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뭐든 할 수 있다면 (1)
“와아악-!”
“어, 나 떨어져-! 어어!”
“…….”
다른 참가자가 연신 도전을 이어 가는 것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중간까지만 가도 다행이겠네.’
나의 완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최대한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보기 흉하지는 않도록 해야지.
팀 내에서 정한 순서대로 나는 맨 처음 순번을 맡았다.
“앗, 나도 첫 번째로 하고 싶은데!”
영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어림도 없었다.
‘저놈이 먼저 해 버리면 비교 편집 당할 게 뻔하잖아.’
다들 못할 때 같이 묻혀서 못해야 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전략을 안고 세트장으로 향한 나는.
철퍽-
스윙 그네를 탄 지 3초 만에 날아가듯 볼 풀에 처박히고 말았다.
“인수가 이런 쪽에는 약하구나….”
살짝 떨어진 곳에서 주혜성이 나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는데, 웬만해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던지라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번 붉어지기 시작한 얼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누가 보면 너만 실패한 줄 알겠다.”
이규민까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형….”
그 와중에 유지원이 주혜성 옆에 합세해 두 눈에 걱정을 초롱초롱 담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 봐라, 제발. 너네 팀이나 신경 써. 다음 연습생이 세트장에 올라가고 나서야 터질 듯 몰렸던 피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쪽팔려. 다른 연습생들도 못하는 건 똑같은데.”
세트 뒤쪽의 대기 장소로 빠진 내게 이규민이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가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린 채 여전히 열감이 남아 있는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대답했다.
“나는 뭐든 남들 앞에서 하는 거면 잘해야 해.”
그게 뭐가 됐든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흠이 잡힌다. 이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랐다.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정상’ 가정에서 자란 애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지만.
내가 하면 어쩐지 친부모님 밑에서 자란 게 아니라서 상처가 있구나, 쓸데없는 상상력을 펼치곤 하니까.
“왜? 굳이?”
이규민이 이해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순서 대기해 주세요!”
곧 다른 멤버의 순번이 되어 나는 응원을 핑계로 세트장 앞쪽으로 나왔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늘은 유독 빨리 끝내고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
잠시 후, 32명의 도전 릴레이는 한나절 이상 걸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결국 분량 뽑는 게 목적이었군.’
해변에서 그동안 고생한 보상으로 휴식을 즐기는 연습생들… 은 개뿔.
녹초가 되도록 세트장을 구르고 또 굴러서 몸 개그를 펼친 분량만 잔뜩 뽑아냈을 터였다.
물론 몸 개그가 아닌 녀석도 있었다.
“와, 대박. 미쳤다, 진짜.”
영인을 필두로 30초 컷으로 결승선에 들어온 연습생들이 소수지만 존재했던 것이다.
“저게 30초 안에 되는 거였어?”
부상의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나름 안전장치는 잘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안전장치에 처박히는 과정이 별로 아름답지 않을 뿐이지.
여기서 떨어져도 다칠 일은 없다는 확신 덕분일까, 영인은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두 번째 도전, 현재 1위는 표영인 연습생 32초입니다!”
자신의 경쟁자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듯 두 번째 라운드에 30초에 인접한 기록을 보이더니 세 번째 도전에서 기어이 29초 컷에 성공했다.
거기에 자극을 받기라도 했는지 박하연도 네 번째 라운드에는 28초 컷에 성공.
“거기서 넘을 때 왼발 먼저 디디는 게 낫나?”
“근데 그러면 오른발이 이쪽에 걸리지 않아?”
둘이서 아주 작전 회의까지 하는데 다른 멤버들은 낄 틈이 없었다.
그들이 안 끼워 줘서가 아니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뭐라는 거야, 저거?”
이규민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공민형이 웃었다.
“그러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둘이 잘해서 진짜 다행이다. 우리 팀에 가뜩이나 구멍도 있는데.”
그건 날 보고 하는 소리인가. 물론 공민형은 나를 보면서 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뉘앙스라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이거 주먹으로 갈기는 대신 말로 한 대 갈긴 건가? 나는 차마 그거 지금 내 얘기냐고 물어서 4차 미션의 정은찬이 되고 싶진 않아 입을 다물었다.
겨우 숙소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정산받은 어필 시간은 총 3분 21초였다. 영인과 하연이 1분 이상씩 분량을 벌어다 준 덕분이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인가.’
규민이 1분 15초 만에 들어와서 15초를 벌어 왔고 다른 연습생들이 10초가량씩을 벌어 왔다.
그리고 3차 시기까지도 간당간당하게 결승선 근처에 도달하는 게 고작이었던 나는….
‘와! 대단합니다! 서인수 연습생! 인간 승리를 만들어 냅니다!’
마지막 시도인 5차에서 59초 컷을 만들어 냈다. 모두 민형의 승리의 주문 덕분이었다.
‘우리 팀에 가뜩이나 구멍도 있는데.’
그게 날 염두에 두고 말한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누가 구멍인데?’
내가 항상 남보다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이 없다고는 솔직히 말 못 하겠다.
그건 그거고.
