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48화 (148/224)

#148. 한 보 전진인가 했는데 (1)

‘뭐지….’

소파에 다시 앉은 지도 수분. 정말 밥을 먹이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비안은 이후로 계속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진짜 그냥 밥이나 먹고 가라고?’

당황하기도 잠시 비안이 주문한 떡볶이가 배달되었다.

“네, 나가요~”

생글생글 웃으며 직접 떡볶이를 받으러 나간 비안은 뭔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는지 잠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라?”

“……?”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현관 쪽을 내다보자 비안이 떡볶이를 배달해 준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은 사장님이 안 오셨네요? 사장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

그러자 직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아뇨. 오늘 홀에 단체 손님이 있어서요. 근처 보육원 아이들이 단체로 와서 먹고 가는 날이거든요.”

“아아~”

“오늘 웬일인지 배달 주문도 폭발하는 날이라서 배달 대행까지 쓰고 있다니까요.”

“그렇구나~ 장사 잘되면 좋은 일이지, 뭐. 사장님한테 안부나 전해 줘요.”

딱 봐도 상황이 어지간히 어지러운지 배달 온 알바생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다음에 또 주문해 주세요!”

알바의 힘찬 외침과 함께 떡볶이를 받아 든 비안이 다시 응접실 테이블 쪽으로 왔다.

‘뭐지….’

사장이랑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여기에서 시킨 건가. 나는 비안이 내려놓은 포장지에 큼지막하게 인쇄된 로고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춤추는 대박 떡볶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 걸 보니 프랜차이즈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너무 소규모라서 알 만한 곳이 아니거나.

“여기 떡볶이 좋아하시나 봐요? 단골이신 것 같아서요.”

내가 슬쩍 운을 띄우자 비안이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래도 가깝기도 하고…. 사장님이랑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사이거든요. 서로 좀 친하기도 하고. 참. 사장님이 진짜 잘생겼어요.”

뭐지? 진짜 사장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건가. 잠시 후, 기다리던 매니저도 도착하고, 나는 여전히 소득은 없고, 영문도 모른 채로 일단 내 몫으로 나온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정말 떡볶이만 먹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이게 뭔….’

그렇다고 비안에게 왜 밥만 먹고 끝난 거냐고 따질 수도 없고. 나는 여전히 빈손인 채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비안에게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쪽을 알아봐야 했다.

‘아직 건드려 보지 않은 쪽이… 보자….’

한 손으로 머리를 반쯤 쥐어뜯으며 핸드폰 연락처를 살폈다.

현찬은 그날 규민이랑 같이 찾아간 후로 날 차단했는지 프로필 사진도 보이지 않았다.

정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규민 번호를 빌리거나 하면 되겠지만…. 아무튼 그쪽이 내게 뭔가 원한을 진 건 아니고, 본인은 소속사 사장에게 협박당해서 한 일이라니 더 물고 늘어질 수도 없었다.

‘그쪽 사장이랑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말이야.’

업계의 큰손들을 상대로 이 이상 원한을 들쑤시고 다니는 건 원하지 않을뿐더러 그쪽에서 정말 작정하고 지독한 짓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터져 나가는 건 나였다.

‘그럼 남은 건….’

공민형도 만나 봤고, 그다음은 임희록인가.

그쪽도 의심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건너 건너 들은 소식으로는 그 후로 회사에서도 방출되고 연습생을 완전히 그만두었다고 했다.

방송에 나가기 전에는 나름 유명한 일반인으로 SNS 팔로워 수도 네 자리여서 일상 사진이나 착장 같은 걸 올리기도 했다는데.

겟데뷔에서 쫓겨난 후로 SNS 업데이트도 완전히 끊겼다고 했다.

‘아이돌은 정말 완전히 그만두기로 한 건가.’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사실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아이돌 때려치우고 뭘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시간이야 남아돌 테고. 허튼짓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게 제일 의심되는데.’

엔카운터에 임희록의 원한을 산 이가 둘이나 포함되어 있는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다.

나는 너네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인데, 너네는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잘나간단 말야? 하고 억하심정을 품고 있겠지.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녀석이었으나 내가 선뜻 파 볼 수 있는 선택지는 이미 다 파 본 후였다.

이제는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쪽을 찾아봐야 했다.

‘일단 미끼부터 던져 보고.’

나는 재빨리 핸드폰 화면을 켜서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매니저님. 네, 저 인수인데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건이요. 몇 개만 우선 추려서 넘기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매니저는 갑작스러운 연락이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내내 내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흔쾌히 승낙했다.

- 그동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요? 아무튼 그래요, 이놈들도 좀 따끔한 맛을 봐야 인생이 실전인 걸 알겠죠.

“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남은 건 부디 내가 던진 미끼를 희록이 물기를 바랄 뿐이었다.

***

그리고 입질이 온 건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아서였다.

짧은 휴가에서 복귀한 우리는 각종 행사며 축제에 숨 돌릴 틈도 없이 갈려 나가며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데뷔 앨범을 성공적으로 히트시킨 우리에게 준비된 건 정석적인 단계였다.

‘해외 진출.’

