸드폰 상단이 온갖 알림으로 가득 찼다.
모든 알림 메시지를 받으면 핸드폰 이용이 어려운 수준이기에 대부분 알림 메시지를 띄우지 않도록 설정해 두는데도.
맞팔 상대의 메시지라든가,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 계정이 보낸 메시지라든가. 각종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켜 둔 주요한 메시지에만 푸시 되는 알림만으로도 상단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뭐라고 썼어?”
만족스럽게 게시를 마친 내게 규민이 다가와 물었다.
“그냥 별일 없고 나는 멀쩡하니까 걱정 더 안 해 주셔도 된다는 얘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규민이 슥, 얼굴을 붙이더니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럼 뭐 굴러떨어진 것도 아닌데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거기서 정말 나뒹굴었으면 앞으로 리프트 탈 때마다 고소 공포증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천만다행으로 그런 일은 없었으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제작진은 리프트가 엉망이면 그냥 빼고 진행해야지 왜 억지로 그걸 굴려서 사고를 만든대?”
“그러게요. 진짜 큰 사고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나보다 더 화를 내고 있는 멤버들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나는 조금은 덤덤했다.
이런 일은 사실 누군가 악의를 가진 것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따지고 들어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앞서 있었던 누구 씨 콘서트랑은 아예 다른 경우니까… 빨리 털어 버리는 게 낫지.’
정식으로 사과를 요구한다면 아무런 책임도 없는 막내 알바 하나 보내서 대타로 머리 조아리게 하겠지.
작년만 해도 무슨 일이 있었던가. 출연자를 공중에 매달아서 들어 올린 다음 빙글 돌아 내려놓는 장비가 도중에 끊어지는 바람에 실제로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
그래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실무자들만 쪼이고 마는 거지 같은 장비를 얼기설기 수리한 채 계속 사용하고, 운이 나빠 비슷한 사고가 터지지 않기만을 기원할 뿐.
내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자 혜성이 불쑥 내 팔을 잡았다.
“……?”
영문을 모르겠어서 혜성을 바라보자 혜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따지러 가자. 가서 왜 고장 났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확인하고 상태가 이상한 장비를 억지로 밀어붙인 것에 대한 사과라도 들어야겠어.”
이 바닥에서 나름대로 구를 만큼 구른 혜성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뇨, 저는 진짜 괜찮아요. 굳이 K사랑 껄끄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앞으로도 음방은 계속 나와야 하는데.”
그러자 혜성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반박했다.
“그러면 안 돼. 적어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이게 무슨 뜻이지. 내가 이해가 안 된 낯으로 혜성을 바라보자 혜성이 몰래 떨리고 있던 손을 슥 숨겼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나도 알아. 보통 방송국이랑 마찰 생기기 싫어서 덮고 넘어가는 것도 알고.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가 아니면 이런 걸 누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어. 우리가 아니면 안 돼.”
그제야 나는 혜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엔카운터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얘기였다. 내는 곡마다 차트 1위, 음방 트로피를 쓸어 담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활동 기간을 채우면 해체할 그룹.
앞으로 계속 이 그룹으로 활동해야 한다면, 더욱이 소속사가 계속 방송국과 협력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에 싫은 소리 하기? 당장 방송국이랑 사이 틀어지면 다음 활동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마당에 그럴 수 있겠냐고.
‘반대로 우리는 타사 방송국 출신의 메가 히트 단기 계약 그룹이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엔카운터가 K사에 찍힌다고 해도 엔카운터는 내년이면 해체 수순을 밟는다.
코드비는 비록 신생 임시 기획사지만 코드비의 뒤에는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KMC가 버티고 있다.
K사 음방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면 KMC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엔카운터의 무대를 보려는 시청자들이 자사 음방에 몰릴 테니까.
나는 꽤 비장해 보이는 혜성의 표정을 살폈다.
‘그냥 단순한 정의감에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일이 있었나 본데.’
내가 잠시 대답을 유보하고 있으니 같은 사고 당사자인 지원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나, 나도…! 항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매니저 형이 말하는 거랑, 우리가 직접 이야기하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를 테니까…! 사과도, 받고 싶어!”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항복했다.
“다른 멤버들 생각은 어떤데?”
나라고 정식으로 사과받는 걸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다. 다만 사과를 받아서 내 정의감을 채우는 것보다 혹시나 모를 ‘엔카운터’가 나눠서 짊어지게 될 불이익이 더 걱정된 것뿐이지.
대기실에서 각자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로 쏠렸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제현호였다.
“저는 형이 정식으로 사과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자연스럽게 은찬이 한술 더 떠서 거들었다.
“당연히 받아야지. 저쪽 실수로 크게 다칠 뻔했는데. 운이 좋아서 안 다친 거지 거기 깔렸으면 그냥 골절로 안 끝났을 수도 있었어.”
하연은 말하는 대신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내가 영인과 규민 쪽을 바로 바라보며 묻자 규민이 산뜻하게 대답했다.
“어….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지. 그리고….”
무슨 소리를 하려고 중간에 뜸을 들이나 했더니.
“솔직히 이럴 때 아니면 우리가 언제 K사를 들이받아 보겠나 싶지 않냐.”
음 이건 헛소리니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고.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게 제일 나을 것 같아요.”
영인은 내게 결정권을 위임했다. 그럼 뭐 결론은 났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이따 매니저 형 오면 얘기하자. 지금 형이 제작진이랑 말해 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답답한 표정의 매니저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담당자랑 만나 보셨어요? 뭐라고 해요?”
곧장 본론부터 묻자 매니저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대답했다.
“그쪽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본대요. 리허설 마지막 때 이상 없이 작동해서 진행한 건데 왜 갑자기 리허설 때 없었던 문제가 생긴 건지 자기네들도 모르겠다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답변에 나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많이 무책임하기는 하네요. 분명 리허설 때부터 이상이 있기도 했고…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건… 적어도 진행하자고 지시한 책임자가 있을 텐데요.”
그러자 매니저가 자기 잘못도 아니면서 대신 사과의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저도 좀 더 확실하게 사과받고 싶었는데. 자기네들도 답답하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나는 슬쩍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직 2부 엔딩 무대까지 시간이 넉넉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것을 체크하고는 산뜻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직접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