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64화 (64/224)

#064. 정상을 지키기 위해 (3)

“어?”

내가 순간 뭘 잘못 들었나 반쯤 얼빠진 표정으로 민형을 바라보자 민형이 활짝 웃었다.

“와~ 고음 올라가는 거 보고 감탄했잖아. 나는 음역대가 낮아서 항상 파트 배분에서 불리하거든. 나만 로우 톤에 몰아넣어지니까. 다들 그냥 랩 하라고나 하고.”

왜 이제 와서 친한 척이야. 아진이 흔들리는 것 같으니까 내 쪽으로 붙으려고 작정했나?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NO에서 나름 열심히 밀어주고 있는 아진이 벌써 놓기에 아쉬운 동아줄임은 명백했다.

최종 데뷔조 선발인 5차 미션까지의 생존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고마워.”

나는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칭찬에 가벼운 웃음과 함께 답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굳은 표정의 유해라가 무대에서 내려와 멤버들을 인솔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바로 세트장으로 이동할 겁니다.”

유 대표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어! 저 목마른데 물 좀 마시고 가도 될까요?”

영인을 제외하고.

‘이 새낀 진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천진난만하군. 나는 애써 모르는 사람인 척 외면하며 최종 선발된 멤버들을 훑었다.

이 중 올 스카우트틑 따낸 멤버는 영인과 공민형 둘뿐이었다.

그 외에는 촬영 초기에 눈여겨봤던 성영온과 박성환. 원래대로의 겟데뷔의 데뷔 멤버였던 고다음 정도가 있었다.

그동안 내내 한 팀을 해 보고 싶었던 박하연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놈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나는 흘끔 내 옆에 꽃받침을 하고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놈을 노려보았다.

‘왜 저러는 거야.’

얼굴에는 같은 팀 돼서 다행이지?라고 써 놓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다행이겠냐? 놈과 같은 팀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슬쩍 이규민의 귓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이상한 짓 하지 마.”

“내가 뭘~”

그러면서 히죽거리는 모습이 얄밉기 짝이 없었다.

아! 이거 진짜 지난 투표 때 떨어졌어야 하는데. 졸지에 놈의 인기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 버린 나만 억울했다.

“둘이 많이 친한가 보다. 둘이서만 따로 얘기할 게 있어?”

공민형이 장난처럼 말한 순간 내 속만 뒤집혔다.

아, 안 친하다고!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이상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마도 이번에도 내가 리더가 될 것 같은 예감에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정돈했다.

“물은 천천히 마셔도 되잖아. 각자 짐 챙겨서 여기로 집합하면 될까요?”

내가 자연스럽게 멤버들을 모아서 어떻게 하면 될지 묻자 유 대표가 눈썹을 까딱하며 대답했다.

“여기 말고, 15분 후에 주차장에서 봅시다.”

그러자 멤버들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생겨났다.

“?”

“주차장이요?”

정말 어디로 이동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의아해하자 유 대표가 더 설명할 생각 없다는 듯 말했다.

“가서 짐 안 찾아요? 15분이 긴 시간은 아닐 텐데.”

호랑이 선생님 같은 낮은 목소리에 다들 순식간에 기합이 바짝 들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모두 로비에 맡겨 두었던 짐을 찾으러 뿔뿔이 흩어진 와중 나는 다른 팀의 구성을 슥 훑어보았다.

아진과 같은 라인에 서 있는 주혜성이 보였다.

‘…저거 걱정되는데.’

아니, 오히려 아진이랑은 잘 맞으려나. 아진이 일방적으로 주혜성을 이것저것 떠넘기기 좋은 호구 취급하겠지만.

‘하여간 진짜 조 편성 운 없다.’

냉정하게 말해서 3차 미션 때의 편성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부동의 1위와 한 팀이기는 했지만 그 팀에서 주혜성이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입 안이 썼다.

‘어쨌든 덕분에 베네핏 받고 턱걸이로 살아남았으니 다행이지.’

NO의 프로듀싱과 모쪼록 잘 맞기를 빌어 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나머지 멤버들은 잘 안 보이는 팀 KSD가 모여 있는 쪽에 제현호의 뒤통수가 보였다.

제현호도 나름 나와 같은 팀에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못 한 이유는….

[Team YS]

[X]

놈이 연성만 빼고 쓰리 스카우트를 따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열성적으로 놈을 영입하고 싶어 했던 KSD에 합류했다.

유지원과 정은찬은 나란히 피아체에 합류했다. 유지원은 연성에게 선택받지 못했고, 정은찬은 선택받았으나 본인이 걷어차고 피아체로 향했다.

‘피아체가 아무래도 힙합 보이 그룹을 론칭해 본 적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쪽에 아는 프로듀서가 있거나. 뭐, 어느 쪽이든 이제 알아서 하겠지.

이제 나한테 중요한 건 크몬 콤비의 형이 아니라 동생이었다.

잠시 후 짐 정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모인 나는 슥, 멤버들 상태를 전반적으로 훑었다.

‘확실히… 눈에 띄네.’

180을 넘기는 연습생들도 그리 많지 않은데, 거기다 180 후반? 180 초중반인 나조차 옆에 서면 평범한 키로 느껴질 정도였다.

유 대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슥, 이미 한 팀을 해 봐서 친해졌는지 붙어 있는 영인과 하연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잘하니 못하는 것들이 앞에서 시야를 가릴 일은 없겠지만.

