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37화 (137/224)

#137. 그보다 중요한 건 (4)

“아, 그거는….”

혜성이 슥 멤버들을 둘러보고는 설명했다.

“이따 자정에 집계되는 차트 있으니까 팬분들이 정리해서 올려 주실 거야.”

회사 쪽에서 파악한 공구 예고나 팬클럽 가입자 수로 증명된 팬덤 규모 등을 바탕으로 선주문해서 만들어 둔 물량이 꽤 많았다.

기존에 활동하던 1군 그룹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잘 팔리면 대박이지만, 아닐 경우 주제도 모르면서 선주문만 무식하게 준비해서 거품을 스스로 증명한 그룹이 되겠지.

초동이라 불리는 수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멤버들은 다들 잔뜩 긴장한 채였다.

‘은찬까지도 긴장한 티가 날 정도니 말 다 했지.’

모든 곡을 은찬 혼자 프로듀싱한 건 아니라도 모든 수록곡 크레딧에 공동 편곡, 공동 작곡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상 본인의 첫 번째 커리어 앨범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아이돌로서 인정받아야 하는 동시에 프로듀서로서도 인정받아야 하니 생각할 게 많겠지.’

생각이 복잡할 만도 했다.

잠시 후 음원이 공개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곡 발매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밝혀지겠지.

본인이 친 사고도 있으니 더더욱 신경이 쓰일 터였다.

“아무튼 결과는 이따 자정에나 나올 테니까 지금은 무대에만 집중하자.”

혜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의상 체크를 했다.

마이크 자리 잘 붙어 있고, 헤어나 메이크업도 이상 무.

이제 나가서 멋지게 잘하고 오기만 하면 된다.

“조금 이따가 백스테이지로 이동하실게요~”

어느새 시간이 다 됐는지 무대 쪽 설비 스태프분이 대기실로 와서 공지해 주었다.

“그럼 가기 전에 구호 한번 외치고 갈까?”

다들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남아 있기에 혜성이 슬쩍 던진 물음에 현호가 물었다.

“이따 무대 뒤에서 또 할 거 아니에요?”

지금껏 무대로 올라가기 직전, 출입구에서 한 번씩 외쳤던 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듯했다.

“아, 그렇긴 한데, 한 번 더 한다고 딱히 나쁠 건 없으니까….”

어색한 지적에 혜성이 쭈뼛거리기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나는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지금도 하고 이따가도 해요.”

그러자 하나둘 순순히 손을 포개 올렸다.

“드림 유어 유니버스!”

“엔카운터!”

최선의 결과를 보여 주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으니, 딱 준비한 만큼만 하면 된다.

각오를 다지며 스테이지로 향하는 길이 평소보다 유독 길게 느껴졌다.

***

한편, 오랜 대기 끝에 겨우 입장을 마친 인덕은 뒤에서부터 끝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입장 순서가 꽤 빠른 편이라고 안심하기도 잠시, 뒤에서는 앞으로 가라고 계속 떠밀지, 막상 앞으로 밀려난 다음에는 펜스만 붙잡고 있을 뿐, 무대는 너무 높아서 계륵일 뿐이었다.

앞으로 가면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무조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무대가 어지간히 높아야 말이지.’

무대가 거의 인덕의 턱 끝에 닿을 수준으로 높은 데다 폭도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서 펜스를 잡으면 멤버들의 종아리와 마주치는 뷰였다.

‘무릎도 아니고 종아리라고.’

목 관절을 포기하고 고개를 최대한 들면 어떻게든 얼굴을 볼 수야 있긴 하겠지. 그 꼴이 멤버들 시점에서 볼 때 얼마나 우스울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나였으면 100% 웃참챌 됐다.’

가뜩이나 어두운 내부에서 얼굴만 하얗게 동동 떠서 발치에서 올려다보는 얼굴이 한둘이 아닐 텐데 무섭지 않겠냐? 구조를 대체 누가 컨펌한 건지 전문가가 맞기는 한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인덕은 맨 앞줄을 사수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춤주춤 조금 뒷자리로 이동했다.

어느 정도 밀려나던 뒷사람이 대뜸 인덕을 쏘아붙였다.

“밀지 마세요.”

“앗… 죄송합니다.”

앞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뒤로 가는 것도 안 되는 거냐. 어쩔 수 없이 다시 제자리도 돌아오자 곧 무대가 시작될 예정인지 모든 조명이 꺼졌다.

입장 순서 차이가 너무 커서 갈리긴 했지만 여기 어딘가에 XOXO가 있을 테니 자신은 최대한 눈과 귀로 많은 걸 담고 가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온통 컴컴했던 무대 위로 스크린이 드리워지고 마치 우주 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SF적인 효과가 일렁인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10]

[9]

[8]

연료를 태우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숫자가 10초가 아니라 1시간은 되는 것 같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저 뒤편의 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내가 이거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거지.’

[7]

[6]

[5]

중계방송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현장의 생생함에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4]

[3]

[2]

[…]

[1…!]

마침내 길었던 기다림이 끝나고 효과음과 함께 무대 한가운데에 멤버들이 나타났다.

인덕은 제일 먼저 대형을 스캔한 다음, 데뷔 싱글 때와 마찬가지로 반쯤 허리를 숙인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일어서 있는 인수를 발견했다.

[Three two one, shot!]

눈이 부실 만큼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언제나처럼 여유 넘치는 표정의 인수가 고개를 까딱이자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속도를 높여 빨라지는 note.]

[지금 여기 반짝이는 순간.]

