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벼랑 끝에 몰리면 (2)
- 굳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 그거야 내 도움을 받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유지원에게 그럴 주변머리가 없다는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래, 뭐… 팬이라니까 고맙고. 아무튼 별일 아닌데 내가 놀래킨 것 같아서 미안하네.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그래도 앞으로 좋아요 누를 때는 조금만 더 조심해.”
- 응!
힘찬 대답이 들려오는 걸 보니 겨우 안심이 됐다.
‘이게 늦은 밤에 무슨 짓이냐.’
나는 겨우 전화를 끊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신경을 쓸데없는 데까지 너무 많이 쓰는 게 문제야, 나는.’
이제 진짜 잔다.
다시 눈꺼풀을 덮은 순간 조금 전 촬영이 끝나자마자 떴던 미션 완료 메시지가 생각났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클리어!]
[호랑이 굴]
[보상 수령]
[코인 1개]
[지표 1단계 선택 보정]
나는 망설임 없이 사이다를 올렸다.
[어그로] (보통)
[개연성] (높음)
[사이다] (높음)
어그로는 어떻게든 돌발 행동이라도 해서 올릴 수 있지만, 사이다는 모든 일이 내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코인도 그새 3개나 쌓였겠다, 새 아이템을 뽑기 전에 확인해 둘 게 있었다.
‘지난번에 등장인물 호감도 시스템인지 뭔지 업데이트하고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지.’
나는 다시금 잠이 말끔히 달아나 버려서 순순히 상태창을 건드렸다.
[등장인물]
[- 현재 등록된 인물 (10)]
‘응?’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이후로 추가된 건 정은찬과 박하연 두 명뿐이었는데?
그러면 숫자가 8이어야 하나 상단의 숫자는 10이었다.
‘뭐지?’
나는 슥 스크롤을 내려 리스트부터 확인했다.
[▶겟 데뷔 위드 미 출연자]
[▷이비안]
‘?’
못 보던 이름이 하나 슬쩍 추가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언제 또 추가된 거야? 케이 피디를 불러내자 단출한 설명이 떴다.
[집필 활동을 진행하던 중 일정 수준 이상 관여된 인물은 별도 퀘스트 수행 없이 등록될 수 있습니다.]
[단 반드시 퀘스트로만 습득할 수 있는 등장인물도 있으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하.
한마디로 다 저들 마음대로라는 뜻이었다. 그래, 맘대로 해라.
당장 대단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아서 나는 항의하는 대신 추가된 기능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겟 데뷔 위드 미 참가자]
[▷[3위]아진(S)]
[▷[6위]표영인(S)]
[▷[11위]유지원(A)]
[▷[14위]제현호(A)]
[▷[18위]이규민(A)]
[▷[21위]박하연(B)]
[▷[34위]정은찬(B)]
[▷[57위]주혜성(C)]
[▷[92위]조항준(F)]
그리고 조항준의 이름 뒤에만 작은 버튼이 하나 붙어 있었다.
[삭제 가능]
‘…!’
그야 탈락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더는 조항준이 겟 데뷔 위드 미는 물론 나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었다.
‘일단 지우지 말고 냅둬 보자.’
저거 놔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로써 더는 내 기억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게 확정된 것이었다.
‘아무튼 1위만 잘 지켜서 데뷔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후,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 명 한 명 스탯과 별 개수를 확인했다.
아진과 조항준은 호감도란조차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웃음이 나왔다.
‘나머지 녀석들은….’
[▷[6위]표영인(S)] ★★
[▷[11위]유지원(A)] ★★☆
[▷[14위]제현호(A)] ★
[▷[18위]이규민(A)] ★
[▷[21위]박하연(B)] ☆
[▷[34위]정은찬(B)] ★
[▷[57위]주혜성(C)] ★☆
박하연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별 한 개를 꽉 채워서 바로 스탯을 확인할 수 있었다.
