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대체 불가능한 (3)
[3차 미션 경연의 최종 1위를 발표하겠습니다.]
1위냐, 8위냐. 우승과 꼴찌만 남은 마지막 발표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꼴찌를 할 일은 단언컨대 없었다. 4위까지 순차적으로 공개된 이후에는 긴장감이라곤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겟 데뷔 위드 미! 3차 미션의 영광스러운 승자는! 팀 파라노말의 Black Paradox! 축하드립니다!]
화면 가득 방청객 점수 및 심사 위원 환산 점수와 이런저런 베네핏 관련 사항이 적혀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끝났다! 이제 진짜 끝이다, 개새X들아!’
이 고통스러운 조별 과제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리더 서인수 연습생 나와서 소감 부탁드릴게요.]
비안이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자 스태프가 와서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다시는 이딴 조별 과제 시키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은 아주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이 길러 낸 훌륭한 사회인이었으므로 방송인의 덕목을 지켜 인내하는 데 성공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서 응원하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멋진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객석을 향해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여 인사를 올리자 다른 멤버들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끼쳐 드려서 또 놀라셨을 텐데, 앞으로도 계속 실망시켜 드릴 일 없도록 더 열심히 할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다. 솔직히 억울하다고. 이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래들 사이에 껴서 한 마리는 그래도 쓸 만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고 도저히 답 없는 고래는 쫓아내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하지만 이런 오프 더 레코드의 일을 줄줄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팬들에게 털어놓아도 되는 고민이 있고 아닌 게 있으니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당연히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지.’
나를 걱정하느라 고생하는 건 바라지 않는 일이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그래요, 그러면 저는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볍게 미소를 띤 채로 마이크를 내려놓자 곧바로 어깨동무가 걸려 왔다.
“악!”
너무 놀라서 미처 진정할 새도 없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무대 위는 물론이요, 객석까지도 나를 주목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미친놈이야?’
이런 짓을 할 만한 미친놈이라곤 한 놈밖에 없었다.
“1위 축하해요!”
영인이었다.
“나도 엄청 자신 있었는데!”
우리 팀에 밀려 2위가 된 영인의 악의 없는 축하 아닌 축하에 홍수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어, 뭐야, 리더 고생했다고 ‘격려’해 주는 건 같은 팀 몫인데!?”
“????”
“앗, 나만 빼면 섭섭하지~”
갑자기 가까이 있던 이규민을 비롯하여 나와 친한 것처럼 화면에 잡히고 싶은 녀석들이 우르르 달려드는 바람에 의상이고 머리고 모두 엉망이 되었다.
“서인수 연습생~ 인터뷰 이쪽 부스에서 진행하실게요~”
잠시 후 인터뷰 타임이 되었을 때, 나는 누가 보면 전력 질주라도 하고 온 사람 같은 꼴로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다른 연습생분들이랑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PD가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좋게 봐줘서 고맙죠. 제가 뭐 대단히 한 것도 없는데.”
그러자 PD가 슬슬 자극적인 미끼를 던졌다.
“그건 부동의 1위에서 오는 자신감인가요?”
여기서 좀 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 줘도 되겠지만.
겨우 지옥의 조별 과제를 빠져나온 마당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글쎄요. 그냥 제가 제일 잘하는 걸 앞으로도 쭉 보여 드리고 싶은 거라, 등수 때문에 부담을 가지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 미션을 준비하면서도 계속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가짐이셨을까요?”
“음….”
그럴 리가 있겠냐.
“그렇지는 않죠. 이번에는 상황이 그랬으니까. 그래도 다들 응원해 주신 덕분에 잘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뷔도 안 한 내가 남자 아이돌 화제성 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는 마당에 제작사가 이제 와서 내게 심각할 정도로 불리한 편집을 할 수는 없었다.
1위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이후에 있을 유료 투표에서 팬들이 결집하도록 유도하려는 모양이겠지.
‘그렇게 원하시면 바라는 대로 맞춰 드려야지요.’
나는 가까스로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1위로 계속 뽑아 주시니까 당연히 기분은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시하다면 시시하게 마무리되었다.
‘정은찬 쪽은… 딱 봐도 오래 걸리겠네.’
잘했다고 격려의 말을 해 줄 새도 없이 인터뷰하러 갈라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가만히 서 있다가는 또 연습생들한테 붙들려서 축하당하겠다.’
나는 재빨리 걸음을 재촉해서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 바로 4화 공개되는 날이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들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었다. 주혜성도 마찬가지였다.
“네. 유튜브 영상은 아까 바로 올라갔더라고요.”
“앗 정말? 얼른 봐야겠다.”
어차피 최종 편집본 사전에 다 봤는데 뭘.
감흥 없다는 듯 나도 짐을 정리하는 내내 혜성은 새로 고침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회 수, 지금 3위니까…! 잘하면 2위 안에 들 수도 있겠다!”
주혜성이 기쁜 얼굴로 웃으며 내게 알려 주기에 나는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거 올린 시간 한번 보세요. 새벽 지나면 저희가 1위 될 거예요.”
8개나 되는 영상을 동시에 올릴 수는 없기 때문에 10분씩 순차적으로 업로드되고 있었다.
