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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6화 (106/224)

#106. 꼬리 밟기 (3)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방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목소리를 낮춘 채 전화를 걸었다.

“네, 형. 메시지 주신 거 봐서요.”

- 어, 그게 좀 나도 건너 건너 아는 거라서 그냥 참고만 해 줘. 100% 믿지는 말고. 근데 갑자기 골든링은 왜?

나는 소곤소곤 입가에 손을 대고 소리를 틀어막고 대답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아는 친구가 그쪽이랑 계약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해서요.”

- 아, 네가 계약하려는 건 아니고?

“네, 저는 아직 미정이에요. 일단 활동 끝날 때까지는 보류하려고요.”

- 그래, 그게 낫지, 너는. 그럼 더더욱 그냥 이런 소문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해 줘, 증거가 있거나 한 건 아니니까.

그 이후로 이어진 말인즉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중소 소속사의 병폐였다.

골든링은 원래 밀키즈 외에는 아이돌보다는 트로트 가수나, 일반 솔로 보컬들을 중심으로 매니지먼트 하는 회사였다.

‘아무래도 사장이 그쪽에서 입지가 대단한 사람이니까.’

아이돌 그룹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솔로도 활동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아이돌 가수보다 춤이나 엔터테인먼트 면에서 신경을 덜 써도 되는 건 사실이지만.

‘보컬 하나만으로는 웬만큼 잘하거나 특색 있지 않고서는 솔직히 차별화하기 어렵지.’

그래서 다들 어떻게든 험난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맨쇼를 한다.

가끔씩 댄스곡을 내기도 하고 예능을 돌거나, 지방 행사를 수십 군데씩 도는 식으로.

더구나 혼자서 한 곡을 완창해야 하니 목이 소모되는 속도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나도 뭐 비슷했던가….’

더욱이 고음이나 생목 보컬로 승부를 보는 가수라면 수명은 길어야 3년에서 5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람들이 흥미를 잃어 잊혀지는 것도 있겠지만 가수 본인의 목이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잃기 때문에.

박 대표는 그걸 짜증 날 만큼 잘 아는 사람이었다.

- 일부러 무리할 수밖에 없는 스케줄을 주고 못 하겠다고 하면 그걸 기존 정산금에서 벌금을 까는 구조였다는 얘기가 있었어.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더는 노래하지 않는 가수 출신 소속사 사장이 한둘은 아니지만.

박 대표는 꼭 젊은 시절의 고된 활동으로 더는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을 다른 가수들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목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일정을 강요했다고.

그렇게 단기간에 쥐어짜 내진 가수들은 망가진 성대를 회복하기 위해 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됐고, 회사에 활동 지원 명목으로 빚만 늘어나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수순이었다.

“잠깐만요. 지금 골든링이랑 계약 기간 끝나고 재계약 없이 계약 종료한 분들이 누구누구셨죠?”

핸드폰을 어깨 위에 끼고 재빨리 노트북을 켜서 머릿속에 기억나는 두세 명의 이름을 검색했다.

모두 마지막 활동이 골든링과 계약종료를 한 후 끊겨 있었다.

- 김동선 선배님이랑, 주현진 선배님, 그리고 고창민 선배님….

셋의 이름을 모두 포털에 검색해 본 나는 등 뒤로 소름이 쭉 돋았다.

모두 어김없이 계약 종료 후 개인 활동 이력이 끊겨 있었다.

그나마 한 분이 음악 BJ로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서 활동 중이었다.

- 아무튼 거기랑은… 나는 추천 못 하겠다. 내가 얘기한 거라고 말하진 말고. 그냥 그런 소문이 있다더라 정도만 얘기해 줘. 저기랑 재계약 안 하고 나간 사람들 다 방송 콜 끊겨서 활동 안 하고 있다고.

그나마 그 와중에 제일 잘돼서 버티고 있는 게 유 대표와 밀키즈 멤버들이었다.

‘그쪽이 워낙 잘돼서 설마 진짜 뒤가 구린 짓까지 하는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당했던, 빈자리 새치기도 나만을 타깃으로 했던 짓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을 훼방 놓으려다가 내가 얻어걸린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후, 짧게 한숨을 삼키고 대답했다.

“네, 형한테 피해 안 가게 조심할게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에둘러 감사 인사를 전하자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 어, 너니까 얘기해 주는 거야. 너 워낙에 올곧고 성실한 녀석인 거 아니까. 이걸로 어디 가서 이상한 짓 하는 데 쓰고 그럴 것 같진 않아서.

내가 한 거라고는 허튼짓 안 하고 열심히 연습생 생활을 한 것뿐인데, 그게 참 남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의도치 않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뚝심 있는 놈으로 알려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연예인 하겠다는 놈이 남들 다 한다고 뒤 구린 짓 하는 게 말이 되냐.’

나는 NO에서 숱하게 봐 왔던, 불성실한 태도로 방출된 녀석들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확실히 정해진 건 없지, 주위에서는 하나둘씩 데뷔해서 잘되는 모습만 눈에 들어오지.

한창 유혹에 약할 어린 나이에 집단생활을 하니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걸 이겨 낼 수 없다면 남들이 못 받는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제일 나쁜 건 장점이라곤 외모밖에 없는 애들 꼬드겨서 자기 잇속 채우려 하는 어른들이지만.’

잠시 삼천포로 빠진 생각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가니 다들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좋은 소식은 없단다.’

나는 머쓱하게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말했다.

“그냥 안부 전화였어. 아직 데뷔 못 한 연습생 시절 친구. 데뷔 축하한다고.”

