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정상을 지키기 위해 (1)
[자, 그러면 지금부터! 3차 미션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선 화면에 사전 공개 영상 조회 수로 인한 베네핏 정산이 공개되었다.
1위인 파라노말 팀에 5만 표 추가, 2위인 다른 팀에 3만 표가 추가된다는 내용이었다.
‘투표수가… 꽤 잘 나왔나 본데.’
그렇지 않고서는 16명씩 되는 인원에게 만 단위의 투표를 퍼부어 주지 못할 테니까.
어쨌든 주혜성이나 정은찬의 생존에는 유리한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잘해서 받은 표예요.”
다른 팀들과 달리 정정당당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찬에게 들리도록 말하자 은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 속 9위 이후의 순위가 회색으로 블라인드 처리되고 8위부터 1위까지만 색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8위부터 1위까지의 연습생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첫 번째 타자로 1위가 공개되었다.
[3차 미션 온라인 투표 합산, 종합 1위는! 서인수 연습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였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띤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무대 위로 올랐다.
스크린에 새겨진 숫자는 예상한 단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1위] 서인수
[1,135,484표]
[+50,000표]
“……!”
다들 이 정도로 흥했을 줄은 몰랐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청률 4%의 위력이 느껴지는 숫자였다.
[소감 한마디 부탁합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고개를 푹 숙여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응원해 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했고 백만 단위의 숫자가 무겁게 느껴졌다.
‘실망시키면 안 돼.’
스타를 향한 애정이란 원래 기대에 기반한 것이다. 더 좋은 무대를 보여 주기를,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혹 이상한 짓이라도 해서 내가 널 응원한 걸 쪽팔리게 만들지 않기를.
그 기대를 저버린 순간 스타는 자신의 업보에 책임을 져야 했다. 원래 팬이었다가 안티로 돌아선 사람이 더 매섭게 회초리질을 하는 법이었다.
저런 걸 좋아했다니 내가 미쳤었던 것 같다, 하고.
‘앞으로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가뜩이나 억까 당하고 있는 와중 내가 정말 실드 칠 수 없는 잘못을 하기라도 하면.
이 100만 표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터였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면서도 마냥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내 짧은 소감이 끝나고 8위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다.
1위는 사실상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 먼저 공개하고, 그 아래 순위에서 긴장감을 유도해 재미를 뽑아 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하여간 악취미.’
[다음으로 8위는, 이번 무대 이후 S등급으로 재평가된 주인공!]
누구길래 저렇게 수식어를 붙여 줘? 의문을 품자마자 공개된 주인공은 내게도 익숙한 녀석이었다.
[유지원 연습생! 축하합니다.]
[8위] 유지원
[214,392표]
[+50,000표]
“오….”
옅은 감탄사와 함께 유지원이 무대 위로 엉거주춤하게 올라왔다. 그러고는 소감 발표를 위한 마이크를 받아 들다가 손에 땀이 흥건해 놓치고 말았다.
쿠당탕탕, 콰드드드득, 쿵!
마이크가 켜진 채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유지원의 얼굴은 케첩보다 더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 죄송해요!”
마치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사죄하는 유지원은 밉상이라기보다는 너무 어수룩해서 귀여웠다.
‘저것도 나름 재주다, 재주.’
나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감사합니다, 외마디와 함께 고개를 푹 숙이는 유지원을 지켜보았다.
[그러면 이어서 7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은 순번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공민형이 57만 표를 가져가서 2위, 내내 3위였던 아진이 31만 표를 가져가서 6위로 밀려났다.
위에서 생긴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말끔하게 메웠다.
[4위] 표영인
[402,157표]
[+30,000표]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영인과 달리 아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웠다.
TOP 8의 순위를 발표하고 난 이후, 9위부터 24위까지의 순위는 스크린에 띄우고 빠르게 호명하는 식으로 발표되었다.
나는 눈여겨볼 만한 참가자의 순위를 빠르게 훑었다.
[11위] 이규민
[14위] 제현호
[16위] 박하연
[20위] 정은찬
“……!”
“헉!”
은찬의 순위가 스크린에 뜬 순간 아직 무대 아래 객석에 모여 있던 파라노말 팀원들 모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은찬을 축하하는 듯 손들이 삼삼오오 모여 등을 토닥였다. 이내 은찬이 안경을 벗더니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곤 아마도 뭔가 빽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냈는지 다들 와하하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규민이 제현호나 박하연보다 잘하진 않았는데 솔직히.’
이건 100% 커뮤에서도 까던 인수 버프가 맞았다.
‘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이 CF까지 찍어 버린 이상 최소 프로그램이 종방할 때까지는 절친 이미지를 가지고 가야 했다.
아니, 실력순으로 가야지 왜, 하고 투덜거린다고 해도.
애초에 국민 참여형 투표 오디션이라는 것이 원래 인기투표였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무튼 이제 무대 아래에 남은 팀원은 둘.
[지금부터 하위 8명의 생존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진짜라는 듯 다시금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듯 스크린에 한 명씩 이름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25위] 리첸싱
[93,783표]
[29위] 고다음
[81,239표]
원래 데뷔조였던 연습생들도 속속 이름을 드러낸 와중 30위대가 되어서야 겨우 다시금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30위] 홍수민
[30,442표]
[+50,000표]
수민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무대 위로 튀어 올라왔다.