우리 순서는 경연 순서인 6번째. 그것도 이제 올라온 지 5분도 안 됐는데 3번째면 별일 없는 이상 2위 안에는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했다.
“와…! 꼭 2위 안에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째 말꼬리가 점점 축축해지는 것 같기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혜성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형 울어요?”
갑자기? 왜? 내가 뭐 말실수했나? 하지만 딱히 울릴 만한 소리는 안 했는데?
당황한 그때 주혜성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 아니… 나, 이번이 정말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럴 만했다. 주혜성의 직전 순위는 57위. 64위 컷일 때도 간당간당했는데 이번엔 절반으로 줄어들 예정이니까.
32위 안에는 정말 못 들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 생각은 아마 정은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마지막 무대….’
촬영 전이면 모를까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나 스스로 하차를 하면 했지, 탈락할 거라는 위기감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더 초조하고 불안했던 건가.’
인터뷰 부스로 끌려가기 직전 확인했던 정은찬은 분명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뿐이지만.
‘살아남았으면 좋겠네.’
그냥 프로듀서로만 남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게 내 결론이니까.
짐 정리를 마치고 가방에 세면도구와 잠옷 넣을 자리만 남기고 침대에 누우니 여전히 새로 고침을 하고 있는 혜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 봐요, 좀.”
내가 쓸데없는 고문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는 듯 핸드폰을 가리자 주혜성이 허둥거리며 갤러리를 열었다.
“새고만 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봐 봐, 지금 4화 방영 중이라 글 엄청 올라오고 있어!”
서치 중이었는지 게시글 캡처만 수백 장은 해 놓은 것 같았다.
“…….”
대부분 제현호나 유지원, 나 같은 팀 멤버들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들이었다.
정작 주혜성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다… 불쌍하다는 얘기뿐이네.’
그럴 만도 했다. 2차 미션 얘기가 4화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2차 미션 때 본인이 속한 팀을 이긴 정은찬이 미울 수도 있을 텐데. 정은찬에 대한 호평도 하나하나 캡처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따 방송 끝나면 톡방에 보내 주려고 캡처해 놨는데…. 다들 주목받아서 그런지 글 엄청 많이 올라오더라.”
순수하게 질투심이 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주혜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다른 녀석들이 들은 칭찬을 놓치지 않고 전해 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머리가 뭐 어떻게 잘못된 거 아냐? 당장 본인이 지금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도 센터이긴 했지만 표절 조작 논란도 있고 여러모로 주혜성만 눈에 띄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기껏 센터 따냈더니 생각보다 버프 안 주네? 하고 불쾌해할 수도 있는데….
4화 방영이 끝나면, 곧바로 이번 순위 변동식에 적용될 국민 매니저 투표가 시작된다.
1인 3표까지 가능했던 지난 방청객 투표와 달리 이번엔 1인 2표였다.
다음 투표부터는 1인 1표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투표로 정치질과 견제를 펼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으면서 태평하긴….’
기분이 이상해져서 적당히 웃음으로 얼버무린 다음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잠결에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있는 건 나와 주혜성뿐이니 당연히 주혜성이겠지만.
“…고마워.”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나한테 득이 되니까 최고이자 최선의 무대를 올린 것뿐.
그날 새벽, 평소보다 일찍 잠든 탓에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온라인 투표가 시작된 KMB 공식 홈페이지는 여전히 트래픽이 몰려 있는지 로딩이 평소보다 3배는 느렸다.
내 얼굴은 투표 페이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유튜브 조회 수도 1위네.’
2위와 격차가 벌써 3만 뷰 이상 벌어졌다. 이대로라면 3일 안에 150만은 확실히 찍을 수 있을 것 같네.
댓글도 폭주 중이었다.
[- 2002년 개같이 부활]
[└ 빨리 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나가서 응원해야 할 거 같음 ㅠㅠㅠㅠㅠㅠㅠ]
[- 그래 지금쯤이면 블랙온이 슬슬 환생할 때가 됐지]
[└ 블랙온 아무도 안 죽었는데요ㅠㅠㅠㅠㅠ]
[└ 유홍선이 사회면에 실린 거지 아직 죽진 않았어요]
[- 이 노래를 듣고 XX 초등학교 2학년 13반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 A군 센스 ㅈㄴ 없다 티저를 제일 심심한 파트로 골라서 뿌렸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A군 의문의 마케터행ㅋㅋㅋㅋㅋㅋㅋ]
[└ 심지어 표절처럼 들리게 조작하느라 더블링 넣고 조잡해져서 이런 곡인 줄 예상 1도 못 함ㅋㅋㅋㅋㅋㅋㅋ]
거기다 드디어 공개된 2차 미션의 반응도 좋았다.
‘지나칠 정도로.’
1차 미션 때 거의 공기 수준의 존재감으로 넘긴 한을 여기서 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만 곳에서 내가 튀어나왔다.
‘그만…! 그만해…!’
이 정도로 많이 넣으면 편파 논란으로 욕먹는 건 나라고요.
물론 겟데뷔 판에서의 내 지분에 비해 1, 2, 3화 분량이 너무 부족했던 건 사실이었다.
고객 니즈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4화는 거의 내 특집 수준으로 편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수혜를 덩달아 받게 된 놈이 있었으니….
‘왠지 짜증 난다.’
바로 이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