일단 키 밸런스가 너무 튀어서 170 중반쯤 되는 멤버도 땅꼬마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문제고.

‘이전까지 무대들 모두 다 지네만 빛나서 다른 조원들을 주저앉혔으니 별로 좋은 팀원은 아니지.’

한 명씩 단독으로 서 있었을 때는 그렇게 튀어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나… 이렇게 작은 놈들, 적당한 놈들, 적당히 큰 놈들 사이에 끼어 있을 때는 아무래도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연성에서 추구하는 무대가 어떤 느낌인지를 알아야 나도 대비를 할 텐데.’

나는 어디로 향하는 건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유 대표의 지시에 따라 승합차에 올라탔다.

“어,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돼?”

자연스럽게 거긴 자기 자리라는 듯 내 옆에 앉는 이규민까지.

뭐가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게 없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곧이어 차를 타고 30분쯤 걸려서 이동한 곳은….

“우와, 대박!”

“바다다!”

너른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해변의 독채 펜션이었다. 4개의 독채가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어 각 소속사별로 하나씩 사용하는 것 같았다.

‘너무 좋은데…?’

시설도, 뷰도 너무 좋았다. 방송국 놈들이 괜히 이런 걸 제공할 리가 없는데. 불길한 예감이 든 순간 어느새 구조대원 같은 복장을 입은 비안이 연습생들 사이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다들 많이 놀랐죠! 그동안 고생하신 만큼 충분한 휴식도 취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드르륵, 모래사장 위로 스태프들이 미니바 같은 트레일러를 가지고 들어오더니 청량한 빛깔의 논알코올 칵테일과 탄산음료를 자랑했다.

“오늘만큼은 무대의 압박감 따위 벗어던지고! 휴식을 즐겨 주세요!”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얼른 갈아입고 나오라는 듯 탈의실을 가리켰다.

‘이래서 수영복을 가져오라고 한 거였군.’

느닷없이 복귀하기 전에 지참 필수 준비물로 수영복을 통지해 놨길래 대체 뭐에 쓰는 건가 했는데.

태복에서 동해 바다가 그리 멀지 않으니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겟데뷔 출연을 결정한 후로 틈틈이 관리해 둔 덕에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탈의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

예상외의 단체복이었다.

반팔 가운데 지퍼가 달린 넉넉한 사이즈의 단체복을 발견한 민형이 스태프에게 물었다.

“어… 이거 꼭 입어야 하는 건가요?”

말투가 어째 이걸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 아니라 보여 주려고 개고생을 했는데 이걸 입어야 하나요? 에 가까웠다.

“아직 미성년자인 연습생도 있다 보니 참가자 보호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지참하신 수영복과 함께 착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말은 권장이지만… 여기서 안 입으면 혼자 관종처럼 엄청 튀겠지.

나는 얌전히 맞는 사이즈의 단체복을 들고 탈의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노력은 반쯤 수포로 돌아간 채로 집합하자 웬 이상한 세트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 지금부터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해변을 즐기기 위한 미니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전혀 가볍지 않은데요? 대체 언제 이런 큰 세트를 준비한 건지…. 분명 탈의하러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심지어 성처럼 까마득하게 솟은 세트장의 정체는….

“제한 시간은 1분 30초! 남은 시간만큼 팀 누적 어필 시간이 주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봤던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었다.

도전! 드림 맨이었던가. 웬만한 운동 신경과 순발력이 아니고서는 통과하기 힘든 장애물을 빠른 시간 내로 주파하는 코너였다.

‘저걸 어떻게 해.’

눈앞에 설치된 세트는 한눈에 봐도 절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우선 빙글빙글 돌아가서 한순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는 구간이 세 개나 됐다.

거기다 구름다리처럼 두 팔과 반동으로 버텨서 건너야 하는 구간에 미끄러지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 같은 역방향 미끄럼틀까지.

‘…….’

내가 차마 표정 관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색하자 옆에서 이규민이 영인을 툭툭 쳐서 나를 보게 했다.

“표정 봐, 진짜.”

“형 그러다 카메라에 잡혀요.”

대놓고 놀리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에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기만을 바라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

그리고 다시 손을 치워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

나는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전공이 아니었다.

나는 몸 쓰는 일 자체는 자신 없는 건 아니지만, 순발력에서 뛰어난 편이라곤 할 수 없었다.

따지자면 타고나기보다는 노력으로 커버하는 쪽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거 할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하고 왔지.

1분 30초? 되겠냐? 15분 정도 주면 절반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찔함에 고개를 가로젓자 나랑 고만고만한 표정으로 세트장을 바라보는 유 대표가 보였다.

‘이딴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것만큼은 나도 100% 동감이었다.

‘이런 걸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곧 KSD를 시작으로 도전이 시작되면서 해결되었다.

‘아, 이런 거였군.’

한창 건강한 몸을 한 참가자들이 땀 흘리고 뛰어다니며 품이 넉넉한 반팔을 휘날리자 자연스럽게 맨살이 조금씩 드러났다.

다 같이 상반신 탈의를 했다가 선정성 논란을 때려 맞느니 이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싶었다.

‘이 정도면 부담스럽지 않고 괜찮은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첫 도전자가 우스꽝스럽게 데굴데굴 구르며 볼풀로 떨어졌다.

[이유성 연습생, 1차 시도 탈락입니다!]

나의 미래였다.

정확히는… 나는 저기까지 가지도 못하겠지. 애써 입꼬리를 들어 올렸으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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