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뭐든 할 수 있다면 (3)
“짠!”
영인이 입꼬리를 당겨 장난스럽게 활짝 웃었다.
“뭐가 짠이야.”
“그래도 전 룸메 정이 있는데 형도 제가 편하지 않아요?”
“아니? 전혀.”
내가 익숙한 얼굴로 영인에게 받아치자 규민이 아량이 넓은 자신이 이해한다는 듯 자아도취에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우리 인수 까칠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니. 너네가 너무 거리감이 없는 거야.”
나는 영인과 규민을 귀찮게 하는 놈들도 한데 묶은 다음 한숨을 삼키며 하연에게 물었다.
“이 둘이 엄청 시끄럽게 굴 텐데 괜찮겠어?”
“아.”
이 타이밍에 내가 말을 걸 줄 몰랐다는 듯 하연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별로 시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싹싹한 존댓말에서 어색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말 편하게 하지.”
지난 미션 때 정은찬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가 정은찬 영웅 설화를 들어야 했던 것이 떠올라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정은찬 관련 얘기만 나오면 이상해져서 그렇지, 이미지 자체는 좋단 말야.’
대중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남은 연습생들 중 가장 욕을 덜 먹는 연습생일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내가 서치할 때도 욕먹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욕 안 먹는 아이돌. 이건 유니콘만큼이나 전설의 존재였다.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욕을 ‘덜’ 먹는 아이돌은 분명히 존재하지. 그게 박하연이었다.
여기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붙었다.
크게 튀는 구석이 없을 것, 비주얼 면에서 흠잡을 만한 특징 또한 없는 정석 미형일 것, 카메라빨을 잘 받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최정상이 아닐 것.’
상위권으로 가면 필연적으로 눈에 많이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타격감도 쏠쏠하다.
욕 한번 올리면 글 내리라고 달려와서 먹이를 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어그로 때문에라도 최정상은 정 맞기 아주 좋은 위치였다.
반대로 적당히 인기몰이는 하지만 화제성 면에서 떨어지는, 중상위권의 인지도를 가진 상대는 어그로 입장에서도 굳이 저격할 필요가 없었다.
‘뭐… 아무도 존재하는지 모를 만큼 망해도 욕은 안 먹는다만.’
나는 어쩐지 과거의 망한 서인수가 떠올라 잠시 가슴 한쪽이 따끔거렸다.
현재 박하연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공부 잘하는데 인기도 많은 참한 부반장이었다.
그동안 차근차근 조별 미션에서 쌓아 온 성실한 이미지와 특유의 선한 인상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부럽긴 하네.’
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호감형 인상은 아니었다.
일단 인상 자체가 웃지 않으면 꽤 매서워 보이는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실해 보이기는 한 얼굴이라는 걸까.
그것마저 아니었으면 정말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을 시비로 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외모 자체는 크게 불만은 없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유지원이나 박하연처럼 소위 강아지상이라고 해야 하나 선한 인상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은 들었다.
한참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하연이 얼굴에 의문을 띄운 채 나를 바라보았다.
“…?”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그냥 말 편하게 하라고. 다들 자기 침대에서 가까운 사물함 쓰면 될 거 같고.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얼른 자자.”
물론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 놈이 한 명 있었지만 고려할 사항은 아니었다.
“불 끈다.”
“넹.”
“아, 네.”
불이 꺼지고 나니 주위가 온통 고요해졌다. 낮에 잔뜩 기운을 뺀 탓에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
***
같은 시각, 지난 회차에서 인터뷰 중인 다른 연습생 뒤로 하찮은 표정으로 걸어가던 인수를 10초짜리 동영상으로 편집하던 인덕은 영혼 없는 얼굴로 알고리즘이 띄워 주는 추천 영상을 훑고 있었다.
[이미지 포기하고 개그에 목숨 건 아이돌]
[조회 수 130만]
[웃기려고 아이돌 하는 것 같은 이규민]
[조회 수 76만]
분하게도 솔직히 팬이 아닌 사람이 봐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단지 웃긴다는 이유로 바이럴을 타서 순식간에 조회 수가 100만 단위로 꽂히는 영상을 보며 인덕은 질투심에 바들바들 떨었다.
잘생긴 얼굴만으로는 50만을 찍는 것도 힘겨운데 웃수저 하나 잘 물고 태어나서는 웃긴 모먼트 아카이빙 계정이 3~4개씩 생성되어 있었다.
그 당사자가 2차 미션 때 인수 버프를 제대로 받아 입질이 오기 시작한 연습생이라는 것도 인덕의 복장에 불을 질렀다.
‘하… 우리 애가 너무 잘나니까 별게 다 진짜….’
저게 대체 어디가 찐친으로 친한 거냐. 저건 진심으로 경멸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1분짜리 영업 영상을 만들기 위해 1시간 20분짜리 영상을 10번은 돌려보고 잘라서 편집하는 짓을 4회째 하고 있는 인덕은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어쨌든 인수의 발목 잡는 짓은 하지 않으니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만.
‘혹시라도 인수까지 개그 이미지로 만들기만 해 봐라.’
물론 아이돌 본체가 입담이 좋고 센스가 좋아서 벌룬 메시지 하나로 2만 RT를 타곤 한다면 그만한 홍보가 없었다.
인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상엔 웃긴다는 이유만으로 잘생겨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신기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본판이 안 바뀌었는데 뭐가 잘생겨졌다는 거야.’
근본적으로 실력을 보긴 하지만 실력은 예선일 뿐 본선은 얼빠였던 인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인덕의 취향은 대중 호감형 개그캐가 아니라 완벽주의 지향의 퍼펙트 올라운더였으므로 곧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
‘역시 아이돌은 간지지.’
