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불러 주는 곳은 많은데 (4)
지원의 보컬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보컬만 보면 엔카운터의 색깔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는 게 유지원이었다.
“아까 보여 준 거 추면서 라이브 할 수 있냐는 말이야.”
눈 빙글빙글 돌아가서 동선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으면서.
지원은 아직 이 세계의 어두운 면을 잘 모른다. 본인이 찾아보지 않은 것도 있고 아무도 굳이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그동안은 연습생이었으니까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미디어에 노출되는 이상 언제까지고 온실 속 엄지 왕자님처럼 굴 수는 없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단계적으로가 아니라….
‘갑자기 냅다 목을 졸라 오듯 찾아온다면 견딜 수 있을까?’
적어도 지원은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더더욱 완벽해야 한다. 받은 악플의 최고 수위가 가능한 한 의상 지적 정도에서 그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거도 작정하고 까면 어쩌다 타이밍 잘못 맞아서 엽사 찍힌 거로도 비주얼 영업하지 말라고 욕하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니까.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콕 집어 묻자 지원이 잠시 주춤했다.
그러고는 본인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인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응!”
‘노력해 볼게.’나 ‘열심히 할게.’가 아니라 ‘응!’이란 말이지.
막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는데 나는 힘들어서 립싱크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형이 여기 있을 리 없었다.
“아~ 우리 막내 때문에 형이 함 힘 좀 써야 되겠네.”
“저건 헛소리니까 무시해도 돼.”
“야.”
잔뜩 위축된 분위기에 규민이 또 헛소리로 긴장을 풀었다. 나는 매니저를 향해 대표로 의견을 전달했다.
“그렇다네요. 두 곡 다 ‘반드시’ 라이브로 진행하고 싶다고 의사 전달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한바탕 으르렁거리고 겁주는 것 같았던 분위기가 지나가자 매니저가 넋이 빠진 사람처럼 나와 멤버들을 둘러보다가 헉,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아아, 네! 그렇게 전달할게요!”
어쩐지 표정이 기대로 물들어 있는 것이 내심 바랐던 방향인 것 같았다.
‘그동안 프로그램에서 증명한 게 있다 보니 아무래도 실력파 이미지가 붙었으니까.’
덕분에 팬들이 우리를 소개하거나 영업할 때 ‘검증된’ ‘실력만큼은 못 까는’이란 수식어를 붙일 때가 많았다.
때문에 춤에 약한 것이 프로그램 전반을 통해 이미 노출된 은찬과 지원을 중심으로 빈틈을 노리는 눈 또한 적지 않았다.
혹여 다른 멤버들에 비해 뒤처지거나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이게 실력파라고?’ 하며 악착같이 물어뜯기 위해.
매니저가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숙소를 나서고 나서야 여기저기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하긴 아직 이르지.’
지금이 몇 시지? 나는 슥 시간을 확인해 보고 이 정도면 동선 정도는 맞춰 볼 수 있겠다 판단했다.
“뭘 다들 멀뚱멀뚱 안심하고 있어? 우리 시간 없어. 다음 주도 다다음 주도 내내 금, 토, 일 음방 도느라 바쁠 텐데, 평일에는 라디오에 예능에 시간 낼 수 있을 것 같아?”
당장이라도 침대에 뛰어들 기세로 잠옷과 양치 컵을 챙기고 있던 규민이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10분 준다. 빨리 준비해.”
하겠다고 패를 던져 버린 이상 이제는 정말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
이후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매일매일 화보에 인터뷰에 라디오에 이제는 슬슬 하나둘씩 연락 오는 광고 촬영까지.
첫 음방 무대에서 또 여지없이 괴물 신인의 저력을 보여 주는 바람에 연일 화제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솔직히 첫방부터 1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는데.’
지상파 3사 무대 중 시청자 투표의 비중이 낮은 두 개 사에서는 아쉽게도 후보에만 올랐고, 투표 비중이 높은 한 곳에서는 1위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계속 아이템 쓸까 말까 고민한 게 의미가 없었군.’