지난번 활동 때도 어떻게 일 처리가 좀 얼렁뚱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에도 의상이나 헤어만큼은 기가 막히게 뽑았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비주얼에 인덕은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지난번 활동과 머리 색은 크게 바뀐 게 없었으나 의상 컨셉이 달라진 게 눈에 띄었다.

데뷔 싱글 때는 전체적으로 카레이서나 정비공 유니폼에서 따온 의상들을 입어서 전체적인 컨셉에 맞게 보기에 이쁘면 장땡으로 입혔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나름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있는지 멤버들마다 착장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눈을 의심하겠지, spotlight-]

[더욱 높은 곳까지 higher.]

마치 거대한 우주선의 지휘를 담당하는 듯 제복 느낌의 의상을 입은 인수를 시작으로 곧이어 파트를 넘겨받은 현호는 인수와 달리 훨씬 가벼운 차림이었다.

격식 있는 단체에 소속된 느낌이라기보다는 우주를 떠도는 한량 같은 컨셉이라 해야 하나.

특유의 고독해 보이면서도 살짝 날티 나는 인상과 정말 잘 어울렸다.

[두 손을 잡고 기도하듯 diving]

곧이어 센터를 차지한 지원은 인수와 비슷한 계열의 제복이었으나 장식이 심플하고 모자를 쓴 게 함선의 막내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아니, 진짜 덕질 하는 팬들 심장 저격하는 거 하나만큼은 개잘한다니까?’

코드비가 운영을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회사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내부에서 대체 무슨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매번 들고나오는 컨셉만큼은 기가 막혔다.

안에서 멤버들이 직접 어떻게든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어쨌든 보이는 모습만큼은 감동적이었다.

‘우주 뽕 찬다, 진짜.’

마침내 1절이 마무리되고 클라이맥스인 듯 화려한 대형의 군무가 펼쳐졌다. 관객 모두가 홀린 듯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홀린 듯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돌아보는 순간 펼쳐지는 내 stage. 방심하지 마.]

‘여기서 어떻게 방심하는데. 니네밖에 안 보인다고!’

아직 팬 라이트가 발매되지 않아 인덕은 아무것도 휘두르지 못하고 주먹만 꽉 쥔 채 눈물을 삼켰다.

[후회 따윈 없는 걸음.]

[네게로 closer 뛰어들어 줘.]

기존에 녹음해 둔 서브 음향이 전혀 들리지 않는, 또렷한 라이브 가창에 눈도 귀도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새가 없었다.

군무 파트에 이어 다시 2절이 시작되고 이제 좀 비주얼에 익숙해졌다 마음이 느슨해진 그때.

팟, 스크린의 불이 꺼지며 무대 위에 있던 멤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헐?”

“뭐지?”

“어떻게 한 거야?”

무슨 마술도 아니고 뒤의 스크린이 일렁인 순간 멤버들이 자취를 감추고 머리 위에서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는 오늘의 여정을 함께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승무원입니다. 지금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가속을 시작하며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안전벨트를 꼭 매 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무성 영화 속의 효과음 같은 오케스트라 소리와 함께 영인의 유창한 발음으로 안내 멘트가 이어지고,

다시 불이 켜진 순간 마치 우주를 누비는 빌런 같은 차림의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돌아보는 순간 펼쳐지는 내 stage. 방심하지 마.]

전체적으로 데뷔 싱글에 비해 안무 난이도나 복잡도는 낮아졌으나 대신 랩 비중이 늘어나고 보컬 역량을 더 잘 보여 주는 곡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공연적인 요소를 더해 깜짝 놀래키기까지 하니 팬들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구성이었다.

‘미쳤나 봐, 진짜….’

마침내 무대가 모두 끝나고 불이 꺼진 후에도, 무대의 열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우 웅성거리던 장내가 진정된 건 잠시 후 한결 가벼워진 차림의 멤버들이 토크 쇼 진행을 위해 밝은 조명 아래 나타났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드리머 여러분. 반갑습니다!”

“유어 뉴 유니버스! 엔카운터입니다!”

쇼케이스 2주 전에나 확정된 공식 팬덤명이 진행을 담당하는 멤버들의 입에서 불린 순간 한 번 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갑습니다!”

이어서 MC가 뭐라 뭐라 계속 진행을 하느라 말을 붙이는데 인덕은 물론 다른 팬들의 귀에도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진짜… 너무 잘났다, 너무.’

한동안 화면 속으로만 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실물의 후광이 각막에 새겨지려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참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허락한… 합법적인 마약 서인수….’

홀린 듯 쇼케이스 관람을 마치고 공연장 밖으로 나왔을 때는 그로부터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후였다.

“인덕 님!”

여전히 무대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인덕이 멍하니 경기장 출입구로 빠져나온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인덕을 불렀다.

“네?”

화들짝 놀라 뻣뻣해진 뒷목을 잡고 고개를 들자 인연이 멀리서 인덕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아, 헐. 깜빡했다! 죄송해요!”

인덕은 그제야 오늘 쇼케이스가 끝나는 대로 인연과 만나 주기로 했던 물건을 떠올리고는 가방을 뒤졌다.

“이거요. 오늘 드린다고 해 놓고 깜빡할 뻔했네요.”

인덕이 가방 안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타 그룹의 포토 카드였다.

“이거 맞죠?”

“아, 네네. 맞아요! 친구한테 바로 입금하라고 할게요!”

“네, 주인 잘 찾아가서 다행이에요!”

이들의 수상쩍은 거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나름의 긴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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