인덕은 벌써 1,000회는 넘게 돌려 봤을 쇼츠를 홀린 듯 10번쯤 다시 본 다음 SNS에 편집한 영상을 올렸다.
팔로워가 꽤 불어났기 때문에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히 인수의 팬들이나 잘생겼으면 일단 공유하고 보는 유저들을 대상으로만 퍼졌기 때문에 곧 한계가 다가왔다.
인덕은 이름도 모를 아이돌이 토마토가 영어로 뭐냐고 물어보는 영상이 1만 회 넘게 공유된 게시글이 추천에 뜬 걸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차단했다.
‘인재가 필요해, 인재가.’
지금까지는 혼자서도 헤쳐 나갈 수 있었지만 서로 픽이 뿔뿔이 갈라진 덕친들만으로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다른 문제도 인덕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심기일전한 마음으로 추천 동영상을 훑던 인덕은 어그로를 끌기 위해 허접한 편집 실력으로 날조해 놓은 영상을 신고하며 한숨을 삼켰다.
[서인수, 실력파라며 실력이 들통나자 개쪽 대망신]
[월말 평가 때 껌 좀 씹던 형ㅋㅋ 서인수 인성 논란]
전부 근거라고는 없는, 영상도 자막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클릭 바이팅 어그로였다.
이딴 조잡한 영상, 보는 것도 쪽팔릴 것 같은데 조회 수가 10만이었다.
“하….”
인덕이 침착하게 채널 신고를 마치고 채널을 둘러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수만 욕하는 어그로는 아니었다.
[미츠데이 애니 처참한 앵콜, 팬들도 외면한 음 이탈]
[갑질로 훅 간 여돌 TOP 10]
[남돌 음방 망신살 모음]
사람들이 욕을 쏟아부을 만한 악질적인 영상을 올리는 채널이었다.
문제라면….
‘조회 수가 너무 잘 나왔는데.’
다른 영상은 4천에서 5천, 많아야 7천 뷰 선인데 인수 영상만 뷰 수가 만 단위였다.
이렇게 되면 관심의 맛을 본 어그로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보증되는 조회 수의 바닥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 별 이상한 놈들이 다 꼬였다.
‘빡치네.’
조회 수 상한의 한계는 너무 분명한데 바닥은 왜 이렇게 쉽게 보장되는 거냐고.
‘역시 이 방법밖에 없나.’
인덕 주변의 낡고 고인 케이 팝 팬들은 이제 세 부류로 진화해 있었다.
바로 다른 그룹으로 갈아탄 환승러.
여기저기 간잡이만 하고 진득이 파진 않는 떠돌이.
마지막으로 본인 인생을 살러 회사로 떠나가 버린 갓생러.
내 새끼의 노잼 일화도 입담 하나로 웃긴 썰로 탈바꿈하는 광기의 소유자들이 비공개 계정에서 회사 욕이나 하며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니 안 될 일이었다.
‘모양 빠져서 이 짓은 안 하려고 했는데.’
과거 인덕은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승재는 원래도 그룹 내에서 인기 있는 멤버였고 이런저런 행사나 무대를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한 지인들이 생겼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인수 팬이면 아무나 친해지고 보기에는 인덕은 케이 팝 팬덤의 불지옥을 너무 많이 경험해 버렸다.
내 새끼를 확실하게 홍보해 줄, 안정적이면서 보증된 웃수저들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는 사람들을 포섭하는 수밖에 없었다.
“…….”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지인들이 인덕을 포섭하려 했다가 실패했던가.
[안 산다고요. 가라고, 좀.]
시큰둥하게 그들을 물리쳐 온 인덕이 이제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니. 간지에 죽고 간지에 사는 인덕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널 위해서라면 해.’
인덕이 의지를 다지던 그때, 새 메일이 도착했다는 팝업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아…. 여기 멀어서 가기 귀찮은데.”
인덕은 최애의 본업 활동에 엄격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기준이 높은 편이었다.
역으로 최애가 없을 때는 기합이 빠진다 해야 하나. 일할 때 쉬엄쉬엄 긴장을 늦추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수는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가만히 놀기만 할 수 없었다.
그럼 나도 힘내서 일한다. 인덕은 마음을 고쳐먹고 업무 의뢰 메일에 성실한 사회인으로서 회신했다.
현생과 덕질 모두를 잡으려거든 최애만큼이나 부지런해야 했으므로.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연습실에 모인 8명은 잔뜩 긴장한 채 유 대표를 기다렸다.
어제 유 대표는 모든 대표들 중 제일 먼저 세트장을 떠났다. 다른 대표들은 최소한 팀을 응원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으나 유 대표는 달랐다.
이런 한심한 기획에 낭비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메인 PD와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가 했더니 그대로 자가용을 타고 서울로 돌아가 버렸다.
‘시간이 금인 사람일 테니 당연하려나.’
대형 기획사 대표쯤 되면 이것 말고도 할 일이야 차고도 넘칠 테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우리로서도 아무리 데뷔도 못 한 일개 연습생이라지만 대놓고 맡기 싫었던 짐 취급을 당하는 건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인사할게요. 유해라고요, 여러분 중 몇 명 정도는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활동하고 있었을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는 다 알 거고.”
유 대표가 잠시 쥐고 있던 물병으로 목을 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일이 떠먹여 주는 짓 안 합니다. 여러분들이 뭘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하세요. 내 역할은 여러분들이 할 수 없는 걸 지원해 주는 거지 내가 주도해서 뭘 시켜 주길 기대하지 말고.”
유 대표의 냉정하다 못해 영하의 온도 같은 발언에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