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61화 (61/224)

#061. 벼랑 끝에 몰리면 (3)

“…….”

‘말이 심하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할머니 손에 자랐을 때부터 친부모님에 대한 화제는 언제나 금기였다.

나를 떠넘긴 게 친아버지였는지 친어머니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에 맡겨졌으니까.

그럼에도 지금껏 크게 엇나가거나 신세를 원망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건.

‘친부모 복은 없어도 양부모 복은 있었으니까.’

자랑스럽게 방송에도 내보낼 수 있을 만큼 나를 아껴 주신 분들이었다.

지금까지 내게 부모님은 그분들이 유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내가 제현호를 남 일 보듯 할 게 아닌가….’

본격적으로 연예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면, 그때서야 나타나 친부모 행세를 하려 할지도.

이제 와서 나타난다고 해도 낳아 준 정을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껏 모른 척하고 살아왔을 거면서.

사연을 공개해서 이용하기로 작심한 순간부터 얼마든지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나는 전혀 타격 입지 않은 채로 다른 게시글을 마저 둘러보았다.

다들 정말 다채로운 변명들로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 겟데뷔 죄 메인 연생 안 내보내서 그대로 있다간 데뷔도 못 했을 애들만 그득하구만ㅋㅋㅋㅋ 서인수 빼고 실력도 인지도도 폭망이라 데뷔하면 그룹 통째로 묻힐 각 선명한데 빈집 털이 독주하는 걸로 신나서 영업하는 거 봐라ㅋㅋㅋㅋ]

그리고 그 아래에서는 다른 의미로 위의 댓글을 반박해 주고 있었다.

[- 제작진 푸시 오지게 받고 만들어 준 1위 해 놓고 좋댄다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밀어주면 누가 1위 못 함 인수빠들은 객관화라는 게 안 되냐?ㅋㅋㅋㅋ]

굉장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고작 댓글 2개를 사이에 두고 ‘서인수 말고는 볼 거 없는 망 프로그램 겟데뷔’와 ‘실력도 거품이면서 대형 방송국에서 제작한 특급 오디션 겟데뷔에서 푸시로 만들어 준 1위 서인수’가 한 게시글에서 동시에 등장하고 있었다.

‘뭐냐, 이거….’

무슨 청기 백기도 아니고, 서인수 내려쳤다가 다시 올려치고 올려치는 척 내려쳤다가 올리고 다시 내려쳐, 하고 단체로 자가당착에 걸린 꼴들이었다.

그 안에서도 서인수 보컬은 인정해야 한다와 비주얼만 괜찮다, 파가 나뉘었다.

아무튼 비주얼은 객관적으로 비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가 되자 이제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 ̄ ̄ ̄ ̄

[제목] 서인수 얼굴 많이 달라졌네 (+112)

[본문]

(사진)

이때랑 지금이랑 콧대가 완전히 다름

(사진)

왜 고쳤을까. 안 고쳐도 괜찮았을 텐데.

 ̄ ̄ ̄ ̄ ̄

와, 이건 진짜….

첨부된 사진을 확인한 순간 소름이 쭈뼛 돋았다.

과거 사진으로 첨부된 건 열일곱 살쯤 NO뉴페이스 단체 무대 시절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줌으로 당겨 찍은 사진이지만 나쁘지 않게 찍혀서 콧대가 상당히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비교용으로 첨부된 최근 사진은 내가 프로필 메시지로 걸어 두었던, 게시된 지 24시간 만에 자동 삭제된 셀카였다.

나는 곧장 갤러리에 들어가 원본 사진을 확인했다.

원본은 어렸을 때와 달라진 것 없이 반듯한 콧날이었다.

글쓴이가 첨부한 사진에는 마치 수술 흉터가 남은 것처럼 콧볼 옆에 주름이 잡혀 있었고 콧대도 앞으로 튀어나오도록 수정되어 있었다.

“…….”

그리고 하단에서 댓글까지 확인한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 성형이 무슨 죄라고 이렇게 쥐 잡듯이 잡는지 모르겠네. 다들 교정이랑 쌍수 다 하면서 왜 멀쩡히 잘하는 애 죄인으로 몰아가는데?]

