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50화 (150/224)

#150. 한 보 전진인가 했는데 (3)

귀국길도 아니고 출국길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취재를 나온 카메라맨부터 첫 출국길을 배웅하러 나와 준 팬분들까지. 인파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몰려서 혼란 그 자체였다.

‘시큐리티가…!’

방금도 조만간 폐차장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낡아 빠진 승합차에서 내렸는데 시큐가 있을 리 없었다.

“다들 붙어서 이동하세요. 떨어지지 마시고요!”

매니저가 필사적으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지만 혼자서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을 커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평소라면 따라왔을 몇몇 스태프조차 같은 비행기를 예매하지 못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더욱 손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하연아!!!”

“이규민!”

여기저기서 각자 자기가 응원하는 멤버 이름을 외쳐 대는 바람에 멤버들끼리도 서로 소통이 안 돼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뭐든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지원이 누군가의 손에 후드를 잡힐 뻔했다.

“지원아!”

내가 재빨리 소매를 잡아당겨서 지원이 그쪽으로 넘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 두었던 이티켓 출력물을 확성기처럼 말아 쥐고 외쳤다.

“죄송한데 질서 유지 부탁드립니다! 서로 위험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시큐리티나 공항 관계자도 아니고. 사진 찍히는 당사자가 짐짓 화난 얼굴로 외치는 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던 탓일까.

난리 한복판이었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감사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일단 냅다 고개 숙이고 인사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니 무슨 홍해 바다 갈라지는 것처럼 사사삭, 팬들이 길을 터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인파를 뚫고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죽겠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물부터 사서 벌컥벌컥 들이켜자 이규민이 뒤늦게 히죽거리며 박수를 쳤다.

“이열, 리더 멋있다아~”

나는 조용히 하라는 듯 반응도 해 주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너무 눈에 띄는 짓을 한 게 아닌가 약간 후회가 밀려오긴 했으나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목소리 큰 게 이럴 때는 좋으니까….’

성량이라면 멤버들 중 누구와 비교를 해도 자신 있었다.

그걸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혹시라도 서인수 너무 나댄다고 실시간으로 욕먹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는데.

슬쩍 SNS에 검색해 보니 실시간으로 올라온 반응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쭈이 @4390_daysfor]

[서인수 인천 공항 출국장 일일 시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영상)]

[- 미치겠다 지도 왜케 잘해? 성량 개커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인수를 키즈 카페 같은 데 보낼 게 아니라 콘서트 시큐로 보냈어야 하는데]

[ㄴ 입장 개빡세게 잡을 듯 이름 주소 번호 하나라도 틀리면 집 돌려보낼 것 같아서 개무서워ㅋㅋㅋㅋ]

[ㄴ 지금 찍으셨어요? 잠깐만 나와 보세요. 촬영 때문에 퇴장이시고요. 본인 귀책 사유로 퇴장이기 때문에 재입장 안 되세요]

[ㄴ 아 PTSD 와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ㅠㅠ]

[ㄴ 복도에 있는 개인 소지품 모두 의자 아래에 넣어 주세요. 통행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ㄴ 아, 네! 죄송합니다! (허겁지겁 가방을 의자 아래로 넣으며)]

[ㄴ 이게 뭐냐 갑자기 자컨 하나 뚝딱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증 난다거나 불쾌하다는 이야기는 없고 모두 웃긴다는 평뿐이었다.

‘웃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들 좋아하시니 다행이네. 안심하고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곧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저쪽에 벌써 줄 서 있네요!”

매니저의 인솔을 따라 탑승 줄에 서니 주변 승객분들이 계속 흘끔흘끔 우리를 의식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일찍이 해외 스케줄이 잡힐 줄 알았으면 미리 비즈니스라도 끊었을 텐데.’

명성이나 인지도에 비해 여러모로 초라한 이동 방식에 주위에서 계속 흘끔거렸다.

쟤네가 왜 여기 있어? 같은… 심지어 좌석까지도 멤버들끼리 붙여서 앉는 게 아니라 띄엄띄엄 남는 자리에 일단 되는대로 들어가서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째… 아까부터 계속 녹화… 하고 있는 것 같지.’

옆자리에 지금 한창 인기몰이 중인 1군 아이돌이 앉아 있으니 신기한 건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옆에 앉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핸드폰 렌즈를 내 쪽으로 한 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어서 신경 쓰이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걸 말을 해, 말아?’

조금만 더 참을지 말지 망설이던 그때 그분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은 현호가 먼저 끼어들었다.

“죄송한데 촬영은 삼가 주시면 안 될까요.”

현호의 정중하면서도 낮은 목소리의 요청에 남자분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헉, 아! 네! 죄송합니다!”

역시 찍고 있는 거 맞았군. 촬영이 오픈되어 있는 공개적인 장소도 아니고. 좁아 터진 이코노미 좌석에서 도촬당한 입장에서 솔직히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으나 여기서 더 항의할 수도 없었다.

‘이걸 뭐 내리라고 하거나 핸드폰을 뺏을 수도 없고.’

거세게 항의해 봤자 이쪽 이미지만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현호가 끼어들어 준 것이 최선이었다.

‘나름… 돌려서 말할 줄도 알고 기특하네.’

