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01화 (101/224)

#101.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1)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MC 성준석입니다.]

한창 20~3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인 MC가 멘트를 시작하자 객석의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럴 만도 하지. 라이브, 현장 동시 시작 시간이 6시인데 입장이 3시부터 가능했으니 일찍 들어온 사람은 안에서 쌩으로 3시간을 기다린 셈이었다.

‘얼른 무대 나가고 싶다.’

그렇지만 진행에도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어서. 일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최단시간, 최저 예산으로 최대의 퀄리티를 뽑아낸 뮤직비디오를 보여 주어야 했다.

오늘 모인 오프라인 방청객 300명은 모두 팬클럽 추첨을 통해 모집한 팬들. 거기에 기자 초청단 30여 명에 온라인 시청자 최대 30만 명까지 합하면 지켜보는 눈이 정말 많았다.

‘그 뻐꾸기인가 뭔가 하는 놈도 보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완벽한 모습만 보여 줘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물론 팬분들께도 보여 드리고 싶은 게 많았다.

서바 출신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공개된 콘텐츠라고는 개별로 출연한 예능뿐.

멤버랑 그룹명, 로고밖에 알려진 게 없는 그룹을 냅다 팬클럽 가입부터 해 주신 분들인데. 마음 같아서는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기대해 주신 만큼 더 잘할 테니까요.’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사이 무대 위 스크린에 데뷔 싱글용 로고가 나타났다.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ENCOUNTER]

[CHASE]

MV가 시작되고 삐빅, 스마트 키로 차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밝아졌다.

드르륵, 차고가 열리고 어둠 속에서 빛이 길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조금 전 차 문을 열었던 누군가가 보닛 위에 걸터앉으며 안광이 클로즈업되었다.

그 누군가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귀가 먹먹한 환호가 쏟아졌다.

“인수야!!”

“서인수!!!!”

화면 속 나를 확인한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보니까 좀 부끄럽네.’

완성도 면에서 부족함 없는 화면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민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본래 센터 포지션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센터여야 했다.

‘그야 전 투표 통틀어 종영까지 1위 유지 및 최종 1위 데뷔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서 센터에 안 세워 주면 그것대로 논란이 될 테니까.’

쉿, 가볍게 주의를 주는 낮은 쇳소리와 함께 간주가 시작되고, 화면이 전환되며 안무 대형으로 넘어갔다.

전자음이 섞인 비트와 함께 최단시간, 최저 예산으로 끌어낸 최고의 결과물이 재생되었다.

[Three two one, action. 빛나는 flash. 눈 감아, 벌써.]

[빨라지는 pitch 속도를 높여. 더 higher emotion.]

우리가 데뷔 싱글로 준비한 건 힙합 기반의 일렉트로닉 팝 댄스곡. 짧은 시간 내로 준비해야 했던 만큼 은찬의 손에 익은 장르였다.

본인이 제일 잘 휘두를 칼을 쥐여 준 덕분일까, 묵직한 비트가 쇼케이스장 전체를 압도했다.

바닥에 자작하게 깔린 물이 거친 동작을 수행해 낼 때마다 물보라처럼 튀었다.

[깜빡하는 순간 달아나지. 또 catch me if you can-]

[Black box는 남겨 둘게. 계속 더 기억해 줘, 날.]

단체 군무를 구석구석 훑는 연출 사이사이로 차고 같은 공간에 컨셉 촬영용 의상을 입고 살짝 흐트러져 있는 멤버들이 화면에 잡혔다.

중간중간 터지는 호응이 너무도 솔직한 반응이어서 뿌듯한 한편 웃음이 나왔다.

‘노리고 한 건 맞긴 한데.’

영인이 정비공 차림으로 물에 젖은 채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 장면이 나온 순간 귀가 아플 정도의 비명이 쏟아졌다.

[Broon’ Broon’ Broon’ Turn on the radio.]

[Listen up. 태워 봐, 더 뜨겁게.]

중독성 있게 귓가를 파고드는 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비명 소리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급하게 맡긴 안무였지만 대충 짜서 던져 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요구 사항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서 화려한 이펙트나 세트 설비가 없는 심플한 배경과 잘 어울렸다.

‘덕분에 지원이랑 은찬이 고생 많이 했지.’

시간이 짧은 만큼 스스로 타협하고 싶었을 만한데도, 지원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연습을 끼워 넣었다.

‘오죽하면 방송국 계단에서 신곡 안무로 보이는 거 추다 걸렸다고 목격담이 떴을까.’

다행히 커뮤니티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일부는 지원이 춤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구멍이니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노력을 높이 사서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돌로 포장해 주었다.

지원이 그렇게 의도치 않게 노력을 티 낸 쪽이라면 은찬은 그 반대였다.

‘우리한테만이라도 좀 티 내도 되는데.’

작업하러 자리를 비운 척 나가서는 돌아올 때 무릎이나 종아리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는 걸 보니 춤 연습을 하고 온 게 분명했다.

‘그게 본인 자존심이라면 뭐 입 다물어 주는 게 맞겠지.’

은찬이 아이돌에 진심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설렁설렁하는 건 스스로도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일단 쇼케 반응은 확실히 좋은 것 같은데.’

