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74화 (74/224)

#074. 등 뒤에 있는 것 (2)

“핸드폰 좀 줘 봐.”

규민이 계속해서 홀린 듯 내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왔다.

“뭐? 이거 네가 보내 준 사진이잖아. 네 핸드폰으로 봐.”

“아, 줘 봐!”

“아, 왜 이러는 건데?”

“에잇!”

내가 핸드폰을 넘겨주지 않자 규민이 답답하다는 듯 결국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진을 조금 살핀 규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나 잠깐만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올게!”

“뭐야?”

“?”

다들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와중 규민이 쾅, 방문을 닫고 뛰쳐나가 버렸다.

“…….”

그리고 곧바로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규민의 돌발 행동과는 별개로 침울한 분위기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남들 열심히 준비할 때 몰래 빠져나가서 미자 데리고 술 마시고 클럽 다녀온 쓰레기.

아무리 사실과 다르다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얘들이 그런데 가고 싶어 할 것 같지도 않고….’

잠시지만 같이 지내본 결과, 다들 노는 건 좋아할지언정 결국 끼리끼리지, 방탕하게 놀 성격은 전혀 되지 못했다. 식물원만 가도 그렇게 좋아하는 애들이 무슨….

영인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더 심란해졌다.

“나, 때문에….”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 저번에 말씀하시던 게 대체 뭐였지.’

내 일 관련해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하셨지.

‘내 일 관련이라면 연예계랑 관련 있는 지인이라도 있으신 건가?’

그러나 두 분 다 엔터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직종에서 일하는 분들이셨다.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셨으니까.

그럼 누구한테 나를 부탁해 보려고 하셨던 거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 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진상을 A부터 Z까지 다 밝힐 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애매한 대응은 또 다른 루머를 양산할 뿐이라는 것을 난 잘 알았다.

‘그래도 답답하네…. 젠장….’

마냥 가만히 있기는 또 싫은 마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연습을 하든 운동을 하든, 몸이라도 좀 혹사시켜 보려는 속셈이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은 순간.

“악.”

황급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려던 나는 그대로 쾅, 안쪽으로 밀린 문에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다.

“엥? 뭐야.”

“…!?”

조금 전 급한 얼굴로 나갔던 규민이 태평하다 못해 기분이 꽤 좋아 보이는 얼굴로 뒤로 넘어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냐? 몸 개그?”

몸 개그는 무슨, 나는 얼얼한 이마를 부여잡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너 뭐야. 어디 갔다 왔어?”

“오오, 이제야 나한테 궁금한 게 생겼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그러자 규민이 히죽 웃으며 팔짱을 꼈다.

“말해, 가 아니고 말해 주세요, 형~ 해 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경멸을 담아 대답했다.

“XX났다, 진짜….”

“아, 왜 나한테만 못된 말 쓰는데~”

너만 내 입에서 험한 말 나오게 한다는 사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냐.

한숨이 먼저 나온 순간 하연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소속사랑 통화하셨어요?”

규민이 모처럼 정상적인 얼굴로 말했다.

“소속사야 뭐 그럴 애 아니다 사실무근이다 더 심해지면 고소할 거다 이런 얘기나 할 거고.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거 해결하고 왔지.”

“…?”

다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규민이 핸드폰 사진첩에서 사진을 하나 보여 주었다.

“여기서 뭐 중요해 보이는 거 없어?”

뭐지? 내가 아까 먼저 보고 있었던 사진이었다.

말마따나 이분들이 나서 주면 고맙겠지만, 아쉬운 한편 이미 보내 버린 걸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규민의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그냥 짜증만 나는데. 인내심을 갖추고 다시금 사진을 본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너 설마….”

“네~ 그 ‘설마’고요~ 이제야 형아, 하고 불러 줄 마음이 좀 생기셨어요?”

당연히 생겼을 리 없었다. 다급히 묻자 규민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도와주신대?”

