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39화 (139/224)

#139. 무엇을 하고 싶은지 (2)

‘어….’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한 그때 은찬이 먼저 대답했다.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오픈 화력이 떨어진 거니까….’

그러자 혜성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산뜻한 얼굴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야. 올해 한 자릿수로 진입한 그룹이 몇 그룹이나 된다고 자책을 해. 앞으로 더 쭉쭉 올라갈 텐데.’

혜성이 스타트를 끊어 준 덕분에 은찬의 옆에 딱 붙어 있었던 하연도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아마 오늘 자정 안에는 1위 찍을 거 같은데요? 진입이 이 정도면 데뷔 싱글에 비해 그렇게까지 반응이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일단락 지은 상황이었기에 겨우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에 긴장이 많이 풀린 모양이었다.

“너무 자책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 봤자 본인의 기준에 미달되면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겠다만.

어쨌든 자정 안에 1위도 찍었고 하니 재빨리 규민의 핸드폰 앞에 모여들어 찍은 단체 사진으로 공식 SNS에 감사 인사를 올렸다.

 ̄ ̄ ̄ ̄ ̄

[단체] 오늘 함께해 주신 드리머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이 보여 드릴게요! 곧 다시 만나요. Comming Soon!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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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분들께 인사도 했으니 이제 해야 할 게 있지.

하나둘 숙소 주차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뿔뿔이 방으로 흩어지려는 것을 막아 세웠다.

“…?”

영인이 무슨 일이냐는 듯 아무런 불길함도 눈치채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서 있는 지원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자, 오늘 하루 얼마 안 남기는 했는데…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가 몇 개 있으니까, 씻고 쉬기 전에 잠깐만 모이자.”

느닷없이 분위기를 까는 내 목소리에 규민이 뭔가 귀찮은 기류를 감지했는지 시선을 피했다.

“아~ 다들 피곤하니까 어차피 내일도 연습실 가는데 그때….”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나중에 언제?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얘기 아니니까 다들 거실로 모여 봐.”

한 명씩 주섬주섬 거실 바닥에 들어앉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모두가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을, 하지만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확실히 피드백하고 넘어가자. 무대 중에 실수한 사람 손 들어.”

그러자 영인이 제일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걸 본 하연이 손을 들려다가 멈칫 다시 내렸다. 지원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부터 천장을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양심껏.”

내 표정이 농담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은찬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분명 양심껏이라고 했을 텐데 아직도 안 든단 말이지. 스윽 규민이 있는 방향으로 노려보자 규민이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손을 올렸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그제야 영인도 손을 들었다.

하나, 둘, 셋, 넷… 어느새 조용히 팔을 귀에 붙이고 있는 현호까지 여섯 명이 자수하고 광명을 찾았다.

“실수 안 한 건 나랑 혜성 형뿐이야?”

나는 기가 막힌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영인이 억울하다는 듯 변명했다.

“솔직히 저는 억울한데요.”

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 사연은 단출했다. 무대가 어디 모자라거나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아주 조금씩 풀어진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음방 활동이나 게스트 출연 때처럼 한두 무대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곡을 올리려니 조금씩 빈틈이 보였다.

‘아까만 해도 그래. 안 해도 될 실수였잖아.’

문제의 발단은 하연이었다. 그래 인원이 많으면 헷갈릴 수 있어. 사건은 오늘의 수많은 무대 중 사이에 짧은 토크를 진행해야 했던 시간에 벌어졌다.

무대 의상으로 입고 있던 재킷을 잠시 벗어 둬야 하는 타이밍이 있었다.

보통은 스태프분들이 챙겨 주시겠지만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들 소파 위에 구겨지지만 않도록 벗어 두고 무대 위로 올라가야 했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에 와서 각자 벗어 두었던 윗옷을 입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겼다.

‘자세히 보면 디자인이 달라서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뭐가 어떻게 꼬인 건지 하연이 영인의 재킷을 가지고 먼저 올라가 버렸고, 영인이 그 뒤를 따라서 디자인만 보고 자기 것인 줄 알고 은찬의 재킷을 가지고 올라갔다.

은찬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남은 게 큰 것뿐이라 재킷을 오버핏으로 걸친 채 무대로 향했다.

스크린 뒤에서 특수 효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옷을 입으려던 순간 영인이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소리를 냈다.

‘아.’

가장 큰 불행은 그때부터 이미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입을 수 없는 사이즈의 재킷을 어디다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손에 든 채로 당황하던 순간 객석과 무대를 가로막고 있던 스크린이 위로 올라갔다.

결국 그 재킷을 어떻게 처리했느냐 하면….

‘임기응변이라면 임기응변이라 할 수 있긴 한데….’

내내 손으로 잡고 있다가 자기 파트가 돼서 앞으로 나온 순간 휙, 객석을 향해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목격했다. 무대용으로 가재봉한 재킷이 순식간에 다섯 조각이 되어 찢기는 것을.

너무 놀라 표정 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웃긴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다행히 반응은 좋은 것 같긴 한데….’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송출 중이었기 때문에 쇼케이스가 끝나기도 전에 클립이 온 인터넷 세상에 퍼졌다.

