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예상외의 관심 (2)
‘하.’
화면 속의 그놈을 보고 있자니 절로 욕지기가 치밀었다.
구도는 비슷했지만 입고 있는 옷이며 사람 자체의 비주얼이며 차이가 극명했다.
의상은 물론 액세서리 하나하나 유명 명품 브랜드의 것으로 입어 화려하기 그지없음에도 불구, 옷이 얼굴빨을 받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잘 어울린 탓이었다.
“하.”
꼴에 지금 반격이랍시고 맞받아친 건가? 펀보잉이 헛웃음과 함께 로고만 휘두른다고 다 진주인 줄 아냐 새로운 저격 글을 올리려던 그때.
확인만 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던 상대에게서 재차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호균 피디님] 펀보잉 씨 저희 인터뷰 내보내기로 했던 거 전면 취소되었습니다. 상황 잘 마무리하시고 원만하게 해결 보시기 바랍니다. 오후 11:03
이 야밤에 갑작스럽게 도착한 취소 문자에 펀보잉은 놀라 대뜸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 안 받는 건지 아니면 핸드폰을 못 볼 일이라도 있는 건지. 메시지가 도착한 직후 전화를 걸었음에도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시X. 취소라고 냅다 통보만 하면 다냐고!”
근래 펀보잉은 드문드문 올리는 SNS를 제외하고는 대외적인 활동을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번 시즌 킬 앤 힙에 지원 영상을 보내 촬영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만. 펀보잉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계속 내일 보내야지. 내일은 정말 보내야지, 하고 미루다 마지막 날 지인들과 함께 술이나 마시다가 퍼뜩 아, 맞다 지원 영상 하고 떠올렸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간단히 찍어서 보낼까. 다른 합격자들 영상 보면 그냥 술자리에서 간단히 몇 줄 뱉은 걸로도 붙던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도 씬에서 이름이 좀 알려져 있어 이름값으로 합격한 사례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쉬운 길에 마음이 혹했다.
‘나도 이 정도면 그래도 무명은 아니지 않나.’
처음 발매했던 믹스 테이프가 여러 유명 래퍼들의 샤라웃을 받으면서 한때 씬에서 가장 핫한 신인으로 주목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 이후 줄줄이 내는 신곡마다 말아먹은 건 차치하고, 샤라웃해 준 선배들 덕분에 드문드문 들어왔던 행사 섭외도 한동안 별다른 실적이 없자 뚝 끊겨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니 내보여 줄 게 없으면 일단 인터뷰라도 해서 아직 활동 중이라는 걸 알려야지.
가까스로 사정사정해서 잡은 작은 연예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이렇게 날릴 수는 없었다.
“아씨, 전화는 대체 왜 안 받냐고!!”
세 번째 발신 버튼을 누를 때에서야 겨우 연결된 통화는 허무하게 끝났다.
- 펀보잉 씨. 지금 링크 하나 보내 드릴 테니까 이것부터 해결하세요. 저희는 없던 걸로 하고요.
그러고 연결이 뚝 끊어진 화면을 노려보고 있으니 곧 피디가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펀보잉(본명 박태권)의 학교 폭력 피해자입니다.]
펀보잉은 제목을 보자마자 머리가 띵했다. 학교 폭력이라니 이게 뭔 개소리야.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 씨….”
어느새 자신에게 소식을 알려 주러 온 후배도 지쳤는지 스튜디오에서 사라져 있었다.
언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 한 잔만 더 하고 정신 차리자.’
작업실 한편에 있는 맥주캔을 반쯤 비운 그는 다시 해야 할 일을 미루며 소파 위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
“뭐야 이거, 언제 올렸어?”
하연과 다시 숙소로 내려오고 한 시간쯤 후.
하연이 올린 사진을 발견한 규민이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내가 올렸어. 사진 잘 나왔는데 그냥 우리끼리 갖고 있기는 아까워서.”
그러자 규민이 재미없게 됐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야, 네가 올린 거야?”
“어. 뭐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자꾸 아이돌 래퍼는 fake네 어쩌네 하니까 짜증 나서.”
“아, 그래서 ain't fake?”
나는 말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적당히 끄덕였다.
“fake 아니긴 하지. C사에서 코디로 챙겨 준 건데.”
규민이 톡톡 손가락을 움직여 댓글을 달더니 잠시 후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너 이거 때문에 올린 거였어?”
아마 그 펀보이인지 펀보잉인지 하는 누군지도 모를 래퍼의 저격 글을 이제야 발견한 모양이었다.
“겸사겸사. 한 번은 본보기로 물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까 기사 올라간 건 나도 확인했으니 지금쯤 펀보잉의 SNS가 업보의 결과로 난리가 나 있을 터였다.
“와 이 사람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사냐. 첨 믹스 테이프 냈을 때는 그래도 좀 괜찮았나 본데.”
그건 나도 이미 확인한 내용이었다. 처음 주목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런대로 성실한 신인 취급을 받았으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래퍼뿐만 아니라 무명 가수들 중에서도 자주 보이는 케이스였다.
‘초반에 받은 관심이 독이 된 사례라고 해야 하나….’
첫발을 디뎠을 때 너무 유명인들에게 인정받아 버려서 그게 인생 최대의 업적이 되어 버린 사람들.
