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불러 주는 곳은 많은데 (1)
[나] 아까 스태프들,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오후 11:41
그러자 순식간에 읽음 확인 표시가 나타나더니 회신이 돌아왔다.
[이규민] 글쎄다 오후 11:42
[이규민] 너는? 오후 11:42
나도 없지. 있을 리가 있나. 이것도 뻐꾸기의 짓인가 싶었으나 당장 그렇게 확신하기에는 비약이었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악성 팬이 아닐까 하는 것도 우리의 추정일 뿐이었다.
[나] 나도 마찬가지지 오후 11:42
[나] 그쪽 말로는 아이돌 관련 촬영인 거 절대 눈치 못 채게 올린 공고라서 일부러 알고 접근한 건 아닐 거라던데 오후 11:43
일단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재확인하자 규민이 의심스러운 가정을 꺼냈다.
[규민] 원래는 아니었는데 누군가한테 사주를 받은 상황이라면? 오후 11:44
[나] 굳이? 오후 11:44
[나]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뭔데 오후 11:45
악성 팬들이 스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했다.
너희들이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마치 우상처럼 대하는 그 존재를 ‘내가’ 화나게, 두렵게, 속상하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빠져서 극단적인 짓을 벌이는 것이다.
스타의 관심을 잡아끌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주거 침입이든, 절도든, 스토킹이든 상관 안 한다는 거니까.
공개 스케줄의 출퇴근길처럼 오픈된 장소에서 따라다니는 것과는 달랐다.
전자는 다른 경쟁자가 없었으면 하고, 후자는 다른 팬들과 뭉쳐서 내 스타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느끼길 바라니까.
‘만약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었다면 본인이 직접 하려고 하지 남한테 시켜서 할 것 같진 않은데.’
그들의 생각을 100%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상식적이었던 나머지 고개가 저절로 기울어졌다.
[이규민] 영상이 남잖아 오후 11:46
[이규민] 만약 거기서 은찬 형이 못 참고 분위기 개판 쳐 놨으면 오후 11:47
[이규민] 그걸로 갑질 아이돌이라고 쫙 퍼트릴 생각이었겠지 오후 11:47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다.
[나] 그러면 우리 팬이라기보다는 오후 11:48
[나] 다른 그룹 팬이라 우리가 침몰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할 짓 같은데. 오후 11:48
[이규민] 그것도 가능성이 없진 않고 오후 11:48
나는 잠시 골든링 대표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깃이 ‘우리’가 아니라 ‘정은찬’일 가능성은 없으려나. 그쪽에서 한창 힙합 씬을 버리고 간 배신자로 취급하는 느낌이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에 정은찬을 검색해 보자 유명인들이 언급해 둔 포스트들이 나왔다.
[넌 내가 지금까지 본 천재 중에 제일 잘생긴 천재야]
[└ 잘생긴 애들 중에 천재라는 소리는 안 해 주네….]
[└ 아ㅠㅠㅠㅠㅠㅠ 왜 갑자기 뼈아픈 지적을]
[우리 식구 신곡 나왔어요 많관부♡ 스밍 하러 달려]
[└ 아재 멘트 뭐냐고요ㅋㅋㅋㅋㅋㅋ]
[└ (작성자) 젊은 피 수혈을 좀 해 봄ㅋ]
[앨범 언제 나와? 앨범 언제 나와? 앨범 언제 나와? 앨범 언제 나와? 앨범 언제 나와? 앨범 언제 나와?]
[└ 무섭다ㅋㅋㅋㅋㅋㅋ]
[└ (작성자) 당장 내놔]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본 건 아니지만 좋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일단 곡이 정말 호불호를 안 탈 정도로 좋았고 훅도 중독성 있게 꽂혀서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차트가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를 증명해 주는 마당에 아이돌이라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솔직히 본인도 억지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정은찬 본인의 원한은 아닐 것 같은데….’
까지 생각하던 나는 그동안 워낙 많은 일들이 있어 잊고 있었던 확실한 원한이 떠올렸다.
‘임… 임 뭐였지.’
하차한 이후로 그대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서인수 3차 미션]
[서인수 3차]
[겟데뷔 서인수 3차]
결국 포털에 키워드를 몇 번 검색해 보고 나서야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임희록이었지.’
나는 재빨리 규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혹시 임희록이 사주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오후 11:53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얘기나 꺼내 보자 곧바로 타박이 돌아왔다.
[이규민] ? 오후 11:54
[이규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후 11:54
[이규민] 저기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신 게 아닌지 오후 11:54
‘웃지 마. 이쪽은 진짜로 어떤 음모론자에 의해 당하고 있는 입장이란 말이다.’
나도 지금 정체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조작당하고 있다고 얘기하면 100% 망상으로 취급하겠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장했다.
[나] 아니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오후 11:55
[이규민] 모르지 이유야 다양할 수도 있는 거니까 오후 11:55
나는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화면을 껐다.
이번 일이 뻐꾸기와 관련이 있든 없든 문제인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꼬투리 잡힐 일 만들지 말고 조심하는 거지.’
다들 서바이벌을 거치면서 마라 맛 편집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편인 데다가 오늘 일로 긴장이 바짝 든 모양이었다.
‘당분간 팀 애들이 사고 칠 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고.’
