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75화 (75/224)

#075. 등 뒤에 있는 것 (3)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추첨자 명단에 귀하의 ID가 없습니다.]

한창 겟데뷔 출연진들이 무대를 준비 중인 태복에서 3시간 이상 떨어진 서울의 어느 도심.

모니터 앞에 앉은 인덕은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 미친놈들아, 시청률이 곧 5%인데 돔이나 주 경기장을 빌려야 할 거 아냐! 1,500명 누구 코에 붙이는데!”

달랑 네 팀 무대 올리는 데 돔을 빌리라니 정신 나간 요구나 다름없었지만 인덕은 진심이었다. 어른들의 사정 따위 알 바냐고.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은 물론, 초등학생이나 어른들도 아이디를 빌려 표를 되팔기 위해 난리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압도적인 경쟁률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겟데뷔의 영향력이 더더욱 실감이 났다.

“X발…. 그렇다고 내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가뜩이나 무슨 꿀 발라 놓은 것처럼 렉카가 미친 듯이 꼬여서 인덕의 심장 또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냉정한 추첨 탈락 페이지에 한 번 더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다.

[함] 추첨 결과 확인하신 분? 오후 6:20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라면, 떨어진 사람이 인덕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KK] (사진) 오후 6:21

[KK] ㅎ 오후 6:21

[KK] GG 오후 6:22

[희쭈] (사진) 오후 6:24

[희쭈] 아 덕분에 오후 6:24

[희쭈] 탈락하는 길이 오후 6:24

[희쭈] 외롭지 않네요^^ 오후 6:25

여섯 명 남짓의 단톡방 전원 탈락인가.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다.

[XOXO] (사진) 오후 6:27

[희쭈] 헐 뭐야 오후 6:28

[함] 댑악 오후 6:28

[희쭈] 여권 뺏어 오후 6:28

[KK] 해킹이다 오후 6:28

[희쭈] 빨리 뺏자 오후 6:29

[함] 여권 뺏어서 뭐 할 건데요 ㅠㅠㅠ 오후 6:29

[KK] 해킹이다 오후 6:29

2차 미션 때 당당하게 2인 표를 구해 와서 인덕을 다시 고통과 행복의 세계로 밀어 넣은 XOXO가 다시 KMB의 간택을 받은 것이다.

[나] 쪼 님은 여권을 뺏을 게 아니라 오후 6:32

[나] 카메라를 뺏어야 해요 오후 6:33

[나] 렌즈 숨겨 오후 6:33

[희쭈] 아 그러네 오후 6:33

[XOXO] 마음을 곱게 써야 오후 6:33

[XOXO] 다음이라도 당첨이 되지 ㅉㅉ 오후 6:34

짧은 현실 부정 끝에 결국에는 다 같이 XOXO에게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제발 사진이라도 부탁하노라고.

이제 남은 건 공식 오피셜 풀 무대 영상이 뜰 때까지 하루하루를 이겨 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가까이에 사진 기깔 나게 찍어 주고 스포도 해 줄 지인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 지인이 자신에게 인수를 소개해 준 악마였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잘하겠지? 3차 미션까지 인수의 안목을 지켜본 인덕은 이제 실력 면에서는 인수를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완벽하게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잡은 거니까.

이제 걱정이 되는 건 인수를 둘러싼 주변의 이슈들이었다.

너무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1위였기에, 인수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프로그램 밖에서도 이렇게 많은데 내부는 오죽하겠어.

‘…….’

그나마 인덕을 안심시킨 건 인수를 지키기 위해 나서 준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촬영 스태프부터 댄스 트레이너에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만나 온 동기들과 선후배들.

이런 인맥까지 있었어? 싶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서인수라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증명해 주었다.

‘그야 대형에서 연습생 생활을 8년을 했으면 보통 그동안 내내 데뷔했을 때 책잡힐 일 안 만들려고 애썼겠지. 그러니 모범생처럼 살았던 건 예상 가능한 일이긴 한데.’

일관된 증언들을 들어 보면 단순히 흠잡힐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됨됨이를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타인의 노력과 애정의 가치를 아는 사람. 그리고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X발. 인성 가지고 뽕 차면 안 되는데.’

어차피 아이돌은 쇼 비즈니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지만.

이 사람이 꺾이지 않도록 응원하고 싶다. 타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하씨…. 과몰입하게 하지 마!’

인덕은 괜히 벽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 이러다 진짜 데뷔라도 하는 날에는 나도 울겠네.

인덕이 결국 과몰입 방지를 위해 구본진을 위해 시간을 갈아 넣었던 SNS 계정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크윽…. 그래… 과몰입하지 마….’

인덕이 스스로를 고통으로 내몰며 식은땀을 흘리는 동안.

“하나, 둘, 셋, 넷, 딴딴, 턴, 하고 바닥 쓸고, 업!”

연습생 서인수 또한 얼마 남지 않은 결전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군무 합을 맞추기 위해 안무가 쌤을 늦은 시간까지 붙들었더니 어느새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 더워.”

“빨리 씻고 싶다.”

몇 시간을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몸을 혹사시킨 상태였다. 에어컨을 꽤나 선선한 온도에 맞춰 틀어 두었음에도 조금도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지치다 못해 옆으로 툭 치면 쓰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스텝 30분만 더 맞춰 보고 갈 사람?”