[▷[6위]표영인(S)]
[비주얼] S
[퍼포먼스] S
[보컬] A
[▷[11위]유지원(A)]
[비주얼] A
[퍼포먼스] C
[보컬] S
[▷[14위]제현호(A)]
[비주얼] S
[퍼포먼스] A
[보컬] A
[▷[18위]이규민(A)]
[비주얼] B
[퍼포먼스] A
[보컬] B
[▷[34위]정은찬(B)]
[비주얼] B
[퍼포먼스] B
[보컬] B
[▷[57위]주혜성(C)]
[비주얼] B
[퍼포먼스] B
[보컬] A
확실히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주혜성이 실제 능력치에 비해 낮은 등급을 받은 것이 확 느껴졌다.
‘이번에 그래도 웬만큼 했으니 등수도 등급도 팍 올라 주면 좋을 텐데.’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그건. 쯧 가볍게 혀를 차고는 상태창을 껐다.
‘이제 또 잊어버린 거 정말 없겠지.’
마지막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아, 맞다. 사진 찍어 준 거 보내 준다고 해 놓고.
서둘러 1시가 되기 전에 사진을 전송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얘는 확실히 보내 줘야지.’
이번에도 버스 탈 때 안 나온 거 보니까 기숙사에 계속 있는 것 같더만.
한번 거절당한 경험에 나도 좀 속이 꽁해서 이번에는 같이 올라가자고 권하지 않았다.
나도 이것저것 할 게 있어서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고.
[선택한 사진을 전송하시겠습니까?]
나는 오가는 길에 찍었던 제현호의 전광판 사진을 생각난 김에 바로 보내 주었다.
[인수] (사진) 오전 0:17
[인수] 전에 말한 거 오전 0:17
[인수] 잘 보이는 곳에 걸렸더라 오전 0:18
그런다고 연락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제현호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져서 파이널까지 올라가게 되면.
그때는 놈이 찾고자 하는 사람이 아이돌에 관심이 없어도 제현호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근데 이번 무대 올렸을 때 보니까 좀….’
지난번과는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지난번 무대 때는 내가 협력을 반강제로 요청하기도 했고, 본인도 방송에 더 오래 잡히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서 따라 주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확실히 더 적극적이었지.’
센터 선발전에서 주혜성에게 밀린 게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가능성 있는 가정이었다. 첫 미션 때도 그렇고 자기보다 못하는 연습생한테 밀리는 거 못 참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누군들 그게 기분이 좋겠냐만….’
이제 데뷔조 선발까지 남은 무대는 단 하나.
오리지널곡 미션을 하나만 더 통과하면 파이널 16인의 선발이었다.
‘이제 여기서 그 짜증 나는 시스템으로 걸러서 8명을 만드는 거지.’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멤버를 선발할지는 미지수였다.
산뜻하게 상위 8명으로 잘라서 데뷔시킬 수도 있고.
제현호가 16인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순위만 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본인이 좀 더 뭔가 깨닫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한 그건 제현호 본인의 몫이었다.
무대가 목표가 아닌 삶은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모르니까.
‘아무튼 표영인은 같이 데뷔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제 진짜 자자.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숨을 참았다.
내일은 조회 수 미션의 결과가 통보되는 날이었다. 이미 1위 및 2위와 그 아래 등수 사이에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곧 다시 보겠네.’
나는 짧게 가슴을 오르내리다가 곧 잠에 들었다.
***
[꿈을 향해 도전하는 소년들의 위대한 여정! 겟 데뷔 위드 미 첫 번째 온라인 투표가 막을 내렸습니다.]
[다들 소감이 어떠신가요! 떨리시나요!]
그로부터 4일 후.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무사히 뮤직패스 녹화까지 마친 나는 어느새 두 번째 탈락자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뮤직패스 녹화 자체는 매우 수월하게 잘 끝냈다. 이미 스튜디오 녹음을 한번 끝낸 무대라 긴장할 것도 없었다.