대체로 웃기다, 얼마나 놀랐을까, 가사 실수 안 한 게 용하다 정도의 반응들이었으나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어디서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는데.’

간신히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당사자들에게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는 찰나.

규민이 태평하게 웃으며 농담부터 뱉어 곧장 분위기를 풀어 버렸다.

‘와, 진짜 놀랐어.’

‘아니, 진짜 순식간에 눈앞에서 분해가 되니까…!’

‘어떡하지? 그거 다시 쓸 거였나요? 죄송해요. 뒤로 던지면 밟고 넘어지거나 할까 봐….’

모두가 태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웃어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욕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나뿐이었던 듯한 느낌에.

‘대체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별것도 아닌 걸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고 멤버들 야단이나 치려고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닌데.

그럼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혼자 떠올려 본 순간 주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무대에 오른 순간, 나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

그리고 각자 소중한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그동안 준비해 온 노력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

활동에 익숙해져서 자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곤란하겠지만, 결국엔 나 때문에 초래된 문제를 틀어막겠다고 멤버들에게 날 선 반응을 보여도 되는 건가.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약점 잡힐 수 있는 짓 하지 말라고 혼낼 게 아니라 나부터 뭔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팬 미팅까지 끝내고 나면 그때는 잠시 휴식기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미션에 집중해야겠다 다짐하고 다시 무대 위로 향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 무섭게 이번엔 지원이 실수를 연발했다.

아무래도 미니 앨범 발매 직후 팬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같은 곡을 연출을 다르게 준비한 무대가 있었다.

이거 팬콘 때 동선 달라지니까 헷갈리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두었는데.

‘분명 헷갈릴 테니까 조심하라고 연습 내내 이야기했었는데.’

기어이 주춤, 방향을 잘못 돌렸다가 바로잡는 바람에 타이밍이 엇박처럼 어긋나는 파트가 몇 개 생겼다.

그보다 더 한숨이 나오는 건, 이렇게 연달아 무대를 올려 본 적이 처음이라 마지막 앵콜곡이 끝날 때쯤에는 지원이 반박자씩 밀려도 그걸 컨트롤하고 잡아 주는 사람이 나와 혜성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앞으로의 활동을 진지하게 이어 가기 위해서는 한 번 짚고 넘어가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쨌든, 스크린 올라가기 전에 소리 낸 것도 그렇고, 우리가 이렇게 한 장소에서 여러 무대 준비해 본 게 처음이라서 어려운 건 이해하지만….”

쓴소리를 하기에 앞서 가볍게 쿠션을 깔자 지원이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뻔했다.

지금은 웃으면 안 되는데.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최근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우리 모두 조금씩은 안일했던 거 부정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게 될 텐데 느슨해지지 말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졌으면 좋겠어.”

영인도 그건 부정할 수 없었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멤버들도 슥 둘러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을 다잡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다들 알아들은 것 같고.

‘어쨌든 오늘 다들 고생했을 테니까 당근도 필요하겠지.’

나는 밖에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는 것을 캐치하고는 타이밍 좋게 말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반성의 시간이고, 다들 고생 많았으니까 조금만 기력 보충하고 자자.”

그리고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곧바로 차임벨 소리가 울리니 순간 반성과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던 지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헉, 뭐, 뭐 시켰어?”

그러고 보니 아까 점심에 다른 형들은 잘만 챙겨 먹을 때 혼자 지금 먹으면 체할까 봐 걱정된다고 제대로 못 먹었지.

지금 시간이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다른 멤버들도 점심은 먹었어도 저녁은 못 먹어서 허기가 잔뜩 진 상태였다.

“오븐베이크 치킨이랑 샌드위치랑 샐러드 파스타.”

오는 길에 짧게 혼내고 자기 전에 빨리 먹일 생각으로 주문한 거라서 내가 평소에 시켜 먹던 집에서 메뉴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집이나 패스트푸드, 피자 같은 것들은 주로 영인이나 다른 멤버가 담당하는 영역이었다.

내가 뭘 시켜야 할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고를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 메뉴 진짜.”

“우우 어떻게 야식도 다이어트식으로 먹어.”

“맛은 있어. 건강해서 그렇지.”

결국 영인이 추가로 피자와 바삭바삭하게 튀긴 치킨을 주문했다.

덕분에 내가 바랐던, 빨리 먹고 간단히 스트레칭하고 너무 늦지 않게 잠들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다들 기합이 들어간 것 같으니까 다행인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치우고 들어간 텅 빈 거실을 보는 마음이 어제와는 조금 달랐다.

이전에도 계속 생각하긴 했지만, 나 때문에 다른 녀석들까지 휘말리는 일은 원치 않았다.

그러려면 내가 해야 하는 건 명확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만 성공하고 싶다, 고집을 부릴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미션을 마무리 짓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

나는 핸드폰 달력을 켜서 날짜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터질 때 되지 않았나.’

타이밍 좋게 대형 사건이 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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