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32화 (132/224)

#132. 없다니까요 (2)

‘기분 탓인가?’

혜성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중 눈이 마주치자 무슨 일이냐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별일 아니라며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회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피트니스 다녀왔고, 오전에 안무 연습하면서 라이브 연습도 같이했고.

점심 잘 먹었고, 오후 연습도 문제없었는데.

‘표정이 안 좋을 이유가… 특별히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내 기분 탓인가? 의아한 와중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카메라가 켜질 시간이 됐다.

“유어 뉴 유니버스! 안녕하세요, 엔카운터입니다!”

미리 큐시트를 짜 놓은 대로 단체 인사와 함께 시작된 라이브 방송은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시작부터 20만 명대의 뷰 수로 시작해서 시작한 지 15분이 지났을 때는 30만 명을 수월하게 넘어섰다.

맨 앞자리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다들 묘하게 시선이 오른쪽 상단을 향하는 바람에 채팅에서도 실시간으로 눈치채는 팬들이 있었다.

[- 아 애들 앞자리 바뀔 때마다 시선 고정되는 거 봐ㅋㅋㅋㅋㅋㅋ]

[- 첫방이라 신기한가 보네ㅋㅋㅋㅋㅋ]

[- MY ADORABLE BOYS<3<3<3]

[- 귀여워ㅋㅋㅋㅋㅋ]

[- 무대만 보면 신인인 거 안 믿기는데 이런 데서 티 내는 거 너무 귀여움ㅋㅋㅋㅋ]

아차 하는 마음에 재빨리 카메라 렌즈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것마저도 실시간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 리더가 제일 먼저 정신 차렸다ㅋㅋㅋㅋㅋㅋ]

[- 수리다 진짜 휙휙 캐치하는 거 너무 멋있음 ㅠㅠㅠㅠ]

[- 별걸 다 멋있다고 하네]

[- 그럼 멋있으니까 멋있다고 하려고 보는 거지 트집 잡을 거면 왜 봄?]

이번 라이브 방송은 팬클럽 가입자들만 볼 수 있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덕분에 일단 자격 요건으로 필터링이 1차로 된 상태인데도 드문드문 모난 채팅들이 보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아직은 아무래도 개인 팬 중심의 팬클럽 가입자가 많다 보니 채팅창에 몇몇 멤버의 지분이 유독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나를 보기 위해 들어온 분들만큼이나 다른 멤버들을 보기 위해 들어온 사람도 많아진 것이 새삼 실감이 됐다.

‘책잡히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자.’

간단한 감사 인사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이어진 순서는 오늘의 주인공, 혜성과 관련된 게임이었다.

혜성의 취향이나 선택을 맞히는 간단한 게임이 시작되자 악성 개인 팬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저희가 혜성이 형 취향을 맞혀 볼 건데요~!”

억양이 밝고 경쾌한 규민과 영인을 중심으로 진행 롤을 맡겼는데 이따금 혜성이 마이크를 쥘 때마다 불만 가득한 채팅이 올라온 것이다.

[- 아니 저걸 어떻게 맞히냐고]

[- 눈치 드럽게 없네]

[- 노잼 분위기 어쩌냐 노답;]

누구 하나를 집어서 이름을 언급하게나 욕설을 하는 건 아니라서 더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차라리 쌍욕을 박으면 자동으로 필터링되거나 매니저가 재빠르게 차단시켜 버릴 수 있겠지만.

저렇게 주어 없이 비아냥거리거나 혹은 애매하게 돌려서 말하는 바람에 매니저도 선뜻 바로바로 캐치하지 못하고 조치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자, 그러면, 혜성이 형은 민초파 vs 반민초파! 정답을 공개하기 전에 멤버별 의견을 한번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애써 다들 무시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혜성을 볼 때 시선에 걱정이 어리는 것이 채팅을 확인한 것이 분명했다.

‘이러다 누구 하나 노골적으로 티 내거나 실수하면 안 되는데.’

라이브 방송은 기본적으로 재녹화 후 배포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매뉴얼상의 이야기였다.

유료 컨텐츠의 분량 전체를 잘라서 재판매하거나 공개하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편집해서 짤이나 웃긴 영상 등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은 회사에서 눈을 감아 주는 영역이었다.

지금 시청자만 벌써 40만 명이 넘었는데, 편집 후 가공해서 게시하기 위해 녹화 중인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수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녹화로 남는 이상 수습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우선 우리 인수 형 추리부터 들어 볼까요?”

멤버들 중 가장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 영인이 싱긋 웃으며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재빨리 마이크를 넘겨받고는 슥, 인당 하나씩 배부받은 스케치북에 적은 것을 화면에 보여 주었다.

“저는 반민초파 적었습니다.”

“오오, 이유는요?”

“저번에 숙소에서 피자 시켜 먹을 때 피자에 파인애플 들어간 거 보고 치를 떨더라고요. 아무래도 특이한 맛은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반민초파로 가겠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하니까 반민초파일 거다! 규민이 형! 이 의견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어지는 규민과 영인의 꽁트에도 혜성은 가볍게 웃기만 할 뿐 토크에 크게 끼어드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본인이 주인공인데 말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이래서야 오늘 스페셜 주인공이 혜성이 아니라 규민이나 영인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슬쩍 마이크를 빼앗고 물었다.

“근데 저 궁금한 게 있어요. 형 피자에 스파이시 망고 소스 들어간 건 잘 드시잖아요. 망고는 괜찮은데 파인애플만 안되는 건가요?”

그러자 갑자기 질문을 받은 혜성이 잠시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마이크를 건네받고 대답했다.

“어… 그게, 원래 과일을 따뜻하게 먹는 거 자체를 좀 싫어하기는 하는데….”

