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4화 (104/224)

#104. 꼬리 밟기 (1)

[대흥행 서바이벌 출신 그룹, 사재기 의혹]

[데뷔 싱글부터 사재기 논란ㄷㄷ 핫한 그 그룹]

[1위 가즈아~ 기계가 도와줄 끄니까~]

대부분 쇼케이스와 뮤직비디오를 편집한 팬 영상이나 겟데뷔 출연하면서 올라왔던 페이스 캠 영상들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올라온 지 6시간도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렉카 영상들이 끼어 있었다.

‘이걸 왜 그렇게들 보는 거야.’

조회 수 올려 주는 것도 싫어서 썸네일만 훑어보는데도 어디서 지령이라도 받은 건지 같은 소리만 반복 중이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 아무리 서바이벌 출신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성적을 낼 수가 없다.

최근에 컴백했던 1군 남자 아이돌도 트리플 크라운은 발매하고 3일 후에나 겨우 달성했다.

그러니 무조건 사재기다, 뭐 그런 주장이었다.

‘참나….’

겟데뷔의 시청률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었다.

우선 다 떠나서 우리 회사, 코드비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사용하는 예산 하나하나 KMB에 컨펌을 받아야 해서 쪼들리는 실정인데.

스트리밍 조작을 의뢰할 정도의 비용이 갑자기 어디서 샘솟았겠냐고.

게다가 우리 대표를 봐라. 평생 디자인만 하다가 은퇴하고 골프장 운영하다 갑자기 불려 나온 사람인데.

브로커 연락처나 알겠냐? 실정을 아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댓글 반응은 어떻지?’

당연히 대부분 억측이라는 욕뿐이었다. 그러나 서로 입을 맞춘 듯 앵무새처럼 반복해 대는 논란 불 지피기에 일각에서는 정말 사실인 것처럼 휩쓸리는 부류도 있었다.

 ̄ ̄ ̄ ̄ ̄

[제목] ㅇㅋㅇㅌ 음원 말인데

[본문]

확신하는 글 XXXX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 OOOO

오늘 이슈 채널들 다 사재기로 의심하던데 이거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거임?

[댓글]

- 그냥 딱 들었을 때 대중 픽이구나 느껴지지 않나 좋던데ㅋㅋㅋㅋ└ ㅇㅇ 딱 깔끔하게 듣기 좋은 댄스곡이라 장기 자랑 같은 데서 많이 커버할 듯

- 겟데뷔 막방에서 한 달이나 지났으니까 다들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뜰 줄은 몰라서 놀람

- 증거가 너무 빈약하던데. 그냥 논리가 얘네가 이 정도 코어가 있을 리가 없다, 다른 그룹도 못 했다, 이게 끝이잖아.

- 나도 아닌 것 같았는데 구독 중이던 채널이 너무 확신해서 빼박이라고 하니까 긴가민가함

 ̄ ̄ ̄ ̄ ̄

파생 글을 몇 개 더 확인하고 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

이거 이제 수사 맡겨 달라고 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부류의 메인 스피커들은 모두 해외 사이트에 주력을 두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쪽은 명예 훼손으로는 피고소인의 자료를 넘겨주지 않으니까.

한국에 서버를 둔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은 다 고소를 피할 생각으로 두루뭉술하게 작성하거나, 자기도 몰라서 물어보는 거라는 둥 조금씩 변주를 넣어 놓았다.

‘이걸로는 고소가 안 되는데.’

쯧, 나는 혀를 차고는 화면을 닫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를 의심하는 글보다 기대 이상의 성적에 기뻐해 주는 팬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뻐꾸기인지 뭔지가 더 설치기 전에 빨리 꼬리를 잡아야 하는데.’

잠시 곰곰 생각하다가 비안과 유 대표가 나눈 대화를 복기했다.

‘언니도 처신 잘해야 할 거야. 박 대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여기서 박 대표는 골든링 미디어 대표일 게 거의 확실하고.

나는 골든링 미디어가 어떤 회사인지 찬찬히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사실 내게 좋은 기억이 있는 기획사는 아니었다.

