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그것만인가? (3)
“음….”
저기라면 손으로 꺼낼 수 있겠다. 나는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네트 망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그물이 좀 촘촘한 편이라서 손목 다음부터는 슬슬 낀다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위기감이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빨리! 빨리!”
아이가 자꾸 보채는 바람에 나도 마음이 급해져서 팔을 더 쑥 집어넣으니 장난감이 바로 손에 잡혔다.
“됐다!”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인 그때.
“응?”
어느새 팔꿈치까지 들어간 그물망이 꽉 끼어서는 몸을 엎드린 채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설마….’
불안감이 엄습한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로 팔꿈치를 최대한 펴고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어찌나 단단히 얽혔는지 피도 통하지 않을 만큼 꽉 조여져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망했다.’
지금까지의 위기는 위기도 아니었던 것처럼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렸다.
“헉, 어떡해. 인수 씨, 거기 낀 거예요?”
후다닥 달려온 직원이 카운터에 있던 미니 가위로 그물을 잘라 내 보려 했으나, 지나치게 튼튼한 그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이거 나가서 가위를 새 로 사 오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걸로 119를 부르기에는 일을 너무 키우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보였다.
“잠깐만요, 저희 스태프가 사러 다녀올게요!”
결국 촬영 팀 중 한 명이 나가서 사 오기로 하고 얌전히 엎드린 채로 기다리는데 주위에 어린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형아,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장난감 집어 주려다 낀 거래!”
“거기 왜 껴? 형아, 살쪘어?”
그러고는 악의 없는 작은 손이 쿡 배를 간지럽혔다.
“악.”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싱싱한 활어처럼 펄떡거리자 그 반응이 재밌었는지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와!! 간지럽히자!!!”
“간질간질!!!!”
“간질간질!”
그 후로 이어진 30여 분은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
그날 저녁, 겨우 힘겨운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영혼까지 탈탈 털린 채 방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쓰러졌다.
“와, 형이 이렇게까지 지친 거 처음 봐요.”
옆에서 영인이 약 올리듯 깔짝거렸지만 반응해 줄 여력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가라.’
나는 입 밖으로 내야 할 소리를 속마음으로 삼킨 채 눈을 감았다.
어린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마구 짓밟히는 경험을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 했어야 하는데.
저놈은 진짜 적성에 잘 맞았을 텐데.
때아닌 분노가 치밀었으나 그걸 표출할 기운 또한 없었다.
“헉, 형, 괜찮으세요?”
방에 있다가 물 마시러 나온 하연도 나를 보고 놀라서 움찔거리고,
“……?”
덩달아 은찬도 동정인지 탐구심인지 구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겨우 조금 회복된 나는 마지막 유언처럼 읊조렸다.
“나 오늘부터 성악설을 믿기로 했어.”
그러자 문이 열려 있는 큰 방에서 태블릿 PC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규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많은 유아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믿는 학설이지.”
이번만큼은 규민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기운을 쥐어짜 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듯 잠들었다.
그 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아, 이 야박한 놈들.’
그 누구도 나를 침실로 옮겨 주지 않았다. 그야 내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도 자는 동안 옮겨지는 거 싫어.’
그래도 소파에서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진 게 불쌍해 보이긴 했는지 몸을 일으키자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무언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게 다 뭐야.’
자는 동안 씌워 둔 소음 차단 기능이 있는 헤드셋은 아마 정은찬 거인 거 같고.
덮어 준 담요는 주혜성, 담요로 가려지지 않는 영역을 덮어 준 카디건은 제현호 거였다.
‘별걸 다….’
그래도 나름대로 걱정해 준 것이 싫지는 않아서 나는 주섬주섬 멤버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정리해 두고 잘 준비를 다시 했다.
“흠흠.”
말끔히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침대에 눕자 현호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아, 시끄럽게 해서 미안.”
짧게 사과하고 이불을 턱밑까지 당겨 올리니 현호가 눈도 못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호감도가 높은 편이었지.’
기분이 어떤가를 말하자면 당연히 좋았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뭐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이 다 있어? 싶었는데.
나름대로 무대에 정을 붙여서 열심히 하려고 변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다 보니 더 마음이 쓰였다.
‘나중에 뭐 사람 찾는 프로그램이라도 나가야 하나.’
다만 별로 좋은 기억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아니다 보니까 방송에서 원하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호 본인도 여러모로 가십거리로 소비되면서 힘들 테니까.’
당장은 가족들이 먼저 나타나지 않는 한 뾰족한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해서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 아픈 손가락으로 남을 듯했다.
‘사실 나도 지금 남 생각할 입장은 아니고.’
나부터가 제일 막장 시나리오 아니냐.
출생의 비밀, 충격적인 친모의 정체, 그런 거.
새삼 규민이 말했던, 인상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신경 쓰였다.
‘정말 닮았나?’
