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버거운 듯해도 (4)
이미 한번 걸어 봤던 번호로 전화를 걸자 송신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통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서인수입니다.”
가볍지만은 않은 목소리로 정중히 인사를 건네자 수화기 너머의 인물이 탄식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아아, 인수 씨구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짧은 문장의 한 글자 한 글자에 피로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동안 별 진전이 없었나.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네, 걱정해 주신 덕분에 큰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희록이는 아직도 소식 없을까요?”
길게 안부를 주고받는 것도 피차 피로감을 더하는 일이겠다 싶어 곧바로 본론부터 물으니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괜히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어필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마른 한숨을 삼키고 있으려니 희록의 어머니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게… 하, 정말 미안해요… 나도 이야기할 데가 없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마른 한숨을 삼키고 있으려니 희록의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수 씨한테 괜한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싶은데… 실은 지난주에 편지를 한 통 받았어요….
“편지요?”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희록이가 쓴 유서, 를 받았거든요, 자필로 쓴 건 아니고 우편함에 누가 꽂아 두고 갔더라고요.
우편함? 우편함이면 요즘은 다 CCTV 달려 있지 않나? 내가 의아함을 느낀 지점을 아주머니도 알고 있다는 듯 덧붙였다.
-누가 넣어 두고 간 건지 CCTV에 찍히긴 했는데…. 동네 상가에서 나와서 전단지 돌리는 알바생이었어요. 아파트 단지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데 누가 와서 이것 좀 하나 꽂아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고요.
편지를 대신 꽂아 준 알바생의 말에 따르면, 안에 종이 말고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았으면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 자신도 거절했을 텐데.
안에 들어 있는 거라곤 얇은 편지 한 장에 전달을 부탁한 사람이 짐이 굉장히 많아 보여서 이동하기 힘들어 부탁하는 걸로 느껴졌다고 했다.
알바생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전달받는 장면은 아쉽게도 CCTV에 잡히지 않았다고.
“편지 내용은요? 정말 희록이가 쓴 게 맞았나요?”
-그게…. 저희 가족들만 알 법한 내용들이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 쓰거나 하지는 어렵지 않을까 싶긴 한데. 저희도 믿고 싶지가 않아서요.
희록이 보냈다고 하는 유서에 들어 있는 내용은 간결했다. 찬찬히 지방을 여행하면서 돌아보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한 건지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온 소중한 꿈을 망쳐 버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집에는 들어오지 않겠다. 만약 억지로 찾으려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음….”
유서라고 보기에는 약간 비약이 있었으나 어쨌든 편지가 요구하는 바는 간결했다. 더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찾지 말라는 것이었다.
‘역시 수상한데.’
희록이 그 정도의 배짱이 있는 놈이었나. 아니 배짱이라기보다는 그 수준의 수치심을 아는 지성을 갖춘 녀석이었는지…. 나는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애당초 그런 후회로 가족들을 상대로 목숨을 가지고 협박까지 할 놈이었으면 그런 짓 안 벌였지.
더구나 자기가 한 짓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 VPN을 이용하는 잔꾀까지 부린 놈이다.
그런 놈이 굳이 자필 편지가 아니라. 진위 여부조차 알 수 없는 프린트된 출력물을 보낸다? 더더욱 석연찮은 지점이 있었다.
“그럼 그, 희록이만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셨던 부분들은 어느 정도로 구체적인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라면 자세히는 몰라도 간단하게는 알 법한 내용들은 아닌가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자기도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하소연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미치겠어요. 내용은 우리 아들이 쓴 게 맞는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정말 어디 이상한 데 끌려가기라도 한 게 아닌가….
최악의 가정은 따로 있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으신 듯했다.
“죄송한데 혹시 내용을 저도 한 번만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왜 네가 그걸 봐야 하느냐고 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임희록이 실종된 이후 조직적인 악플 공세가 멈춘 것을 보면 뻐꾸기의 수족이 임희록이었다는 것이 반쯤은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임희록이 뻐꾸기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그리고 뻐꾸기가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하는 입장에서 희록의 편지는 놓칠 수 없는 단서였다.
-문자로 보내 줄게요. 그, 연습생이나 같이 출연했던 친구들한테서 뭐 희록이 관련해서 연락 같은 거 받은 건 없는 거죠?
그걸 왜 네가 보느냐는 핀잔이 돌아올까 걱정했던 우려와 달리 아주머니는 곧바로 메신저로 사진을 전송해 주셨다.
꽤나 구체적인, 가족과 그 당사자만이 알 법한 개인사는 흐린 눈으로 넘기고. 내 눈을 사로잡은 대목은 따로 있었다.
[노래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것을 전부 헛짓거리로 만든 것 같아 너무 괴로워요.]
희록이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연습생이었던가. 내가 아는 한 아니었다.
랩 파트를 담당하게 된 것도 보컬이 너무 절망적인 수준이라서였는데.
