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의심해야 하는 건 (3)
“아니아니아니, 콘서트가 아니라 팬 미팅! 콘서트는 아직 이르긴 하지~”
대표가 서둘러 정정했으나 2시간짜리 큐시트에 무대 비중이 너무 높았다.
이게 될까…? 당장 염려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틀이나 사흘 일정도 아니고 딱 하루잖아. 어차피 반년 안에는 투어도 시작해야 하고 미리미리 준비해 둔다 생각하면 괜찮지 않겠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애들이 감당할 수 있나?’
체력적으로 그게 되나? 곡 수는 커버나 겟데뷔 때 곡으로 채운다고 해도 아직 그 정도의 역량은 쌓이지 않은 것 같은데.
괜히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가 멤버들이 공격당할 빌미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팬 미팅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좋은 무대를 보여 드리지 못해서야 의미가 없으니까.’
콘서트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해도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기 싫으냐, 좋으냐를 따진다면 나는 당연히 좋은 쪽이었다. 잘할 자신도 있고.
하지만 지금 전원이 2시간 동안 무대를 완벽하게 채울 수 있냐고 묻는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멤버별로 역량 차이도 확실히 있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댄스인 만큼, 아직 배우는 속도가 느린 지원과 은찬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이 점점 굳어 가는 것을 느꼈는지 대표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인수 씨 벌써부터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면 어떡해. 긍정적인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데. 자자, 스마~일.”
스마일 같은 소리 한다. 실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더해져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들이받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코드비 운영의 별점을 매긴다면 솔직히 4점이었다. 당연히 5점 만점의 4점이 아니라 10점 만점의 4점.
그마저도 우리한테 자율권을 많이 줘서 2점, 스케줄은 기가 막히게 많이도 따 와서 1.5점, 매니저가 서포트에 열심이긴 해서 0.5점이었다.
그 말은 즉 다른 분야에서는 별점을 매기고 싶지도 않을 만큼 형편없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위기가 몇 번이고 있었던 걸 우리가 몸으로 틀어막아서 욕을 안 먹게 해 줬더니 대중 무서운 줄 모르네.’
그동안 수시로 트롤링했던 예시를 들어 봤자 입만 아팠다.
회사가 욕먹는 걸 너무 신경 쓰고 무서워해도 곤란하지만 이렇게 무방비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뭐… 대표가 인터넷에서 키배 뜨고 인터뷰로 입 털고 다니는 거보다는 낫나.’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앞섰다.
어쨌든 굴러들어 온 일을 걷어찰 수는 없다. 나는 짧은 불만을 삼키고 대답했다.
“그럼 큐 시트는 미니 앨범 수록곡 중심으로 가나요?”
“아무래도요? 이번에 은찬 군이 너무 잘해 줘서 기대가 커요.”
뒤이은 이야기는 하나 마나 한 듣기 좋은 말이었다. 슬쩍 확인한 은찬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는 없어 보였다.
은찬도 기본적으로 본인이 인정한 사람한테 듣는 칭찬이나 좋아하지,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 하는 칭찬에는 끄떡도 없었다.
‘왜 네가 더 좋아하는 거냐….’
오히려 그 옆에 딱 붙어 있는 하연이 ‘저희 형 대단하죠!?’ 하고 얼굴에 써 붙인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럼 지금 제일 급한 건… 자컨 찍으면서 체력 기르고 얌전히 앨범부터 준비하는 건가.
컨셉은 이미 데뷔 싱글로 확정된 상태였고 앨범 구성도 은찬과 계속 논의하고 있었으므로 당장의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저희 그, 팬 미팅 말고도 말씀하셨던 자체 제작 컨텐츠 있잖아요. 한 명씩 뭔가를 체험하는… 촬영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윤 실장이 기다렸다는 듯 드르륵 회의실로 화이트보드를 밀고 들어왔다.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뭐야, 왜 이렇게 의욕적이야. 나는 불길한 예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잠시 후, 불길한 예감은 아니나 다를까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
아냐, 이런 사소한 일에 불평하지 말자.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마음을 굳세게 먹고 의지를 다졌다.
