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70화 (170/224)

#170. 그 안의 진실을 보면 (4)

“어, 저 핸드폰 두고 온 거 같은데.”

“뭐?”

갑자기 김빠지는 소리에 모두가 영인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얼른 다녀올게요, 잠깐만요!”

다들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 영인을 기다렸다. 핸드폰 하나만 들고 오는 거니까 금방 오겠지.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한참이 지나도 영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왜 안 와?”

수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에 매니저가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에서 영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영인 씨 지금 어디예요?”

- 어, 안 그래도 지금 전화하려고 했는데! 지금 얼른 대기실로 와 보세요! 전부 다요!

“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폭탄 발언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 다들 들어와서 짐 좀 한번 확인해 보실래요? 도둑이 든 것 같아서요.

“네?”

급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영인이 방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팔짱만 낀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대기실에 도둑이 든 것 같다니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설명을 해 보라는 얼굴로 묻자 영인이 평소와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까요, 제가 돌아와서 문 열었을 때 스태프인가 싶은 사람이랑 딱 마주쳤거든요. 어떻게 누구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서 그냥 스태프인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좀 찝찝해서요.”

대기실에서의 도난 사고가 드문 일은 아니다. 특히나 음방이나 이런 여러 그룹이 모이는 행사장에서는 문단속을 철저하게 하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니까.

다들 귀중품은 따로 챙겼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확인 차원에서 다들 짐을 다시 확인했다.

“난 없어진 거 없는 것 같은데.”

“나도.”

“저도 괜찮아요.”

“으음….”

그렇게 영인이 예민했던 것으로 끝나려나 싶을 즈음 나도 방한용으로 가져왔던 후드 집업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안에 넣어 둔 거라고는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사고 받은 영수증 정도라 훔쳐 갈 것도 없었다.

물론 악성 팬들은 그런 것도 훔쳐 가겠지만… 딱히 내 주머니를 건드린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즈음 불쑥 무언가 떠올랐다.

‘내가 주머니 지퍼를 잠갔었나?’

주머니에서 내용물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지퍼가 달려 있는 옷이었으나 지퍼를 안 잠가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옷이라 지퍼가 없는 것처럼 입곤 했었다.

내가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서야 지퍼를 채워 놓을 리가 없는데… 가기 전에 짐 챙기라고 해서 일부러 채워 뒀던가?

그러나 너무 사소한 부분이라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들 없어진 물건 없으면 얼른 이동할까요? 바깥에서 팬분들 오래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서….”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문단속을 꼼꼼히 하고 대기실을 다시 나서야 했다.

“별일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왜 스태프가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있었는지 그것도 좀 찝찝하긴 하네.”

어쨌든 없어진 물건도 없는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다들 찝찝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셋 둘. 유어 뉴 유니버스!”

“엔카운터입니다!”

날씨는 예상했던 대로 매섭게 추웠다. 12월 말이니 당연하겠지만.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 두고 있는데도 살이 떨릴 만큼 추운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팬분들은 오죽할까.

나는 주섬주섬 미리 방청객 인원수에 맞춰 준비해 온 보온 키트를 멤버들과 함께 하나씩 나눠 주었다.

“너무 춥죠. 장갑도 꼭 끼고, 따뜻한 옷 든든하게 입고. 오늘 집에 가면 이불 꼭 덥고 푹 쉬어요.”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꽤 거리감이 느껴지는 스테이지 위와 달리 팬분들이 있는 곳과 간이 무대로 조성해놓은 공간 사이에 단 차가 거의 없어서 정말 같은 장소에 있다는 실감이 났다.

우리가 역조공용으로 준비해 온 키트는 손바닥보다 약간 큰 사이즈의 포장 팩이었다, 유명 브랜드의 보습용 핸드 크림과 보온 장갑, 핫팩, 온열 안대 등이 들어 있는 패키지였다.

‘그거 그냥…. 스태프분들한테 부탁하면 안 되는 거야?’

우리가 참석하는 연말 무대만 일곱 개. 그중에 팬분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공연은 다섯 개.

5회분의 선물을 직접 준비하느라 숙소가 아주 박스로 난장판이 되자 은찬이 불평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 돼요.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요. 저희가 지금껏 받은 만큼 직접 돌려 드리고 싶어서 준비하는 건데.’

처음에는 그 시간을 아껴서 더 좋은 공연으로 보답하는 게 낫지 왜 우리가 품을 판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 이해 못 했던 은찬이었다. 그러나 의미를 납득하고는 하나둘씩 추가할 것을 주문했던 것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이거도 넣자.’

‘이거 얼마 안 하는데 이것도 추가해.’

‘그거 할 거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이걸로 하는 게 낫지 않아?’

결국에는 가능한 예산을 초과해 버려서 비용을 대는 2인 중 하나인 영인이 장난으로 불평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형 이거 돈 쓰는 사람은 저랑 인수 형인데요.’

그럼에도 누가 재능 넘치는 폭군 아니랄까 봐 은찬도 꿋꿋해서 지지 않았다.

‘그럼 나도 같이 내.’

돈 내는 사람이 늘어난 덕분에 또 예산이 늘어나서는 나중에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조공 스케일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이 이상 부피가 커지면 들고 갈 수가 없다고 선을 긋자 제품 등급을 올리기 시작해서는 팬분들의 반응이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반응이 꽤 뜨거웠다.

“와 대박.”

“이거 스틸러스 립밤이잖아, 김의진이 광고하는 거.”

“핸드 크림 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 용량이 작지도 않네.”