일부 음역대에서는 그런대로 못 들어 줄 정도는 아니다, 라는 느낌이긴 했지만 소질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걸 본인도 아니까 메인 래퍼 자리를 받아들인 거겠지.’
음정이 틀리는 것보다야 좀 리듬감이 떨어져서 뚝딱거리는 것 같아도 박자만 맞으면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들리진 않을 테니.
그런 희록이 무대나 팬들에게 받는 사랑, 기대 뭐 그런 게 아니라 노래에 미련이 남은 듯한 말을 하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노래가 꼭 하고 싶었으면 메인 래퍼 말고 서브 보컬 하겠다고 우겼을 성격인데.’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이 봤을 때는 본인이 아니면 모를 법한 내용이라고 하니 무조건 본인이 아닌 제삼자의 사칭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협박이라도 받아서 쓴 내용이라거나….’
그러나 그것도 빈틈이 생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거면 그냥 의심 덜 받게 자필로 쓰게 하지 굳이 출력물을?
지금으로서 가장 의심스러운 건 희록이 아닌 누군가가 희록을 흉내 내서 실종자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으로서 답답할 만도 하네.’
기본적으로 성인 가출은 범죄 가능성이 명백하지 않으면 공권력 차원의 수사가 어렵다는 것 같았다.
막말로 정말 범죄에 휘말렸음을 증명하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거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한 계속 실종 상태로 방치된다는 뜻이었다.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제 발로 가출해서 생활하고 있는 거라면. 핸드폰이나 카드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 텐데. 누군가 숨겨 주는 사람이 있거나….’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정리하다가 아주머니와의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알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도 희록이 관련해서 소식 들리는 거 있으면 전해 드릴게요.”
꽤 길게 이어진 통화를 끝내고 나니 입안이 썼다.
“무슨 일 있어? 통화를 꽤 길게 하길래….”
문을 열고 다시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자 혜성이 걱정이 잔뜩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건 사양이니까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겠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저랑 3차 미션 할 때 임희록이라고 사고 치고 하차했던 연습생 있잖아요. 그 친구가 실종됐다고 해서요.”
“뭐? 실종이면 엄청 큰일이잖아…! 너도 뭐 관련되어 있거나 그런 거야?”
혜성이 화들짝 놀라 내게 물었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우연히 메신저 프로필 사진 보고 연락드렸어요. 부모님이 실종자 수색 전단으로 바꿔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위로차….”
“아….”
내 설명을 들은 혜성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아차, 마냥 안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 시선을 떨궜다.
잘잘못을 떠나서 사실상 내가 탈락시킨 인원이나 다름없으니 혜성은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숙연한 정적이 찾아왔다. 네가 그걸 왜 신경 쓰냐고 한다면 내게도 나름의 개연성은 있었다.
아무래도 보통 자기랑 그렇게 최악의 척을 지고 나간 사람이 실종됐다 하면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으니까.
‘하여간 그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이제 와서 다시 곱씹어 봐야 의미 없지.
싸늘해진 분위기를 정리하고 다시 몸을 풀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그때.
[스페셜 미션 ▷뻐꾸기를 잡아라의 2차 추론을 승낙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내게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드디어…!’
하필 제일 바쁜 대목인 연말 무대를 앞두고 나타난 것이 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예]
기꺼이 승낙 버튼을 누르자 1차 추론과 마찬가지로 같은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현재 뻐꾸기 지수: 1단계]
‘아직까지는 별일 없는 것 같고.’
추론에 필요한 키워드들을 정리하는 탭에 이미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춤추는 대박 떡볶이]
‘……?’
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여기 왜 와 있어?
그동안 내내 비안이 대체 왜 자꾸 나한테 저놈의 떡볶이집을 영업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설마 사장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건가?’
막연히 언젠가 기회가 되면 들러 보든가 해야지,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키워드로 돌아오니 당황스러웠다.
그럼 그동안 비안은 나름대로 내게 뭔가 알려 주고자 당근을 흔들러 왔던 건가? 대놓고 물어보면 비안은 또 거기까지는 자신이 말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거나, 아무 의미 없는 맛집 추천이었을 뿐이라고 발뺌할 듯했다.
‘한번 시간 내서 직접 가 보든가 해야겠다.’
연말은 물론 연초까지 각종 행사 스케줄로 빼곡하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을 도저히 못 낼 수준은 아니니까.
내가 한참 허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지원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형… 아무 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임희록 일로 심란해서 이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런 거 아니니까 괜찮아. 오늘 고생 많았지? 얼른 들어가서 쉬자.”
“내가 뭘…! 형이야말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제일 힘들었지.”
“습관이 돼서 난 이게 편해. 얼른 짐 챙겨.”
다른 멤버들도 하나하나 가방을 정리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빨리 눈을 붙여야 할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내서 택시 타고 다녀오든가 해야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정체불명의 수상한 떡볶이집에 대한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