처음 겟 데뷔에서 만났을 때 했던 행동거지를 생각하면 이럴 것 같았는데. 지금 저 찍으신 거예요? 왜요? 저희가 무슨 공직에서 일하는 공인도 아닌데 그쪽이 찍으면 무조건 찍혀야 하는 거예요? 뭐 이런 식으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정색하는 현호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으려니 정작 현호가 그렇게 화를 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꽤 됐네?’

몇 번 단체 미션을 경험하면서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고, 하나하나에 날뛰며 화를 내 봤자 본인 손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나중에 엔카운터가 해체하고 나서도 문제없겠어.

나도 모르게 불쑥 생각한 순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벌써부터 별생각을 다 하네.’

지금은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의 스케줄을 무사히 끝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전에 한숨 자 둘까.’

도착하자마자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움직여야 할 테니 미리 쉬어 둘 수 있을 때 눈을 붙여야 했다.

조금 전 현호의 또렷한 지적 덕분일까. 나는 나를 향하는 시선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한참 뒤. 뒤척거리다 중간에 깨고 뜬눈으로 지새우고를 반복하다 내리기 3시간쯤 전에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다 비행기가 파리 공항에 닿기 직전 눈을 뜬 나는 아직 통신도 안 되고 짐은 미리 다 정리를 해 놔서 할 것도, 뭘 볼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와서 영화를 틀면 100% 다 보기 전에 내리게 될 테고… 괜히 진작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메신저 어플에 남아 있는 지난 대화들을 살폈다.

그때 유달리 눈에 띄는 프로필 사진 하나가 계속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종자를 찾습니다.]

‘아직도 못 찾았나 보네.’

처음 실종 소식을 알게 된 날 이후. 한 번 더 혹시나 해서 희록의 보호자 번호로 전화해 봤지만 더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없었다.

희록은 여전히 실종 상태였고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 가출 정도로 생각했던 경찰도 실종 기간이 길어지자 범죄 혐의점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당장에 발견된 증거는 없어서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오든, 아니면… 시체가 발견되든. 진척이 있어야지만 공권력이 투입될 수 있다고.

‘결국 당장은 기다리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건가.’

덩달아 나도 속이 탔다. 싫은 녀석이긴 하지만. 본인이 한 죗값을 정당하게 치르길 바랐던 거지 해코지를 당하길 바랐던 게 아닌데.

혹시나 내가 악플 수사를 넘기지 않았다면 그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냐. 그게 왜 내 탓이야.’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입장이고. 미안해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래도 신경 쓰인다고….’

아무쪼록 무사히 돌아와서 처벌받아라. 쓴 입맛을 다시는 사이 비행기가 아무 탈 없이 공항에 착륙했다.

“어우, 뻐근해.”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들 평균보다 훌쩍 큰 신장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계속 복도와 화장실 사이를 오고 가며 저린 다리를 풀어야만 했다.

“다음에는 꼭… 미리 예약하도록 하죠.”

내가 영혼 없는 눈으로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매니저에게 말하자 매니저가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저도 정말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나름 경력직이었던 매니저는 지금껏 중국이랑 일본, 대만처럼 인근 아시아 지역의 출장은 자주 다녀 봤어도 유럽까지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어쨌든 고생은 다 같이 한 거니까. 이번엔 빨리 정해진 일정대로 끝내고 귀가하는 게 목표다, 다들 되새긴 순간 또 자잘한 사고가 터졌다.

“저 헤드셋이 없어졌는데요.”

“잘 찾아봐요, 두고 내린 거 아녜요?”

“아뇨 저 분명히 가방 안에 넣어 놨는데….”

은찬이 기내에 반입했던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어 보니 짐이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명백한 절도였다.

“와….”

“무섭다….”

그 후 규민의 캐리어까지 분실되면서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우리 진짜 돈 열심히 벌어서 다음엔 전세기 타자.”

“아니 전세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니까?”

웅성웅성거리면서도 회복이 빠른 게 확실히 애들이다 싶었다.

“아 우울해…”

규민만 짐을 통째로 잃어버린 대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호텔로 향하는 내내 투덜거렸다.

“항공사 통해서 보상받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웬만하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나마 여권이나 핸드폰, 태블릿 PC 같은 주요 물품들은 전부 휴대하고 와서 다행이었다.

“국제 미아 안 된 걸 우선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아니 그것보다도 문제인 게….”

규민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나 갈아입을 옷이 없어. 속옷도.”

“……”

그리고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올해 들은 TMI 중 최악이다.”

“아니 당장 입을 게 없는데 어떡하라고!”

결국 공항 편의점에 들러서 I LOVE PARIS 글씨가 선명하게 자수로 새겨진 속옷을 샀다.

“아 진짜…. 너무 싫다.”

그냥 관광객 Mood 정도가 아니라 휘황찬란한 파랑하양빨강의 현란한 눈갱에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XX, 내가 아무것도 안 입는 거보단 낫잖아. 입는 내가 제일 싫어.”

“그런 생각은 그냥 너 혼자만 해라.”

“자꾸 얘기하지 마세요, 진짜.”

그렇게 숨돌릴 틈도 없이 첫 해외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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