어느새 화면이 하연의 파트로 넘어가며 겟데뷔 때부터 유지 중인 빨간 머리가 검은 배경과 두드러지며 하연의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Three two one, action. 빛나는 flash. 눈 감아, 벌써.]

[빨라지는 pitch 속도를 높여. 더 higher emotion.]

겉으로 보이는 앳된 소년 같은 외모와 상반되는 낮은 목소리가 고막을 긁듯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 갭이 팬들의 취향 존을 정통으로 저격했는지 비명 소리가 커졌다.

코디에 시간을 오래 들일 수가 없어서 일부러 MV 일부 파트는 흑백으로 찍어야 했다.

덕분에 하연의 머리 색이 잠깐씩 컬러로 화면에 잡힐 때마다 뇌리에 더욱 선명하게 꽂혔다.

마침내 드디어 클라이맥스 파트.

댄스 브레이크를 앞두고 나와 지원이 서로 교대하듯 스쳐 지나가며 클로즈업됐다.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 네게 닿기를. 너도 알고 있을까-]

[사실 나도 조금 두렵다는 걸.]

이번 곡에서 유일하게 보컬 스킬이 두드러지는 고음 파트였다.

내가 먼저 안정적으로 끝을 끌고 올라가고, 그 뒤를 지원이 두드러지는 음색의 목소리로 이어받았다.

[너라는 greed line 신기루처럼 멀어져-]

[한 번 더 용기 낼 수 있게 날 꽉 안아 줘-]

끝을 길게 빼고 마지막에는 한 음 더 올려서 마무리.

그리고 다시 훅 라인이 시작되며 댄스 브레이크였다.

우리 자랑스러운 메댄 제현호를 중심으로 대열이 이동하며 얼굴보다는 춤 선이 두드러지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Broon’ Broon’ Broon’ Turn on the radio.]

[Listen up. 태워 봐, 더 뜨겁게.]

마침내 마지막 훅까지 끝나고 배기음과 함께 내가 씨익 웃으며 열었던 보닛을 쾅 내리닫는 장면으로 MV가 마무리되었다.

총촬영 시간 28시간, 촬영 날짜 이틀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결과물이었다.

단출한 연출을 커버한 건 멤버 한 명 한 명의 역량이었다.

연출 면에서 빈약해 보이지 않도록 화면을 채우고 격렬한 동작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 그러면 지금 바로! 엔카운터의 화려한 데뷔 무대 만나 보시죠!]

MV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탠바이 사인이 떴다. 스크린 뒤는 마치 암흑처럼 어두웠다.

한 명 한 명 스크린 뒤로 올라선 그때.

“음?”

왜 인원수가 비지? 나는 어째 허전한 것 같은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건.

‘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무대 뒤편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플로어석을 바라보고 있는 제현호였다.

‘미쳤나. 왜 저러고 있어?!’

나는 황급히 스태프를 향해 손을 X자로 교차해 보이고는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뭐 해!”

소리가 새지 않도록 마이크를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녀석을 부르자 제현호가 퍼뜩 어깨를 움찔거리다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눈앞이 컴컴했다. 뭐 때문에 이러는 거지? 전혀 예상이 안 가는데.

주위가 컴컴한 것 때문이라기에는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는 그제야 제현호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보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무대 위로 올라가면 더 잘 보여.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올라가자.”

그러고도 여전히 맛이 간 눈을 하고 있기에 나는 그대로 제현호의 이마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악.”

바로 스탠바이를 위해 마이크가 켜진 상태였기 때문에 무대 연출을 위해 모두가 고요하게 대기 중이었던 찰나 제현호의 짧은 신음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

내가 어둠 속에서 입 모양으로 말하는 사이 스크린 바깥에서 사회자가 눈물겨운 수습을 보여 주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죠? 너무 궁금해서 빨리 무대로 확인해야겠는데요?]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린 듯 제현호가 손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나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규민과 은찬을 향해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무대를 앞두고 혼선이 벌어진 지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위치 마크만이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 뭘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지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엔카운터 파이팅.”

마지막으로 규민이 마이크를 손으로 쥔 채 속삭인 순간, 나는 무대 아래의 스태프를 향해 큐 사인을 보냈다.

곧 전주음이 시작되며 스크린이 말려 올라갔다.

[Three two one, action. 터지는 flash. 눈 감아, 벌써.]

이제는 익숙해진 가사와 함께 플로어석에서 우리를 올려다보는 팬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표정이 이상 없이 멀쩡해 보이는 우리를 보자 환히 밝아졌다.

조금 전까지는 심장이 뛰지도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심박이 입으로 심장을 토하고 싶을 만큼 빨라졌다.

‘아, 드디어.’

감격에 찬 팬들의 얼굴을 본 순간 코끝이 찡했지만 지금은 울 수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가사를 외쳤다.

[빨라지는 pitch 속도를 높여. 더 higher emotion.]

오랫동안 나를 믿고 지지해 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지금까지의 고생은 고생으로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짜릿한 일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목청껏 감사 인사를 외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는 모두 진이 다 빠져 버린 상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