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11화 (111/224)

#111. 불러 주는 곳은 많은데 (2)

“뭐?”

공민형이 곧장 무슨 미친놈 보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연했다. 지금 멀쩡히 온갖 프로그램에 멘토로도 나가고 소속 연예인들 컨텐츠에 얼굴도 비추는 인간이 갑자기 2년 안에 구속된다고 하면 믿기지 않겠지.

“무슨 헛소리야.”

나는 슬쩍 가지런하게 앉아 있던 다리를 꼬고 앉고는 여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궁금하지 않아? 내가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

그러자 공민형이 믿기지는 않지만 찝찝해서 그냥 일어날 수는 없다는 듯 말했다.

“원하는 게 뭔데.”

원래는 딱히 없었는데. 남이 망하게 될 미래를 뻔히 알면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이다.

아진도 내가 당한 게 있으니 한번 소속사 내에서 개과천선하느라 고생 좀 해 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고 나갔던 거고.

짜증도 나고 같은 팀으로 데뷔하는 건 싫긴 해도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처절하게 망해 버려! 라고 나쁜 마음으로 저주하진 않았다.

그에 반하면 공민형은….

‘물론 당연히 얘도 열받긴 하지.’

하지만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덕분에 무엇에 대비해야 할지 알게 된 건 사실이니까.

이걸로 빚을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본인이 원하는 게 뭐냐고 하니까 좀 그냥 맞교 하기가 아쉬워지네?’

내가 이 녀석에게 대단한 일을 요구하는 건 아니니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골든링 대표, 어떤 사람인지 알아?”

슬쩍 키워드를 던지자 공민형이 하,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나랑 지금 골든링 대표 정보랑 프리점프 대표 정보랑 교환하지는 거야?”

그럴 생각으로 나온 건 아니었으나 그러면 좋겠군. 나는 산뜻하게 긍정했다.

“근데 그거보다는 네가 어떻게 나도 모르는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는지 그게 더 궁금한데.”

전혀 간절하지 않은 사람처럼 여유를 부리자 공민형의 미간이 주름지며 좁아졌다.

실제로도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으니 내 표정에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너 머리 잘 쓴다. 너도 궁금한 게 있으니까 일부러 내가 궁금해할 만한 거로 찔러서 얻어걸려 보려는 거 아니야?”

하여간 그냥, 거래를 제시하면 OK 하고 받으면 되지 뭐 이렇게 의심이 많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면서도 본인이 이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고 일어날 의향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신경 안 쓰일 자신 있어? 내가 너한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한 건지 안 듣고도?”

정곡을 찌르자 공민형이 입을 꾹 다문 채로 씰룩거렸다.

입술이 벌어지지 않아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미묘한 입 모양을 볼 때 속으로 삼킨 단어는 ‘X발’이 분명했다.

“널 어떻게 믿고?”

그럼 나는 널 믿는 줄 아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나는? 널 어떻게 믿고 외부로 발설되면 고소당하고도 남을 정보를 알려 주는데?”

그러자 민형이 맞는 말이라는 듯 빠르게 수긍했다.

“그래, 그러니까 왜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하냐고.”

아오, 대화가 진전이 없잖아. 나는 깊은 빡침을 삼키며 정리했다. 하여간 말로 천 냥 빚을 만드는 놈이었다.

“첫째, 너는 내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게 사실이었어. 둘째, 일반적으로 연습생이 그 시간에 하차까지 해 놓고 MC 대기실에서 나오다가 걸리진 않지. 셋째, 네가 내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해 준다면 그것도 내부자 비밀에 해당할 테니까 그 경로가 외부에 발설되면 너도 곤란해지겠지.”

마치 랩 하듯 순식간에 낮고 작은 목소리로 우다다 속사포처럼 쏘아붙이자 공민형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연습생 오래 하면서 발음 교정도 오래 해서 딕션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다 그래.

나는 속으로 잠시 템포를 고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내가 어떻게 프리점프 대표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뭘 알고 있는지 밝혀지면 내 신상에도 이로울 게 없어. 그러니까 서로 교환하자는 거야. 각자에게 필요하겠지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걸.”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거절할 정도의 의심병이라면 가라, 방생이다, 가서 스스로의 인생을 알아서 진창길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해라, 하고 놔줄 생각이었다.

공민형이 잠시 굳은 표정으로 멈칫하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

나 또한 더는 확실한 의사 결정 없이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침묵했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끝에 적막을 깬 건 공민형이었다.

“여기서는 얘기 못 해.”

그럼 다른 데서는 가능하다는 건가. 내가 움찔 눈살을 찌푸리자 공민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에 자취방 있어. 거기서 얘기해.”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대로 나 어디 끌고 가서 암매장하거나 원하는 대로 불 때까지 묶어 놓고 패고 그런 거 아니겠지?

오만 부정적인 상상이 신경 회로를 타고 SOS를 외쳤으나 나는 애써 콩닥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나 2시간 안에 숙소로 복귀해야 해. 이따 밤에 스케줄 있어서.”

그러자 공민형이 다시금 코웃음을 쳤다.

“그렇겠지. 여기저기서 불려 다니느라 바빠서 눈코 뜰 새도 없을 텐데.”

그러고는 기분 나쁜 비웃음을 담아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여기서 10분만 걸어가면 돼. 오래 얘기 안 할 거면 금방 끝나겠지.”

이걸 믿어, 말어.

하지만 말마따나 여긴 직원이 우리에게 딱히 관심이 없다고 해도 언제 손님이 들어올지 모르는 남의 업장이었다.

