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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17화 (117/224)

#117. 친절한…? 선배님 (3)

잠시 후.

현찬이 먼저 선보이는 솔로 퍼포먼스를 바로 뒤에서 지켜본 우리는 모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게 콘서트야, 서커스야.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이는 와이어 줄에 매달린 채 마치 검무를 추는 것처럼 움직이는 현찬은 누가 봐도 업계 최고의 프로다웠다.

“우리도 콘서트 하면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다른 멤버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으나 영인은 두 눈을 빛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겟데뷔 때도 계속 와이어 타령을 했었지.’

대체 왜 와이어에 그렇게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콘서트를 주최할 수 있다면 무리는 아닌 연출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 우리도 이만한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게.”

그러자 영인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짓이 워낙에 푼수 같아서 종종 잊어버리는 거지만, 다른 녀석들이라고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나 케이 팝 그 자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당연히 영인이었다.

나나 다른 멤버들은 무대를 관객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영인은 그냥 자기 무대든, 남의 무대든 아무튼 개쩌는 멋있는 거! 면 눈이 빛나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쟤가 진짜로 8인 단체 와이어 같은 거 죽어도 해야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규민이 묘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슬쩍 속삭였으나 나는 가뿐히 무시했다.

“괜찮아. 그러면 너나 실컷 하라고 무대 아래로 밀어 버리면 돼.”

규민이 와이어에 매달려야 할까 봐 두려워하는 만큼 나도 원치 않았다.

‘그걸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하겠지만.’

아니라면? 그거보다 더 멋지고 화려한 연출이 많은데 굳이?

아무튼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슬쩍 시선을 피하는 사이 현찬의 솔로 퍼포먼스가 끝나가고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마치 거대한 괴물과 싸우는 듯한 연출을 선보인 현찬이 사뿐히 무대 위에 착지해 바닥에 검을 꽂았다.

그 등 뒤로 화려한 이펙트가 휘날리며 스크린 연출의 정수를 선보였다.

얼핏 잘못하면 유치하고 오그라들 수 있는 연출이었는데.

자본의 힘이 느껴지는 현대적이면서도 화려한 이펙트와 현찬 특유의 아우라가 어우러져서 누구도 오그라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일 때문에 다시 거리감이 쭉 벌어지긴 했는데…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닐 테니까.’

침착하게 나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현찬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는 것과 동시에 모든 조명이 소등되었다.

지금이다.

“가자.”

멤버들을 향해 까딱 고갯짓을 하고 무대 위로 발을 디디자 이번에는 무대 위의 표시가 제대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잘할 수 있는걸.’

아까는 대체 왜 그랬던 거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과 함께 자리에 서자 중앙에 있던 현찬도 일어나 자리를 잡았다.

- 쓰리, 투, 원, 슛!

인이어의 사인과 함께 다시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등 뒤의 스크린에도 미리 맞춰 둔 배경 효과가 나타났다.

‘이거 때문에 더 고생했지.’

그냥 안무 소화하면서 라이브 하는 것도 힘든데, 뒤의 배경 효과와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게 맞춰야 하는 건 덤이었다.

시간을 거의 쥐어짜 내다시피 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앞으로 우리도 이런 규모의 콘서트를 꼭 하고야 말 테니까, 그때를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며 이 악물고 연습했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마침내 웅장한 오케스트라 전주가 끝나고 드디어 본무대가 시작되었다.

[Paradox,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

[함부로 평화를 외쳐 보지만.]

스타트는 현찬이 끊었다.

우리가 무대에 올랐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호성이 인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엄청나다….’

순수한 감탄에 나도 모르게 넋이 빠질 뻔해서 정신을 다잡았다.

[우린 계속 엇나가기만 해.]

미리 배분해 둔 파트대로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것을 보여 주자 점차 현찬이 아니라 우리를 보는 관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 이거 쌩라이브지? 신인인데 잘한다.”

“실력파라고 엄청 영업해 대서 얼마나 잘하길래 싶었는데, 잘하긴 진짜 잘하네….”

사전 녹음 보정이 일절 들어가지 않은, 현찬과 동일한 환경에서 핸드 마이크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력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거두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차고 이지러지는 달처럼 솔직할 수 있다면.]

[더는 아픔도 이별도 후회하지 않을까.]

이미 앞서 우리 싱글로 예열을 해 둔 상태였기에 무대 난이도 자체는 지금이 더 높아도 아까보다 표정 연기에 더 많은 여력을 할애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내가 할 수 있는 완벽한 최선을 보여 주고 싶다.

무대 그 자체에 녹아들 듯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인 순간, 머릿속으로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기분 좋아….’

과거의 내가 들으면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평화를 말하면서 빼앗으려 하는 넌.]

[진짜 원하는 게 뭐야. Tell me what you want.]

마침내 뒤의 랩 파트를 양분한 은찬과 하연,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한 번씩 파트가 돌아가고, 드디어 내가 제일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일순 모든 효과음과 연출이 중단되고, 중앙에 현찬만을 남겨 놓은 채 모두 사이드로 빠졌다.

탕-

공연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총성과 함께 현찬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마치 비운의 혁명가 같은 연출에 객석에서 모두 숨을 죽였다.

‘이제 내 차례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내가 뚜벅뚜벅 걸어가 현찬이 쥐고 있던 모형총을 뺏으려 했다.

“…….”

이 인간 왜 안 놔?