회사에서 제안한 기획은 요즘 웹 예능 쪽에서 자주 보이던 포맷이었다.
‘체험! 직업의 현장’
‘노동자가 간다’
‘근로가 적성이라’
메인 출연자가 각 산업 현장에 나가서 하루 동안 직업을 체험하는 과정을 예능식으로 편집해서 내보내는 식이었다.
이미 출연 예정지는 대표 및 직원들의 인맥을 발휘해서 섭외를 마친 상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확정된 촬영 장소는 멤버 8인 모두 각각 한 곳씩으로 8곳.
놀이공원, 키즈 카페, 친환경 패션, 패밀리 레스토랑 등이었다.
‘각자 미리 어디 갈지 지정하면 되는 건가요?’
다른 곳도 별로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꼭 피하고 싶은 곳은 있었다.
‘놀이공원이랑 키즈 카페만은 안 돼.’
그런 건 나 말고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은 녀석들이 있었다.
‘영인이라든가 규민이라든가….’
둘 다 저번에 식물원에 갇혔을 때 애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만.
각자의 적성대로 자원해서 할당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에이, 그러면 재미없지~ 이동하는 동안 비밀로 하고 딱 내려서 안대 벗고 놀라는 것도 찍을 거라서요.’
그러기엔 기획하는 사람들이 다 자극에 눈에 약간 돌아 있었다.
‘그래… 반응이 다이내믹할수록 보는 팬들은 좋아할 테니까.’
나는 영혼 없이 이 막막한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제발 실내에서, 그것도 되도록이면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이 걸리기만을 빌었다.
‘그럼 일단 촬영 일정을 이렇게 짜 봤는데요, 스케줄 확인 부탁드릴게요.’
매니저가 내민 주 단위 스케줄표를 보니 당장 이틀 후에 유지원의 촬영이 잡혀 있었다.
8인 전원이 우르르 몰려가는 스케줄이 아니어서 그런지 2주 안에 다 찍어 버릴 요량으로 스케줄을 몰아넣은 것이 보였다.
‘그럼 편집까지 해서 다음 달에는 공개할 수 있겠네.’
앨범 발매까지 공백기를 견디기에 그런대로 충분한 컨텐츠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원에게 물었다.
‘일정 괜찮지?’
지원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난번 게스트 출연 때 큰 실수 없이 무대를 잘 넘겼더니 그 후로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잘됐네. 원래도 능력치는 충분한데 자신감이 너무 떨어져서 아쉬웠던 녀석이니.’
의욕적으로 나오는 지원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긴 미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시스템이 깜빡깜빡 알람을 보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콘서트 끝나고 방전되기 전에 시스템 메시지에 뭐가 업데이트된 것 같았는데.
그 후로 또 계속 일이 바쁘게 몰아쳐서 급하게 확인하고 넘겼던 걸 이제는 정말 제대로 확인해야 할 때였다.
‘알았어요, 본다고요, 봐.’
우선 제일 중요한 뻐꾸기 관련 추리 탭부터 확인하자 마지막으로 봤던 화면에서 새로운 키워드가 추가되어 있었다.
[현찬의 술주정]
이것도 늦기 전에 얘기를 해 봐야지. 이제 슬슬 정신도 차리고 전날 자기가 술 마시고 필름 끊긴 사이에 무슨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더구나 우리와 관련해서 뭔가 꿍꿍이가 있으면 더더욱 취한 사이에 실수하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겠지.’
당장 대면하는 건 시간상 어렵더라도 미리 그날 네가 내게 실수로 발설한 것이 있다, 뉘앙스는 풍겨 두는 것이 좋았다.
