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돌아올 시간 (1)
호텔로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마치자 핸드폰에 새로 온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누구지….’
대표나 회사 관계자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인 거냐고 하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순식간에 머리를 굴렸다.
홍보 목적으로 버스킹을 하는 아이돌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 해외에 우리를 알리러 나와 놓고 불쾌한 경험만 하게 하고 돌려보내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해야지.
그래도 위험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겠지만 아무튼 누구 하나 다친 사람도 없이 끝났으니 좀 뻔뻔하게 나가도 될 터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플을 켜서 확인한 메시지는 회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겟데뷔 홍수민] 형 영상 뜬 거 봤어요 오후 11:36
[겟데뷔 홍수민] 대박 오후 11:36
[겟데뷔 홍수민] 원래 하기로 했던 이벤트예요? 오후 11:37
그럴 리가.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나] 아니 그냥 즉석에서 하기로 한 거 오후 11:38
[나] 오래 기다려 주셨는데 그냥 돌려보내기 너무 죄송스러워서. 오후 11:38
[겟데뷔 홍수민] 우와 오후 11:39
[겟데뷔 홍수민] 그럼 그냥 멤버들끼리 결정한 거예요? 오후 11:39
[겟데뷔 홍수민] 부럽다 오후 11:39
뭐가 부러운 것인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지금 한창 데뷔곡 연습하고 안무에 동선에 외우고 있을 텐데 얼른 팬분들께 좋은 무대 보여 드리고 싶겠지.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서 건방지다면 건방진 생각이겠지만 응원하고 싶어졌다.
‘실은 따지고 보면 경쟁자… 이긴 한데….’
그래도 처지가 어떤지 아니까 그냥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기기가 어려웠다.
‘공민형도 그렇고….’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은 건가 싶었으나 14년을 빛을 못 본 채 묻혀 있었던 입장에서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겟데뷔 홍수민] 헉 벌써 시간이 12시네 오후 11:41
[겟데뷔 홍수민] 얼른 푹 쉬세요! 오후 11:41
[겟데뷔 홍수민] 남은 일정도 응원할게요 형! 오후 11:42
설레는 동시에 두렵기도 한 시기겠지. 다른 참가자들도 속속 데뷔해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있는 시기니까.
겟 데뷔 방영 이후 약 반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데뷔에 성공한 파생 그룹은 넷.
겟 데뷔 출연 멤버가 둘 이상 소속된 그룹은 엔카운터를 포함한 셋뿐이었으나 초반에 탈락한 하위권 연습생 한 명만 들어가 있는 소규모 회사 소속 그룹까지 포함하면 넷이었다.
그리고 그중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그룹은 둘. 그중에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건 엔카운터가 유일했다.
여기서 유의미한 성적의 기준은 지상파 음악 방송에 출연했냐. 못 했냐였다.
‘3사 전부 나왔으면 성적과 관계없이 일단 눈도장 찍는 데는 성공했다는 거니까.’
비록 음원 순위는 데일리 100에도 실시간 200에도 못 들었지만 어쨌든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 한 번쯤은 이름을 들었을 터였다.
반면 나머지 그룹들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붙었던 팬들은 알아봤겠지.’
음방 출연도 못 했거나 간신히 SNS 등으로 홍보를 하는 정도에 그쳤다. 나름 마케팅으로 커뮤니티 등지에서 팬인 척 영업 글을 게시해 본 것 같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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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네 겟 데뷔 유조현 데뷔하는 거 알았어? (+6)
[본문]
데뷔까지 D-5!
지금까지 공개된 멤버들 정리해 줌.
(사진)
우선 제일 먼저 팀의 든든한 맏형!
아이돌 명문 예고 출신이고 운동 잘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어렸을 때부터 인기 많았다고 함.
눈매가 배우 지송윤 닮아서 데뷔 전부터 화제였다고ㄷㄷㄷㄷ
이렇게 보니까 진짜 닮음!
(생략)
비주얼 구멍 하나도 없고 다들 존잘이라 데뷔만 하면 입덕하겠다는 친구들 진짜 많은 듯.
다음엔 컨셉 유출된 거 가지고 올게!
[댓글]
[- 와 진짜… 회사에서 알바 쓴 거 너무 티 난다]
[ㄴ 얼마 받고 쓴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
[ㄴ (작성자) 나 알바 아니야 ㅠㅠㅠ]
[ㄴ 네 알바가 아니라 직원이시겠죠 네….]
[- 개나 소나 다 지송윤 닮았다고 바이럴하네 고소 좀 해야 할 듯]
[ㄴ ㄹㅇ 회사들아 지송윤은 이렇게 생긴 사람이다 제발 객관화 좀 부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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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절대다수가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소규모 회사의 비공개 연습생의 정보를 싹 꿰고 있을 팬이 있겠냐고.
거기다 어떻게든 서치에 걸려 보겠다는 야망으로 멤버별로 그리 닮지도 않은 배우나 선배 아이돌들을 언급해 대서 더 바이럴의 티가 났다.
효과는 개뿔. 댓글은 얼마 달리지도 않았고 추천 수는 10개도 안 되는데 반대 수는 수십 건이 넘었다.
‘그 10개도 회사에서 계정 여러 개 돌려 가면서 누른 추천이겠지.’
그야말로 영세 업체의 내부 바이럴 절망편이었다.
‘팬들도 회사에서 데뷔 전에 정보 뿌리는 걸 모르진 않지….’
