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51화 (51/224)

#051. 한 치 앞도 모르는 일 (2)

“잠깐 멈춰 보자. 희록이 지금 파트 나와서 다시 해 봐.”

은찬이 했던 말이 주박이 된 것처럼. 임희록이 늘어난 파트를 처참한 수준으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멈춰! 인생은 끝없는 tour-! 분쟁은 이제 no more-! 약육강식의 법칙! 더 이상! 통하지 않게.”

젠장. 웃으면 안 되는데.

씹고 뜯을수록 충격과 공포가 되는 가사였기 때문에 최대한 요령 좋게 물 흐르듯 넘길 필요가 있는 파트였다.

그런데 랩이 랩 같지 않고 무슨 국어책이라도 읽는 것 같으니, 발음은 또 쓸데없이 정직해서 단어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렸고 공감성 수치로 이어졌다.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너 무슨 웅변해? 좀 더 흘리듯 넘겨 보라고. 전혀 매끄럽지가 않잖아.”

더 냉정하게 말하면 오그라들었다. 심각하게.

‘이거 어떡하냐.’

모두가 정은찬의 눈치만 살피는 와중, 정작 정은찬 본인의 표정은 고요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이제 겨우 협조적으로 만들어 놨는데 저러다 한 번에 터지는 거 아냐?’

임희록도 자신이 우겨서 받아 간 파트를 엉망이라 지적받고 있으니 쪽팔리긴 한지 표정이 엉망이었다.

그러자 랩 멘토가 결정적 한 방을 날렸다.

“너 이러다가 무대 공개되면 다른 조원들 발목 잡았다는 소리 들을 수도 있어. 지금 너만 문제야, 너만.”

일부러 자극적인 장면을 뽑기 위해 말을 심하게 하는 것도 있겠지만.

‘반쯤은 진심인 거 같지.’

임희록이 횡설수설 나름대로 해석이었다며 변명을 늘어놓자 멘토가 곧장 일축했다.

“희록아, 나한테 변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무대 올라갔을 때 객석에서 어떻게 볼지가 중요한 거지.”

임희록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이 매우 익숙했다.

‘…욕했네.’

중간 평가는 7명의 조원과 1명의 짐, 정도로 요약될 만한 코멘트로 끝났고 나는 서둘러 싸늘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

“남아서 연습 더 하고 들어갈 사람?”

임희록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임희록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이대로 하차라도 할 생각인가? 그랬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임희록은 다음 날 뻔뻔한 표정으로 연습실에 들어왔다.

“…….”

정은찬은 이제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처럼 임희록에게 어떤 지적도 하지 않았다.

무대를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통을 담당하는 건 내 역할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의사를 전달할 때마다 임희록은 말로만 알았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갑자기 또 왜 이래?’

왜 불평을 안 하지? 그렇다고 행동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속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아이템 그거 그때 쓰지 말 걸 그랬나?’

나는 서둘러 새롭게 뽑기를 돌려서 새로운 아이템을 뽑았다.

[눌러서 내용물을 확인해 주세요!]

‘제발 도움이 될 만한 거 좀 나와라.’

그러나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물 보정 렌즈]

[등급] D

[24시간 동안 촬영되는 모든 미디어 속 외형이 실물 이하로 촬영되지 않는다.]

‘이딴 게 지금 중요하겠냐.’

물론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아이템이긴 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닌 것이 문제일 뿐.

희록의 찜찜한 태도를 이대로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은찬이 형.”

어김없이 프로듀싱에 집중하고 있던 은찬이 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임희록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은 분명했고, 우리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작은 실수 하나만 해 보시지 않을래요?”

“무슨 소리야?”

실수라는 단어에 정은찬이 예의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불편한 기색을 띠었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사전 녹화 촬영을 3일 앞둔 밤.

문제의 사건이 벌어졌다.

정규 연습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임희록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끼리 심야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조원 중 제일 발이 넓은 편인 수민이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단톡방에 링크를 하나 공유했다.

[제목] 겟데뷔 표절 논란을 고발합니다

[본문]

(동영상 URL)

대형 소속사 출신으로 소속사 도움을 등에 업고 천재 프로듀서인 척 전 국민을 조롱하고 있는 연습생 J군을 고발합니다.

직접 듣고 판단해 주세요.

영상이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이 겟데뷔 내에서 파생된 첫 번째 대형 논란이었다.

지금까지 방영된 회차는 3화.

1~2화는 사실상 연습생 개개인을 소개하는 내용이었기에 논란이 될 거리가 없었다.

당장은 뭐 두각을 드러낼 것도 없어서 학폭이든 인성 논란이든 아직은 폭로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슬슬 조별 무대가 공개되고 연습생별 팬덤이 쌓이면서 표를 모으기 위한 영업 전쟁이 발발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개싸움이 시작되는 거니까.

그런 와중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논란의 첫 타자가 나온 것이다.

‘이건…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논란이 터지고 프로그램이 망하고 아무튼 누가 X되는 꼴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위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 뭐냐 겟데뷔 연습생 검증 빡세게 했다고 홍보 존나 하더니만 3주 차 만에 표절 터지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크몬도 한물갔네 아이돌 서바에 표절충이나 내보내고ㅋㅋ 아티스트 뽕 신나게 맞더니 수준 알 만하죠?

- 참가자 인성 논란보다 표절이 먼저 터지는 건 또 처음 본다

- 진짜 천재면 아이돌 왜 하냐 프로듀서로 저작권 벌이 해도 짭짤할 텐데. 다 짜고 치는 천재 흉내니까 아이돌이나 하려고 비비는 거지.

