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각오만으로는 (1)
조명이 한번 천장에서 반짝이고는 규민을 비추자 여기저기서 고개가 갸우뚱하게 돌아갔다.
“뭐지? 대형이 왜 저래?”
“뭐야?”
이상해 보일 만도 했다.
일반적인 대형대로 중앙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센터 무대를 중심으로 뒤편에 섬처럼 만들어진 1인 무대에 멤버들이 분산해 있는 구조였으니까.
다들 의구심을 품은 그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규민이 연주를 시작했다.
‘너 내가 기타 칠 줄 아는 게 왜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데.’
나는 규민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제대로 한 곡 완주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가 순간 떠올랐다.
‘어느 정도 치는 건지 궁금해서.’
‘네가 악기 연주라는 복합적인 지능 행위가 가능한 놈일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아니거든.’
‘맞잖아.’
솔직히 반은 맞았다. 그날 화원에서 규민과 영인이 악기를 꽤 잘 다루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악기는 제대로 배워 본 적조차 없었다. 내가 연주할 수 있는 건 학교에서 배웠던 단소나 리코더 정도였다.
‘그것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
공식적으로 보여 줄 수 있을 만한 취미로 배워 두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걸 배우는 쪽을 택했다.
‘외국어는 꽤 자신 있는 편이긴 한데.’
연주를 포기하고 언어를 고른 셈이었다. 아예 외국인인 영인은 언어도 연주도 된다는 생각에 뭔가 억울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곧 별생각 없어졌다.
아무튼 규민이 어쿠스틱은 물론 일렉 기타까지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을 수준으로 다룬다는 것을 알았을 땐,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흘러나왔다.
‘넌 근데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배운 거야?’
슬쩍 영인과 달라붙어서 캐 보니 연습생 초기 때만 해도 써머데이에서 보이 밴드를 준비 중이었다는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규민 본인도 당연히 보이 밴드로 데뷔할 줄 알고 제일 튀는 거 하고 싶다고 기타를 3년을 넘게 쳤다고.
그랬는데 결국엔 이래저래 방향성이 꼬이면서 지금이 되었다면서 무척 억울해했다.
‘그럼 지금 써먹으면 되지.’
오프닝 연출을 규민의 독주로 스타트를 끊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MR 녹음이겠지?”
“어? 아닌가? 라이브 같은데?”
누군가는 녹음에 맞춰 손만 움직였다고 조롱하고 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겠지만.
‘안됐네. 라이브라서.’
안타깝게도 각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나오는 건 전부 라이브였다.
저절로 발을 탁탁, 구르게 되는 신나는 밝은 템포의 독주가 이어진 끝에 공민형의 자리에 불이 들어왔다.
[자, 떠나 볼까. 아무것도 정하지 마. 생각을 비워.]
민형의 깔끔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와아아, 방청석에서 한바탕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규민이 등장했을 때와 비교되는 반응에 움찔 어깨가 흔들린 것이 보였지만 규민은 곧 자세를 다잡았다.
그야 아무리 나랑 차이가 크게 난다지만 공민형은 지금 2위였고 10위권 밖인 규민과 호응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빠른 기찰 타고 내 옆자리에 앉아 창밖은 한여름.]
[싱그러운 바람이 네 뺨을 감싸고, 하나 둘 셋 소리 질러. 여긴 바다야.]
청량하고 밝은 분위기에 맞춰 준비한 이지 리스닝의 밴드곡. 쉬운 멜로디로 처음 듣는 사람도 위화감 없이 흥얼거릴 수 있도록 택한 곡이었다.
무대 뒤의 배경 스크린으로는 마치 기차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창밖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함부로 멘 기타 손이 가는 대로 쳐. 못하면 좀 어때.]
성영온에서 고다음으로 이어지는 보컬 멤버들의 실수 없는 유쾌한 파트가 이어진 후,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였다.
[바보같이 웃고 떠들고 한참을 또 달려 나가고-]
드디어 내 첫 소절이 시작된 순간, 방청객과 심사 위원은 물론이고 공민형까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멀리 왔지. 돌아보면 까마득한 길-]
순간 눈이 마주친 규민이 꽤 한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웃었다.