아는데 그냥 눈감아 주는 것에 가깝다. 어쨌거나 관심이 있는 그룹의 정보라면 궁금하기는 하고, 대형사 출신 그룹이라면 과연 누가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데뷔에 성공했는지 얼굴 정도는 보고 싶어 하니까.
그리고 대형사쯤 되면 비공개 연습생이라도 SNS 팔로워가 네 자릿수인 준인플루언서거나 이미 어디 연습생인 걸로 유명할 때가 많아서 진짜 팬이 정리해서 영업 글을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티가 나면, 거기다가 다른 선배들을 닮은꼴로 언급까지 하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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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얘네 뭔데 지네가 지송윤보고 비키라 마라야? (+41)
(사진)
개어이없네ㅋㅋ
차세대 지송윤치고는 비주얼이 너무 부족하신 거 같은데ㅎ….
[댓글]
[- 진짜 회사들 홍보하기 전에 객관화 필터 장착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쟤라고 지송윤 안 닮았고 못생겼다고 이렇게 욕먹고 싶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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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글은 댓글이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홍보 글의 일부 부적절한 멘트를 캡처해서 조롱하는 글은 댓글이 수십 개나 달렸다.
‘차라리 진짜 노이즈 마케팅 의도로 쓴 거라면 관심이라도 많이 받아야 이득일 텐데….’
객관적으로 보면 조롱 글도 조회 수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라서 여러모로 상처만 남은 홍보였다.
요컨대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할 만한 지표를 얻은 건 엔카운터가 유일하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게 공민형이랑 아진 정도인가.’
아진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와 연결되어 있는 NO 쪽 관계자들 소식을 들어 보면 내년 중으로 데뷔하는 건 확실하다는 듯했다.
‘결과적으로는 1회차 때랑 데뷔 시기는 얼추 비슷하겠네.’
그보다 좀 더 일찍 내놓을 줄 알았더니만. 엔카운터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흥해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1년 차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피한 건지 뭔지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NO에서 나오는 애들이야 데뷔 초부터 선배들이 깔아 놓은 레드카펫 밟으면서 활동할 거고 홍수민네도 지상파 출연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고.’
이제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공민형뿐이었다.
‘진짜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비안이 이미 살뜰히 챙기고 있는 마당에 내가 뭘 더 할 게 있겠냐만… 수민이 데뷔를 앞두고 설레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그쪽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넌 대체 무슨 생각이냐….’
한참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나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된 규민이 짜증을 냈다.
“아 좀. 자라. 화면 밝기 최소로 해 놨어도 신경 쓰인다고.”
그제야 나는 어느새 시간이 12시를 넘긴 것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얌전히 충전기에 꽂고 내려놓았다.
“알았어. 얼른 잘게.”
윽. 결국 5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겠네. 남의 걱정이나 하다가 내 스케줄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으므로 얌전히 눈을 감았다.
***
<반갑습니다! 활기차게 아침을 여는 토크 쇼! 오하이요 모닝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국에서 온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나이 지긋한 MC의 호들갑스러운 쾌활한 인사와 함께 시작한 아침 방송은 한국에서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패널들이 나와서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는지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었다.
<자, 그러면! 오늘의 첫 번째 이야기부터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캐스팅 담당자를 세 번이나 차단한 적이 있다!’ 누구신가요!>
첫 번째 발표자로 지목된 건 하연이었다. 하연이 수줍은 표정으로 손을 들자 카메라가 곧장 하연을 화면에 잡았다.
“아, 저인데요.”
그러자 통역사가 이어서 마이크를 잡고 하연의 말을 일본어로 옮겨 주었다.
<오오, 캐스팅 담당자를 세 번이나 차단했다니 어떤 사연인지 듣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바로 단상 위로 올라가 주시죠!>
MC의 안내에 따라 발표자 자리로 옮겨 간 하연이 흠흠 짧게 목을 가다듬고는 사연을 읊기 시작했다.
“우선 제가 어떻게 캐스팅이 되었는지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보통 래퍼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은 자기 녹음 파일을 포트폴리오 같은 개념으로 어떤 사이트에 올려 두거든요.”
사연을 요약해 보자면 사소한 에피소드였다. 하연이 친구들과 함께 심심풀이로 녹음했던 음원을 웹에 올렸고 그걸 발견한 은찬이 소속사 대표에게 전달했다.
소속사 대표였던 프로듀서가 듣기에도 목소리 톤이나 발성, 음감 등이 좋았는지 곧바로 작업실에서 만나 보자는 제안을 보냈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하연이 이전에 프로필 사진으로 자기 셀카를 걸어 둔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제가 진짜 온갖 이상한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뭐 무슨 사진 모델을 해 줄 수 있냐, 부잣집 사모님들의 예쁨을 받으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뭐 이런 짜증 나는 연락이 너무 많이 왔거든요.”
하연도 소속사의 러브 콜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라서 처음에는 메신저 아이디까지 공개를 해 두었다고.
그랬더니 정말 오만 이상한 연락이 다 와서 메신저 아이디도, 프로필 사진도 내려 버린 타이밍에 랩 씬에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글렌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 진짜 사칭인 줄 알았어요. 솔직히 저는 좀 객관적인 편이라서… 그동안 연락 온 거는 얼굴 때문에 온 거고 제가 실력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연이 기만에 가까운 농담을 한 순간, MC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호통을 쳤다.
<아 그러니까 얼굴로는 캐스팅을 받을 만하다, 그거네!>
그리고 동시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네…. 그건 좀…. 제가 객관적이다 보니까….”
하연이 수줍은 얼굴로 뻔뻔한 대답을 하자 웃음소리가 더 크게 이어졌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데?’
그리고 사건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