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의심해야 하는 건 (1)
마침내 3일간의 강행군이 모두 끝났을 때는 다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지쳐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태프들에게 잔뜩 둘러싸인 채 축하를 받는 현찬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로 콘서트는 그냥 서서 노래만 불러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텐데.
혼자 춤도 추고 무대도 채우고 연출도 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지휘까지 다 했으니 체력적으로 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마이크는 진작 꺼진 상태로 규민이 이를 갈듯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삭였다.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 했지.”
나는 조용히 하라는 듯 규민의 발등을 몰래 밟았으나 동의하는 바였다.
‘그럴 만하지….’
첫날의 위기를 넘긴 이후, 둘째 날과 마지막 날 모두 자잘한 사고들이 빈발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문제시하기에는 소소하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던 걸로 치기에는 찝찝한.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결국 매니저가 소심하게 항의해 봤지만 돌아오는 건 더 열받는 대답이었다.
‘음…. 자꾸 저희 관련된 파트에서만 실수가 나오는데, 많이 고생하신 건 알지만 조금만 신경 써 주시면 좋을 것 같거든요.’
‘아, 어쩌지. 또 문제 생겼어요? 내가 다 진짜 너무 미안하다. 저희도 이번에 처음 계약한 업체라서 그럴 줄 정말 몰랐네. 신경 써 달라고 얘기할게요.’
그쪽에서 ‘우리도 통수 얼얼하게 맞아서 너무 속상하다’고 나와 버리면 더 할 말이 없었다.
자꾸 자잘하게 신경 쓰이게 한다고 이제 와서 하차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게다가 다들 콘서트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원래 준비할 게 많아서 이렇게 우왕좌왕하기도 하나 보다, 하고 어느 정도 납득을 해 버린 상태였다.
‘그야 업계 탑 수준의 경력자가 그렇다고 하면 햇병아리인 우리가 할 말이 없지.’
결국 불만이 자잘하게 쌓인 채로 마지막 무대가 끝났을 때는 다들 머릿속에 같은 생각뿐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스케줄 때문에 잔뜩 지쳐 있을 때 집에 가고 싶어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토록 다들 맹렬하게 숙소의 침대를 그리워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럼 저희는 정리하고 이만 들어가 볼게요.”
집에 가서 또 이것저것 배달시켜서 야식으로 먹고 자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잔뜩 배를 채울까.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불쑥 현찬이 우리를 막아섰다.
“어? 그냥 가게요? 저희 뒤풀이하려고 가게 대관해 뒀는데. 오늘 먹는 비용 전부 제가 내는 거니까 빼지 말고 먹고 가요.”
뒤풀이. 다른 말로는 회식이라고 하는 모임에 나는 썩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딱히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절대 빠지면 안 될 자리 같은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거절하려던 그때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 채 슬쩍 뒤를 돌아보자 몇 명을 제외한 멤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는 새삼 지난번에 야식 배달시켰을 때도 그렇고 다들 관리를 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많이 먹는 편인 것이 생각났다.
‘3일 동안 고생했으니까… 음주는 가능한 한 자제하더라도, 고기로 체력과 단백질을 보충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마음 같아서는 숙소 가서 잔뜩 시켜 줄게, 쉬고 편하게 먹자, 라고 하고 싶었으나… 당장 현찬을 앞에 두고 멤버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쟤까지 저럴 정도면 다들 당장 배도 엄청 고픈 모양이고….’
평소 이렇게 멤버들끼리 무리를 이루는 일이라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남의 일인 것처럼 굴었던 현호까지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외면하기 힘들었다.
“그럼 염치없지만 저희도 껴도 될까요?”
내가 적당한 비즈니스용 미소와 함께 묻자 현찬이 사람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어유, 물론이죠. 저 당연히 참석하시는 줄 알고 테이블 두 개 더 준비해 달라고 했거든요.”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우리 무대에도 조금만 더 꼼꼼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역시 속을 확실히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때는 한없이 친절하고 허물없었다가 어느 때는 사람 무시하는 것처럼 대충 넘어갔다가….
“그럼 바로 이동할까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현찬이 대표로 나서서 대기실 내를 정리해 준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인근의 정육 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술 냄새.’
먼저 정리가 끝난 팀은 진작부터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남의 돈으로 먹는 회식을 즐기고 있었다.
다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멤버들을 단속했다.
“우리 테이블에 술병 올려놓지 마. 음료는 제로 탄산만 마시고, 고기랑 밥, 찌개 중심으로 먹어. 냉면 먹고 싶으면 시키고.”
괜히 멤버 중에 미성년자도 있는데 테이블 위에 술병 올라와 있는 사진 찍혔다가 흠 잡힐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대비로 주의 사항을 일러 주자 생각도 못 한 옆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야, 역시 리더네. 아, 옆에 앉아도 되죠? 나도 오랜만에 현역 아이돌들이랑 껴서 놀고 싶어서.”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생글생글 웃는 낯의 현찬이었다.
“그럼요, 편하게 앉으세요.”
차마 이 자리의 주인공이 앉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어서, 나는 살짝 불편한 마음을 감추며 현찬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잠시 후, 불판이 두 번 정도 회전할 즈음 현찬의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찬이 계속 의중을 알 수 없는 묘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멤버들의 대답이 아주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숙소 생활 하면서 불편하거나 하지 않아요? 여덟 명이서 한집에 사는 거 진짜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런가요? 근데 저는 형들이 진짜 배려 많이 해 주고 규칙도 잘 지켜 주셔서 되게 좋아요!’
가장 순둥순둥하니 흥미로운 대답을 해 줄 것 같은 지원의 대답도 해맑기 짝이 없었고.