외부로 유출되면 대사건을 각오해야 하는 대화를 나누기에 심히 부적절한 장소인 것은 맞았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로 나 연습생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온 거라서 이대로 어디 끌려가서 뚝배기 깨진 채로 사라지면 매니저 형이 바로 신고해 줄 거야.”

그러니 허튼 생각 하지 말라는 얼굴로 경고하자 공민형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너 돌았냐? 미친 새끼 아냐, 이거. 내가 네 뚝배기를 왜 깨는데.”

“불안하니까 그런 거지.”

“너나 잘해, 너나. 너야말로….”

그러고는 내가 뭔데? 말해 보라는 표정으로 마주 보자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여간 이상한 놈.’

진심으로 억울해 펄쩍 뛰는 얼굴을 보니 이상한 데 끌고 가는 건 아니겠군.

공민형이 말한 대로 10분쯤 걷자 나온 곳은 허름한 원룸촌이었다.

‘이 정도면… 원룸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원룸보다는 고시원에 가까운 넓이 아니야? 5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을 엘리베이터도 없이 구불구불 계단을 돌아가며 올라가자 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복도에서 큰 소리 내지 마. 건물 전체에 울려.”

이래서 어디 방 안에서도 제대로 얘기나 하겠냐. 어째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왜, 이런 방에서 지내는 거지?’

의아할 정도로 열악한 원룸이 나를 반겼다.

‘물론 연습생 신분에 돈이 없는 건 맞겠지만.’

공민형은 그냥 연습생이 아니었다. 방영 초기에 진수연 오빠라고 홍보 기사 엄청 올렸잖아. 덕분에 진수연이 예명이었던 것도 밝혀졌고.

진수연이 쓸어 담은 돈이 얼마인데.

그룹 자체는 1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온갖 행사와 CF로 빌딩을 세우고도 남았을 활동량이었다.

물론 동생이 오빠를 부양해야 할 의무는 없겠지만 최근에 같은 그룹 멤버가 청담동 호화 빌라 입주했다고 기사 난 게 지난달인가 그랬는데.

공민형의 집안에 돈이 부족할 리가 없었다. 내가 잠시 놀라 멈칫하자 공민형이 조소했다.

“왜? 좋은 집에서만 살았던 도련님이라 이렇게 후진 방에는 발도 못 들여놓겠어?”

잔뜩 가시와 자격지심이 돋친 말이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그 정도로 충격적일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냥 좁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살았던 옥탑방도 이 수준은 아니었다. 웃풍이 숭숭 들어오긴 해도 인간의 최저 주거 환경에 미달하는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너….”

내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공민형이 나를 비웃었다.

“동생 덕 좀 보지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냐고?”

생각하고 있던 바를 딱 들켜 버린 통에 지레 찔렸지만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원래 이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얘기해 주지 않겠다고 하면 애써 캐낼 이유가 없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피차 신뢰 못 하는 사이에, 안전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이야기할 거면 녹음기 켜 놓고 하자. 그래야 서로 좀 믿음이 가겠네.”

만약 말한 내용에 거짓이 있다는 게 들통나면 녹음을 어떻게 써도 좋다는 쌍방의 제약이었다.

“…그래.”

공민형이 들어오라는 듯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방은 반쪽짜리 침대 하나와 숨 막히게 좁은 주방을 제외하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없었다. 좁은 틈 사이에 몸을 구겨 넣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대화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 또한 침대 한구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우선 네가 지금 당장 궁금해할 것부터 말해 줄게. 나 수연이랑 안 친해. 안 친한 정도가 아니라 걔랑 초등학생 이후로 얘기해 본 적 없어.”

“뭐?”

내가 놀라 되묻기도 전에 공민형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 아빠가 걔네 엄마랑 바람나서 이혼했거든. 걔 두 살 때 우리 집 이혼하고 그쪽이랑 재혼한 거라 나랑은 남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존잘 오빠에 존예 동생이라고 그렇게 널리 알려진 동생이 이복동생이라는 건가?

‘아니, 근데 수연이 오빠라고 홍보를 그렇게 해 놓고서?’

생각해 보면 남매 사이라면서 진수연이 오빠를 응원하는 게시글을 올리거나 지원 사격을 해 주거나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사만 쫙 풀린 거지 본인도 인터뷰나 이런 데 나와서 적극적으로 동생으로 마케팅한 적도 없었고.

이따금 다른 연습생들이 동생이랑 한 번만 통화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 한심한 모습은 봤어도, 본인이 팔아먹은 적은 없었다.

“기사로 홍보 나간 건 회사 결정이었어. 어차피 그쪽도 우리 엄마가 남의 가정 파탄 내고 재혼한 거라 저희 친남매는 아니에요, 밝히지 못할 거라고.”

그건 당연하… 긴 했다. 한국의 정서상 부모의 죄로 연좌제처럼 욕먹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진수연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을지라도 어쨌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부모덕을 봤으면 너도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 박으면서 살아온 거 아니냐, 하고 욕을 먹겠지.

들을 생각 없었던 깜짝 고백(특: 별로 달갑지 않음)에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았겠네.”

그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불륜 남녀들이 돌 맞을 인간들이라곤 하나 어쨌든 남의 부모인데.

그것참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로군 하고 욕해 봤자 당사자에게는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내 얘긴 일단 하나 했으니까, 너도 이제 말해 봐. 그 잘나 빠진 근거가 뭔지 좀 들어야겠으니까.”

자기도 약점을 하나 내줬다고 생각했는지 공민형이 곧장 본론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후, 짧게 심호흡을 하고 공민형을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