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그보다 중요한 건 (2)
영인이 투입된 장소는 유명 프랜차이즈 디저트 카페였다. 하루 시간을 내서 오전에는 화보 촬영을, 오후에는 직접 카운터 안에 들어가서 손님 응대를 하는 방식이었다.
시청자 밀접형 예능인 것은 둘째 치고, 그날 찍은 사진으로 포토 카드며 컵 홀더를 즉석에서 만들어 증정하는 이벤트를 한 덕에 크게 이목이 끌린 것을 화면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스태프 투입된 거 보이세요?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이렇게 밀어주는데 어떻게 그냥 알바하는 거 촬영하고 간 거랑 같을 수가 있어요. 사실상 영인이 단독으로 찍은 광고나 마찬가지인데.”
화면에 영인이 해맑은 표정으로 화보 촬영을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봐 봐, 이게 어딜 봐서 ‘평범한’ 케이스냐고.
출연진의 인기와 재량이 주목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만큼 밀어주면 이 팀 내에서 주목 못 받을 사람도 없었다.
운빨이었든 타이밍이 좋았든 TOP 16까지 살아남은 화제성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영인이 주목을 잘 받은 건 잘된 일이고, 그걸로 혜성이 주눅이 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너무 의식하실 필요 없어요.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요.”
그러나 주눅 든 자신감을 살려 주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는지, 혜성은 썩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얘기 안 해 줘도 돼. 내 수준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혜성의 얼버무리려는 듯한 대답에 나는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형이 왜요. 뭐가 모자라서 그런 말을 해요.”
내 윽박에 잠시 움찔 어깨를 떨었던 혜성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우다다 말을 내뱉었다.
“난 화제성도 떨어지고, 노래를 너처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잖아. 잘난 비주얼 아닌 건 내가 더 잘 알아. 그냥 운이 좋아서….”
그 순간, 혜성이 내뱉은 ‘운’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어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운이요?”
내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노려보자 혜성이 뭔가 말실수를 했다 싶었는지 어깨를 움찔거리며 해명했다.
“그, 그러니까…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내가….”
하지만 이미 변명하기에 늦어 버린 후였다.
“지금 남들은 한 번도 못 해서 수년을 난리 치고 발버둥 치고 허송세월하는 걸 세 번이나 해 놓고 운이라고요?”
“잠깐만, 인수야. 뭔가 오해가….”
“뭐가 오해인데요. 한 번은 타이밍이 좋아서, 롤이 잘 맞아서, 정말 실력이 안 되는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형이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런 거 집요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멤버들 관리차 숫자를 하도 많이 봤더니 원치 않게 달달 외워 버리고 말았다.
“형이 파이널까지 받은 투표수가 얼마인지 기억하기나 해요? 형 처음 프로필 떴을 때 뷰 수 몇 위였는지 기억은 하시냐고요.”
그걸 알면 운 같은 소리 절대 못 할 텐데. 14년 동안 그 데뷔 한 번을 못 해서 좌절했던 울분이 나도 모르게 화풀이처럼 터져 나온 그때 혜성이 목청껏 외쳤다.
“5, 5위… 였고, 총 1,213,284표….”
뭐야, 기억하면서 그런 소리를 해? 나는 눈을 더 부라리며 말했다.
“그걸 기억하면서 운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거 하나하나 올려 주겠다고 접속하고 코드 입력하고 회원 가입 새로 했을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모니터 앞에서 개고생해서 순위 올려 줬더니 운 같은 소리나 한다고?”
재차 몰아붙이자 혜성이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너, 너는 몰라. 내가 앞에 나서면 나설수록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은 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 뭘 모르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내 심장을 후벼 팠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로.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멤버들 중에 제가 욕 제일 많이 먹어요. 혼자 센터 독식하고 잘난 거만 하려고 드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새끼라고.”
화가 나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뻐꾸기의 주요 타깃이 나인 것도 있었고, 제일 인지도가 높은데 내가 호감형의 인상은 아니라서 더더욱 어그로 탱킹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데뷔 전까지만 해도 탈아이돌이라며 칭송받았던 보컬 실력까지도 까는 의견이 잠깐 튀어나왔을까.
물론 정식 데뷔 이후 라이브 활동을 하면서 쏙 들어가긴 했지만.
“저 다음으로 욕먹는 건 규민이고, 현호도 영인이도 커뮤 돌면 수시로 추천 300개씩 박힌 억까 글 올라오는데 그거는 못 보셨어요? 나대는 거 꼴 보기 싫어서 비호감이라 채널 돌린다고 하던데.”
혜성이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길게 이야기하긴 했으나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간단했다.
“그래도 저희 아무도 자기가 팀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나보다 욕 덜 먹는 멤버, 나보다 더 사랑받는 멤버, 나보다 더 주목받는 멤버가 있다고 내가 안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안다. 하나둘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성취도 이루고 업적도 쌓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뒤에 덜렁 남겨진 느낌.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맞나. 사실 난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이 길과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게 되는 외롭고 막막한 기분이 뭔지 나도 알았다.
