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13화 (113/224)

#113. 불러 주는 곳은 많은데 (3)

“아, 저희 블랙온 현찬 씨랑 같이하는 콜라보 무대 안무 시안 받아서요. 같이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

매니저를 중심으로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이로 가자 매니저가 재빨리 핸드폰과 TV 화면을 연결했다.

“일단 기존 블랙온 음원에 맞춰서 시안 만들었고 디테일한 부분은 미팅에서 맞춰 보자고 하시는데… 우선 보고 이야기할까요?”

매니저의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화면 속에서 재생된 안무는 확실히 난이도가 있었다.

지원과 은찬이 무리 없이 따라오려면 당장 내일부터 연습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끼리 하는 무대 준비할 때는 은찬이랑 지원이 파트만 신경 써서 난이도 조절이 가능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요구하기는 힘드니까.’

쭉 마지막까지 주의 깊게 지켜보던 나는 시안 영상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괜찮겠어요?”

은찬을 콕 집어 묻자 은찬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못 한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확실하게 가능하단 얘기를 안 하는군. 은찬도 필사적인 노력파인 만큼 당일 무대에서 사고를 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하실 수 있죠?”

좀 더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어 다시 한번 묻자 은찬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지.”

그걸 지켜보는 지원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마치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나, 나도 할… 수 있어…! 열심히 할게!”

그래, 이럴 것 같아서 굳이 먼저 안 물어봤다. 알아서 자진 신고한 지원의 머리를 가까이 있던 영인이 마구 헤집었다.

“괜찮아. 우리 히든 게스트라서 일단 무대 위로 올라가면 다들 놀라서 디테일까지 확인 못 할걸.”

안심시켜 주려는 것은 알겠으나 영인의 태평한 발언에 은찬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어 분위기를 정리했다.

“그래도 우리 단독 콘서트도 아니고 남의 콘서트 게스트로 서는 자리인데 부족한 모습 보이면 안 되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보자.”

그러자 영인이 대번에 입을 내밀었다.

“아, 그냥 응원해 주려고 한 얘기지 진짜 대충 해도 된다는 말로 했겠어요?”

나는 묵묵히 영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알지. 아는데 어쨌든 조심하자는 얘기야. 우리 단콘은 아닐지라도 엔카운터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오르는 콘서트 무대잖아.”

이미 음방이라면 몇 번 경험해 봤지만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구 콘서트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

먼저 멤버들의 이해도부터 확인하기 위해 묻자 영인이 손을 들었다.

“……?”

내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영인이 재빨리 말했다.

“어, 저 호주에 월드 투어 오는 케이 팝 아이돌은 거의 갔어요. 엄청 팬인 그룹 아니더라도 공연 보는 건 좋아해서.”

호주가 월드 투어 라인업에 자주 들어가는 국가던가?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태국까지는 자주 봤어도 처음 듣는 얘기라 잠깐 기억을 더듬는 사이 영인이 외쳤다.

“호주에 꽤 많이 왔거든요! 오버클럭이랑 위투원이랑, 이소벨이랑….”

영인이 계속 뭐라 뭐라 라인업을 읊었으나 슬프게도 1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룹은 없었다.

‘그야… 투어로 바짝 돈 벌어야 하는 그룹이 아닌 이상 가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아시아랑 북미 정도만 도는 게 일반적이니까.’

유럽의 메이저 도시들도 이벤트성 쇼케이스를 선보이는 일은 있어도 월드 투어로 콘서트 일정을 잡는 건 흔치 않았다.

‘솔직히 부담되는 일정인 것도 맞고.’

1군으로 손꼽히는 아이돌보다 2~3군,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팬덤층은 잡혀 있는 아이돌들이 공연 횟수가 더 많은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네가 무대 위에 서 본 적은 없는 거지?”

관람 경험도 나름대로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내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자 영인이 삐죽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러는 형은 콘서트 무대 서 본 적 있어요?”

그렇게 역공하겠다 이거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답은 “응.”이었다.

“어. 세 번. 아니, 다섯 번이구나.”

물론 단콘은 아니다. NO에서 매년 겨울마다 개최하는 콘서트에서 공개 연습생들로 꾸민 특설 무대로는 세 번, 선배 그룹의 백업 댄서로 섰던 게 두 번이었다.

“대박, 언제요?”

곧장 불평은 어디 가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 태도에 나는 반사적으로 웃고 말았다.

“NO콘 공개 연생들 무대로 세 번, 그리고 백업 댄서로 두 번. 아마 검색하면 나올 거야.”

대부분 연습생들끼리 우르르 무대 위에 올라가서 각자 핸드 마이크 잡고 합창하는 무대여서 내가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눈에 띄지 않았다뿐이지 귀에는 확실히 띄는 편이었지만. 그 당시 다른 연습생들과의 수준 차이는 이미 독보적인 상태였다.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냥 평소에 부를 때처럼 최선을 다해서 불렀을 뿐이었다.

“와, 근데 진짜 뜬금없는 소리긴 한데… 형 NO콘에 세 번이나 서고 거기서 나온 거예요?”

