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15화 (115/224)

#115. 친절한…? 선배님 (1)

“헉, 안녕하세요!”

다들 기합이 잔뜩 든 채 현찬이 걸어온 방향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현찬이 너무 딱딱할 필요 없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저지했다.

“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선배님 대접받으려고 게스트 부탁한 거 아닌데 거리감 느껴지게 하네.”

지난번 미팅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계속 편하게 대해 달라, 그냥 아는 형 정도로 생각해라, 본인은 계속 그러지만.

‘어떻게 그냥 아는 형 취급을 해요.’

그건 어불성설이었다. 우리가 계속 로봇처럼 뚝딱거리며 어찌할 줄을 몰라 하니 나중에는 먼저 각자 있는 SNS 계정 맞팔도 해 주고 사진도 찍고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는 것도 같았으나….

‘그때 이후로 없는 시간 쥐어짜 내서 급하게 연습 맞춰 본 것 말고는 제대로 볼일이 없었으니까.’

그새 안 봤다고 고스란히 대하기 어려운 대선배님 포지션으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자꾸 그렇게 나 어렵게 생각하면 섭섭해요?”

지금 그러는 게 더 거리감 느껴진다고요. 우리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한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시절, TV를 틀면 몇 관왕에 앨범을 무슨 몇십만 장을 팔고 도쿄 돔에 가서 공연을 하고 아시아 최고의 스타, 뭐 이런 수식어가 지겹도록 붙는 걸 봐 온 사람이.

‘편하게 아는 형처럼 대해요^^.’

라고 웃으면서 말한다고 그럴 수 있겠냐고. 이를테면 TV 속 연예인! 하면 떠오르는 우상이 갑자기 브라운관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 셈이었다.

‘괜히 커버 미션까지 줬을 만큼 레전드가 아니니….’

영인은 물론 다른 멤버들도 처음 현찬을 봤을 때 그대로 굳어 버리더니 헛소리를 했었다.

‘와…. 눈앞에서 전설이 되살아난 느낌이야.’

블랙온 멤버 중에 사고를 쳐서 다신 연예계 활동을 못 하는 멤버는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만.

지적하고 싶은 걸 접어 두고 최대한 현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애썼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죄송해요. 저희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TV로 보기만 했던 선배님이 저희 앞에 계시니까 자꾸 넋 놓고 보게 되네요. 진짜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당연히 입에 발린 소리였다.

지금 나이가 서른 중반인가. 당연히 또래에 비해서는 동안이긴 하지만 20대 초중반이었던 시절이랑 똑같을 수가 없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얼굴이 변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제 칭찬은 이제 그만해 줘도 되고요. 곧 리허설 시작할 텐데,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이따 무대에서 봐요.”

짧은 인사를 마치고 현찬은 현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대기실로 향했다.

블랙온의 원래 멤버 수는 일곱. 그중에서 현재까지도 블랙온 소속으로 남아 있는 건 네 명뿐이었다.

그중 두 명은 지금 군대에 가 있고 한 명은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 중단 중이라 실질적인 활동 멤버는 현찬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블랙온 타이틀을 걸고 여는 단콘인데도 솔로 콘서트가 된 거니까….’

그동안 짠 참이 있고 경력이 있어서 혼자 무대를 채우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혼자 의상을 몇 번씩 갈았다 입었다 하며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는 현찬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

어린 시절, 지금보다 한참 좁은 화면을 통해 봤던 블랙온의 순박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사실 그동안 벌어 둔 돈도 많을 테니 원한다면 다른 멤버들이 돌아올 때까지 활동을 쉬어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잠시라도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하기 때문일 터다.

‘넓게 보면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일단은 부러웠다. 한순간의 원 히트 원더가 아니라 몇 번씩 부수기 어려울 거라 했던 기록을 갱신해 냈던 그 대단한 이력들이.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곡을 부르고, 많은 무대에 올랐음에도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이.

나도 간절함만큼은 어디 가서 빠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었다.

이미 내 분야에서 한번 최전성기를 맞았고, 이제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그냥 자기만족용 활용이니 성적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고.’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영리 활동이다. 그리고 연예계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좌우된다.

과거에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세웠든, 얼마나 잘나갔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음방에서 최고 대우를 받아도 1위를 못 하면 박수 셔틀이나 하다 왔다고 조롱을 받는 게 이 판이다.

그리고 연예 기획사는 생각보다 자금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프로젝트 하나가 적자가 나면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는다.

괜히 우스갯소리로 연차가 쌓인 아이돌이 예능이나 광고로 수입을 내서 음악 활동을 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

‘현찬도 커뮤니티 반응이 썩 좋진 않았지.’

퇴물이 그룹도 아니고 솔로 콘서트로 주제도 모르고 대형 경기장을 빌렸다고 조롱하는 글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었다.

‘물론 기대된다는 글도 많았지만.’

다행히 표는 전석 매진이었다. 들어와 보니 시야 제한으로 예매를 막아 둔 자리가 좀 많긴 해도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매진이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한 게 이해가 됐다.

‘그러니 우리가 더 힘내서 지원 사격 해야지.’

현찬까지 해서 9명 모두가 맞춰 볼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다행히 합이 잘 맞았다.

미리 안무 팀의 도움을 받아 현찬의 자리에 본인만 쏙 와서 완벽하게 채워 주면 되도록 준비해 둔 덕분이었다.

‘오늘 출연하면 바로 시크릿 게스트 누구인지 밝혀지겠구나.’

드디어 오래 준비해 온 결과물을 보여 주고 정체를 밝힐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 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냐.”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규민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 잠깐 피곤해서.”