일단은 제일 가까운 일본의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해외 투어도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곧바로 해외 투어를 염두에 둔 신곡 연습이 시작됐고 은찬도 나도, 나머지 멤버들도 정신없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공식 활동기는 아니라서 매주 음방 때문에 삼 일씩 뺏기진 않으니 다행이긴 한데.’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돌 활동에 집중하는 사이 임희록은 생각도 못 하고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조사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나.’

휴가가 끝나기 직전, 내가 매니저에게 부탁한 건 다름 아닌 일부 악플러들에 대한 고소 처리였다.

그동안은 정말 심각한 모욕, 성희롱, 인신공격성 루머에 대해서만 삭제 조치를 해 왔는데 이번에는 범위를 넓혀서 악의적인 루머에도 고소를 진행한 것이다.

내가 고소를 넘긴 악플들의 기준은 간단했다.

악플은 기본적으로 작성한 본인의 열등감을 투영하기 마련이었다.

본인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걸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졌을 때, 본인의 약점을 더 집요하게 물어뜯는다고 해야 하나.

‘이까짓 놈들이 어떻게 나도 못 한 1위를, 같은 발상이 뻔히 느껴진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악의적인 게시글 중에서도 본인의 콤플렉스가 느껴지는, 성공하지 못한 연습생이 쓴 듯한 것들을 추려 냈다.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개소리를 봐야 해서 괴롭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이 후려치는 것 이상의 재능을 가졌다는 건, 이제 수많은 증명을 통해 확신을 얻었으니까.

이 중 임희록이 있다면 피고소인 조사 중에 밝혀지겠지.

그러나 내가 임희록의 근황을 알게 된 건 전혀 다른 일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걔 뭐더라… 임 뭐? 성이 임씨고 이름에 록 같은 게 들어갔던 거 같은데.’

멤버들 중 제일 마당발인 규민이 어디서 근황을 물고 온 것이다.

‘임희록이요? 걔가 왜요?’

은찬과 모종의 사건이 있었던 만큼, 하연이 평소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규민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다. 걔 실종됐다던데?’

‘뭐?’

내가 깜짝 놀라서 자초지종을 묻자 규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걔네 어머님이 걔랑 알고 지냈던 연습생들한테 전화 싹 돌렸대. 갑자기 사라져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연락도 안 된다고.’

‘…….’

규민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다들 내심 희록이 너무 잘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막연히 못된 심보를 먹는 것과 실제로 어디가 잘못됐다는 얘길 듣는 건 아무래도 다른 일이니까. 나도 덩달아 숙연해져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조별 미션 수행을 위해 등록해 두었던 연락처에 뭔가 업데이트된 건 없나, 제일 먼저 확인해 본 나는 곧 임희록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당황을 금치 못했다.

[실종자를 찾습니다.]

[이름: 임희록]

[생년 월일: XXXXXX]

[사라진 날짜: 11월 XX일]

부모님이 주변에 연락을 돌렸다더니 정말 카더라가 아니라 실종된 거였나.

날짜를 확인한 나는 등 뒤로 섬찟 소름이 저절로 돋았다.

사라진 날짜가 얼마 지나지 않은 최근의 일이었다.

‘설마 악플 수사 관련해서 소환장이 가서 어디로 도망쳤든, 잘못된 선택을 했든 한 건가?’

나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지원이 일처럼 한번 나는 의도치 않았으나 다른 사람의 인생에 너무 큰 영향을 줘 버린 것 같았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도 같은 일이 아닐지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냐. 어쨌든… 고소할 만한 내용이었으니까 처벌은 해야 했던 거고….’

이건 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전단지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곧 희록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 저, 전화받았습니다.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 임희록 연습생이랑 같은 프로그램 출연했던 서인수라고 합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길게 탄식하며 거의 흐느끼듯 말했다.

- 아아, 미안해요. 인수 군한테도 우리가 너무 면목이 없어. 내가 아들을 잘못 키워서, 내가…. 우리가 경황이 너무 없어서 사과도 못 했어요. 미안해요.

연거푸 들려오는 사과에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뇨, 저는….”

내가 채 말을 대답하기도 전에 수화기에서 흐느낌이 이어졌다.

- 우, 우리 애가 한 짓을 생각하면, 버, 벌받아도 마땅하겠지만… 한 번만 어떻게 합의해 주면 안 될까요? 애를 일단 살리고 봐야 할 것 같아서요. 흐흑….

“…….”

‘합의’를 언급하는 걸 보니 역시 소환장을 받은 게 맞나 본데. 나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이해가 잘 안돼서요. 희록이가 어쩌다 실종된 건지는 모르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어진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희록이가 연습생 생활을 그만둔 이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다는 것부터 들어올 수입이 있기는커녕 소속사로 방출될 때 차용증을 쓰고 나와서 빈털터리였을 텐데 왜인지 최근 씀씀이가 컸다는 것.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것 같았다는 것.

그 누군가가 연예계에서 꽤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 잘하면 데뷔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는 것까지.

‘설마 싶었는데.’

그 모든 정황들이 말해 주는 결론은 하나였다.

어떤 요주의 인물이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내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을 들쑤시며 여기저기 사주하고 있다는 것.

‘유 대표는 본인 성정을 봐서라도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어. 그랬더라도 비안이 막았을 테고. 아마도 박 대표 짓이겠지.’

희록이 사라지기 직전, 근 한 달 만에 외출을 할 때 희록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모든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그 사람’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희록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무슨 일을 당한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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