“아~”

다들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해산하는 사이 나는 곧장 노트북을 켜고 골든링에 소속되었던, 그리고 소속된 연예인들을 차트로 정리했다.

지금은 한물갔다고 해도 업력이 긴 회사여서 찾아봐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이 수십 명 근황을 언제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어….’

쯧, 혀를 차고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등 뒤로 누군가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뭐야?”

서둘러 정리 중이었던 페이지를 가리고 뒤를 돌아보자 이규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어?”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에 나는 곧장 발뺌했다.

“그냥 컨셉용 자료들 정리한 거야. 생각났을 때 안 해 두면 잊어버리니까.”

그러자 규민이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

“그래? 그럼 나도 좀 보여 주라. 서로 의견도 나누고 하면 좋겠네. 아이디어 발전도 되고.”

눈이 꼭 이게 단순히 아이디어 기록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냥 좀 가라.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니까.”

“어제 뭐, 우리 다 같이 한배를 탄 것처럼 말하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가 다른지 설명을 해야 내가 납득을 하지.”

이 녀석 혹시 내가 뭔가 수상쩍은 뒷주머니를 차려는 걸까 봐 의심하고 있나?

‘뭐,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아무래도 나와 출발선이 다른 입장이다 보니 예민해지는 건 이해되는 영역이었다.

‘저쪽은 갚아야 할 빚이 수억이고 나는 한 푼도 없으니까.’

오로지 나만, 당장 지난달부터 활동한 수익이 정산되는 구조였다.

애초에 다들 개별 기획사 소속으로 합작 활동을 하는 거라 그룹 활동에서 나오는 수익은 N분의 1로 정산이었지만, 개인 활동 수익은 개별 정산이었다.

앞으로 정산을 받으려면 일 년 동안 까마득하게 활동해야 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바로 통장에 정산이 꽂히는 내가 혹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지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나중에 설명해 줄게.”

“어쨌든 지금은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날 서서 확대 해석 하지 마.”

규민이 나를 한참 빤히 들여다보다가 입술을 비죽였다.

“너는 다른 녀석들한테는 널 믿으라고 하면서, 어째 너는 안 믿는 걸 가끔씩 그렇게 티를 낸다.”

나는 발끈해서 대답했다.

“내가 언제?”

내 짜증이 묻어나는 반응에 규민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방을 나갔다.

“됐다. 뭐, 자기 입으로 절대 이상한 일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리더를 내가 믿어 줘야지 어쩌겠어.”

그리고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말을 하고 갔다.

“나는 너랑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널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뭐래.”

“그래, 그렇게 대답하는 놈이라는 건 알겠다.”

규민이 방을 나가고 나서 괜히 마음이 심란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그룹 활동을 위한 거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사재기 트집이 뻐꾸기에게서 시작된 루머라면 나 때문에 다른 그룹 멤버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니까.

‘내가 빨리 스페셜 미션을 해결해야 팀 활동에 지장이 안 갈 거 아냐.’

누굴 의심하는 거야, 진짜. 괜히 속이 쓰리다가도 계속 말했듯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입 안이 쓴 느낌이 계속됐다.

‘어차피 말해 봤자 미친놈 취급이나 할 거면서.’

사실대로 말한들 믿을 리가 없었다.

나는 한번 망했다가 7년 전으로 다시 돌아온 거고 원래 데뷔조에는 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망할 뻔한 프로그램 내 인지도 떡상시켜서 히트 치게 만든 거다, 라고 어떻게 말하냐?

혼자 분해서 잔뜩 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곧 규민이 다시 문을 열었다.

“들어간다.”

이번에는 기척 없이 무턱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노크를 하길래 왜 이러나 했더니.

한 손에 어제 먹다 남은 과일들을 담은 그릇을 가져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먹으면서 해.”

“뭐냐.”

내가 뚱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규민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야 네가 뭐 허튼짓을 하더라도 죄책감에 양심이 따끔따끔 찔리겠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여간. 아까 분위기가 나를 좀 무턱대고 의심하는 것처럼 돼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뭘 이렇게 돌려서…. 괜한 생각이 많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진짜 이상한 거 아니야. 나중에 때가 되면 다 얘기해 줄게.”

“아무렴, 아빠가 우리 세뱃돈 걷어 간 거 떼먹겠어요. 다 크면 돌려주시겠지.”

“야.”

곧바로 또 사람 놀려먹으려 드는 꼴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쉬엄쉬엄해. 거의 한 달 만의 휴일이잖아.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텐데.”

그리고 다시 방문이 닫히니 문득 너무 조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조곤조곤 흘러 들어오는 멤버들끼리 대화하는 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코멘트….

나도 모르게 그 사이에 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평화를 지키는 것이었다.

‘일단 간단하게라도 정리하고 나가자.’

나가서 멤버들이랑 저녁도 먹고, 스케줄 공유도 하고…. 저 소란스러움에 벌써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지인에게서 또 연락을 받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마음이 2차로 심란해졌다.

‘이거는… 이규민도 관련해서 아는 게 있나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참 혼자 해결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여 놓고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게 그림이 우스웠지만.

멤버들 중 나만큼이나 발이 넓은 건 규민뿐이었다.

‘이것 때문에 괜히 골든링 이야기까지 알게 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괜히 불똥이 튀어 이규민이 더 크게 사건에 얽히는 것은 원치 않는데….

‘아… 그 형한테 연락하지 말걸. 소식을 아예 듣질 말았어야 하는데.’

후회는 너무 늦었고, 나는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었다.

나에게 충격적인 비밀을 알아낼 기회를 준 놈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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