[- 원래 남돌들도 데뷔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야금야금 엄청 고침ㅇㅇ]

이미 논점은 내가 성형을 했냐, 안 했냐가 아니었다.

‘성형을 할 수도 있지 왜 잘못한 것도 아닌 거로 난리냐.’로 논쟁을 몰고 가서 나를 지지하는 척 성형설을 팩트로 굳혀 가고 있었다.

게시글을 올린 글쓴이의 다른 게시글을 확인하자 모두 깨끗하게 삭제된 상태였다.

‘댓글은 남아 있나?’

작성한 댓글 모아 보기를 클릭하자 평범한 커뮤니티 활동 댓글들 사이로 미처 삭제하지 못한 지난 댓글들이 우르르 조회되었다.

[- NO 통수 치고 나왔으면서 클로드 애들한테 얼마나 엉겨 붙었으면 공식 계정에 올려 줌ㅠ]

[- 와 하나도 안 친해 보이는데 억지 텐션 쩐다]

[- 혼자 표정 붕 뜬 거 봐 물론 주어는 없음ㅋㅋ]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클로드 멤버들을 친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했다고 몰아가려다 실패한 이후 새로 들고나온 게 성형설인 듯 보였다.

다른 게시글에서 야무지게 대댓을 주고받던 계정이 올린 글에 상황을 요약해 주는 척 댓글을 남긴 걸 보니 확실해졌다.

 ̄ ̄ ̄ ̄ ̄

[제목] 겟데뷔 ㅅㅇㅅ 진짜 고친 거임? (+10)

[본문]

나 지금 픽톡 막 들어와서 원글 못 봤음

찐으로 고친 거?

[댓글]

[- ㅇㅇ 티 쫌 나더라 아직 흉터 안 사라진 듯]

[└ 헐…. 좀 깬다ㅠ 왠지 첨부터 완벽했을 거 같았는데]

 ̄ ̄ ̄ ̄ ̄

내 팬들이 조작 사진 들고 와서 선동하지 말라고 반박할 때마다 기적의 논리가 돌아왔다.

[- 아니ㅋㅋㅋㅋ 성형이 무슨 죄지은 거냐고ㅠ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부정하는 거임. 자연 코가 성형으로 예뻐진 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거야?]

역으로 아이돌들이 성형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비즈니스인데 성형을 죽어라 까는 악플러들로 몰고 가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나는 우선 눈에 띄는 게시글부터 PDF를 따서 메일로 저장해 두었다.

‘아….’

지금 내가 소속사 소속이었다면 바로 고소 대응을 부탁할 수 있었을 텐데.

가뜩이나 일희일비하는 부모님한테 고소 업무를 도와 달라고 할 순 없었다.

지금 내가 SNS에 코를 뭉개는 영상이든 사진이든 올린다고 해도 ‘나 서치하고 있어요~’ 티를 내서 먹이를 던져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부류들은 연예인 본인이 커뮤니티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티를 내면 더 날뛰었으니까.

‘일단 저장해 두면 게시글을 삭제하더라도 고소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고소를 진행할 만한 건은 이것보다 더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이겠지만.

당장 대응하기 힘들더라도 추후 데뷔조가 확정되고 단기 계약이라도 소속사가 생기면, 그때는 확실하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4차 미션을 누구도 흠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준비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이런 걸로 멘탈 흔들리지 말자.’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악질적인 견제를 해야 할 만큼 내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뜻이었다.

현재 커뮤니티 아이돌 판에서는 내가 화제성을 꽉 붙들고 있었다.

까는 글보다도 영업 글, 앓이 글이 훨씬 더 많았다. 또한 조작된 성형설을 팬들도 의식하고 있는지 내 성장 과정을 앨범처럼 편집해 놓은 영업 글이 인기 글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쏟아 준 애정과 응원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무대로 보답해야 했다.

‘4차 때는 나도 파트 욕심을 좀 내야겠어.’

결심과 함께 다시 촬영장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밤을 보냈다.

***

한편 같은 시각, 인덕은 영혼 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며 PDF 저장과 폴더 이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아, 미쳐도 좀 곱게 미쳐라.’

웬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끝도 없이 인수에게 꼬여 있었다.