이제 남은 건 오영환과 주혜성뿐이었다. 31위로 다른 연습생이 발표되고, 두 사람 모두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는지 서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마침내 32위.
[이제 마지막 생존자를 공개하겠습니다!]
[32위] 주혜성
[25,104표]
[+50,000표]
주혜성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사실상 베네핏으로 살아남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생존은 생존.
기적과 같은 반전에 희비가 교차했다.
“…….”
마침내 탈락이 확정된 오영환이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
오영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우는 녀석들이 속출했다.
“흑, 혀, 형, 추, 축하해요. 형 진짜, 센터, 잘했어요. 꼭 데뷔하세요.”
주혜성이 예의 보부상 주머니에서 손수건이며 휴지를 주섬주섬 꺼내 오영환을 달래 주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제 본격적인 이별의 시간이었다.
[이하 33위부터 64위까지의 순위를 공개합니다. 그동안 겟 데뷔 위드미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겟 데뷔 위드미를 떠나도 좋습니다.]
카메라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혹여나 재밌게 편집할 만한 거리가 없을까 생존자들과 탈락자들의 얼굴을 열심히 훑었다.
여기저기서 결코 짧지 않았던 도전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일부는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
미묘한 심경으로 객석을 떠나는 하차자들을 지켜보는데 오영환이 불쑥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인사를 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어서 나 또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웅 인사를 잘 받았다는 듯 영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여전히 눈물범벅에 잔뜩 부은 눈을 한 채로 활짝 웃었다.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영환은 32위 안에 들어 살아남기에는 아직 부족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1~2년 후라면 또 모르지.
‘언젠가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옅은 아쉬움과 함께 곧 조명이 바뀌며 스태프들이 생존자들을 피라미드형 의자로 데려가 앉혔다.
[지금부터 곧바로! 4차 미션 설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비안이 싱긋 웃으며 무대 중앙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는 60초간의 어필 시간이 주어집니다.]
비안의 설명과 함께 드드드득, 스테이지가 이동하더니 작은 간이 무대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는….
“타이머?”
누군가 중얼거리자 비안이 웃으며 외쳤다.
[정답! 제한 시간 안에 4인의 특별 초청 심사 위원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여러분들께서 첫 번째로 통과해야 할 과제입니다.]
특별 초청 심사 위원?
이런 건 없었던 것 같았는데. 그러나 이미 내 기억 속의 겟데뷔와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지 오래였으므로 예상과 달라졌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리고 K-POP 트렌드를 선도하는! 한류 엔터테인먼트의 주역이신 네 분을 이 자리에 어렵게 모셨습니다!]
비안의 짧은 설명과 함께, 스크린 옆에 설치된 심사 위원석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제거되었다.
“헐.”
그리고 일순 모두가 정적에 빠졌다.
[NO엔터테인먼트]
[KSD 뮤직]
[피아체 스타즈]
[연성 프로덕션]
모두 아이돌 연습생들에게는 꿈의 4대라고 불리는 대형 기획사들이었다.
“와….”
“대박.”
“뭐야, 스카우트?”
다들 저마다 기대에 차서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있겠냐.’
여기 있는 녀석들 대부분이 기존 소속사가 있는 계약 연습생들인데. 그것도 나름 신경 써서 오디션에 내보낸 애들을 아무 방해 없이 대형으로 보내 주겠냐고.
꿈같은 이야기였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60초의 제한 시간 동안 아이돌로서의 재능을 어필해 주시면, 각 소속사 대표 심사 위원께서 캐스팅 결정을 하실 겁니다.]
[60초 어필 캐스팅를 통해 구성된 8인의 팀이 각 프로덕션의 지원을 받아 오리지널 무대를 준비하게 될 겁니다.]
오리지널 무대.
마지막까지 좀 너무 미룬다 했더니 이런 생각이 있었군.
아예 음원 발매까지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작정해서 퀄리티를 뽑을 작정인 것 같았다.
[단 한 명의 심사 위원에게도 캐스팅되지 못할 경우 인원이 부족한 팀으로 자동 합류됩니다.]
그러자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비안이 말해 보라는 듯 손짓하자 해당 연습생에게로 마이크가 돌아갔다.
“어, 만약 여러 심사 위원분께 스카웃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비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연습생 본인의 의사대로 선택해서 팀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뿐이면 재미없겠죠? TOP 3에게는 캐스팅 결과와 상관없이 원하는 팀에 합류할 수 있는 베네핏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심사 위원들 뒤로 전광판이 불을 밝혔다.
[Team NO]
[?]
[Team KSD]
[?]
[Team YS]
[?]
[Team Piache]
[?]
그리고 그 아래에도 조명이 켜지며 각 기획사에서 대표로 나온 프로듀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진짜 대표님들이네.”
“살벌하다, 진짜.”
다들 서로 경쟁자인 입장에서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리 없었다.
특히….
‘연성 대표는 왜 저러는 거지…?’
아주 일순간이었지만 분명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표정을 굳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