성공과 성취는 상대적인 것이고, 주변과 자신을 계속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까.
“…….”
“근데요, 형.”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진짜 해 주고 싶었던 얘기를 꺼냈다.
“진짜 재능 없는 사람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내가 14년을 데뷔도 못 한 채로 무대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버틴 것처럼.
20대 후반이면 무대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의 재능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면 다 접고 떠나고도 남았을 나이였다.
“그러니까 날 못 알아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진짜 재능이 없는 거였으면 지금 저희 숙소에 형 침대가 없을 거예요.”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울컥했는지 혜성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려 봤자 어차피 보이는데 뭐….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 주고는 쥐고 있던 문손잡이를 놓았다.
‘…….’
그동안 줄곧 나 자신에게도 해 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어도 미션이 걸려 있는 이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데뷔만 있으면 자신의 가치를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결국 증명까지 해낸 나조차.
가끔은 회귀 전의 생활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잃을 때가 있는데.
혜성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못하겠지.
데뷔를 세 번이나 한 게 조롱당할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걸 본인도 좀 자각할 필요가 있었다.
“난….”
혜성이 잠시 후 겨우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내고는 말했다.
“그, 그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아니라, 다른 연습생이 데뷔했어도, 나보다는 더, 중요한, 역할, 이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니까. 입바른 말 해 봐야 또 안 통할 것이 뻔히 보여서 나는 다시금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그런 생각을 왜 해요. 저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요. 카메라 앞에 비치는 것, 우리가 팬분들에게 보여 드려야 하는 건 결과예요.”
조금은 달래 줄 심산으로 혜성을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형이 저희랑 같이 활동하는 게 중요한 거지 이랬으면, 저랬으면 가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멤버들이 형이랑 같이 활동해서 든든하다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다.
“저는 형이랑 같은 팀에서 활동해서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형 없었으면 저희 벌써 두세 번은 이슈 터지고도 남았을걸요. 일단 표영인부터.”
별 시답잖은 농담이었으나 의외로 효과가 좋은지 혜성이 울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핫,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저는 사실만 말하거든요. 원래 입바른 소리 잘 못 하는 성격이라.”
이것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혜성이 쓰게 웃었다.
“정리되면 내려오세요. 내일도 형 필요할 일 많을 거니까 너무 오래 바람 쐬지 마시고요.”
어느 정도 얘기는 끝난 것 같아 나는 먼저 숙소로 내려왔다. 본인도 더 생각을 해 보고 나면 그게 얼마나 어리광 같은 투정이었는지 자각하겠지.
후, 길게 한숨을 쉬고 내려오니 다들 올라오기 전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을 했더니 가슴 한쪽이 조금은 개운하게 느껴졌다.
속에 얹혀 있던 것을 다 토해 낸 덕분일까,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려 덮으니 잠이 금세 쏟아졌다.
***
그리고 다음 날, 겉옷도 입었고 날도 그렇게까지 추운 건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혜성이 다음 날 아침 고열로 눈을 제대로 못 뜨는 바람에 숙소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거기에 놀란 매니저가 숙소에 들이닥쳤다가 건물 관리인에 의해 빈 캔을 발견하는 바람에 또 파란이 일었다.
양심껏(?) 마신 건 나뿐이었다고 고백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 혜성 씨, 저희 이런 거로 문제 일으키고 그럴 군번 아니잖아요. 맏형이신데 모범을 보여야지….”
내가 나름 필사적으로 실드를 친답시고 나서 보았으나 통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진짜 저만 마셨어요. 어제 바람이 좀 차가워서….”
“뭘 인수 씨만 마셨다는 거예요. 술 냄새가 아직도 나는구만. 그리고 인수 씨만 마셨어도 문제예요. 저희 컴백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컨디션 조절 실패로 혜성도 나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이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서인수 씨 아주 발랑 까졌네.”
“일진이다, 일진. 우우.”
규민과 영인도 때를 놓치지 않고 놀려 댔다.
“조용히 좀 해. 니들이 세상의 쓴맛을 알겠냐.”
진지하게 받아쳐 봐야 내 정신력만 깎일 뿐이라서 아무 헛소리나 지껄이니 왜인지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야, 은근히 초록 병 광고 노리네.”
그런 건 아니지만 들어오면 좋긴 하지. 그때 한창 나를 혼내던 매니저 형이 살짝 꿍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들어왔어요, 초록 병 광고.”
“네?”
이게 진짜로 들어온다고?
“아, 이렇게 한창 혼내다가 좋은 이야기 해 주면 안 되는데….”
매니저가 말과 표정을 다르게 하며 마저 이야기를 전했다.
타이밍 좋게 주류 광고가 들어왔다고, 그룹에는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어 내 단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