당연히 나도 사람이니까 못하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지난번에 그 랜덤 댄스 퀴즈인지 뭔지 할 때도 그랬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남에게 얕잡아 보이는 것까지 괜찮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몸 쓰는 일에 그렇게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화면에 어떻게 잡혀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달리자 1분 15초의 기록이 나왔다.
‘이 정도면 솔직히 발목 잡은 건 아닌데.’
마지막 5차시를 남겨 두고 오기가 생겼다. 공민형의 기록은 1분 8초. 내가 저놈보다는 잘하고 말겠다 의욕은 넘쳤으나 몸이 따라 줄지는 미지수였다.
4차시까지도 결승선을 통과 못 한 연습생이 유지원을 포함해서 7명이나 되는 마당에 이 정도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어떻게 방법이….’
영인이 화려한 세리머니와 함께 자신의 기록할 한 번 더 돌파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영인이 땀에 젖은 머리를 슥,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내 쪽으로 와서 외쳤다.
‘생각을 비워요!’
뭔 소리야, 이게. 나는 곧장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영인을 바라보았다.
‘뭐?’
‘형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냉정하게 말하면 영인은 생각이 너무 없었다.
어느 수준이냐면 녹즙기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당근을 넣으면 즉시 당근 주스가 나오는 것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거의 동시에 가까웠다.
‘그게 장점일 때가 있긴 한데….’
별로 본받고 싶은 성격은 아니다. 나와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영인을 보자 영인이 활짝 웃었다.
‘어차피 떨어져 봤자 볼 풀이잖아요.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뭐가 그렇게 무섭냐니…. 보는 눈도 많고 시간도 신경 쓰이고 아무래도….
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진짜 쓸데없는 생각이 많긴 하네.’
이번엔 머리를 비우고 당장 뭘 해야 하는지만 집중하자.
머릿속에서 민형의 짜증 나는 목소리를 내쫓은 채 결승선을 향해 뛰었다.
우스꽝스럽게 매달려야 하는 시계추 구간부터 통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외나무다리까지.
그다음을 생각하지 말고 내 발이 닿는 자리만 노려보며 몸을 움직인 끝에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팀 연성, 서인수 연습생 59초!’
마침내 1분 컷 안에 도착한 나는 보란 듯이 민형을 보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민형에게 의식하는 티를 내 봤자 나만 손해였다.
민형이 진짜 내 속을 긁고 있는 거라면 놈의 작전이 정통으로 먹히고 있다는 증거를 안겨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눈치 못 챈 척하자.’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시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혼자만의 쇼라는 걸 깨닫는 순간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어쨌든 생각보다 잘 나오긴 했네.’
과정이 참 거슬렸으나 덕분에 나는 상위 33% 안에 드는 기록을 받아 들 수 있었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지막까지 결승선조차 통화하지 못한 지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긴 정은찬이랑 유지원이 나란히 실패해서 타격이 크긴 하겠네.’
우리 조에도 실패한 연습생이 한 명 있었지만, 영인과 하연의 활약에 힘입어 꽤 긴 어필 타임을 받아 낸 상황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고요, 각자 숙소로 이동해서 바비큐 파티 후에 취침하시면 됩니다.”
어느새 각 팀별 대표들은 자리를 뜨고 사라진 후였다. 스태프의 인솔에 따라 우물우물 육류 단백질을 채우는 와중에도 공민형이 다시 신경을 건드렸다.
“……?”
갑자기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빼고 앉는 것도 모자라서 자꾸 말을 걸었다.
“지난주에 쉴 때 뭐 했어? 부모님 뵈러 갔겠네?”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는데? 의뭉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이상 그렇게 쏘아붙일 수는 없었다.
“응. 부모님도 뵙고 편하게 쉬기도 하고.”
공민형도 나와 규민과 동갑이었기 때문에 진작 말을 놓은 지 오래였다.
“부모님이 잘해 주시겠다. 잘 키워 놓은 보람 있게 방송에서 잘나간다고.”
그러니까 이런 말을 왜 하는 거냐고. 단순한 칭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말하는 뉘앙스가 옹졸했다. 남의 집 자식 데려다가 키운 보람 뽑아 먹는 부모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뭐, 방송 나오기 전이랑 달라진 거 없는데.”
은근히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척 속 긁는 소리를 해서 슬슬 나도 조용히 대꾸하기에 한계를 느낄 즈음, 누군가 불쑥 나섰다.
“근데 형, 그러면 호주에서는 오해받을 수 있어요.”
민형이 내게 또 시비 아닌 시비를 걸기 위해 시동을 걸자 영인이 툭 내뱉었다.
“응?”
민형이 전혀 이해를 못 했다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뭐가?”
“호주에서 얘기할 때는 비교처럼 보일 수 있는 말은 다들 조심해서 해요.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문장에 해석의 여지가 생기면 서로 싸울 수 있잖아요?”
때마침 민형이 내게 너는 보컬이 특화되어 있어서 좋겠다며, 자신도 나머지를 버려도 좋으니 하나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헛소리를 하던 참이었다.
텍스트만 보면 너는 노래 잘해서 좋겠다고 띄워 주는 것 같다만.
까보면 보컬 말고는 볼 게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선 넘네.’
해맑은 영인의 지적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규민이 한마디를 더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