‘서인수!’
‘인수 잘생겼다!’
‘인수야!!!’
스튜디오 녹화와 차이가 있다면 무슨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메이크업 받고 이동하고 대기하고 시간 낭비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는 것과, 방청객이 꽤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이번에도 내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불려서 좀 민망하긴 했으나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신경 쓰인 건 그거 말고 다른 거였지.’
하필 NO에서 데뷔한 선배들의 활동기와 출연 시기가 공교롭게도 겹쳐 버린 것이다.
우리는 신인도 아닌 데뷔도 못 한 연습생 나부랭이들이었기 때문에 녹화 순서가 저 머어얼리 처박혀 있었다.
그 말은 즉, 다른 팀들이 우리 대기실로 쳐들어올 시간이 넉넉하다 못해 폭포처럼 넘쳐흘렀다는 뜻이었다.
‘야! 서인수, 너 요즘 잘나가더라!’
NO에서 3년 전에 데뷔시킨 선배 그룹, 클로드(Clawed)의 멤버들이 우르르 우리 대기실로 찾아와서 소동을 벌였다.
‘우와, 저, 저 이렇게 아이돌 선배님이랑 뵙는 거 처음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음방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녀석들이 여럿이었는데.
거기에 정말 1군 선배님들이 우르르 들이닥쳐 버리니 애들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헉, 죄, 죄송합니다!’
‘저도요!’
무슨 덤 앤 더머도 아니고 오영환과 유지원이 세트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뭘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 마음 같아서는 둘 다 정신 좀 차리라고 한 대씩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나와 친분이 꽤 깊은 선배들이라 다행히 귀여움만 잔뜩 받고 끝났다.
사인 CD도 받고 셀카도 찍어서 SNS에 잔뜩 올리고…. 피곤하긴 했지만 당연히 얻는 게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험이었다.
‘좀 마음에 걸리는 건 따로 있지.’
NO 선배 그룹의 공식 SNS에 내 얼굴이 실리면서 여기저기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다.
대부분 긍정적인 언급이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업 글… 좀 너무 많이 올라오지 않나?’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만큼 아무래도 화제성이 좋아 글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는 건 나도 이해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지 않는 커뮤니티 유저들이 봤을 때 어떨지는 또 다른 거니까.’
이제 슬슬 ‘주입식 영업 지겹다.’는 안티가 생길 타이밍이었다.
 ̄ ̄ ̄ ̄ ̄
[제목] 인수 진짜 본 투 비 아이돌 서사 아니냐 (+67)
[본문]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할머니 돌아가시고 친척 집에 입양.
다행히 양부모님 모두 좋은 분들이셔서 사랑받으면서 잘 컸는데 열네 살 때 학예회에서 길캐로 NO 입사.
그 후로 좀 인생 피나 했더니 7년 쭉 NO 지하실에 박혀 있다가 방출됨.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방출되자마자 겟데뷔 출연해서 웬만한 1군 남돌 화제성 뺨치는 수준으로 떠서 지금까지 압도적 1위 유지 중. ㄷㄷ NO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는 내내 보컬 월간 평가 1위 자리 안 내준 것도 그렇고.
평소엔 꼼꼼하고 든든한 형인데 무대 오를 때는 개진지해지는 거 너무 좋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걸 더 좋은 기회로 바꾸는 아이돌?
서인수라고 하는 남자가 ㄹㅇ 유일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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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 너무 자주 올라오다 보니 커뮤니티 유저들로서도 피로도가 쌓이지 않을 수 없었다.
[- 안 산다고요 가라 좀]
그리고 슬슬 선을 넘는 댓글들이 보였다.
[- 인수빠들은 영업할 때 할 소리가 우리 애 친척한테 입양돼서 존나 불쌍함밖에 없냐?]
[- 별것도 아닌 거로 영업질이네 내 인생이 더 XX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