이렇게 다들 화들짝 좋은 의미로 놀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지금껏 목을 아끼는 창법을 고수해 왔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막힘없이 고음을 쭉쭉 올리는 게 실은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냐 싶었겠지만.
나는 워낙에 음역대가 위아래로 넓은 편이라 고음 좀 지른다고 흔들릴 정도로 나약한 성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창법이 있었으니….
‘목 아낀다고 뺄 생각은 없지만 굳이 상하게 할 필요도 없으니까.’
바로 밴드곡이나 락 장르 특유의 목을 긁어서 내는 톤이었다.
연출에 따라서 생목으로 긁으면서 내는 소리가 어울릴 때도 있겠지만, 나는 오래오래 노래하고 싶었으므로 내 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 멈췄다.
‘한 번쯤은 이렇게 속이 뻥 뚫리도록 질러 보고 싶었던 적이 없는 건 아니다만.’
그동안 하면 안 되는 짓으로 자제해 왔던 선을 넘은 순간 무대 아래의 팬들이 보였다.
“와, 대박. 뭐야, 서인수 표정 봐 봐.”
솔직히 말해서 즐거웠다. 공연장의 천장을 쭉 뚫고 올라갈 것처럼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자 객석에서 들리는 환호성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멀리 왔지. 돌아보면 까마득한 길-!]
거칠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과 함께 후렴이 끝난 다음부터는 세션 타임이었다.
영온이 재빨리 신디사이저 앞에 서서 가볍게 멜로디를 연주하자 객석이 또 반응하기 시작했다.
“와, 저것도 라이브인가 봐.”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곧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인과의 합주로 비명 소리가 배가 되었다.
“미친. 표영인 피아노 쳐?”
“개잘어울려! 존나 섹시해!”
전자음을 내는 신디사이저와 깔끔하고 단정한 소리의 피아노가 교차하며 유쾌한 화음을 연출한 후, 간주가 끝나고 내내 불이 꺼져 있던 하연의 차례가 되었다.
[파도가 치고 모래알 모두 스쳐 지나가면 너와 나 이 순간을 박제해 보자.]
그러고는 곧바로 드럼으로 세션에 합류하자 다시금 객석이 술렁였다.
조금 전의 연주들과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떼어 놓고 보면 기초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다들 열띤 반응을 돌려주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잡히는 건 없이 그저 달릴 뿐.]
[지금 이 순간이 바보 같은 청춘이라도 즐거우면 돼-!]
가사 그대로 모두가 즐거우면 그걸로 그만.
뒤이어 성환이 베이스 연주로 묵직하게 화음을 더하고, 2절이 시작되었다.
[폭죽에 불을 붙여 밤하늘에 터지는 반짝이는 빛-!]
미리 요청한 대로 스크린에 가사가 지금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들의 주변 부분을 가장자리처럼 감싸며 떠올랐다.
[같이 불러 주세요!]
무대 아래를 향해 외치자 무대 전체가 흔들릴 듯한 함성이 돌아왔다.
[사진 속에 남는 건 오늘의 우리. 함께 있던 순간만큼 영원하기를-]
[싱그러운 바람이 네 뺨을 감싸고, 하나! 둘! 셋! 소리 질러! 여긴 바다야-!]
그리고 순식간에 조명 전체가 암전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무대 위를 올려다본 그 순간, 사이드 무대에 각각 배치되어 있던 팀원들이 모두 중앙으로 모였다.
다시 팟, 하고 스포트라이트가 불을 밝히자 고다음이 중앙에서 딱딱 웃으면서 캐스터네츠를 쳤다.
“뭐야, 아, 귀여워~!”
“캐스터네츠 뭔데. 개웃겨.”
딱딱, 딱딱딱, 따닥, 딱딱딱. 박자에 맞춘 연주 뒤로 구둣발 소리가 깔렸다.
뒤이어 조명이 무대 전체를 비추며 댄스 브레이크가 이어졌다.
휴양지에서나 입을 법한 하와이안 패턴으로 차려입은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이 더욱 돋보였다.
의무로 묶여서 준비한 무대가 아니라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장기 자랑이라도 준비한 것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합을 맞추자 꽤나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이럴 때 보면 성영온이나 고다음도 아이돌을 괜히 지망하는 게 아니다 싶단 말이지.’