잠에서 한번 깨니 정신이 맑아져서 슬쩍 핸드폰 화면을 최소 밝기로 돌리고 유 대표의 사진을 찾아봤으나 솔직히 닮은 건 잘 와닿지 않았다.
‘눈이 닮았다고?’
잘 모르겠는데. 굳이 닮은 점을 찾는다고 하면 인상이 조금 비슷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누가 친척이라 닮았다고 하면 아~ 그런가~ 할 정도지 그냥 따로 떼어 놓고 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사진으로는 안 나오는 실물의 인상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고.’
한참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생각이 다른 쪽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혼자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나도 친부가 있기는 할 텐데.
‘그럼 친아버지는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 거지?’
유 대표에게 당장 내가 당신 아들인 걸 알고 있다고 밝힐 수가 없으니 해결할 수 없는 호기심이었다.
‘그렇다고 양부모님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친모가 누구인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충격을 받으실 분들이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게 뭐 이렇게 많아?’
한숨을 쉬며 메시지 어플을 켜니 아까 기절하듯 잠든 사이 지원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지원] 촬영 잘 끝났어? 나 때문에 갑자기 곤란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 오늘 힘들었을 텐데 내가 더 번거롭게 한 거 아닌가 걱정되네. 신경 써 줘서 정말 너무 고맙고… (더 보기) 오후 9:51
결국엔 고맙다는 말을 무슨 500자 넘게 늘려서 하고 있었다. 말에 두서가 없는 게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정말 고마웠다는 진심만큼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이따 날 밝으면 바로 전화해 봐야겠다.’
오늘은 따로 외부 일정은 없고 그동안 은찬이 준비한 데뷔 앨범용 수록곡들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워낙에 잘하는 형이라서 크게 걱정은 안 되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 컨셉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여기서 또 얼마나 좋은 곡을 만들어 냈을지 궁금했다.
‘그럼 일단은 눈을 좀 더 붙여야지.’
핸드폰을 충전기 위에 올려 두고 다시 주섬주섬 이불을 고쳐 덮자 잠깐 가셨던 피로가 다시 슬그머니 밀려들었다.
***
몇 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뜨니 창문으로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들이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0시….
50분??
미팅 시간이 11시였는데 미쳤나. 아무리 피곤했어도 이 시간에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벌떡 이러나 거실로 나갔다.
“……???”
먼저 사옥에 가 있을 줄 알았던 유지원을 제외한 멤버들이 거실에 모인 채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
오히려 왜 이 시간에 굳이 일어났냐는 듯 나를 바라보아서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오늘 미팅 아니야?”
내가 잘못 알았나? 놀라서 묻자 혜성이 대답했다.
“지원이 없이 정하는 거 좀 그런 것 같다고 이번 주 금요일에 하기로 미뤘잖아. 공지 못 봤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내용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너무 고생을 해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넘겨 버렸다.
“얼른 들어가서 더 자. 피곤해 보이는데.”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털썩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럼 제일 먼저 급한 불부터 꺼야지.’
나는 곧장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아침은 잘 먹었어? 병원이야?”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부터 확실히 알고 싶어서 묻자 지원이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응! 병원 매점이 되게 잘되어 있어서 샌드위치 먹었어. 형은?
와중에 내 걱정을 해 주는 게 기특했다.
“나도 잘 챙겨 먹었어. 병원에서 뭐래? 할아버님 좀 괜찮아지셨어?”
할아버지께서 어서 괜찮아지셨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지원의 원활한 숙소 복귀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응…? 여보세요?”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서 지원을 부르자 지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 그게… 아직,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대…. 부축해 주는 사람 없으면 아직 몸 일으키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상태야….
“그럼 돌봐 주실 분은 구했어?”
간병인도 잘해 주는 분은 스케줄이 꽉 차 있는 편이라 빨리 예약해야 할 텐데. 걱정되는 마음에 질문이 꼬리를 잇자 지원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아직. 병원에서 준 연락처로 전화해 봤는데, 그게… 비용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예상했던 현실적인 문제에 나는 끙,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럼 어떡하게? 네가 직접 할 수는 없잖아.”
굳이 미션 때문이 아니더라도 단체로 연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지원은 최대한 빨리 팀 생활에 합류해야 했다. 지원이 할 말이 없는지 다시금 오랜 정적이 이어졌다.
“지원아?”
혹시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서 이름을 불렀다.
- 아, 응! 듣고 있어….
다시 들린 지원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가득했다.
“지원아, 울어?”
- 어? 아니! 그… 형… 정말… 정말 너무 미안한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한참을 망설이던 지원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나, 2주 정도만… 활동을 쉬어도 괜찮을까…? 진짜 미안해…. 그때쯤에는 할아버지도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뭐?”
지원의 말이 곧장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리드 보컬이 2주나 결장하면 앨범 녹음은 대체 누가 해. 게다가 가뜩이나 안무 따는 속도도 제일 느리면서.
“…지원아.”
이건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
생각보다 심각해진 상황에 나는 핸드폰을 고쳐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