망한 연습생이자 망한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었던 시절, 나는 무슨 일이든 기회가 된다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방송에 한 번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힘든 일이나 장시간 대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리가…. 아, 하나 아슬아슬하게 남을 것 같은데. 근데 대기실이 없어서 방송국 안에서 알아서 대기하다 부르면 와야 하는데 괜찮겠어?’

비참하긴 하지만 모처럼 연락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을 때.

너한테 주려던 그 자리가 다른 출연진으로 대체돼서 네 자리는 확정적으로 없다, 통보를 받은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이 판 룰이 원래 인기 없으면 찬밥 신세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번번이 돌아서야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나한테 올 수도 있었던 빈자리를 가져간 출연진들 소속사가 골든링이었던 적이 꽤 있었단 말이지?’

그때는 골든링도 사실 옛날에나 잘나갔지, 한번 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소송하고 나가 버리는 바람에 한물간 곳이니까. 그래서 거기도 펑크 자리 두고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 자주 겹쳤나 보다 생각했었는데.

‘혹시 그쪽에서 일부러 날 밀어내려고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켰던 거라면?’

솔직히 기획사라고 부르는 것도 민망한 수준의 영세 회사 출신인 나, 그리고 대표가 업계에서 꽤 오래 묵은 사람인 골든링 소속 연예인.

그 둘의 경쟁에서 누가 이겼을지는 뻔한 싸움이었다.

박 대표가 이전 회차의 나는 물론이고 이번 회차까지 나를 방해하려고 한다…?

살짝 논리적 비약이 있어 보였으나 비안과 유 대표의 대화로 말미암아 제대로 알아볼 필요성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유 대표는 내 친모… 이기도 하다니까.’

배제하기엔 오히려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다만 이미 실행에 옮긴 건지, 아직 옮기기 전인 건지 모르는 게 좀 답답한데.’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려 하면 비안이 막아 준다고 했으니 믿을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역바이럴처럼 뒤에서 구린 짓을 하는 건 비안도 알 수 없겠지.

‘한번 박 대표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나는 내일 연락해 볼 지인들의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한번 정리한 다음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불을 끄고 이불을 목 위까지 덮어 올리니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죄송해요.”

소심하게 몰래 건네는 사과에 나는 웃음을 삼켰다.

이 평화 아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전히 차트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우리 신곡을 본 모두 흐뭇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잠이 많은 녀석들은 여전히 드러누운 채였다. 최근 이어진 바른 생활이다 못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사당하는 스케줄에 익숙해져 버린 비운의 몸뚱이들만 말똥말똥한 눈으로 기상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네.”

“왠지 막 연습실 가서 쌤한테 혼나고 있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인데.”

첫 음방 무대는 이틀 후에나 있으므로 오늘은 미리 촬영해 둔 예능들이 하나둘 방영하는 것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보내도 되는 날이었다.

“한 달 동안 휴일 없이 굴려지다가 갑자기 쉬라니까 이것도 어색한가 보다.”

다들 한 달 사이에 생경해진 감각에 하나둘 몸이라도 풀겠다고 사옥의 피트니스 센터에 다녀왔다.

나도 어제 꽤 과식을 했던 터라 신경이 쓰이기도 해서 같이 땀을 빼고 돌아왔다.

어제 먹고 남은 것들을 데워서 적당히 점심으로 때우고 늦잠꾸러기들까지 눈을 떴을 때는 꽤 예전에 찍었던 예능이 공개될 시간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인수 출연했던 그거 지금 올라왔겠다.”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라 나도 잊고 있었는데.

이미 채널 공지로 예고가 나가 버린 상황이라서 아침에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을 때도 다들 그 얘기뿐이었다.

‘아무래도 나가면 일단 조회 수가 보장되는 채널이라 다들 나가고 싶어 하는 스케줄이니까….’

그거 일부러 다 짜고 찍는 거라 사실은 술이 아니라 음료라던데? 부터 시작해서 자기도 연락처 좀 연결해 줄 수 없냐까지 반응들이 각양각색이었다.

