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한 치 앞도 모르는 일 (3)
한편 평화로워야 할 늦은 밤, 생업을 위한 외주 작업을 마치고 단톡방을 확인한 인덕은 생각도 못한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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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겟데뷔 표절 논란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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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표절? 벌써부터?
J군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동영상부터 재생해 본 인덕은 익숙한 목소리의 등장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 인수 목소리잖아!”
뭔데, 이 낡은 가사? 왜 이렇게 익숙하지? 묘한 기시감에 당황스럽기도 잠시 억지 같으면서도 듣다 보면 비슷한 것도 같은 멜로디에 재빨리 댓글 반응을 확인했다.
- 개나 소나 작곡한다고 나대지 마라, 좀. 죄 표절충이면서 있어 보이려고 프로듀싱멤 ㅇㅈㄹㅋㅋㅋㅋㅋㅋ
기존 포맷을 버리고 새로 런칭한 프로그램이라서 더 어그로가 꼬인 것일까.
겟데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다 튀어나온 현장이었다.
연습생 J군은 물론 작곡한답시고 허세 부리는 아이돌에 그런 풍조를 방관하는 프로그램까지 신랄한 조롱 조로 욕을 먹고 있었다.
“아니, X발 우리 애가 데뷔 좀 한다는데 왜 이런 게 꼬이고 난리야.”
영상만으로는 표절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 확인한 단톡방에 급히 물어보자 XOXO가 링크 하나를 던졌다.
[인덕] 쪼님 픽에 올라온 고발 글 봄??? 오후 11:03
[XOXO] 그거 반박 떴음 오후 11:03
[XOXO] 보고 줏대 있게 판단 ㄱ 오후 11:04
인수의 평화로워야 할 데뷔 길에 왜 이런 일이.
인덕은 속으로 머리를 열 번쯤은 쥐어뜯으며 XOXO가 준 링크를 클릭했다.
[답글] 조작된 음원을 사용한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하기 바랍니다.
원고발 글에 답글 형식으로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반박 글에는 조작되지 않는 실제 원본 음원과 짧은 경고가 담겨 있었다.
조작 글을 올린 게시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실제 사실 관계가 담긴 사과문을 올리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진행하겠다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늦은 밤에 공방전이 터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덕] 뭐임? 뭐임? 저만 뭐 놓친 거 있어요? 오후 11:05
[XOXO] 다 같이 어리둥절 중 오후 11:05
[함] 표절 의혹 연생 + 조원 예상 떴네요 (URL) 오후 11:05
순식간에 대화가 위로 쭉쭉 밀려 올라갔다.
인수는? 인수는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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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황 요약해 봄 (+328)
[본문]
연습생 J - ㅋㄹㄷㅁㅅㅌ 정ㅇㅊ
같은 조 연생 추정 -
ㅅㅇㅅ
ㅇㅈㅇ
ㅎㅅㅁ
8인 1조라서 4명 더 있을 텐데 목소리 확인 가능한 건 저 3명인 듯 1-3화 공개된 거 보면 ㅈㅇㅊ이 계속 다른 연생들이랑 겉도는 거 확인 가능함 3차 미션 준비하는 과정에서 팀원이랑 틀어져서 누가 ㅈㅇㅊ 보내 버리려고 조작해서 고발한 거 같음그러니까 게시자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거겠지ㅇㅇ
+추가
크몬 대표 인별에 사실 관계 확인 중이라고 공지 올라옴!
[댓글]
- 헐 정은찬 맞나 보네
└ 글렉 개빡침 저격만 지금 몇 개를 올린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글렉이 글 개쎄게 올리는 거 보니까 억울한 상황 맞나 본데 중립 기어 풀어도 될 듯
- 근데 저 고발 글로 누구인지 어떻게 안 거지? 의심 가는 연생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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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혹이 혼재된 가운데 크몬의 수장인 래퍼이자 프로듀서 글렉이 날뛰고 있었다.