마지막까지 그리 가까운 사이가 되진 못했음에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 주는 것이 프로다웠다.
‘이제 걱정이 되는 건 한 놈인데….’
뒤늦게 회상하자면 공민형의 태도는 마지막까지 미심쩍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처럼 더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협조하는 건 또 아니었다.
불만이 터지기 시작한 건 고다음이 물꼬를 튼 이후부터였다.
‘형, 저희 추가로 맞춰 볼 건데요, 좀 편한 분위기에서 의논할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러자 공민형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난 도입부랑 비중 있는 파트 몇 개 있으니까 뒷부분 연출에서는 빠져도 될 것 같은데. 너희들끼리 편하게 해.’
공민형의 돌발 트롤을 막아 보고자 비중 있는 역할을 줬던 것이 생각도 못 한 곳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만….’
다른 연습생들도 흔쾌히 찬성.
‘그야 다른 연습생들도 생각이 있으면 초반부에 트롤 짓 하던 공민형이 생각났을 테니 당연하지.’
덕분에 세션 파트는 공민형에게 저지당하지 않고 온전히 원했던 대로 추진할 수 있었다.
박하연이나 표영인을 제치고 센터를 가져갔으니 자기만 불리한 무대 구성이라고 불평할 수도 없을 터다.
제작진에게는 공민형이 혼자 너무 많은 짐을 떠안는 것 같아서 각자 집중할 파트를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형이가 여러모로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았어요. 저도 쭉 1위를 지켜 왔던 입장에서 어떤 압박감을 느끼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미 무단이탈 사건 때문에 통편집이 예상되긴 했지만 어쨌든 인터뷰에서도 성실하게 대답해 두었다.
‘그래서 이번 미션에서는 민형이 부담을 좀 덜되, 민형이가 다른 팀원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되었으면 했던 것 같아요.’
하이라이트인 군무가 끝나고 이제 후렴만이 남은 상황.
나는 마이크를 쥔 채 음을 높였다.
[함부로 멘 기타 손이 가는 대로 쳐! 못하면 좀 어때-!]
[바보같이 웃고 떠들고 한참을 또 달려 나가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목소리에 숨이 벅차올랐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공민형을 향해 어깨동무를 한 다음 핸드 마이크를 내밀었다.
민형이 순간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 정신을 차렸다.
[멀리 왔지! 돌아보면 까마득한 길-!]
그리고 곧바로 마이크를 객석으로 향하자 관객들이 함께 외쳤다.
[멀리 왔지! 돌아보면 까마득한 길-!]
앰프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무대가 끝났다.
됐다. 다사다난했던 4차 미션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목이 꽤 칼칼했지만 괜찮았다.
두근거림 그 이상의 벅찬 설렘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
같은 시각, 하는 수 없이 자택에서 물이나 떠다 놓고 빌면서 XOXO가 공연 스포를 물어다 주기를 기다리던 인덕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리 인수 잘하고 있냐고….”
실력을 믿으니 잘할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던 게 언제냐는 듯.
막상 당일이 되니 걱정이 돼서 일이 손에….
잡혔다. 그것도 잘.
어쩔 수 없었다. 인수가 데뷔하고 나면 계약 기간 동안 뽕 뽑겠다고 임시 소속사에서 행사며 콘서트며 게스트며 미친 듯이 돌려댈 텐데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부가 필요했다.
‘하…. 로또 한 방이면 이 짓도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인수의 NO 젊꼰이라고 불린 고지식하고 성실한 성격을 생각하면… 팬들 또한 놀고먹기보다는 자기 할 일을 잘하기를 바랄 것 같았다.
‘인수에게 ‘일은 대체 언제 하시는 거예요?’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무렴 인덕은 당첨된 로또도 없었으므로 놀고먹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놀아 봤자 1,500명의 경쟁률을 뚫은 경쟁자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고통스러울 뿐이니까….
애써 그쪽은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더니 어느새 현장 공연이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 쪼 님 눈치 주는 것 같을까 봐 먼저 연락하기 좀 미안한데.’
하지만 궁금한걸! 으으, 답답함에 몸부림치던 그때.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화면에 뜬 알림에 인덕은 두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