칭찬을 받은 건 그냥 과정이지 어떤 성과가 아닌데 그걸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자연스레 관심이 몰리면서 나도 그들과 동급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까지 하면 더 답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성과를 내기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 수렁이긴 한데.’
문제는 그러고 실적을 못 냈을 때였다. 눈은 높아져 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떨어져 가고 밑천은 드러나니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럼 선택을 잘해야지. 내가 이 길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빠른 판단과 함께 다른 길을 알아보거나. 아니면 더 이를 갈고 도전해서 성과를 만들거나.
이도 저도 아니고 게으른 완벽주의에 빠져 버리면.
‘그때부터 진짜 최악의 코스로 가는 거지.’
나는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완벽한 컨디션에서 진짜 실력을 보이기 위해 지금은 쉬는 것뿐이다, 하고 내내 미뤄 버리는.
결국엔 그냥 결과지를 받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두려운 것뿐이면서 계속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 제대로 준비하면 난리 날 것이다, 는 허황된 꿈에 빠져서.
‘뭐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그리고 그런 부류들은 대개 자기가 인정하기 싫은 특징을 가진 성공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집요하게 크몬 콤비들을 까 댄 거고.’
이번이 한두 번이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터였다.
‘피드 내려 보니 이번 한 번만 그런 게 아니었더만.’
우리 크몬 콤비들만 타깃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얘기가 쉬워지지. 지금까지 너무 무명이라 안 알려져서 욕 안 먹었던 걸 잘 보이는 곳에다 걸어 주면 끝이었다.
본인이 바라는 관심은 충분히 받긴 하겠네.
세상에 이름을 두 번째로 알린 직후, 기다렸다는 듯 학폭 고발 글이 올라온 걸 보니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거 뭐… 누굴 원망할 것도 없고 자업자득이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하연이 불쑥 다가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형 이거 봤어요?”
나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뭔데?”
“이거 기사 뜬 거 보셨어요? 지금 평일 저녁인데 이렇게 빨리….”
규민이 멋대로 진실을 말해 주기 전에 나는 쉿 눈짓으로 규민이 입을 다물도록 했다.
“그러게, 댓글 보니까 원래 벼르고 있던 사람들 좀 있었나 보더라. 우리만 깐 게 아니라 다른 그룹이나 래퍼들도 툭하면 저격하고 그랬었나 봐.”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하연이 안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으스댄다고 말 나올까 봐 걱정했거든요.”
“에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규민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안타깝게도 많았다.
우리가 차트 석권한 걸로도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있던 마당에… 까지 생각하고 나니 아차, 그건 뻐꾸기가 한 짓이었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그럼 지금 나오는 반응들은 조작된 것 없이 진짜 대중 반응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먼저 들어가서 쉬겠다고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와 확인해 보니 대부분은 우리를 응원하는 댓글들이었다.
[- 정작 업계 탑급인 실력자들은 아이돌이라고 편견 안 가지고 콜라보도 하고 같이 행사도 뛰고 잘 지내는데 왜 실력도 없고 자리 잡은 것도 없는 사람들만 항상 요란하지ㅋㅋ]
[- 차라리 A그룹 K군을 깠으면 좀 이해나 갔을 텐데 ㅋㅋㅋㅋ 하필 실력파를 물고 늘어져서 본전 다 털렸네]
[ㄴ 본인이 볼 수도 있는데 이런 글은 써방이라도 해 주세요]
[ㄴ 이러니까 욕 먹는 거잖아요 못하는 걸 못한다고 하지 어떻게 좋은 얘기만 함?]
[ㄴ A군도 연습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어요 무대가 꼭 완벽해야지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데 이렇게 비난부터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생략된 메시지 54건)
[ㄴ 무슨 말이 안 통하네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상대 안 할게요]
나중에는 불씨가 엉뚱한 곳으로 튀어서 어떤 게시글이든 댓글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여론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왜 하필 욕할 때 욕하더라도 실력 있고 팬덤도 탄탄한 애를 까서 난리냐’와 ‘실력이 뒤떨어진다고 해도 저렇게 저격이나 하는 게 잘하는 짓이냐.’
논점이 어째 우리와 다른 곳으로 간 것 같긴 한데 우리에게는 응원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으니 아무쪼록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대중 여론은 좋은 편이었다는 거네.’
이럴 때 그래도 엔카운터 좀 고깝지 않냐 하고 불을 지르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걸 보면.
그걸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럼 이제 이 평화가 유지되기까지 남은 스케줄이….’
상태창을 열어 남은 일정을 확인하자 입가에 드리워졌던 웃음기가 싹 가셨다.
“…….”
앞으로 2주는 더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네.
그래도 이번 일정 끝나면 다음부터는… 편해지긴 무슨.
국내 활동기가 재시작되니 무한 루프처럼 음악 방송을 돌고 지방 행사를 다니고 예능에 출연해야 했다.
몸은 힘들겠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쉬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나았다.
‘그럼 이제 남은 활동 기간이 8개월 남짓인가.’
그 안에 진짜 콘서트와 해외 투어 일정까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조금 서늘했다.
‘그래도 이제 남은 스케줄은 대부분 무대고….’
신곡을 준비하는 일 자체는 즐거웠다. 내가 십수 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조금 더 힘내 봐야지.’
으쌰. 천장을 향해 쭉 기지개를 켜고 있으려니 잘 준비를 마친 현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
나는 눈을 의심하며 제현호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