“지금 바로 같이 볼까? TV랑 연결해 볼게.”

무슨 학부형도 아니고 멤버들 스케줄을 하나하나 녹화하고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취미인 혜성이 해맑게 제안했다.

나는 윽, 표정을 구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대답했다.

“아뇨, 그렇게까지 신경 쓰실 필요….”

그러나 나 말고 다른 녀석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대박, 보고 싶어요!”

“와, 나도 기대된다.”

아직 법적으로 음주가 금지된 미자 두 명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별거 없어, 진짜.”

험난한 웹 예능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느 방송과 마찬가지로 누가 출연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재미였다.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영역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했잖아.’

다행히 내가 굴욕적으로 나온 장면은 없는데 최대한의 자극과 최대한의 웃음을 뽑아내기 위해 과장돼서 편집된 버전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를 아는 사람이 보면 더 웃기겠지. 죽어도 안 된다고 하기에는 이미 다른 녀석들이 출연한 지상파 예능을 다 같이 틀어 놓고 봤던 적이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되는데 나는 안 된다고 우기는 것도 못 할 짓이고.’

어차피 보지 말라고 해도 다 각자 핸드폰 있으니까 보겠지.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은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봐라, 봐.”

그리고 우리의 해맑은 검은 머리 외국인은 사양하는 법을 몰랐다.

“넹~”

“와, 기대된다.”

그리고 잠시 후, 처참할 만큼 웃기게 편집된 영상을 본 멤버들 모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어 댔다.

은찬마저도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떨 정도였다.

“아, 미친다. 너 감 완전 돌았는데? 그래 놓고 지금까지 내내 노래 부르는 거만 나간 거야? 적성을 왜 썩혀, 아깝게!”

영인과 규민은 아주 영상 내내 거의 흐느끼듯 웃어 댔고, 지원은 분명 처음에는 흘끔흘끔 내 눈치를 봤다.

그러다 내가 열두 번째 감사 인사를 올릴 즈음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 제가 진짜 감사할 분이 너무 많거든요…. 저희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삭막한 이 시대에 불어오는 훈훈한 감사 릴레이]

[저희 매니저 형이 새로 오셨거든요? 그분도 진짜 요령은 좀 없는데 너무 열심히 해 주셔서….]

[누가 이 사람의 감사를 좀 말려 주세요]

[오늘 이렇게 불러 주신 제작진분들께도 너무 감사하고….]

[벌써 30번째 감사 중]

[아무튼…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감사를 많이 해서 이게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릴까 봐 걱정돼요….]

[여러분들은 지금 여섯 번 들으셨죠. 제작진과 편집자는 서른다섯 번째 듣고 있습니다.]

벌써 추천 수 3천을 찍은 베스트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 인수야 교회에서 하는 대학 합격 간증도 이렇게는 안 해]

마지막으로 멀쩡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 문을 여는 장면까지.

스스로 술고래라고 말하고 다녔으나 사실은 알쓰였던 귀여운 거짓말쟁이로 연출되어 있었다.

[- 우리 수 리더… 어디 가서 술 먹고 다니지 마라 제발]

[└ 그래도 나가서 사고는 안 칠 듯 감사는 하고 다녀도]

[└ 술을 마시나요? (O)

나가서 사고를 치나요? (X)

감사를 하나요? (O)]

[- 서인수 술 취한 후 목격담 예상: 길 가는 행인 아무나 붙잡고 자기 노래 들어 봤다고 하면 감사할 것 같음]

[└ 데뷔 전에 싸가지 없어 보인다고 궁예 글 올라왔던 거 삭제되는 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감사 전도사에 이은 자존감 전도사ㅋㅋㅋㅋㅋㅋ]

[- 주사가 감사 인사인 아이돌… 이건 제법 희귀한데요]

얼굴이 하도 화끈거려서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

한편 본인이 그렇게 한껏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반대로 너무 좋아서 빈사 상태인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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