“엉. 휴, 엄청 미안해하시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그분들이 잘못하신 건 아니긴 한데.”

나는 겨우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뭔데요? 저 말고 두 분만 아는 게 있었어요?”

하연이 눈이 어질어질하게 돈 채로 당황해서 묻자 규민이 웃으면서 정답을 알려 주었다.

“우리랑 같이 사진 찍으신 아이 어머님 있잖아. 그분한테 연락드려서 양해를 좀 구했어. 아까 픽앤톡에 글 올려 주신대서 같이 내용 상의하고 왔지.”

“헉, 진짜요? 어떻게 연락하신 거예요?”

“그날 찍은 사진에 다행히 애 미아 방지 태그가 같이 찍혔더라고. 설마 설마 하면서 봤는데 번호가 보여서 그쪽으로 전화해 봤지.”

“대박, 와….”

“하…. 이규민 또 한 건 했다. 아무튼 지금쯤 글 올려 주시지 않을까 싶은데…?”

하도 반응이 좋지 않아서 괜히 악플이나 보고 멘탈 나가지 말라고 잠시 서치를 금지해 둔 상태였다.

심호흡을 하며 인기 글 새로 고침을 반복하길 잠시, 글 하나가 미칠듯한 조회 수와 댓글 수를 기록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올라왔다…!”

우리가 워낙 핫이슈로 다뤄지고 있었던 탓인지 글은 순식간에 실시간 인기 게시글 TOP 3에 자리를 잡았다.

“와, 새로 고침 할 때마다 조회 수가 200, 300씩 올라가.”

영인의 감탄사를 BGM 삼아 게시글을 확인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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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명 서바이벌 프로그램 연습생 4인 관련 당사자입니다. (+376)

[본문]

안녕하세요. 연예 게시판에 글을 써 보는 것이 처음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최근 무단이탈 및 유흥업소 방문 의심으로 논란이 되는 연습생 네 분과 관련하여 해명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네 분이 무단이탈한 현장에서 도움을 받은 가족입니다.

(사진)

네 분이 이탈하여 문제가 된 시간이 XX일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날 △△농원에서 저희와 함께 있었던 사진 및 메타 정보 내역을 첨부합니다.

(사진)

사진 속 농원은 인근에 편의점 하나 없는 외지에 있습니다. 방문하는 방법은 △△역에서 △△농원까지 오가는 자체 셔틀뿐입니다.

자차 없이 도보로 방문하신 네 분이 해당 시간 동안 △△농원 말고 시내에 방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중략)

덕분에 저희 아이도, 부부도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난처한 상황에 도움을 주었던 네 분이 곤경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아 그날 있었던 상황을 알려 드립니다.

[댓글]

[- 그러니까 증거 1도 없는 렉카말만 믿고 꽃 보러 간 애들 유흥업소 간 쓰레기로 몬 거임? 뭐만 하면 아이돌 패고 싶어서 욕하고 보는 악플러들 반성해라, 진짜.]

[└ ㄹㅇ 손가락으로 사람 죽일 쓰레기들]

[- ㅅㅂ 사진 개해맑게 찍었네ㅠㅠㅠㅠㅠ 좋은 의도로 애기 달래 주고 미니 공연까지 해 줬는데 클럽 죽돌이나 되고 ㅈㄴ 억울할 듯 ㅅㅂㅠㅠㅠ]

[└ 아니 근데 찔리는 거 없는데 왜 공개를 안 함?]

[└ 어쨌든 무단이탈한 건 사실이니까 더 외부 유출하지 말라고 경고받았을 거 같은데]

[└ 긍까 그것도 결국 추측이잖아요. 그냥 팩트로만 얘기하면 솔직히 의심스러운 거 맞지. 뭐길래 징계까지 하나 싶고.]