이것만 다 확인하고 연락해 봐야겠다, 생각하던 그때.
새로운 팝업 메시지가 나타났다.
[서브 리퀘스트 미션 ▷ 적재적소]
[예상 수령 보상]
[▷코인 1개]
[▷뻐꾸기 단계 1단계 하락 조정]
‘오….’
제목만으로 뭘 하는 건지 감이 안 와서 살짝 불안하긴 한데.
가뜩이나 뻐꾸기 때문에 욕먹을까 봐 걱정 중인 와중에 단계를 낮춰 주는 보상은 확실히 탐이 나는 보상이었다.
‘에피소드가 아니라 리퀘스트면 독자가 요청하는 거라고 했었지.’
뭘 또 하라고…. 이번엔 누구의 팬이 보낸 요청일까 궁금해하며 수락 버튼을 누르자 내용은 생각도 못 했으나 타당한 지적이었다.
[시스템/아이템을 활용하여 스스로 에피소드를 진행할 것]
[잔여 제한 시간: 167:59:59]
잔여 시간을 일주일씩이나 주신 건 고마운데, 스스로 시스템과 아이템을 활용해 보라고 해도….
나는 그동안 챕터별 반응에서 꾸준히 지적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기껏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 회귀해 놓고 활용을 못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리 있긴 해.’
시스템이 등장하는 글을 읽는 독자가 바라는 건 시스템의 장점이든 허점이든 완벽하게 파악해서 딱딱 이용하는 주인공이겠지.
하지만 내게도 할 말은 있었다.
‘하지만…!’
물론 이미 회귀로 다른 녀석들보다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성적과 실적만큼은 정정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얻어 내고 싶었다.
첫 음방 1위만 해도 그랬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아이템으로 이룰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이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일 수 있겠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거나, 소중한 뭔가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거나 하는 주인공들에 비하면 고작 꿈이 목표의 전부인 나는 덜 간절해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내 나름의 간절함의 표현이었다.
진짜 목숨을 잃는 건 아니라도 그만큼이나 소중했던 기회를 다시 얻은 만큼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다고, 내 실패가 온전히 나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결국 해내기도 했고.’
어쨌든 그래, 독자님들께서 보상까지 걸어 가며 원하신다면 보여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이 역시 아이돌의 덕목.
나는 정말 오랜만에 시스템창의 여러 항목들을 기웃거리며 쓸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 현재 등록된 인물 (18)]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숫자가 확 불어나 있었다.
공민형은 물론 유 대표와 코드비 회사 사람들, 그리고 현찬까지 등록되어 있었다.
‘별이 하나도 안 붙은 사람이 태반이라 당장 쓸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이후로 등록된 인물들 대부분이 별 반개도 안 붙어 있는 텅 빈 상태라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 우리 멤버들 호감도는….’
[▶엔카운터 멤버]
어느새 그룹명이 새로 생성되어 있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표영인(S)]
[▷유지원(A)]
[▷이규민(A)]
[▷박하연(B)]
[▷정은찬(B)]
[▷제현호(A)]
[▷주혜성(C)]
이어서 그 뒤에 붙어 있는 별 개수를 확인한 나는 눈을 의심했다.
[▷표영인(S)] ★★
[▷유지원(A)] ★★★★★
[▷이규민(A)] ★★
[▷박하연(B)] ★
[▷정은찬(B)] ★☆
[▷제현호(A)] ★★☆
[▷주혜성(C)] ★★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확실히 다들 호감도가 올라가 있었다.
‘유지원 얘는 왜 이렇게 높아?’
나를 좀 잘 따른다 싶기는 했는데. 제현호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호감도를 한참 들여다보던 나는 곧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게 뭔지 떠올렸다.
‘아, 마침 별 개수도 되니까 바로 해 보면 되겠네.’
이거면 딱 괜찮겠다. 확인도 해 볼 겸.
나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곧장 시스템창으로 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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