순식간에 댓글이 수십에서 수백 개로 불어났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댓글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다들 연습하다 말고 멈춰 서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

수민이 당황한 얼굴로 쉽게 운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모두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와중 나와 은찬만이 태연한 표정이었다.

“영상을 뭘 어떻게 올렸는지 확인은 해 봐야지.”

나는 침착하게 영상을 재생시켰다.

2분짜리 비교 영상의 소리가 연습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던 은찬이 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풋,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고발 글 댓글이 실시간으로 400개를 돌파하고 있는데 이게 미쳤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다 이유가 있지.’

나는 은찬의 반응에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제가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했죠?”

은찬이 같은 팀이 된 후로 처음으로 웃는 얼굴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나머지 멤버들이 경악에 찬 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당황하는 사이 나는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며 외쳤다.

“지금까지 작전 카메라였습니다?”

작전 카메라란, 2010년 초에 방영했던, 게스트를 초대해 설정된 상황에 맞게 연기로 게스트를 속여 반응을 지켜보는 예능이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길었다.

임희록이 PD에게 이야기하겠다며 뛰쳐나갔던 날.

나는 다른 멤버들 몰래 은찬을 찾아갔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날 임희록의 반응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얘 이거 절대 여기서 끝낼 놈이 아니다.

뭔가 100% 더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놈이다.

임희록의 분노의 화살이 향한 건 당연히 정은찬이었다.

‘프로듀싱 아이돌을 보내 버리려면 표절 시비만큼 확실한 게 없겠지.’

내가 임희록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정은찬에게 표절 낙인을 찍으려 할 것 같았다.

‘설마 본인 데뷔도 걸려 있는데 그런 짓을 무대 올리기 전에 할까…?’

의심스러웠지만 대비를 해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중간 평가 이후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이대로라면 조 평가는 좋아도 임희록 개인 평가는 바닥을 칠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정규 연습 시간이 끝나면 바로 연습실을 빠져나간 임희록은 몰랐겠지만.

정은찬과 계속 부딪히면서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본 우리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정은찬이 천재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정말 프로듀싱이나 연출력만큼은 흠잡을 데 없는 진짜라는 사실을.

‘솔직히 좀 짜증 날 정도라….’

그래서 일부러 함정을 하나 파 두었다. 임희록에게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부러 완성된 음원 파일을 전달할 때 드럼 사운드를 조금씩 바꿔서 보낸 것이다.

너무 작은 소리여서 대부분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넘길 수준으로.

‘아니나 다를까.’

표절인 것처럼 들리도록 박자와 노트를 조작해서 올린 영상의 드럼 사운드는, 임희록에게만 준 것과 똑같았다.

이제 남은 건 임희록에게 어떻게 업보를 돌려주느냐였다.

“하…. 다행이다. 나 진짜 너무 놀랐어….”

다른 멤버들에게도 영상이 조작된 것이며 임희록이 한 것이 분명한 증거도 남아 있다는 걸 알려 주자 다들 굳었던 표정이 안도로 바뀌었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작진을 통해 해결하려 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슈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려거든 오히려 우리가 따돌림 가해자로 몰릴 수도 있었다.

‘저쪽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면.’

처음에는 정은찬의 태도가 문제였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임희록에게 기회를 줬고, 각자 조금씩 양보해서 절충안을 만들었다.

그걸 고집을 부려서 문제로 만든 건.

‘당연히 임희록 본인이지.’

녹음 때 큰 지적을 받지 않은 나만 보일지 모르겠는데.

유지원을 비롯하여 홍수민도, 오영환도 눈물 콧물 쏙 나올 만큼 매서운 칼질을 당했다.

그래도 군말 없이 따랐던 건 각자 목표가 있었고 은찬이 자신에게 사적인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기준에 맞출 자신은 없지만 파트는 많았으면 좋겠고, 혼자 자기 고집, 자존심 지키느라 녹음 퀄리티도 제일 엉망이면서 지적받는 건 싫다?

‘뭘 어쩌겠다는 거야.’

본인이 스스로를 바꿀 생각이 없었고, 노력하기도 싫고, 다른 팀원들 수준에 못 따라가는 걸 정은찬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지.

본인도 정은찬이 주도한 따돌림 때문에 소외되었다고 말해 봤자 실력에 대한 변명 같을 테니 표절을 들고나온 걸 테고.

‘혼자 죽을 생각은 없다, 는 생각인 것 같은데….’

헛소리하지 말고 혼자 가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잠깐만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우리를 찾아올 사람이야 수두룩했다. 우리는 지금 가장 불타는 감자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곧 사실 확인을 위해 스태프들이 연습실에 들이닥쳤다.

“정은찬 연습생 잠깐 이야기 가능할까요?”

마치 도망친 사슴 숨겨 주듯, 문이 열리기 직전 주혜성이 정은찬에게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구부정 주저앉혔다.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데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 건 다름 아닌 유지원이었다.

“…?”

“아, 네. 여기는 없어요.”

멈칫거리기도 잠시.

다들 순식간에 눈빛을 주고받더니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나중에 CCTV 확인하면 다 나오긴 하겠지만.

스태프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홍수민이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기숙사 갔다가 바로 다시 올 것 같으니까 빨리요! 시간 없어요.”

표절 의혹에 대한 반박 자료는 미리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 뒀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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