소품을 잘 찾아서 집어 들려는데 현찬이 힘을 주어 버티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웨, 웨으르스여….”

최대한 소리를 낮춘 채 이를 악물고 묻자 현찬이 어둠 속에서 눈을 찡긋해 보였다.

‘왜 이래, 미친놈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결국 현찬을 내동댕이치듯 뿌리치고는 그대로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며 사운드 타이밍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곤 다시 한번 스크린의 배경이 일렁이며 불이 꺼지고 더 빨라진 비트가 흘러나왔다.

[말해 줘.]

[너를 지금 느낄 수 있게-!]

쭉 고음을 지르며 동선에 맞춰 멤버들에게 합류하자, 다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기서 그렇게 미적거리고 있었느냐고 표정으로 묻는 것 같았다.

“내가 미적거린 거 아냐.”

혹시라도 소리가 나갈까 봐 입 모양으로 벙긋벙긋하자 아무도 못 알아들은 듯했다.

‘됐다. 이따 숙소 가서 얘기해야지.’

설명을 포기하고 무대 쪽을 보니 드디어 제일 고난이도의 댄스 브레이크였다.

곧바로 뛰어서 제자리로 합류한 다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동선 이동만 대체 몇 번을 하는 거야.’

연습할 때도 계속 한두 명씩은 부딪혀 대서 이거 진짜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나 걱정했었는데.

이번엔 진짜 틀리면 X된다 생각해 다들 긴장이 바짝 들었는지 다행히 실수한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 쫙 부채꼴로 현찬을 중심으로 퍼졌다가 바닥을 향해 등으로 떨어지며 누웠다가 다시 반동으로 일어났다.

복잡한 구성을 끝내고 나니 이제 하연과 은찬이 활약할 차례였다.

[이제 모두 멈춰. 인생은 끝없는 tour.]

[분쟁은 no more- 약육강식의 법칙, 더 이상 통하지 않게.]

하연이야 뭐, 실력을 의심하는 게 이상한 수준이고.

[Notorious 변명 따위 그만. 내 손으로 끝낼 Paradox.]

미리 하연이 숨 고를 시간을 벌어 준 덕에 은찬도 숨소리가 거칠긴 했지만 크게 튀지 않고 무사히 파트를 끝냈다.

‘됐다!’

깊은 안도감과 함께 무대가 끝났다. 몸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피곤한데도 정신은 더없이 맑았다.

체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썼을 때의 벅찬 감각이었다.

***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무대 이후에 이어진 짧은 토크까지 끝내고 대기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진이 다 빠진 채였다.

‘대체 왜 그랬냐고 툭 터놓고 물어보지도 못했잖아.’

애써 태연한 척 토크 쇼를 위해 준비된 세트장으로 올라가자 이런저런 소개와 토크를 하던 중 현찬 쪽에서 먼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솔직히 제가 봤을 때는 지금 여덟 분 다 너무너무 귀여운 후배님들이시거든요.]

[근데 역시 유독 귀엽다 싶은 건 역시 인수 후배님이라고 해야 하나? 놀리는 재미가 있어요, 여러분!]

여기까지는 하하 웃으며 넘겼는데 그 뒤의 발언이 가관이었다.

[아까 저희 소품 주고받는 씬 있었잖아요. 그때 제가 타이밍을 놓쳐서 소품을 바로 안 놓고 살짝 잡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후배님이 표정이 막 당황해 가지고….]

거기에 규민이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동조하는 바람에 문제 제기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 뭔지 알죠, 알죠. 진짜 너무 웃기고 귀엽지 않아요? 워낙에 또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라서….]

날름 일부러 한 게 아니라 실수였어요, 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하는 바람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오늘 다들 너무 고생했어요. 내일은 오늘 같은 일 없을 거예요. 내일도 오전에 스케줄 하고 오는 거라고 했죠?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태연하게 작별 인사까지 하고 나니 나의 오갈 데 없는 분노만 남았다.

‘뭐냐고, 대체!’

뭐? 놀리는 게 재미가 있어? 무대 전만 해도 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무튼 기회를 줘서 감사한 사람, 정도의 포지션이었던 현찬이 순식간에 선을 모르겠는 사람이 되었다.

‘꼭 일부러 우리가 당황할 만한 일을 만들려는 것처럼….’

아까 테이핑이 잘못된 때부터 그랬다. 잘 넘기면 그냥 어쩌다 생긴 간단한 실수, 그것 때문에 줄줄이 사고가 터졌으면 우리의 기량 부족이 되는 함정.

‘하지만 일부러 우릴 엿 먹이려고 준비했다기엔 너무 비약이야.’

콘서트 자리에 불러 준 건 어느 모로 보나 감사한 일이었다.

심지어 시크릿 게스트면 티켓 세일즈에 도움도 안 되잖아.

정말 말 그대로 있으나 없으나 공연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쓰면 썼지, 버는 기획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를 초청해 준 건 정말 전적으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리고 공연의 만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대체 뭐냐….’

이유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남은 이틀간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 줄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했다.

나는 곧장 거실에서 육성으로 공지했다.

“우리 내일이랑 내일모레도 또 무슨 자잘한 돌발 사고가 있을지 몰라. 다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동안 열심히 해 온 걸 보여 주는 데만 집중하자.”

그러자 규민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딴소리를 했다.

“너 방금 되게 중소기업 부장님 같았다.”

“…….”

나는 잠시 규민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다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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