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40화 (140/224)

#140. 무엇을 하고 싶은지 (3)

‘이제 진짜로 터질 때가 됐지.’

공민형에게 프리점프와 계약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을 때 언급했던 그 사건이었다.

시기가 정확히 며칠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딱 팬 미팅이 끝날 즈음이었다.

‘그때 맞춰서 다시 연락해 봐야겠네.’

그놈이 20년도 전에 소속사 대표와 밀키즈 멤버들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 비안과도 접점이 있으니까.

‘어쨌든 그 전까지는 팬 미팅에 집중해야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멤버들이 조용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뭘 해야 할지 분명히 정하고 나니 몸은 피곤해도 머리는 한결 맑아진 느낌이었다.

***

마침내 팬 미팅 당일, 난생처음 해 보는 3시간짜리 공연에 멤버들 모두 마지막 무대를 끝냈을 때는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수고해 주신 스태프분들께도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숙소 침대까지 순간 이동으로 가고 싶다.”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간 매니저가 주차장에서 차를 빼 오는 동안 대기실 바닥에 나동그라지듯 드러누운 규민이 중얼거렸다.

“그러려면 저희도 세계관에 무슨 초능력 같은 거 넣었어야 했어요.”

“아…. 초능력 하자고 할걸. 순간 이동 진짜 개멋있는데.”

다들 너무 힘든 나머지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는 사이 나도 더는 서서 버티기가 힘들어서 규민이 바닥에 드러눕느라 비워 준 소파 자리를 냉큼 차지하고 앉았다.

“아, 매너 좀.”

졸지에 조금이나마 체력을 회복하고 돌아갈 기회를 잃은 규민이 불평했다. 나는 뒷등으로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한번 내려갔으면 내려간 거야. 거기서 살아.”

유치한 발언이라는 걸 알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컨트롤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전 마지막 무대를 할 때, 이번 무대를 끝으로 다른 장기 그룹만큼은 아니더라도 잠시 휴식기를 가지리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 공개 무대는 한 달쯤 후나 되겠지. 그사이에도 각종 행사 무대는 뛰겠지만 이렇게 우리 팬들만 있는 자리에 서는 일은 한동안 없을 것이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쉽잖아.’

그냥 다른 무대와 마찬가지로 준비해 온 만큼의 최선만 다하기에는 아쉬워서, 숙소에 내 발로 걸어가기 위해 비축해 두었던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냈다.

라이브 애드리브도 평소보다 음을 더 높게, 그리고 길게 끌었더니 말할 때마다 목이 칼칼했다.

‘다른 녀석들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다고, 엔카운터로서 서는 무대 하나하나가 소중한 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 같이 오프닝 무대 때보다 더 힘을 써 버렸지.’

그동안 연습해 온 100% 정도가 아니라 150%를 쥐어짜 내는 바람에 팬들의 SNS에도 즉각 반응이 올라왔다.

[- 아니 팬콘 지금 원래 공연 시간보다 초과됐는데 애들 너무 열일 해서 당황스럽다 신인 체력 맞음?]

[- 애들 이렇게 n시간 공연해 본 적 없어서 텐션 뒤로 갈수록 떨어질 줄 알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객석의 누나들만 지치고 애들은 막 무대를 더 신나게 뛰네]

[└ 예정 시간 초과해 가면서 무대 올려 줘서 너무 고마운데 누나 허리 아프다ㅋㅋㅋㅋㅠㅠㅠㅠㅠ]

[└ 다음에 복대 챙겨 와요 저도 중간에 몇 번 같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서 있고 싶었음]

[- 마지막 무대라고 더 힘내서 뛰어 준 거 같아서 너무 감동ㅠㅠㅠ]

[- 2시간 하고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길게 해서 막차 끊기는 줄 알고 개긴장 탐 아니 싫은 건 아닌데ㅠㅠㅠㅠ 좋은데ㅠㅠㅠㅠㅠ]

[└ 헐 그 정도로 오래 했어요ㅠㅠㅠㅠ?]

[└ 네 중간에 게임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영상 같은 거도 보여 줘서 더 분량 채운 것도 있긴 한데 팬 미팅치고 곡 수도 많아서 더 오래 걸린 듯요]

대체로 본공연 시간보다 길게 해 줘서 고맙다, 최근에 본 공연 중에 제일 즐거웠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그래, 다들 좋으셨으면 그걸로 된 거지.’

기운이 쭉 빠진 채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으려니 스태프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차량 준비되셨으니 주차장으로 이동하실게요!”

이제 정말 끝났다! 집에 가서 다들 쓰러져서 잘 생각부터 하며 땀에 전 육신을 간신히 움직이는데 주차장까지 가는 길목에도 팬들이 가득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퇴근한 아이돌 자아 한 번만 더 불러와.”

주차장으로 이어진 통로로 향하는 유리문을 열기 직전, 멤버들에게 주의하듯 말한 순간.

언제 지쳐서 기절할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냐는 듯 다들 기력을 회복한 얼굴을 갖췄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또 봐요!”

“감사합니다!”

세 발자국 걸을 때마다 한 번씩 손을 흔들고 감사 인사를 외치며 겨우겨우 인파를 빠져나가자 이제는 차량 진출로가 문제였다.