‘아오씨, 까이는 것도 흥해야 까이는 거긴 한데 뭐 이렇게 주렁주렁 달라붙냐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신고를 먹이고 있건만 보호해 주는 소속사가 없으니 마땅히 이어져야 할 후속 조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 다른 연생들은 무슨 2년 전이랑 아예 다른 사람이더만.’

인수만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는 뻔했다. 인수를 후려쳐서 순위를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아무리 서바이벌 판 자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내 새끼 올려보내야 하니까 널 좀 끌어 내려야겠다, 견제가 기본이라지만.

케이팝 판 모든 어그로가 인수에게로 붙은 것 같은 꼬라지에 인덕은 한숨만 나왔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원래 스타는 까와 빠를 동시에 미치게 만드는 거니까.’

이게 다 인수가 너무 흥해 버린 탓이었다.

‘하씨…. 덕분에 지하철역 선점하느라 개진땀 뺐네.’

자고로 전광판은 전국의 케이팝 팬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에 대문짝만하게 걸어야 가오가 사는 법이었다.

전광판에 들어간 사진도 완벽, 디자인도 완벽, 문구도 완벽, 이제 걸 위치만 잡으면 되는데!

겟데뷔를 인수가 멱살 잡고 성공시키는 바람에 전국의 지하철 광고판들이 만석이었다.

- 어, 지금 홍입역 개찰구 바깥쪽에 좋은 데 한 자리 있긴 하거든요? 근데 거기가 단가가 좀 다른 데보다 비싸. 그렇잖아도 서인수 군 광고판 다른 쪽에서도 문의가 들어왔는데 가격 때문에 생각을 좀 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인덕은 통화로 달궈진 핸드폰이 식기도 전에 익숙한 계좌로 입금부터 박았다.

‘파일 바로 보내 드릴 테니까 확인 부탁드릴게요.’

- 어유, 하여간 선생님은 시원시원해서 좋다니까. 파일 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덕분에 인덕이 포장해야 할 서포트 답례품 굿즈가 늘어났지만 수량을 푸는 대로 나갈 테니 상관없었다.

인덕은 인수를 작고 앙증맞은 이등신 캐릭터로 디자인해 만든 키 링을 손수 포장하며 생각했다.

‘내가 파는 아이돌이 대세라는 건 좋은 거구나….’

이 정도 지출을 손실도 고민도 없이 턱턱 할 수 있다니.

인수는 앞으로 더 슈퍼스타가 될 텐데 여기서 감동할 수는 없었다.

‘널 서포트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본업만 열심히 해.’

당사자와 팬 모두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장시간 버스를 타고 태복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순위 변동식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로 인원이 확 줄어들겠군.’

다른 놈들은 크게 걱정될 게 없고 주혜성과 정은찬이 문제였다.

‘최종 무대만 보면 솔직히 떨어질 리가 없는데.’

지금부터는 어제까지 진행된 온라인 투표가 합산될 예정이라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같은 조끼리 모여 앉은 객석에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스크린이 양옆으로 열리며 비안이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국민 매니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선 비안입니다.]

[오늘 드디어! 여러분들께서 손수 투표해 주신 결과가 공개됩니다.]

[99명의 소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 겟 데뷔 위드 미! 그 원대한 여정에 앞으로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투적인 오프닝 멘트와 함께 이전과 달라진 세트장이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을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심사 위원석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두 개씩 마련되어 있었다.

‘4차 미션에서 대체 뭘 하려고….’

[오늘! 아쉽게도 64명의 연습생 중 절반은 겟 데뷔 위드미를 떠나게 됩니다. 다들 긴장되시나요!]

그럼 되지 안 되겠어요. 정은찬은 슬슬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절대 모를 거고 귀염둥이 아티스트 정은찬을 둥기둥기 해 온 파라노말 팀 멤버들만 눈치챌 수 있는 변화였다.

은찬이 긴장한 것을 눈치챈 지원이 본인도 떨리면서 은찬을 위로하려 했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어 지원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ㄴㄴ.’

뜻을 알아들은 지원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하여간….’

그래도 귀여우니 됐다.

나는 스크린을 채운 32개짜리 피라미드 구조를 보며 턱을 꼿꼿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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