만능 변명을 대자 규민이 쯧 혀를 찼다.

“그것도 이제 이번 주 일요일까지니까.”

일요일이 지나면 또 다른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겠지만, 그것도 싫지 않았다.

“아, 피로 회복제 좀 먹을래? 카페인이나 타우린 없고 비타민인데.”

내 만능 변명에 낚여 버린 헤성이 곧장 내민 캡슐을 나는 거절하지 않고 삼켰다. 곧바로 내민 물로 목을 축이니 대기실 안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지금 카메라 찍는 거도 볼 수 있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기실 천장에 붙어 있는 모니터링용 화면의 전원을 켜자 오, 한창 혼자 리허설을 진행 중인 현찬이 보였다.

“멋있다….”

지원의 순수한 감탄에 다들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진실을 알고 있는 나는 더더욱 웃음이 나왔다.

‘너는 지금 선배님보다 더 대단했어.’

아마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를 통틀어도 지원만큼 성공한 젊은 남자 솔로는 손에 꼽힐 터다.

비주얼 완벽, 음색 완벽, 거기에 실력까지도 탄탄하고 목이 크게 상하지 않는 창법이라 변화 없이 컨디션이 한결같은 유니콘 같은 보컬.

워낙에 곱상하게 생겨서 보컬리스트보다는 솔로 아이돌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후려치는 사람도 많았다.

1회차 때의 지원은 그런 은은한 의심을 정체를 숨기고 나가는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왕중왕을 차지하면서 종식시켰었다.

원로 가수들을 비롯하여 정예 실력파만 나가는 방송에서 몇 주씩 연승을 해 버렸으니 말 다 했지.

‘아직은 뭐… 그냥 귀여운 막내지만.’

과연 우리가 활동하는 기간 내에 지원이 각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확신은 들지 않았다.

‘못 하더라도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다른 멤버들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다고 꿈속에서까지 연습을 하며 잠꼬대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너도 나중에 연차 쌓이면 저렇게 될 거야.”

내가 듣기 좋으라고 칭찬을 해 주자 지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 너무, 과분한 칭찬은 하지 마….”

과분한 칭찬은 무슨. 니가 더 대단해진다니까? 말해 봤자 나만 미친놈이 될 뿐이니 나는 웃으며 시선을 다시 모니터 쪽으로 돌렸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우리를 불러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회를 감히 걷어찰 수는 없었다.

“리허설 대기하러 가실게요!”

곧 우리 차례가 됐는지 스태프가 대기실로 데리러 왔다. 모니터를 끄고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잘할 거야.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이제 남은 건 멤버들을 믿고 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

잠시 후, 거의 본 무대나 다름없는 리허설을 마치고 났더니 등 뒤로 땀이 살짝 배어 나왔다.

‘이 정도 뛰고 땀이 나다니.’

물론 안무가 워낙에 격렬한 탓에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긴 하지만.

겨우 두 곡에 이렇게 땀이 나면 나중에 진짜 우리 콘서트 할 때는 어떻게 하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인상을 찌푸리니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찬이 웃었다.

“……?”

무슨 의미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어 그쪽을 멈칫 바라보자 현찬이 곧장 사과했다.

“아,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보니까 나 데뷔 초기가 생각나서.”

사과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곧장 사회생활용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혀 신경 안 쓰였어요. 저희가 잘해야 믿어 주신 보람이 있으실 텐데 저희한테 관심 가져 주시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영광이고요.”

“또, 또 그렇게 거리 둔다. 그냥 편하게 대해 달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그러실수록 더 안 된다고요. 나는 쓰게 웃으면서도 계속 우리가 뭉쳐 있는 쪽을 보던 현찬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혼자라서, 외롭기라도 한 건가.’

사실 내가 저 위치가 된 적은 없어서 심리는 잘 모르겠다만, 뭐 어쨌든 싫어할 것 같진 않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현찬에게 권했다.

“저희 지금 시간 있을 때 파이팅 구호 한번 외치려는데요, 같이하실래요?”

그러자 현찬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오….’

“와, 혹시 구호 뭐 정해 둔 거 있어요? 궁금해서.”

현찬의 질문에 혜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끼리는 드림 유어 유니버스, 하고 엔카운터! 하는데요.”

“아, 그러면 저도 지금 잠깐만 블랙온 말고 엔카운터 할게요.”

“네?”

“아, 늙은이는 안 된다?”

“아뇨, 아뇨, 아뇨. 같이해 주시면 저희야 영광이죠!”

결국 현찬이 그 영광 소리 한 번 더 하면 본무대 때 마이크 꺼 버릴지도 모른다는 농담 같은 협박을 하는 바람에 다들 얌전히 대형을 만들고 모였다.

“어?! 선배님도 같이해 주시는 거예요?!”

대형을 만들던 와중, 현찬을 마주친 다음부터 유독 얌전했던 영인이 간만에 입을 열었다.

“네. 같이 해도 되죠?”

“헉, 네, 네, 네, 네. 그럼요!”

영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블랙온도 엄청 좋아했다고 했었지.’

우리들 중 케이 팝에 제일 돌아 있는 영인이 들뜬 모습으로 가운데에 손을 모았다.

“드림 유어 유니버스!”

“엔카운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유독 튀었다. 한바탕 웃음이 쏟아지고 우리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다.

곧 모니터링용 모니터 화면이 다시 켜지고 좌석이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가 정말 콘서트 무대에 선다는 실감이 났다.

‘그동안 열심히 한 만큼 다 보여 주고 오자.’

다시금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고쳐 앉은 그때.

탁-

“어.”

소파에서 핸드폰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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