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68화 (168/224)

#168. 그 안의 진실을 보면 (2)

[- 춤추는 대박 떡볶이]

[- 한지훈]

가게 명함에 적혀 있는 사장님 이름이 떡하니 키워드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왠지 소속사 사장에 대해 악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말을 했었지.’

비안을 비롯해 그 시절 유명 스타들과 동기라면 사장님도 박 대표 사단에서 연습하다가 이탈한 연습생이었나?

그 부분까지는 자세히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얌전히 다른 화제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어린애가 대뜸 소속사 어디였는지, 연습생은 왜 그만둔 건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좀 예의가 아니기는 하니까.’

이쪽이라고 원해서 그러는 건 아니긴 한데…. 경계심을 올려서 좋을 건 없었다. 나는 손안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연습실을 향해 걸었다.

그때 불쑥, 바짝 붙어서 뒤따라오던 규민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근데 인수 알레르기 있는 건 언제부터 알았어? 참외가 흔하기는 한데 안 먹는 집에서는 아예 입도 안 대는 과일이잖아.”

“아….”

아까 가게 안에서 얘기한 것 때문에 신경 쓰였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급식에 나와서? 학교 선생님이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고 잔반 검사하셔 가지고 억지로 먹었다가 두드러기 나고 난리 났거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아이가 못 먹는 게 있으면 미리 알려 줘야 식사 지도를 할 때 참고하지 말을 안 하면 어떻게 파악을 하느냐고 성화였고. 집에서도 참외는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으셔서 한 번도 먹여 본 적 없었기에 당혹스러웠던 해프닝이었다.

“그럼 멜론도 못 먹어?”

“아니. 괜찮던데? 멜론은 씨 있는 부분 박박 긁어서 빼고 먹으니까 괜찮은 건가?”

조금 전 가게에서 사장님이 후식 서비스로 참외를 깎아서 내주신 덕에 말하게 된 TMI였다.

‘선물로 참외가 들어왔는데 내가 참외를 못 먹어서요. 아. 요즘 친구들은 참외 별로 안 좋아하나?’

‘어 아뇨! 저 잘 먹어요!’

규민과 현호는 꾸벅 감사 인사를 하고 포크로 하나씩 집어 우물거리는데 나만 손을 대지 않으니 사장님이 뭔가 문제가 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참외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어 진짜요? 나 말고 알레르기 있는 사람 처음 보는데.’

‘아 저도요. 이게 흔하지는 않다 보니까….’

참외가 사실 방울토마토나 딸기처럼 급식에 자주 나오는 과일도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밝힐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꺼내는 참외 이야기가 괜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디 보자, 저번에 파인애플 받은 거 안 먹었었는데… 아 여기 있다. 이거라도 먹어요, 그러면.’

사장님이 내게만 내주신 건 작은 팩으로 소포장된 파인애플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식까지 먹고 나니 더는 다른 걸 생각할 새도 없이 연습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명함 하나만 급히 집어 들고 나와야 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뭐 못 먹는 거 있어?"

가족이 식당을 하셔서 그런 게 신경 쓰이는 편인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없어. 알아서 피해서 먹으니까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뭐야. 신경 써서 걱정해 줄 때 미리미리 말해 두면 좋지 왜.”

“그러니까. 그렇게 유별나게 취급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규민과 투닥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연습실 건물까지 도착해 있었다.

“으아, 오늘만 고생하면 하나는 일단 끝난다!”

규민이 쭉 하늘을 향해 스트레칭을 하며 앓는 소리를 하자 현호가 침착하게 지적했다.

“그 뒤로 6개나 더 있잖아요.”

“아니 그래도 헷갈리는 게 하나 줄어드는 거니까.”

각자 연말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불태우면 연초에는 다시 또 시간이 날 거라는 희망과 기대로 남은 힘을 쥐어 짜내는 중이었다.

“자자. 다시 연습 시작하자!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서 내일 출발할 준비 해야 하니까.”

기운 낸다고 뭘 또 그렇게 시켜 먹었는지 음식 냄새가 잔뜩 나는 연습실을 환기시키고 연습을 이어 가길 잠시. 순식간에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끝났다!”

다들 가방을 챙겨 주섬주섬 정리하는 와중 스윽, 매니저가 내게만 다가와서 잠깐 손짓을 했다.

‘뭐지?’

나만 불러서 얘기할 게 있나? 의아한 상태로 매니저를 따라 먼저 연습실을 나서니 매니저가 생각도 못 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인수 씨, 케이블 예능 하나 섭외가 들어왔는데….”

케이블 예능? 선뜻 떠오르는 게 없어서 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물었다.

“무슨 예능인데요?”

또 무슨 서바이벌 같은 데 나가라고 하는 거 아니지? 물론 보컬 서바이벌이라면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랩이나 퍼포먼스 쪽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보니 선뜻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내가 가능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사이 매니저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 막 어렵게 준비해야 하고 무대 올리고 이런 건 아니고요. 그냥 하숙집 컨셉으로 인수 씨랑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 가수, 아이돌, 인플루언서분들이랑 생활하는 일상 예능이에요.”