[└ ㅋㅋ렉카 채널 믿고 욕 박은 거 삭제 다 못 하셨어요~ (캡처 이미지)]

[└ (이용자가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 진짜 그럴 애들 아닌데 몰려서 개답답했다 와중에 사진 너무 잘 찍어서 더 화나 ㅠㅠㅠㅠㅠ]

[└ 22222ㅠㅠㅠㅠㅠ 아 너무 억울해ㅠㅠㅠㅠㅠ 지금이라도 밝혀져서 너무 다행이야ㅠㅠㅠ]

[└ 333333]

[- 쟤넨 저길 대체 왜 무단이탈까지 하면서 가서 이 난리를 만들었냐]

[└ 저기 뮤비 촬영지로 유명해서 답사 가 보고 싶었을 수도]

[└ (링크) (링크) (링크) 이거 다 저기서 찍은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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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태들로 현재 겟데뷔의 홈페이지 트래픽은 물론 다시 보기 영상 모두 조회 수가 미친 듯이 폭발하고 있었다.

원래도 히트 친 프로그램이었지만 하루 온종일 우리 이슈가 각종 포털은 물론 커뮤니티 인기들 상단을 차지하고 있어 관심이 배로 불어난 상황이었다.

‘일부러 대외비로 해명 못 하게 막아 둔 것도 이런 식으로라도 관심을 풀로 땡기고 싶어서였겠지.’

그렇게 아이 부모님이 첫 타자로 스타트를 끊자 그 이후로는 정말 둑이 터진 것처럼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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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a_Dance_studio87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연습생들 중 가장 성실한 제자.

네가 그럴 사람 아닌 거 우리가 다 알아. 너무 걱정하지 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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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_are_K12days

Rumors

누가 믿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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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min98

지난달,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두 분과 광고 촬영을 진행할 일이 있었다.

지친 밤샘 촬영 이후로 급하게 준비된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험악했던 분위기에도 너무너무 성실한 태도로 감동시켜 줬던 두 사람.

데뷔 날만 기다리고 있다. 더 잘 될 거라고 꼭꼭 믿어 의심치 않는 보석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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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활동 중인 연습생 동기들은 물론 규민과 함께 찍었던 광고 스태프들까지도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내가 절대 실망시킬 사람이 아니라고.

머리가 멍했다.

새로 고침을 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밀려드는 게시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인수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서 잊힌 나는 더없이 무력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실감 났다.

‘나는….’

그러니까 지금 겟데뷔의 1위로 화제의 중심에 선 서인수는, 온전히 서인수라는 나 개인만의 힘으로 만든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 주는 나. 잃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소중함에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내가 무대에 오르고 싶었던 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벅찬 기분을, 감동을, 애정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

보기 흉하게 울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꽉 깨물고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규민이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아래에서부터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 너 우냐?”

나는 결국 눈물이 쏙 들어간 채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좀! 아니, 사람이 하…. 생각하고 있는데 굳이 와서!”

“아니, 울면 위로해 주려고.”

“뭘 남 일 말하듯 하고 있어. 너도 지금 엄청 위험했던 상황이거든?”

“저 진짜 자진 하차하고 진상규명 글 올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영인의 폭탄선언에 규민이 비명을 질렀다.

“미쳤냐? 우리 메댄 나가면 누가 댄브 추는데?”

순식간에 풀어진 분위기에 덩달아 다리에 들어간 힘까지 같이 풀려 버렸다.

기진맥진한 채 침대 위에 드러눕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당장 급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얼른 무대에 오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있는 힘껏 외치고 싶었다. 나를 믿어 줘서 고맙다고.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그 당일이 되기까지는….

‘이제 남은 문제는 공민형 그놈인가.’

한 가지 더 넘어야 할 고비가 남아 있었다.

‘대체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절대 네가 원하는 대로 안 될걸. 제작진에게 우리의 부재를 알린 팀원이 공민형이 맞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민형이 무엇을 원하든 나는 내가 원하는, 그리고 모두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공연을 준비할 거니까.

‘그러니 재주껏 한번 막아 봐.’

내내 물 먹기만 했으니 이제는 내가 먹여 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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