데뷔 후 첫 음방에서 최단기간 1위를 찍는 것도 짜릿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힘으로 스스로 쟁취해 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템의 힘을 빌리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믿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차올랐다.
덕분에 사이다와 개연성 지수가 매우 높음을 찍어 준 건 덤이었다.
“감사, 흑… 아,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신 팬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앵콜 무대에 앞서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드리는데 또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터지는 바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곧바로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제목] 서인수 갭 미친다ㅋㅋㅋ (+138)
[본문]
데뷔 결정 났을 때도 울고 쇼케에서도 글썽거리더니 1위 하니까 또 우네 우리 순두부 리더 어떡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 자기 관리 개빡세고 엄격한 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이렇게 상 받거나 인정받는 순간 오면 우는 거 진짜 미치겠음…
[댓글]
[- 인수야 지금 네가 우는 거 선빵 쳐 버려서 막내가 못 울잖아 (사진)]
[└ 끼야아아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봐 미치겠다]
[└ 본문 보고 와 서인수 어떻게 우는 것도 개이쁘게 우네 하고 감탄했다가 사진 보고 개터졌넼ㅋㅋㅋㅋㅋ]
[- 연생 생활 너무 오래 해서 그런 듯 ㅠㅠㅠ 저번에 인터뷰에서도 자기 자신을 계속 의심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해서 눈물이… ㅠ]
[└ 저기요 같은 8년 차 연생 픽 꼽 주시나요? (사진)]
[└ 미치겠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에 첨부된 사진은 각각, 지원이 내가 울먹이는 걸 보고 놀라서 울다가 뚝 그치는 움짤과 규민이 트로피를 너무 뚫어져라 보는 바람에 그 안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고개를 내민 사진이었다.
이미 영상이 퍼져 버린 건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수습을 포기하고 이미 벌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으로 더 안 울면 돼, 앞으로.’
그리고 곧장 그다음 주에 3사 모두 1위 트로피를 따내며 트리플 킬을 달성했을 때 나는 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박제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안 우는데.’
그게 가능하겠냐? 인생 1회차 내내 이제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말도 안 되는 기록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오히려 다른 멤버들은 덤덤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아직 잘 모르거나, 아니면 그날 퇴근길 팬들 앞에 서서 벅찬 감정을 털어 내거나 하는 식이었다.
주말은 그렇게 통으로 음방에 쏟아붓고 있고 평일에도 쉬는 날이 없는데.
얼마 안 되는 남은 시간을 또 쪼개서 콘서트 준비까지 하려니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우린, 계속, 엇나가기만, 해애~”
숙소에 와서 잘 준비를 할 때도,
“더어는, 아픔도, 이별도 후회하지 않을까!”
이동 중인 차량 안에서도,
“온통 모순뿐인 세상~!”
다들 혹여나 호흡 조절에 실패해 숨이 차는 일이 없도록 틈만 나면 노래를 불러 댔다.
‘우리 싱글도 이렇게는 연습 안 했다.’
음방 무대에서도 라이브를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전 녹음을 약하게 깔고 부른다.
물론 실제 목소리보다 훨씬 작게 보정용으로 넣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들으면 라이브 음성만 들리겠지만.
어쨌든 에코처럼 깔리는 목소리가 있는 것과 없는 건 부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달랐다.
‘올~ 진짜 두 곡 다 라이브로 할 수 있어요? 이야, 나 긴장 바짝 해야겠는데.’
미팅 때에서야 겨우 만나 본 현찬 선배님이 웃으며 건넨 농담에 우리는 더더욱 부담이 막중해졌다.
나는 우리 후배들 이제 신인들이니까 얼굴도 알릴 겸 퍼포먼스 중심으로 가자고 한 건데.