일상 예능? 감이 안 오는 단어에 내가 표정에 의문을 띠자 매니저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 전주홍 PD님 아시죠? 트리플러스로 유명하신 그분이요.”

트리플러스라면 고정 엠씨 세 명이 전국 방방곡곡의 여행지에 게스트와 함께 머물며 고즈넉한 일상을 즐기는 메가 히트 예능이었다.

“그것처럼 여기저기 이동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지금 1020세대가 가장 궁금해할 청년 스타들의 일상을 파헤친다! 이런 컨셉이라나 봐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헐렁한 플롯에 잔뜩 긴장했던 것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촬영 기간은요?”

못 할 것도 없다 못해 엔카운터를 홍보할 기회라고 생각하니 제법 의욕이 생겼다. 매니저도 덩달아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3주간 매주 화요일, 수요일 이렇게 1박 2일 촬영이래요. 방영은 6주 예정이고요.”

매주 2회차분 촬영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20분에서 30분짜리 웹 예능이 아니라 1시간 15분짜리 정규 편성이다 보니 6회차 분량밖에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출연진은 아직 안 나온 건가요?”

3주 내내는 아니긴 하지만 일상을 보여 주는 예능이면 출연진끼리 합도 잘 맞아야 할 것 같은데.

설마 아진 같은 게 나오지는 않겠지 위기감이 들어 물어보자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희가 제일 먼저 섭외 요청이 들어온 것 같아요. 확정되면 차차 전달해 주시겠대요.”

이쪽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면 더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출연진을 구하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제안을 보낸 거랑, 제일 먼저 데려가고 싶어 한 거랑 아무래도 제작사 측에서 보이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럼 일단 한다고 전달해 주세요. 촬영일은 언제부터예요?”

촬영 기간 자체가 짧고 장사를 하거나 해외 로케이션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까운 시일이었다.

“1월 말부터래요. 그럼 정식으로 촬영 일정 나오면 이쪽 맞춰서 스케줄 편성해 놓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주차장으로 향하니 곧장 다른 녀석들이 달라붙었다.

“뭐야? 무슨 얘기 했어?”

개인 스케줄이나 다들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는 거니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무슨 케이블 예능 하나 출연하는 것 때문에.”

“아아… 서바이벌?”

“아니 그냥 일상 예능이래.”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다들 내일 있을 첫 연말 무대가 중요한 상황이어서 곧바로 화제가 다른 쪽으로 넘어갔다.

“지원아 내일 잘할 수 있지?”

아까부터 지원이 긴장한 것이 너무 역력하게 보여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네…? 아 네네! 자, 잘할게요!”

혜성의 질문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하는 것만 봐도 불안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네가 괜찮은지를 묻는 거잖아.”

내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자 지원이 쭈뼛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이럴 때 규민이나 영인, 현호처럼 좀 뻔뻔한 타입들은 채찍질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데.

지원은 여기서 채찍질을 했다가는 역시 저는 이런 큰 무대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하고 울면서 사과할 것 같아서 몰아붙이기도 힘들었다.

“으음….”

긴장할 만도 한가. 나야 원래 무대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는 편이니 비교적 태평한 것처럼 보였으나 지원은 거대한 태풍을 앞둔 아기 오리 같은 꼴이었다.

어떻게 지원이 힘을 낼 만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혜성이 슬쩍 내게 다른 멤버들 몰래 메시지를 보냈다.

‘아.’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이거라면 확실히 힘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가 이전에 저장해 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주무시고 계셨나요? 아, 다행이네요….”

15분쯤 통화를 마치고 내려온 나는 혜성에게 성공했다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지원이가 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무대 위에서는 실전에 강한 편이니까.”

이것도 있고. 나는 핸드폰 안에 들어 있는 비밀 작전을 숨긴 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그리고 다음 날. 새벽부터 시작된 강행군에 다들 정신을 차리느라 혼돈 그 자체였다.

“내 무선 이어폰 본 사람?”

“가방 어디다 뒀지, 가방?”

“보조 배터리 안 챙긴 사람 누구예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스케줄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하지만. 실수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다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두고 가는 물건 없는지 확인해.”

두 번 세 번 점검하고 차를 출발했으나 막상 떠나고 나니 하나둘 빼먹은 것들을 떠올리기 일쑤였다.

“헐 맞다. 나 어제 샌드위치 사다 놨는데.”

“그냥 내일 먹어.”

“아깝잖아요. 야채 다 숨죽어서 맛없어지는데.”

“어차피 오늘 먹어도 다르지 않았을 거야.”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은 빠르게 포기시키고 샵에 들렀다가 방송국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많은 출연진들이 대기 중이었다.

‘이번이 첫 지상파 연말 공연이네.’

우리는 내년에 해체할 예정이니 이 방송국에서 연말 무대로 출연하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인가.

이미 지상파 방송국 모두 시상식을 중단한 이후라서 수상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인기 스타상같이 여러 팀 주는 상은 주기도 하던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큐 시트를 확인하자,

‘어?’

익숙한 이름이 여기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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