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숨 돌릴 틈도 (4)
그들의 얼굴과 비주얼과 착장이야말로 영상의 본질이었다.
영상 속 인수는 지금껏 어떤 컨셉에서도 입어 본 적 없었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차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눈이 뒤집힐 만큼 좋았는데 코디 팀의 축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코디 팀 이 갈았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헤메코 삼총사의 독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안경 뭐냐고. 미쳤나 봐, 진짜!’
겟데뷔 내에서 보여 준 생활 파트만 보면 안경은커녕 렌즈도 안 낄 만큼 시력이 좋은 인수였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템이었다.
인덕은 빠르게 스크린 샷용 단축키를 눌러 화면을 저장했다.
일부러 더 지적이고 나이 들어 보이게 연출한 건가?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젊은 본부장님 캐릭터처럼 단정하게 정돈한 넘김 머리에 안경이라니.
컨셉도 이 정도면 긍정적인 의미로 지나쳐서 현기증이 났다.
“헤메코 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덕은 헤메코 팀이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니 대충 아무 방향으로나 절을 올리고는 감격에 찬 눈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시청했다.
‘그래서 우리 인수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그건 당장 다음 주부터 직접 확인하라는 듯 거기까지는 티저에서 공개하지 않았다.
멤버별 공개 일자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이 궁금하면 2달 결제해서 8주 동안 다 보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알았다 그래….’
인덕은 얌전히 ‘우주 인력 사무소’가 독점으로 공개되는 OTT 플랫폼의 시청 기간을 한 달 더 연장했다.
짧게 보여 준 편집 샷을 보니 본인이 메인이 되지 않는 회차에서는 리액션 존을 만들어서 지켜보는 식으로 기획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인수 나오는 샷을 1초도 놓칠 수는 없으니까.’
예능으로 인기를 얻어 데뷔한 그룹이라 그런가, 다들 예능감도 나쁘지 않아서 예능 그 자체로도 기대가 됐다.
그렇게 5분짜리 꽁트와 예고가 끝이 나고, 나머지 10분은 대체 뭘로 채운 영상인지 의문을 품은 그때.
[규 대리와 영 주임의 B급 기밀]
그게 뭔데? 인덕이 흐린 눈으로 화면을 바라본 순간, 호들갑스러운 2인조가 셀프 캠을 든 채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국민 매니저 여러분! 엔카운터의 재간둥이 뀨 대리와~!]
[영 주임입니다!]
[저희가 오늘 준비한 건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 없었던!]
[엔카운터의 은밀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인데요!]
뭔가 했더니 따로 공을 들여 찍은 메이킹 필름 같은 건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데뷔 싱글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찍은 셀프 캠 영상들을 모아 둔 짤막한 컨텐츠인듯 했다.
‘인수도 나오려나?’
생각한 그때, 모두가 궁금했으나 어디서도 공개된 것이 없이 규민이 올린 사진 한 장만으로 커뮤니티 전체를 불태운 그 장면이 이어졌다.
[어? 형 스케줄 끝났어요?]
[…….]
[엥?]
[무슨 일 있었어요?]
[…….]
말없이 저벅저벅 거실을 가로지른 인수가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백 스텝 하고 소파에 눕는 장면이 누가 봐도 취한 사람이었다.
[뭐야? 취했어?]
옆에 있던 멤버가 물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 둔 수면 안대를 꺼내 곱게 미라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곧 시간을 매우 빠르게 배속시키더니 멤버들이 다들 잘 준비를 하고 불을 껐다.
그 후 한참 더 배속에 배속을 한 끝에 인수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으로 영상이 끝이 났다.
“미쳤나….”
이러고는 SNS에는 그렇게 멀쩡한 척을 했던 건가. 사실 별거 아닌 영상이지만 무대 위에 올랐을 때만큼은 매서울 만큼 완벽주의자인 인수의 하찮은 모먼트에 입을 틀어막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코드비에 총공을 해? 애들이 예능감이 없어? 안 친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나뒹굴었던 것이 한 방에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영상도 다 땄으니까 얼른 정리해서 아카이브에 올려야….’
인덕이 재빨리 편집 툴을 켠 그때, 각자 픽은 달라도 엔카운터를 잡은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불이 났다.
‘이 인간들 픽은 오늘 별로 안 나와서 불탈 게 없었을 텐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메신저 어플을 켠 인덕은 자컨과 마찬가지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던 소식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공지> [유니버스 공식 팬클럽 플래닛 회원 모집]
대박! 드디어! 그리고 팬클럽 모집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스케줄에 인덕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애들, 선배님 콘서트에서 잘한 거 생각하면… 슬슬…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슬슬 미니 앨범이라도 나올 텐데. 그래도 아직은 좀 힘들려나?
아냐, 하지만… 인덕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마시며 재빨리 가입 창을 열었다.
***
“자, 우선 꼭 명심해야 할 주의 사항이 있어.”
자컨 예고편이 공개된 지 2시간쯤 후, 연이어 게시된 공지에 나는 편의상 반말을 사용해 주의를 끌어모으고는 멤버들에게 공동의 수칙을 배포했다.
“첫째, 라이브 방송 중에는 반드시! 숙소로 들어오는 멤버가 있을 시 라이브 방송 중임을 알린다. 둘째, 숙소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기척을 내서 먼저 숙소에 있던 멤버가 알 수 있도록 한다. 어렵지 않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공지에 이유를 아는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이해를 못 한 듯 보이는 멤버는 둘. 제현호와 유지원이었다.