평소에 그렇게 서글서글하니 잘하면서 은찬과 관련된 일에는 발끈했던 하연도 오늘 자신이 생각이 짧았다는 걸 인정했는지 조금 풀이 죽어 있었다.
‘애초에 그런 사고만 없었어도 굳이 풀 죽을 일이 아닌데….’
순순히 보내 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을 계속 곱씹어 놔야 나만 우울해진다.
나는 냅다 침대에 드러누운 다음 내일 공민형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부터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대략적인 내용은 잡아 두긴 했는데.’
미래를 안다는 것을 숨기고 어떻게 신뢰를 얻을 것인가.
나는 고민 끝에 내린 답을 움켜쥐고 숨을 꾹 참았다.
‘그래도 안 믿는다면?’
본인 운이 거기까지인가 보지. 어릴 적 읽었던 전래 동화에서도 스님이 기껏 충고해 준 거 귀담아듣지도 않고 흘린 사람들은 선행을 하고도 도루묵이었으니까.
‘나는 할 만큼 한 거야.’
별로 내키지도 않는 놈이랑 만나서 위험을 감수하고 말해 준 거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본인이 감수할 일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수고하셨습니다!”
오전에 잡혀 있는 단체 스케줄을 끝내고 잠시 식사 겸 휴식 차 숙소로 돌아갔을 때 나는 매니저에게 외출을 알렸다.
“잠깐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걔도 곧 데뷔할 친구라서 이상한 친구 아니에요.”
적당한 변명으로 안심시키고 (친구라는 것만 빼면 사실이 맞긴 하니까.) 언제까지 돌아오겠다 확답 후 집을 나서려던 그때 어디선가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제현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맛있는 거 사 올게.”
그러고는 탁, 문을 닫았다.
‘가자.’
가벼운 기합과 함께 떠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
공민형이 나를 불러낸 역은 7호선의 인적 드문 역이었다.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주요 역과 바로 붙어 있는 건 아니라서 내리는 사람은 열차 전체를 통틀어 세 명 정도였다.
당연히 역사 안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카페에도 썰렁할 만큼 사람이 없었다.
‘이런 데서 장사가 되나….’
반사적으로 걱정이 머릿속을 스친 순간, 구석진 곳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앉아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누가 봐도 공민형인데.’
애초에 아이돌을 하기 위해 관리한 체격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티가 난단 말이다.
나는 속으로 가볍게 웃은 다음 그쪽으로 가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음료 시켰어?”
물어보기도 무색하게 테이블 위에 한 모금도 안 마신 것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다.
“나도 주문하고 올게.”
알바생인지 사장인지 모르겠지만 직원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지 입구에 키오스크가 주문을 대신 받고 있었다.
‘이래서 여기 오자고 했나.’
굳이 목소리를 노출하지 않아도 메뉴를 주문할 수 있으니까.
카드를 기계에 넣어 계산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무심해 보이는 직원이 커피를 내려 주었다.
꾸벅 말없이 인사를 하고 커피를 받아 테이블로 가자 공민형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건데.”
하긴. 내가 얘랑 서로 하하 호호 근황 토크를 할 사이는 아니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모자를 고쳐 쓰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프리점프 계약서에 사인했어?”
그러자 공민형이 더더욱 의심으로 똘똘 뭉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걸 왜 네가 관심을 갖는데? 누구한테 들었어?”
“내가 누구한테 들었든 귀는 많으니 그걸 말하는 입도 많겠지. 너도 나한테 중요한 걸 알려 줬으니까 나도 똑같이 해 주려는 거야.”
딱히 대단한 고마움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빚진 기분을 계속 가져가는 건 사양이었다.
“너 진짜 몰랐다고? 어떻게….”
‘고맙다’나 ‘도움’ 같은 워딩을 쓰기 싫어서 일부러 풀어서 얘기한 건데, 공민형이 내 대답에 엉뚱한 데 정신이 꽂혀 물었다.
“방송이든 사담이든 계속 얘기했잖아. 양부모님 두 분 다 정말 좋은 분들이셨다고. 그래서 친부모님이 누구인지, 나를 왜 못 키우게 됐는지, 어쩌다 입양된 건지 안 궁금했어. 기억이 있을 때부터 할머니랑 살다가 친척 집으로 옮긴 게 지금 부모님 댁이었으니까.”
이걸 이놈한테 줄줄 설명하는 것도 웃긴 일인데.
이 정도로 내 얘기를 늘어놓지 않으면 공민형도 자기 얘기를 쉽게 해 주진 않을 거라서 친절히 사족을 보탰다.
‘아니, 근데 잠깐.’
이놈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걸?
새삼 생각해 보니 MC인 비안이 공민형과 대기실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것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는 너는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미처 지적하지 못했던 것을 묻자 공민형이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 얘기를 너한테 왜 해 줘야 하는데? 오늘 하려던 얘기도 아니잖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나도 삐딱하게 맞불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말해 주기 싫으면 네가 관심 있을 수밖에 없는 걸 먼저 말해 줄게. 프리점프 대표 2년 안에 구속 영장 나와.”
그러자 얼굴만큼은 봐줄 만한 놈의 표정이 가관이 되었다.
‘이게 미쳤나.’,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이게 현실인가?’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얼굴이었다.
“이제 좀 나랑 길게 얘기해 볼 생각이 들어?”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가져온 패를 아주 일부만 꺼내놓았다.
내가 무슨 근거로 그 얘길 하는지 궁금해서 듣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