급히 같은 조원으로 추정되는 멤버들의 SNS를 쭉 돌았지만 모두 업데이트라곤 없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네만 아는 거냐고~!!!’
이대로는 속이 문드러져서라도 잠들 수 없었다.
고발 글과 고발 글을 저격하는 해명 글, 요약 글과 글렉의 SNS까지 모두가 새로 고침을 반복하던 그때.
누군가 침묵을 깨고 새 게시글을 올렸다.
[새로 업데이트된 팔로잉]
- @Insu.west
악! 뭐가 올라왔을지 궁금한 한편 두려움이 앞섰다. 궁금한데 아직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네가 잘못한 건 없는 거지? 갑자기 하차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인덕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새로 올라온 게시글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늦은 밤 많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짧게 남깁니다. 현재 제작진분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되었으며 곧 KMB 공식 안내를 통해 입장 발표될 예정입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해결되었다는 게 뭔데.
게시글에는 다소 수척해진 표정의 인수와 기숙사 룸메이트로 보이는 연습생의 투 샷이 첨부되어 있었다.
“얘는 또 누구야?”
인덕이 육성으로 소리 내기 무섭게 XOXO가 새 링크를 보내왔다.
[XOXO] ‘지금 바로 재생해 보세요 - Burn it A조, 위기를 넘길 카드는?’ 오후 11:21
[함] 얘네요 오후 11:22
[함] (사진) 오후 11:23
[함] 주혜성 오후 11:23
[XOXO] 뭐야 위기 못 넘겼잖아 오후 11:24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후 11:24
[함] 제가 저 조 걸렸으면 바로 하차 갈겼음 오후 11:25
인덕은 호기심에 영상을 재생시켰다가 무슨 학예회만도 못한 수준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가기를 연타했다.
아무튼 너한테는 문제없다는 거지?
이걸 안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답답한 새벽을 보내고, 제작사인 KMB의 공식 입장이 나온 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공지] ‘표절 공론화’ 관련 출연 계약 해지 및 징계 안내
[본문]
안녕하세요. 열정으로 하나 되는 Music, KMB입니다.
논란이 된 표절 연습생 공론화 관련하여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 관계 및 향후 계획과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 더욱 좋은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논의하던 중 연습생 A군이 사실 관계와 다른 게시글을 온라인상에 허위 게시하였습니다.
연습생 J군이 타 아티스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및 작업 과정이 모두 증빙으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당사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프로그램과 일부 연습생의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연습생 A군과 출연 계약을 해지하였으며 추후 발생한 손해에 대해 법적 대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프로그램에서 발생한 논란으로 심려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향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안에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크몬의 대표도 참지 않았다.
[법무 법인 강직]
[안녕하세요. 크레딧 몬스터 소속 아티스트의 권익을 대변하여 소송에 임하게 된 법무 법인 강직입니다.
허위 사실 유포 및 악성 게시글 신고는 법무 법인 강직의 공식 이메일 계정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곧바로 대형 로펌을 선임하여 대대적인 고소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연예계 대표 커뮤니티 픽앤톡의 메인에서 표절 의혹 관련 내용이 자취를 감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
“아니, 진짜 저 아니라니까요!”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회의실로 불려가서 다짜고짜 고소 통지와 출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희록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저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데요?”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일부러 모바일 VPN까지 결제해서 올린 게시글이었다.
사이트의 협조를 받아 IP를 추적한다고 해도 고소장을 제출하고 수사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테고.
수사를 진행해서 게시글을 올린 IP가 게시자를 추적할 수 없는 남미 주소라는 것을 알아냈을 때는 이미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의 일일 것이다.
’잡아떼면 그만이야.‘
VPN 어플 이용 기록과 결제 기록을 걸린다고 해도 어쨌거나 그 글을 썼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희록이 당당하게 고개를 쳐든 순간 은찬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변호사로 보이는 외부인도 함께 있었다.
“증거? 있지.”