“왜 그런지 알아, 지원아?”
일부러 대답을 잘하는 지원을 콕 집어 묻자 지원이 얼굴에 의문을 띄운 채 물었다.
“왜, 인데…?”
혹시 자기가 잘못한 게 있어서 지목한 줄 아는지 지원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왜냐면 우리가 혼자 사용하는 숙소가 아니잖아. 만약에 네가 잠깐 씻으러 간 사이에 혜성이 형이 라이브 방송을 켰어. 근데 네가 실수로 잠옷 상의만 두 개 꺼내오는 바람에 바지가 없다고 치자. 그럼 넌 바지도 못 입은 채로 문을 벌컥 열고 방으로 들어가야 하겠지?”
이 정도로 눈높이 교육을 할 필요는 없었나. 지원이 마치 지금 당장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처럼 눈이 빙빙 돌았다.
“헉, 그, 그러면….”
“그래,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원이 한참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어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가 노출증 환자가 되, 되겠지…?”
보통은 쟤 바지가 왜 저렇게 짧냐, 정도겠지만. 어쨌든 예시가 그렇다는 거고 각자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팬분들께는 보여 드리지 말아야 할 모습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서로 조심하자는 얘기야. 혼자 쓰는 집이 아니니까.”
“응!”
나는 옆에서 평범한 시민분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슬픈 BGM을 입으로 열심히 재생 중인 규민의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때아닌 공동 수칙을 배포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입점해 있는 대한민국 최대 스타 커뮤니케이션 앱 벌룬.
이번에 자컨 공개와 더불어 팬클럽 모집을 오픈하면서 벌룬 구독권도 함께 판매하게 된 것이다.
‘메시지로도 헛소리 못 하게 잘 단속해야 하는데.’
벌룬 앱은 기본적으로 기능이 총 세 가지였다.
팬과 스타가 일대다 형태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벌룬 메시지’.
스타가 원하는 때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벌룬 라이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 카페에서 주로 보이는, 짧은 게시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 수 있는 ‘벌룬 프리 토크’.
그중 아무래도 가장 많은 수가 이용하는 건 멤버별로 구독할 수 있는 벌룬 메시지였다.
‘비용이 좀 들어도 감시용으로 미리 구독을 다 해 두든가 해야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커뮤니티의 핫스타(부정적)가 된 스타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요주의 인물을 몇 명 흘겨보며 한숨을 삼켰다.
“뭐야, 왜 날 쳐다봐.”
규민은 어쨌거나 선을 넘는 일은 없으니 방식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걱정할 건 없고.
현호나 지원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녀석들이 제일 문제려나.
이미 다른 그룹으로 입점해 본 적 있었을 혜성은 걱정에서 논외나 다름없었다.
“형은 해 보신 적 있으시죠?”
데뷔를 두 번이나 했는데 한 번 정도는 입점을 했겠지. 무심코 확인하지 않고 물어본 나는 이어진 혜성의 대답에 아차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 부끄럽지만 입점 조건이 안 돼서, 우리는 다른 앱으로 했었어.”
“앗.”
거실에 싸늘하게 내려앉은 적막에 규민이 재빨리 물었다.
“그럼 뭐 입점하셨어요? 팬 메시지? 아니면 미팬톡?”
비슷한 서비스 중에서는 벌룬이 제일 큰 규모의 플랫폼이긴 하지만 모든 아이돌 그룹이 벌룬에 입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어느 정도 이름은 알려진 소속사의, 서버 유지비를 벌어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팬덤 규모가 있는 그룹만이 벌룬에 입점할 수 있었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망돌이라는 호칭을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는 낙인이나 다름없었으나….
‘세상에는 대중들이 이름을 아는 아이돌보다 모르는 아이돌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 소규모 그룹의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틈새시장 같은 앱도 존재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소규모 앱을 이용하다가 벌룬 앱에 입점해 이동하는 것을 ‘상장했다.’라고 표현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니까…. 수가 적은 거지 이용자가 없진 않았다.
규민이 그중 대표적인 앱 몇 개를 불렀으나 혜성이 번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대체 얼마나 심연까지 내려간 건데….’
다들 차마 더는 묻지 못하고 시선을 피해야 했다.
“아무튼, 진짜 꿈꾸는 것 같아. 매번 다른 친구들이 쓰는 것만 봤지 내가 쓰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은 행복해 보이니 아무쪼록 다행이었다. 나는 겨우 정돈된 분위기에 다시금 주의를 환기하며 당부했다.
“아무튼! 벌룬 이용할 때는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는가, 꼭 해야 하는가, 이 말을 했을 때 누군가 상처받거나 혹은 나를 공격할 여지가 있는가, 꼭 확인해!”
기껏 고생해서 열심히 하는 실력파 혜성 신인으로 자리 잡아 놓고 말실수 하나로 이미지를 날릴 수는 없었다.
“표영인 너 특히, 신난다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마지막으로 왠지 불길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영인을 한 번 더 단속하고 나니 그제야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자컨 예고편 공개에 벌룬 입점에 팬클럽 모집까지.
그간 후순위로 미뤄 왔던 것들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물론 해결되는 것이 생긴 만큼 새롭고 더 커다란 걱정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제 곧… 컴백 스케줄도 뜨겠구나.’
다시 한번, 활동을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