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그 안의 진실을 보면 (1)
내가 떡볶이집에 간 건 이틀 후. 생애 첫 연말 무대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연습이 있었던 날이었다.
‘다들 헷갈리지 않게 조심하고.’
행사 별로 바리에이션을 준 게 많아서 동작과 동선을 착각하지 않도록 매번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아. 방금 누구야.’
‘저예요. 죄송해요.’
‘이번에 진짜 다들 정신 차리고 하자.’
그러고 30초도 안 지나서 아까 지적했던 본인이 틀리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서인수 진짜 독한 새끼.’
‘네가 나약한 거겠지.’
살짝 놀려 주기를 바라는 것 같길래 일부러 거만한 포즈를 취해 보이며 조소하자 규민이 엄청나게 약 올라 했다.
‘아 진짜 얄밉다.’
‘비슷한 소리 많이 들어서 괜찮아.’
규민이 뱉어 내는 패자의 비아냥 따위. 내게는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조금 더 놀릴 심산으로 생수병을 우아하게 쥐고 흔들어 안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여유롭게 한 모금을 마시자 그 모습을 본 영인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이렇게… 아니 근데 이거 별로 좋은 건 아닌데.’
보통은 생수병이 아니라 초록 병에 많이 하는 거라서. 이걸 아직 성인도 안 된 애한테 가르쳐 주는 게 맞나? 멈칫 잠깐 후회가 일었으나 연습실에 있는 모든 생수병을 흔들어 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무렴 본인이 좋으면 됐다 싶었다.
‘어디 가서 그거 보여 주고 다니지는 마.’
급히 진화하려 하자 영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네!’
전혀 안 듣는 것 같은데. 뭐 초록 병에 대고 하는 게 아니면 그렇게 수상해 보이지 않으니까 상관없겠지.
어쨌든 거의 한 박스 싸 온 생수를 다 마실 때까지 땀을 흘려 가며 연습한 결과 나름대로 이번 무대는 안심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 즈음 늦은 점심을 먹을 시간이 생겼다.
하나둘 뭘 배달시켜 먹을지 상의하는 와중 나는 모처럼 문제의 떡볶이집과 걸어서 다녀올 수 있을 만한 거리인 것을 확인하고는 규민에게 물었다.
“여기 근처에 그 비안 선배님이 추천하셨던 떡볶이집 있는데 먹으러 갈래?”
그러자 규민이 잠깐 눈을 굴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사는 건데?”
누가 사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각자 내는 거지, 까지 생각했던 나는 최근 직접 통장에 정산금이 찍힌 게 나와 영인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보통 이런 경우 월급 턱처럼 정산 턱 한번 내는 거였지.’
너무 정신없어서 나도 미처 못 챙기고 있었는데 겨우 떡볶이 정도로 때울 생각은 아니었다.
“이거는 일단 각자 내는 걸로 하고. 나중에 다 같이 먹으러 갈 때 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액수라면서~.”
“너도 다음 분기에는 따뜻해질 것 같으니까 그만 꿍얼꿍얼하고. 갈 거면 일어나.”
그깟 떡볶이 하나 사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나중에 좀 더 정식으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규민을 설득해서 연습실을 떠나려던 그때.
“떡볶이 먹으러 가는 거면 저도 가도 돼요?”
의외의 인물이 끼어들었다.
“어? 안 될 거야 없지. 한 15분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정말 말 그대로 그냥 이규민이 제일 끌고 가기 편해서 부른 것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멤버들 전부 끌고 가면 너무 복잡해지고 혼자 가는 건 즉석 떡볶이니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할 텐데 다 못 먹을 게 뻔해서.
둘에서 셋이 되는 정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네.”
현호의 간결한 대답과 함께 지원이 뭔지도 모르고 이쪽을 기웃거렸다.
“어? 뭐 먹으러 가?”
4차 미션 끝나고 자기한테만 이야기 안 하고 놀러 갔던 것이 어지간히 한으로 남았는지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귀엽기도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 떡볶이. 너무 우르르 가는 건 좀 그래서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그러자 지원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아, 떡볶이? 잘 먹고 와….”
시무룩해질 만도 한 것이 지원은 매운 음식을 정말 못 먹었다. 오히려 외국인인 영인이 더 잘 먹는 편이었다. 물론 영인도 매운맛에 도전하고 그럴 만큼 잘 먹는 건 아니지만.
“가 보고 별로 안 매우면 다음에 같이 가든지.”
“응!”
다른 녀석들은 이미 배달 주문을 마친 상태라 별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3인 파티를 결성해서 향한 가게는….
“오….”
“꽤 오래 됐나 보네.”
“…….”
벽면 전체에 온갖 가수와 연예인들의 사인이 빼곡한 오래된 곳이었다.
온갖 사인과 방명록으로 도배된 계단을 지나 지하에 위치한 가게로 내려오자 누군가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늦은 점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게들은 브레이크 타임을 걸어 놓는 시간이었다.
가게 안에는 한창 바쁜 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것을 증명하듯 테이블 위에 미처 다 정리되지 못한 그릇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 식사 가능한가요?”
인터넷에서 리뷰 검색해 봤을 때 따로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아 네네. 빈자리 편하게 앉으세요. 메뉴판 드릴게요.”
알바생은 배달을 나갔는지 가게에는 사장님 한 분뿐이었다.
‘확실히….’