영인이 갑자기 명치에 직구를 꽂는 바람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그러고는 흠흠, 헛기침을 한 다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 외에는 보러 간 적도 없는 거야?”

확인차 묻자 은찬 옆에 선 하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희는 콘서트, 까지는 아닌데, 클럽 공연은 서 본 적 있거든요.”

잠시 하연이 지금 성인이 된 지 얼마나 지났더라 생각하고 있으려니 하연이 재빨리 덧붙였다.

“아, 주류 판매 없이 공연만 하는 클럽이라 미성년일 때도 괜찮았어요.”

“아.”

“그거는 좀 다르려나요?”

하연이 슬쩍 눈치를 보기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 해 본 적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럼 나머지는 없는 거로 알면 되죠?”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전체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 혼자 독단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우리 콜라보 무대, 아마 현찬 선배님이랑도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거 같긴 한데, 퍼포먼스 중심으로 가면 립싱크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립싱크. 아이돌 판에서 절대 악으로 두들겨 맞지만 결코 근절될 수는 없는 양날의 검이었다.

‘가수라면 무조건 라이브를 소화하는 게 맞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건 아이돌이 종합 엔터테이너인 것을 망각했을 때 이야기다.

평범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제자리에서 내내 뛰는 것 이상의 운동량을 견디며 라이브를 진행하는 건 솔직히 사람을 학대하는 일에 가까웠다.

‘만약 강아지한테 그렇게 시키면 모 훈련사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눈 시퍼렇게 뜨고 학대로 고발할걸.’

제일 좋은 건 라이브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스케줄만 진행하는 것이지만 쇼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으니까.

더구나 흥행을 위해 가수 본인이 편히 부르기 힘들 만큼 고음역대를 넣거나, 격렬한 안무를 같이 넣는 바람에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라도 취사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번 무대의 경우 애초에 우리 곡도 아니고, 음원 발매는 더더욱 예정이 없었다.

우리 싱글은 라이브로 하고 콜라보 무대는 아예 퍼포먼스 중심으로 연출을 틀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여러 안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혜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콜라보 무대가 어떻게 할지 미정인 거고, 우리 싱글 무대는 그대로 가는 거지?”

아, 설마 싱글도 걱정하고 있었나. 나는 산뜻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는 당연히 라이브로 가야 하고요.”

게스트라고 와서 입만 벙긋거리다 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좀 연차가 찼고 수천, 혹은 만 명이 넘는 무대 경험이 많으면 자신 있게 퍼포 무대도 라이브로 가자고 할 텐데.

‘그러기엔 리스크가 커.’

일단 안무 난이도 따라가느라 벅찰 멤버들이 있는 것도 있고, 겟데뷔에서의 무대는 관객 수가 많아 봐야 천 명 남짓이었다.

천 명이 지켜보는 것과 만 명이 지켜보는 건 중압감부터 다르다.

천상 연예인 체질이라 자신했던 나도 처음 NO 콘서트 무대에 섰을 때는 심장이 쭈뼛 조여드는 것 같았으니까.

저게 다 나를 보고, 나를 찍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내가 뭔가 실수라도 하면 이 무대 전체를 망쳐 버리는 게 아닐까 순식간에 온몸으로 와닿는 압박감에 잠시 얼어 버렸었다.

‘간주 시작하고 슬슬 긴장 풀려서 결국엔 잘하긴 했지만.’

나는 그랬지만,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가뜩이나 남의 콘서트의 게스트 무대면… 거기서 실수라도 해서 버벅이거나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야말로 피라냐 떼한테 맨몸으로 달려드는 거랑 비슷하겠지.’

픽앤톡부터 시작해서 온갖 커뮤니티에 실력도 없는 애들 투표빨로 데뷔시켜 주니 남의 콘서트 망쳐 놓는 꼴 좀 봐라, 하는 악플로 도배될 것이 훤했다.

‘뻐꾸기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

각종 렉카 채널까지 붙어서 내가 지금까지 당해 온 것처럼 수십만 뷰짜리 억까 영상이 올라갔을 때.

‘다른 멤버들이 그걸 버틸 수 있나.’

나야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무너지고 다시 재활하는 과정을 너무 많이 지켜봐 와서.

그런 데는 비교적 단단하게 다져져 있으니 어차피 욕은 누구나 먹는다 깊게 생각 안 하고 흘리는 거지.

잠시 침묵이 흐른 그때 정적을 깬 건 은찬이었다.

“나는 라이브로 하는 게 낫다고 봐.”

원론적으로는 그렇지. 나는 흠, 잠시 입꼬리를 늘이다 물었다.

“그럼 완벽해야 해요. 절대 흠 못 잡도록. 선배님 쪽에서 권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하겠다고 한 거면 더더욱.”

“그건 당연한 거고.”

은찬의 날 선 대답에 다시금 싸늘한 적막이 흘렀다.

나는 흘끔 지원을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은찬은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지킬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대가, 아이돌이 너무 좋아서 가시로 꽁꽁 온몸을 두르고 버티는 사람이 하겠다고 했을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단 뜻일 테니.

과연 지원에게도 그 정도의 의지가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지원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외쳤다.

“나, 나도 라이브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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