‘후배님들이 꼭 ‘쌩’라이브로 가야겠다고 하니까 나도 준비 열심히 해야겠다 긴장이 바짝 되네요. 내 콘서트에서 퇴물 소리 들을 수는 없지.’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블랙온 멤버들 중 유일하게 사고 하나 터진 것 없는 자기 관리의 화신이 그렇게 말을 하면….
‘저희가 약한 소리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다들 더 이 악물고 준비했다. 지원은 심지어 자면서도 잠꼬대로 노래를 불렀다.
“으음… 평화를… 음… 말하면서… 흠냐… 빼앗으려….”
어떻게 보면 안쓰러운 장면이었지만 솔직히 귀여운 느낌이 훨씬 커서, 규민이 영상으로 남기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그건 뭐에 쓰게?”
“있어, 그런 게.”
“뭐냐.”
규민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양이 입처럼 씰룩이며 자리를 떴다. 저거 뭐 이상한 거 하는 거 아냐?
뭐든 팀에 해가 될 짓은 안 할 놈이니 나는 일일이 참견하기도 귀찮고 해서 내버려 두었다.
‘내 코가 석 자지, 지금.’
음방 촬영은 무대 위에 오르는 시간보다 내내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긴데도 체력 소모가 컸다.
한번 하고 돌아오면 온몸이 쑤시고 진이 빠졌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우리가 이런데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은 오죽할까 싶어 나가서 미니 팬 미팅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와, 진짜 피곤해 죽을 것 같아.’
같은 결론에 다다른 채 파김치가 된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축제 피크 시즌엔 이러고 바로 지방 행사로 가야 한단 거잖아.’
다들 체력 괜찮은 거냐. 나는 혀를 내두르며 목 관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고음 파트가 내게 몰려 있는 데다가 애드리브로 고음을 지르는 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서브 보컬인 이규민과 리드 보컬인 지원이 나눠서 해 준다고 해도 역시 제일 중심을 잡아야 하는 건 나였다.
‘내가 기껏 다들 긴장하라고 채찍질해 놓고 음 이탈 나서 망치면 안 되니까.’
잘 때도 목을 스카프로 감싸고 마시는 물도 전부 미온수로 바꿨다.
“너도 좀 마실래?”
다른 멤버들이 탄산이나 차가운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 선심 쓰듯 권할 때마다 얄밉기 그지없었다.
‘뭐 물론, 나한테 그러라고 시킨 사람은 없긴 하지만.’
빨리 끝내고 싶다, 콘서트. 그렇게 일촉즉발의 컨디션으로 잔뜩 날이 선 3주를 보내고 드디어.
“와… 확실히 대형 체육관은 규모가 다르구나.”
사전 리허설을 위해 텅 빈 콘서트장에 들어선 우리는 숨이 막히는 객석 규모에 압도당했다.
‘이거보다 더 넓은 공연장도 있다고 하면 뒤로 넘어가겠는데.’
NO콘은 일반적인 체육관 규모로 수용할 수 없어 항상 스타디움에서 진행했다.
수만 명의 시선이 나를 내려다보는 그 압박감.
시선의 무게를 이겨 내고 이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의욕 하나로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그 벅참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내가 그래서 무대를 못 잊고 그렇게 오래 방황했었지.’
이제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는데도, 그걸 포기를 못 해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두 번째 기회도 얻었으니 다행이라지만. 갑자기 또 센티해져서 나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야? 또 울어?”
“아니거든.”
“아이고, 우리 리더 이렇게 감성적이어서 어떡하냐.”
“조용히 좀 해.”
결국 규민의 입을 틀어막고 나서야 겨우 무대 구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선이 여기서부터, 저기로 가고, 구조물이 이따 설치될 거라고 하셨으니까….
찬찬히 둘러보고 있으려니 뒤에서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어, 먼저 왔네요?”
아직 신인인 우리에게 선뜻 첫 콘서트 자리를 내준 장본인, 현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