내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던 생수를 반 넘게 단숨에 들이켜자마자 묻자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또요?”

“난 무리, 무리.”

체력이 비교적 약한 편인 고다음은 물론 규민도 고개를 내저으며 도망치려 한 그때.

“그래, 그러자.”

예상외로 공민형이 먼저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 하필 이놈이.’

어쩌면 무대 자체를 망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었던 것과 달리 공민형은 나름대로 성실했다.

3차 미션 때의 빌런이었던 놈이 연습을 빼먹고 개별 연습에도 코빼기 한번 비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종잡을 수가 없네.’

물론 놈도 현재 2위를 지키고 있는 입장이니 정석대로 데뷔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그럼 왜 초반에 굳이 트롤을?

놈도 생각이 있으면 알겠지만 이 팀은 과반수가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

박하연은 같은 팀이 된 적은 없지만 영인과 은찬을 통해 아는 것이 많았고 규민은 말하면 입 아팠다.

‘이 팀에서 정치질 같은 걸 해 봤자 지 손해라는 걸 알 텐데.’

왜 트롤링을 했을까.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계속 찝찝한 기분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해? 나랑 인수만 할 거야?”

분위기가 이렇게 된 이상 나머지 놈들도 퍼질 수만은 없겠다 싶었는지 규민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으으, 알았어. 스트레칭 좀 하고.”

결국 8명에서 두 명 정도만 빠진 채로 한 시간 가까이를 더 뛰었다.

앞으로 두 시간은 더 뛸 수 있다는 영인과 30분만 한댔으면서! 하고 울부짖는 규민 때문에 귀가 얼얼했다.

“둘 다 입 좀 다물고 씻기나 해.”

나머지 놈들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마지막으로 남아 연습실을 정리하는데 거울을 통해 등 뒤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뭐야?”

다소 날카로운 투로 묻자 공민형이 예의 짜증 나는 얼굴로 웃었다.

“아냐. 그냥.”

“그냥 뭐.”

또 묘하게 성질을 긁어 놓기에 나는 더 상대하지 않고 연습실을 나섰다.

“할 말 없으면 됐고. 난 간다.”

그때 공민형이 의중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어떤 기분이야?”

“…? 뭐가.”

웬 헛소리야.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그때 민형이 덧붙였다.

“남들 다 데뷔하고, 나랑 같이 연습했던 애들은 1위에 대상에 성공했는데 혼자 아무것도 아닌 건.”

이런 어그로에 넘어갈 이유는 없었다.

나는 화를 내는 대신 가볍게 웃어 보였다.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거짓말이었다.

나한테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나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때 왜 그런 자존심을 세워서.

수도 없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후회했다. 동시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러운 제안 따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과거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내가 타협해 버리지 않을까 몇 번이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이젠 아냐.’

지금의 내게는 겟데뷔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수많은 가정과 자책 따위 모두 7년 후에 버리고 온 지 오래였다.

“정말?”

나는 이죽이는 공민형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어. 그러니까 기대해. 네가 뭘 생각하든 우리 무대, 그거보다 멋있을 거야.”

대체 왜 이런 시비를 거는 것인지 여전히 이해는 안 됐지만, 하나 분명한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놈이 나를 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

그야 1위와 2위이니 내가 죽도록 밉겠지. 하지만 굳이 이런 귀찮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또 무슨 꿍꿍이 같은 게 있는 거 아냐?’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공민형은 무대 당일까지 얌전히 연습에 협조했다.

사람 헷갈리게 해서 방해하는 것이 목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

그리고 마침내 무대 당일.

우리 순서는 2번째였다.

[팀 YS 바로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무대 장치 위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리허설 때 다 점검했으니까 괜찮아.’

중간부터 무대 구조가 몇 번 바뀌고 계속 장치가 움직였기 때문에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했다.

‘유 대표가 처음 기획안 보고 진심이냐고 물었었지.’

그럴 만했다. 설비 자체를 준비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겠지만 멤버들 모두 일반적인 대형으로 공연하는 것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그래도 이편이 좀 더 ‘감동’적이니까.’

우리를 응원하러 와 준 팬들에게 이 무대에서 의도한 연출을 온전히 전달해 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얼른 노래하고 싶다.’

도입부는 공민형이 가져가서 내 파트가 되려면 1절 후렴쯤이나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아직 반주조차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발그레하게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쥔 찰나. 영인과 눈이 마주쳤다.

“형 지금 엄청 신나 보여요.”

나는 모처럼 영인에게도 웃어 주며 대답했다.

“그래 보여? 신난 게 맞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의 공민형을 뒤로하고 드디어 모든 조명의 불이 꺼졌다.

하나, 둘, 셋. 각자 자기 자리로 이동한 후 속으로 침착하게 초를 세고 있으니 무대 아래에서 준비 중인 스태프분들이 보였다.

여러 사람의 생업이 달린 무대니까 책임감을 가지라고 했었나.

당연한 얘기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충 해도 되는, 버려도 되는 무대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랬을지 몰라도.

[팀 YS의 with you, 시작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명에 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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