“하는데~?”

“망고 소스는 그냥 상큼함만 조금 나고 씹히는 게 없잖아? 아, 없잖아요? 그런데 파인애플은 이제 입 안에서 물리적으로 씹히는 게 있으니까….”

“아, 물리적으로 씹히지만 않으면 된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영인과 규민이 집요하게 달려들어 꽁트를 펼치는 사이 다시금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 쟤 마이크 좀 그만 주라니까]

[- 아까부터 입 다물고 말 한마디 안 하는 것들은 뭐냐 정산 덜 받아야 하는 거 아님?]

[- 절반은 오늘 밥 먹지 말아라 무슨 말 한마디를 안 하네ㅋㅋㅋㅋㅋ]

‘손에서 키보드를 다 압수해 버리든가 해야지, 저걸.’

나는 속으로는 한숨을 삼키면서도 얼굴 표정은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다른 멤버들 추리도 들어 볼까요?”

최대한 채팅을 의식하는 티를 내지 않고 누가 말을 너무 안 했더라,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제현호는 조금씩 시키는 질문에 답이라도 했는데 지원이 제일 왼쪽 끝에 서 있다 보니 영인과 규민의 질문 폭격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

‘아까 좀 긴장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무대 위에 서면 잘하는 체질이니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 나는 그대로 지원을 지목했다.

“저희 막내 의견도 한번 들어 볼까요?”

얘라면 실수를 하더라도 귀여워 보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마이크를 지원에게 넘긴 순간 대참사가 벌어졌다.

[- 유지원 왜 해명 안 해? 왕따설 나온 지 지금 일주일 넘었는데 입만 꾹 닫고 있으면 단가ㅋㅋㅋㅋ]

[- 민폐 그만 끼치고 탈퇴해 민폐 그만 끼치고 탈퇴해 민폐 그만 끼치고 탈퇴해 민폐 그만 끼치고 탈퇴해 민폐 그만 끼치고 탈퇴해]

곧장 매니저가 삭제하고 차단한 메시지였으나 하필 그게 또 지원의 레이더망에 정통으로 걸려 버린 것이다.

“아….”

지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이건 누가 봐도 봤다고 온 동네 티를 내는 표정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규민이 뒤에서 지원을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우리 막내. 당당하게 얘기해. 저번에 아이스크림 골라 담을 때 혜성 형이 민초 아이스크림 담는 걸 봤습니다! 하고.”

이제 이 꼴을 어떻게 수습해야…. 머리가 새하얘진 순간 최근 읽었던 텍스트 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 퍼뜩 떠올랐다.

[- 스킬 효과가 발휘되는 동안 벌어지는 부정적인 상황을 관람자가 자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맞다, 그거.

무대 위에 올라가 있을 때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었지. 나는 생각난 것을 곧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등장인물 스킬 사용할게요. 최대한 빨리!’

시스템 화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속으로 일단 냅다 외치고 보자 곧바로 눈앞에 확인창이 떴다.

[등장인물 ‘유지원’의 고유 스킬 ‘세이렌(S)’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소모 코인 2개]

[예] / [아니오]

나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예!’

그러자 잠시 상태창이 반짝 빛나더니 간간이 보이던 트집 잡는 내용들이 확연히 사그라들었다.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지원에게 물었다.

“진짜? 진짜로 본 거야?”

“아, 그게….”

지원이 잠시 망설이다가 채팅을 확인했다.

[- 막내 눈치 보는 거 왜 이렇게 귀엽냐 ㅠㅠㅠㅠㅠ]

[- 애기 형한테 폭 안겨 있기에 등치 너무 크지 않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Love you so much you guys]

[- 지원이 너무 동안이라 키 큰 거 의식 안 되는 거 너무 웃기고 좋다 엔카운터 자이언트 베이비ㅠㅠㅠ]

부정적인 반응이 한결 사라진 상태였기에 이어서 올라온 채팅들은 다 좋은 내용이었다.

이에 힘을 입은 지원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는 혜성 형이랑 비밀로 하기로 한 거라서 노코멘트하면 안 될까요?”

지원이 겨우 멘탈을 다 잡고 수줍은 표정으로 말하자 다시 한번 채팅이 좋은 의미로 뒤집어졌다.

부정적으로 트집을 잡는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 미친 우리 애기 비밀 절대 지켜]

[-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우리 아기 막내 울 수도 있다고 ㅠ]

[- 아깐 물어 보라매 누나들 단체로 태세 전환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겨우겨우 지원의 참사를 막고 다시 마이크가 혜성에게로 넘어가자 혜성 또한 부정적인 채팅이 당장 눈에 안 보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는지 다행히 멘탈을 다잡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정답은요! 민초파! 였습니다~”

“헐, 대박. 형 민초 먹어요? 진짜로?”

대부분의 멤버들이 답을 맞히지 못한 와중 혜성이 한창 데뷔 때문에 식단 할 때 지원과 몰래 민트쿠키초콜릿을 나눠 먹은 일화를 공개하면서 채팅이 시끌벅적해졌다.

‘확실히 채팅이 클린해졌네.’

이번은 무사히 넘길 수 있겠다 안심이 되는 와중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조금 아찔해졌다.

[재사용 대기 시간: 1주일]

지원의 등장인물 스킬 설명에 새롭게 추가된 설명을 보니 매 위기마다 반복해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쿨이 짧은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이런 일 있을 때 다들 흔들리지 않게 얘기를 해 둬야겠는데….’

우여곡절 끝에 길었던 방송이 끝나고, 카메라가 꺼진 순간.

혜성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그 전에 이것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네.’

혜성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혜성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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