슥, 테이블까지 와서 건네주신 메뉴판을 받은 나는 사장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봐 왔을 비안이 반할 만한 비주얼이시지 않나 싶긴 한데….’
평범한 동네 분식집 사장님이라기엔 너무 화려한 외모였다.
이것저것 꾸민 건 아무 것도 없고 쌩얼에 머리도 그냥 깔끔하게 정리한 게 전부인데도 이목을 사로잡는 미형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좀 웃는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모나거나 뾰족해 보이는 구석 없이 밝고 환한 인상이었다.
‘나나 유해라 대표랑은 진짜 반대 같은 인상이네.’
나도 그렇고 유 대표도 그렇고 딱 봤을 때 호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나를 불편해하는 연습생들이 느끼는 것처럼 ‘진짜 까탈스러울 것 같다.’는 느낌이지.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고. 그래서 저렇게 그냥 적당히 서서 웃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저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생각에 잠긴 채 메뉴도 보지 않고 사장님을 관찰하듯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
그제야 나는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럴 땐 그냥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낫겠지. 본인이 잘생긴 건 솔직히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
“사장님이 워낙 잘생기셔서 연예인 누구랑 닮으신 건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이제 3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싶은 사장임이 부끄럽다는 듯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우리 알바가 자꾸 서비스 주지 말라 그랬는데 이거 안 되겠네.”
“아, 아뇨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건 아닌데.”
기분 좋으라고 한 빈말인 줄 아셨는지 카운터 쪽으로 가서 음료수를 잔뜩 꺼내 와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시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엔카운터 분들 맞으시죠? 다들 모자 쓰고 있어서 살짝 헷갈렸는데 목소리 들으니까 맞네. 꼭 비행기 태워 줘서만은 아니고 응원의 의미로 드리는 거니까 그냥 받아 주세요.”
“와 대박! 감사합니다~. 아니 근데 사장님 진짜 잘생기셨어요.”
규민이 그걸 또 냅다 받아서 냉큼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람에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현호 역시도 꾸벅 감사 인사를 해서 어색한 와중 얼떨결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사인지 중 하나를 우리도 남기고 있었다.
‘아니 정말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생긴 대로 순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까. 일단 친화력이 엄청 좋았다. 떡볶이를 주문하고 음식이 조리되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먹는 내내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도 어떻게 시간 정말 잘 맞춰서 오셨네요. 저희가 저녁에 배달 장사 중심이라서 이 시간에는 홀에서 드시는 분들도 없고 진짜 조용하거든요.”
그 말 그대로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떡볶이를 끓여 가며 먹는 내내 이따금씩 배달 주문이 들어와 알바분이 들락거리며 수거해 가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먹으러 들어오는 손님이라곤 없었다.
“먹는 데 막 손님들이 와서 인사하고 물어보고 그러면 좀 불편하잖아요. 아, 나도 지금 방해하는 건가?”
붙임성이 얼마나 좋은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규민이랑은 무슨 명절마다 만나는 성격 잘 맞는 사촌 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에이 설마요! 사장님 근데 진짜 뭐 연예인 하셨던 거 아니에요? 뭐 이렇게 발이 넓어요?”
벽에 붙어 있는 유명인들의 종류만 해도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배우, 가수, 운동선수, 아이돌. 특징이 있다면 전부 한 15년에서 20년쯤 전성기를 맞은 원로 스타들이라는 것일까. 규민이 그런 의문을 갖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다 같이 사장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민망한 듯 쓰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어렸을 때요. 요즘 친구들처럼 막 엄청 체계 잡혀 있고 그럴 때가 아니라서 막 어느 기획사 사장이 조폭 출신이다 이런 루머 많았던 시절 있잖아요. 그때 잠깐 준비했었어요. 엄청 옛날에.”
그럼 그렇지. 지금도 저 정도로 잘생긴 사람은 흔치 않은데 그 시절이라고 흔했을 리가.
“우와. 진짜요? 대박이다. 어쩐지 너무 잘생기셨더라. 아니 근데 그럼 이분들이 다 연습생 동기인 거예요?”
“아, 뭐….”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이 사람 대체 나이가 몇 살인 거지? 서른은 확실하게 넘었을 거고. 마흔은 아닌가? 외모만 보면 40대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데 벽면에 붙어 있는 동기로 추정되는 연예인들은 모두 40대 이상인 사람들이었다. 밀키즈의 막내였던 비안도 40대의 문턱인 나이였고.
타이밍 좋게 사장님이 먼저 물었다.
“지금 저 나이 계산하려고 하셨죠?”
“앗 들켰다.”
규민이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사장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확실한 건 형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는 아니에요.”
“아~! 그럼 뒷자리만 알려 주세요!”
순대 서비스를 걸고 한참 내기를 한 끝에 알아낸 나이는 마흔 하나였다.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역시 그냥 분식집 사장님으로 살기에는 사람이 너무 아까워 보이는데.
우리는 모르는 뭔가 사정이 있는 거겠지. 회귀 전의 나도 처지가 딱히 다르진 않았고.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멤버들에게도 가져다주라며 이런저런 간식거리들을 잔뜩 받아서는 돌아가는 양손이 생각도 못 하게 무거웠다.
“아 맛있었다.”
규민과 현호 모두 만족스러웠던 듯해서 다행이긴 한데….
나는 뒤늦게 너무 얌전히 남의 얘기를 들으며 맛있는 식사나 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수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나는 손안에 든 가게 명함을 내려다보고는 시스템 창을 열어 키워드 상태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