무슨 억지를 부릴지 들어는 주겠다는 듯 희록이 코웃음을 치자 은찬이 음원 편집 프로그램을 켰다.
“너는 몰랐겠지만, 우리가 서포트 팀에 최종 전달한 음원은 이거였거든.”
은찬이 표정 없는 얼굴로 음원을 재생하자 희록이 그래서 뭐 어쩌라는 듯 비웃었다.
“그래서요?”
뻔뻔한 당당함에 은찬이 곧바로 다른 파일을 재생했다.
“그리고 이게 네가 개인 톡으로 받은 파일이고.”
파일 버전을 나눠서 보냈다는 말인가. 하지만 연습할 때 들었던 것과 차이가 분명 없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습할 때 틀어 둔 음원을 따로 녹음해 두었다가 비교까지 했다.
지금도 희록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
“자세히 들어 봐.”
희록이 시치미를 떼자 은찬이 음원에서 음성과 멜로디, 그리고 베이스가 제거된 버전을 번갈아 재생시켰다.
[둥둥 탁, 틱… 둥둥 탁 틱… 둥둥 탁 틱….]
“이게 네가 받은 버전이고.”
[둥둥 탁. 둥둥 탁, 둥둥 탁.]
“이게 다른 멤버들이 받은 버전이거든.”
두 버전을 번갈아 들은 희록의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실수로 너에게 수정 전 버전이 간 것 같아. 녹음이나 연습에는 지장 없었겠지만.”
톡톡 키보드를 누르자 계속해서 울리던 드럼 소리가 멎었다.
“이 파일을 받은 건 너뿐이거든. 너랑 나 말고는 아무도 가지고 있을 리 없는 버전이 왜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지 이제 해명이라도 해 볼래?”
설마 처음부터 이럴 거라는 걸 다 예상했다는 건가? 말도 안 된다. 무슨 겨우 서바이벌 미션 따위에 그런 정성을 쏟는데.
희록은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서는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도 잊어버린 채 웅얼거렸다.
“제가, 해, 해킹을 당한 것 같은데….”
“아까는 증거 있냐면서? 그럼 이제 네가 증명해야지. 이 파일이 어떻게 네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다급히 도착한 희록의 소속사 쪽 사람이 와서 희록에게 말했다.
“아니지? 희록아, 아니면 그냥 노트북 보여 주고 빨리 끝내자. 보여 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모두가 희록을 바라보며 노트북을 열기를 기다린 그때, 희록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노트북은 제 개인 물품이잖아요. 아직 여, 영장 같은 게 나온 것도 아닌데, 제가 왜 보여 드려야 해요?”
희록의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발악에 은찬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정식으로 고소 절차 진행하고 형사님 통해서 다시 연락할게. 그때까지 좀 더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변명을 준비해 놓길 바라.”
탁, 유리문이 닫히며 사면초가에 빠진 희록은 일이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왜 이 팀에…. 마지막까지 어느 팀에도 픽되지 못해서 빈자리가 남은 1조에 강제로 떠안겨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이 팀에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다.
’다들 따로 하고 싶으신 거 없으시면 제가 제안 하나만 해도 될까요?‘
거기서 그 자식이 제안한 대로 블랙 패러독스 같은 게 채택되지만 않았어도.
앙금의 화살이 새로운 과녁을 향해 불타올랐다.
***
은찬이 회의실을 떠나 소속사에서 붙여 준 변호사를 돌려보내고 연습실로 돌아온 것은 4시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고생했어! 요….”
“고생 많았어요.”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다.”
하나둘 은찬을 둘러싸고 일단락된 상황에 안도하는 한편, 이제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였다.
그래서… 그놈 파트는 누가 가져갈 건데?
각자 떼어서 나눠 줬던 파트는 회수한다고 쳐도 처음부터 그놈 몫으로 배분해 뒀던 파트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럼 이제 파트는 어떻게 하지?”
혜성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져갈 사람 있잖아요. 파트 제일 부족한 사람.”
그 순간 정은찬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