‘저는 외동이어서 이렇게 막 친구들이랑 형이랑 어울려서 같이 지내고 이런 거 부끄러웠거든요.’
‘아, 진짜? 너 외동이야? 엄청 싹싹해서 난 위로 형 여럿 있는 막내일 줄 알았는데.’
‘아 정말요? 그, 그 정도는 아닌데…. 감사합니다!’
뭔가 슬쩍 떠보는 듯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결론은 한결같았다.
저희 지금 완전 잘 지내고요, 끈끈하고요, 불화 같은 건 없습니다.
이후로도 현찬의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멤버 중 누구랑 제일 친해요? 혹시 막 짓궂게 괴롭히는 형은 없어요?
물론 그때마다 ‘저희 알아서 너무 잘 지내는데요!’로 대답이 귀결되긴 했지만.
트집 잡을 구석 없이 이어지는 화제에 현찬도 곧 재미가 없다는 듯 다른 테이블로 옮겨 갔다.
그렇게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났더니 스태프들끼리 자체적으로 뭔가 진행을 하는 것 같았다.
준비 기간 동안 생일이었던 촬영 감독의 생일을 축하해 주거나,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제일 고생한 사람을 꼽아서 작은 공로패를 전달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자자, 그러면,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게스트분들께서 축하곡 한 번만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다들 술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잔뜩 들뜬 채였다.
“Bye Bye Bye 한 번 더 네게 외치면-!”
“끝이 아니라고 해 줘! See you!”
앵콜곡으로 겟데뷔 파이널 미션곡을 불러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아직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인데 그 두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스케줄을 쳐 냈더니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몸과 입은 개고생하며 익혔던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아서 문제없이 분위기를 돋울 수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000% 텐션]
스태프 중 한 명이 그걸 또 영상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는 바람에 한바탕 화제가 된 건 덤이었다.
[- 회식 되게 재밌게 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ㅠㅠ 먹는 자리에서 노래해 보라고 요청하면 진짜 짜증 나는데 애들 재밌게 잘 놀아서 다행이다]
[- 진짜 안 마신 거 맞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단속반에서 측정기 들고 달려갔다가 실망하고 돌아 나올 텐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애들끼리 너무 재밌게 놀아서 집에서 보고 있는 나만 박탈적 상대감 느껴짐]
[└ 약속이 없어서 이렇게 슬퍼 본 적이 없는데…22222]
[- 시청자 강제로 E로 만들어 주는 영상]
[└ 저 극I인데요 지금 영상 보고 기 빨려서 30분 동안 누워 있다 왔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무리 봐도 과반수 이상 E인 집단의 회식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재밌게 잘 노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다른 녀석들이 재밌었으면 됐다. 나는 내내 내키지 않는 기분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등급 평가 때 불렀던 곡을 한 번만 불러 줄 수 있냐는 간절한 요청을 외면하지 못했다.
“하얀 눈이 쌓이고- 계절이 지나면~ 우리 함께 걷던 이 길도 점차 지워지겠지-”
[서인수 회식 라이브 폼 ㅁㅊㄷ]
그리고 그것도 덩달아 SNS에 올라가서 오만 곳에 다 퍼진 건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인수 이런 거 빼고 싫어할 것 같은데 시키면 자아 없이 다 하는 거 너무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아…. 요청받은 일을 거부하기에 그는 너무 PRO 아이돌이었다…….]
아무래도 방송에서 보여 준 내 이미지가 주로 완벽주의, 엄격한 리더, 철저한 계획대로 무대를 기획하는 기획자, 뭐 이런 이미지였다 보니 의외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라고 하기엔 거북이 밈으로 엄청 놀림받고 있긴 한데.’
아무렴 팬들이 즐거우면 다행이었으니,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한 이미지로만 찍혀도 인간미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물론 어떻게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완벽하고 딱딱한 줄 알았던 사람이 의외로 허술한 부분이 있는 걸 호감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래도 거북이는….’
조금은 부끄러웠다. 싫으냐 좋으냐를 묻는다면 팬분들이 친근한 의미로 붙여 주신 별명을 내가 감히 싫다고 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지만.
[- 어떻게 잘생긴 거북이가 아기 명창이기까지]
아니, 아기는, 아기는 진짜 아닌 것 같은데요!
이것만큼은 정말 부끄러워서 간혹 피드를 확인하다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지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요란한 회식을 끝내고 났을 때는, 다들 꼼짝도 하기 힘들 만큼 배를 채우고 난 후였다.
“진짜 요 근래 먹은 거 중에 제일 잘 먹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바탕 인사를 하고 출발하기 직전.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와서 탈게.”
“뭐야, 급해?”
규민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 미간을 살짝 모으며 대답했다.
“아까 지원이가 떨어트린 소스 통 잡다 묻은 거, 물수건으로 닦았는데도 아직 끈적해서 손 씻으러 가는 거야.”
“그렇게 구체적으로는 말 안 해도 돼.”
“네가 또 이상한 소리 할까 봐 그러지.”
“나는 한번 당한 원한은 잊지 않으니까.”
그렇게 나는 규민의 흰소리를 뒤로하고 홀로 화장실로 향했다.
‘빨리 씻고 가자.’
다행히 아직 가을이라기에는 후덥지근한 날씨여서 세면대 물이 그리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손은 다 씻었고.’
페이퍼 타월이 어디 있지? 거울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화장실 칸 중 안에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칸을 발견했다.
“…….”
아무리 급해도 문은 좀 닫지.
계속 신경 쓰이는 걸 애써 외면한 찰나, 안에서 스륵, 툭,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