“위험하니까 조금만 옆으로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멤버 하나하나가 결국 조금씩 창문을 내려 양해를 구하고 나서야 겨우 공연장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제 진짜 끝!”

마지막 유언처럼 외친 혜성이 풀썩 쿠션에 머리를 댄 채 마치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잠들었다.

‘고생 많이 하긴 했지.’

이번 공연에도 수습하는 건 주로 나와 혜성이 담당했기에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고생 많았어. 내가 못 하는 걸 대신해 준 것도 많았고.’

나와 혜성이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지 않게 완충재 역할을 하는 멤버라면 분위기를 띄워 준 건 영인과 규민이었다.

각종 밈이나 예능에도 관심이 많은 데다가 영인은 순발력과 체력도 좋아서 각종 미니 게임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준비된 미니 게임은 겟데뷔 촬영 때 했던 것과 비슷한, 댄스 퀴즈나 첫 음 듣고 알아맞히기 같은 종목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쥐약인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 인수 형한테 너무 불리한 거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나와 지원이 자강두꼴, 자존심 없는 두 꼴찌들의 대결을 펼치는 동안 규민과 영인이 각각 자기 팀의 에이스로서 활약하는 모습이 꽤 재밌게 보인 듯했다.

‘이쪽도 일부러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건 아닌데.’

이렇게 팀의 깍두기 취급당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봐야 결국 내 손해였다.

내내 그래도 최선은 다하자! 분명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몸이 안 따라 주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던 내가 마침내 마지막 종목에서 반전을 터트렸을 때.

팬들 앞에서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예능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인수 형 진짜 기억력 좋더라.”

내가 반전의 역사를 쓴 종목이 바로 ‘포카 맞추기’였기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이번에 발매한 미니 앨범의 포토 카드를 쭉 뒤집어 놓고 한 쌍을 찾아내는 것이 룰이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순발력이 좋은 멤버들이 유리해 보였으나 점차 보기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제일 잘한다.’

최대한 팬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라 보겠다고 내 것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 포카도 너무 많이 들여다본 덕분이었다. 작은 특징만 봐도 알아볼 수 있도록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은 듯 남아 버린 것이다.

‘A1이랑 C4, 그리고 C5랑 E3, B2랑 D1 이렇게 할게요.’

늦게라도 내 차례가 되는 순간 최소 세 쌍, 많으면 다섯 쌍까지도 한 번에 맞춰 버리니 짝을 맞추기는커녕 헛발질만 연속이던 다른 멤버들이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거라도 잘해서 다행이다.’

머릿속으로 [- 서인수 어떻게 팬콘에서도 겜존못으로 민폐냐] 하고 올라오는 상상을 수 번씩 하던 와중 겨우 이뤄 낸 쾌거였다.

어쨌든 나도 부족한 모습만 보여 주다가 내려온 건 아니고, 마지막까지 다들 이게 마지막이라는 아쉬운 마음 반, 오늘 더없이 즐거웠다는 충만한 마음 반으로 공연장을 떠났으니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이번 활동도 성공적이었네.’

미니 앨범 판매량은 아이돌 신인 최대 기록을 찍었다. 발매 당시 판매량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록이었으니 선발 1군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K팝 팬덤뿐만 아니라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이게 그 정은찬 박하연이 프로듀싱한 노래냐’로 관심이 끌려 화제가 되며 수요층이 조금 더 늘기도 했다.

아이돌 노래는 유치해서 안 듣지만, 엔카운터 노래는 하도 좋다길래 들어 봤다… 같은 자존심 세우는 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성으로 높게 평가받는 건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돌 음악이라고 무시하는 것부터가 좀 모순적인 거 아닌가.’

대중성이 뭔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 즐거움을 주는 것, 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돌 음반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장르가 어디 있다고.

대중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는 것도 분명 멋진 일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느끼는 걸 추구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자기가 하면 세대와 취향을 초월하는 히트곡이고 남이 하면 유치해서 막 듣기 좋은 노래라는 거지, 뭐.’

어쨌든 나도, 멤버들도, 작곡에 가장 힘을 많이 썼던 은찬도 만족스러우니 다행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짧은 공지로 공유받은 휴가는 일주일이었다.

매니저가 그동안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을 텐데 휴가를 오래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뭐… 매니저님이 사과할 일이 아니기는 한데….’

힘들긴 하지만 매니저도 같이 고생했던 만큼 싫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간만에 본가로 내려가고 영인까지도 모처럼 시간을 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와중.

나는 자취방을 처분해 버렸기에 돌아갈 곳이라곤 본가밖에 없는데, 또 본가에 가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듯하여 숙소에 남기로 했다.

‘그럼 숙소에 남는 건, 현호 씨랑 인수 씨, 두 분이에요?’

매니저가 순간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이제 투닥거릴 시기는 진작 지났고요, 이 녀석도 협조 잘해 주니까요.

나는 웃으며 매니저를 안심시키고는 곧바로 인터넷 뉴스의 연예면은 물론 사회면까지도 도배하고 있는 화제를 찾아보았다.

[- 뉴하우스 ○○, 경찰 조사 중 혐의 시인]

[- 광고 업계 비상 걸리나, ○○스캔들 일파만파]

[- 경찰, ○○ 외에도 뉴하우스 내 조사 중인 멤버 있다]

이제 민형에게 다시 연락해 볼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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