덕분에 지출은 꽤 나왔지만 서툴지만 귀엽게 포장한 패키지에 한 번, 그리고 그 내용물에 한 번. 연달아 놀라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보는 기분은 매우 뿌듯했다.

“어떡해. 향도 너무 좋아! 잘 쓸게 고마워~!”

“진짜 센스 좋다.”

덕분에 돈 써 놓고 욕먹는 사태를 피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실시간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제목] 엔카운터 조공 클라스 도라 버렸다 (+39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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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이돌 공방이나 이런 행사 같은 거 여러 번 와 봤는데 이렇게 정성 들인 선물 처음 받아 봐ㅠㅠㅠ 포장도 직접 한 거래 정성도 정성인데 이거 예산 괜찮은 건가 애들이 산 거 아니고 회사에서 지원해 준 거겠지?

[댓글]

[- 저거 나도 지금 받아서 현장에 있는데 멤버들이 비용 모아서 산 거래 날도 추운데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보답하고 싶다고ㅜㅜ

+ 은찬이가 보태보태병 있어서 처음 기획했던 거에서 예산 3배 초과돼서 엄청 잔소리 들었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 비하인드가 더 웃겨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3배면 그냥 초과 수준이 아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와 근데 정은찬 처음에 좀 무뚝뚝하다고 빠혐 논란 좀 있지 않았나 멤버한테 욕먹어 가며 역조공 예산 3배 초과 실화( ꒦ິ⍣꒦ີ)?]

[ㄴ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네 처음에 멤버들이 기획한 거 보고 이렇게 줄 거면 아예 주지 말라고 한 소리 했을 거 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먹을 거 주는 것보다 좋다ㅠㅠㅠㅠㅠ 지금 대기 장소 개 추워서 먹을 거 줘도 못 먹는데ㅜㅜㅜ]

[ㄴ 제품도 다 유명한 거네요ㄷㄷ 성분 좋고 선물용으로 많이 사는 것들

[ㄴ 내 돈 주고 사면 아까운데 받으면 잘 쓰는 것만 쏙쏙 모아 놓음]

[제목] 조공 가지고 호들갑 떠는 거 웃기네ㅋㅋ (+20)

[본문]

어그로 미안

나 지금 다른 가수 보러 현장 대기 중인데 엔카운터 간이 팬 미팅하는 쪽에서 너무 좋은 냄새가 나서ㅠㅠ 어디 무슨 제품인지 알려 줄 수 있어? 나 지금 실시간 스트리밍 중

(캡처 이미지)

엔카운터 짱 우주 대스타 초은하급 아이돌 갓카운터 짱

[댓글]

[- X 브랜드 립밥 퓨어 브리즈, C 브랜드 온열 안대 5개 세트. Z 브랜드 핸드크림 240ml 허니 프루티 향, 핫팩, 일회용 온열 장갑, B 브랜드 비타민 젤리, 나이트 케어 프로폴리스 티백 3개 세트]

[ㄴ 구성 개알차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생일 선물보다 더 정성 들어간 듯]

[ㄴ 와 진짜 좋다… 최근에 역조공 역대급이라고 돌았던 것처럼 명품 색조 화장품 하나 덜렁 주는 것보다 진짜 배는 좋아 보임]

[ㄴ 실제로 비용도 2배는 나올 구성이니까^_^….]

[ㄴ 추첨 떨어져서 역조공은 못 받지만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서 인터넷에 최저가 검색해 봤다가 숙연해져서 돌아 나옴;]

[- 구성 구체적으로 보기 전: 아니 뭐ㅋㅋㅋㅋ 예산 그래 봤자 만 원 안짝으로 잡지 않았으려나?

구성 본 후: 혹시 은찬이라는 멤버 팀원들한테 따돌림당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

[ㄴ 2222 은찬아 예산 초과 정도가 아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 정은찬 이 새끼 음악만 깐깐한 게 아니라 취향 자체가 조온나 까다로운 놈이었네 마음에 들었습니다]

[ㄴ 정은찬이 좋아하는 맛집 리스트 돌리면 미슐랭보다 더 신빙성 있을 듯 이런 타입이 가는 집이야말로 보증된 맛집임]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맛없으면 그냥 딱 숟가락 내려놓고 나올 것 같음]

[- 저 비타민 젤리 나만 알던 보물이었는데 실시간 매진되고 있네 저거 좋아 당류 낮은데 맛있고 두 개만 먹어도 하루 기준치 채울 수 있어]

[ㄴ 구매 완]

[ㄴ 댓글 단호한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

비록 예산은 생각한 것보다 상한을 아득히 초과하고 말았으나 반응이 좋으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제일 걱정했던 건 돈 쓰고도 욕먹는 거였으니까.’

일부 타 팬덤에서 조공을 저렇게 비싼 걸로 채우면 다른 가수들이 부담되지 않겠냐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으나 극소수였다.

‘이제 무대만 잘하면 된다.’

간이 팬 미팅도 성공적으로 마쳤겠다. 이제 남은 건 콜라보 무대와 그 뒤에 있을 스페셜 무대를 흠잡을 데 없이 선보이는 것뿐이었다.

“지원 씨, 인수 씨 미리 준비해 주세요.”

나와 지원이 먼저 콜라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별도의 대기실로 이동하고 잠시 후.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 곁에 가장 가까운 이웃! K사를 대표해서 인사드립니다. 저희는 오늘 1부 MC를 맡은….]

드디어 조금 이른 저녁부터 1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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