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한 치 앞도 모르는 일 (1)
‘음…?’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물었다.
‘제가 뭘 모르는데요?’
정은찬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나 아직 30초 정도 남은 아이템이 메시지창을 띄웠다.
[너처럼 뭐든 잘하는 놈은 이런 고민 왜 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메시지를 본 순간 그동안의 실마리가 한 번에 맞아떨어지듯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춤이나 비주얼, 보컬처럼 보여지는 부분에 자신이 없어서 잘하는 프로듀싱에서라도 쎈 척했던 건가.’
반론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지나치게 꽉 막힌 태도가 자기방어였다고 하면 이해가 됐다.
혹여 아주 미세하게라도 반박당할 여지를 남기면 자기 밑천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 건데.’
나는 속으로 불평하며 한숨을 삼켰다.
이렇게 되면 편곡 후 서브 래퍼의 비중이 말도 안 되게 적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프로듀싱에 집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실력을 감추고 싶어서였나.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알았으니 그럼 이제 필요한 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해시키는 건가.’
나는 잠시 곰곰 생각하다가 은찬을 달래는 방법을 바꿔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해 보자. 잘 안돼도 지금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겠냐.’
나는 내 앞에서 분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비 쫄딱 맞은 까마귀 꼴의 은찬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
‘일단 얼추 하차는 막았고.’
정은찬의 문제를 모종의 비책으로 일단락 지은 한편.
임희록은 그렇게 나가 버린 후로 팀 내에 번호를 아는 사람도 없고, 스태프에게 물어도 담당이 아니라는 대답뿐이었다.
메인 피디님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오늘 하필 방송국 본사에서 미팅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고.
조감독이며 방송 작가가 팀 단위로 붙어 있는 촬영인데 메인 PD가 24시간 합숙소에 상주해 있길 바라는 것도 무리가 있는 기대였다.
‘그럼 임희록 이놈은 어디로 간 거야.’
그놈 자체가 걱정이 된다기보다는…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치고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 새낀 진짜 그러다 뭔가 사고 칠 것 같은데.’
하필 그게 내가 리더인 조에 소속되어 있을 때라는 것이 정말로 비극적이었다.
‘내일 연습 때 안 나오면 그때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당장은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임희록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연습실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과와 함께.
다행히 정은찬도 면담 이후로 한결 누그러져서 파트를 일부 조정하여 임희록과 본인 파트의 분량을 조금 더 늘렸다.
그렇게 서로 한발 양보… 한 것처럼 넘어간 일주일 차.
중간 평가를 앞두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해야 하나….’
지난주 2회차 방송이 나간 직후, 나는 지금 나라는 존재가 얼마큼의 화제성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실시간 트렌드]
1. 서인수 보컬
2. 나 잘 불러
3. #겟_데뷔_위드_미
4. 망신살 레전드
5. #서인수_데뷔각_섰다
SNS 실시간 트렌드 상단에 나와 관련된 키워드가 주르륵 도배된 것은 물론.
상당히 완성도 높은 디자인의 전광판 광고를 진행하는 계정도 나타났다.
모금이 아니라 확정 게시 공고는 내가 처음이었다.
‘2회차에서도 솔직히 비중이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막판에 아진과의 비교가 꽤 인상적으로 나와서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주요 장면을 편집한 1분 30초짜리 영상이 1.5만 회 이상 공유되기도 했다.
왕좌를 지키는 나와 거기에 도전하는 아진 같은 구도로 나가긴 했는데….
[- 망신살 레전드 실트 간 거 봐 어떡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비빌데를 비벼야지 NO뉴페 황금 보컬에 비볐으니 박살이 나지ㅋㅋㅋㅋㅋ]
하필 실력이 너무 비교되는 바람에 아진이 업보를 엄청나게 돌려받고 있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그러나 나라고 남의 걱정을 해 줄 때가 아니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덩달아 짙어지는 법. 그 전까지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안티들도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 이제 2회 방영했는데 벌써부터 서인수 1위 확정인 것처럼 나대는 거 개웃기네 보컬 레전드라더니 설레발이 레전드인 듯]
[- 벌써부터 타 연생들 후려치면서 즈그 픽이 제일인 줄 아는 X덕들 때문에 서인수도 비호감 되는 거 시간문제라고 예상해 봄]
[- 망인수 팬들 8년 연습생 기다리더니 객관화 능력 박살 나서 망서바에서 초반 1위 한 걸로 행복 회로 ㅈㄴ 돌리는 중ㅋㅋㅋㅋㅋㅋ]
대놓고 내 이름을 서치하는 팬들이 보도록 저격한 게시글이었다.
팬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견고해진 이후라면 이런 어그로쯤은 단체 신고로 없애 버릴 수 있겠지만.
아직은 숫자만 많고 안정된 팬덤이 아니었던 탓에, 몇몇 팬들이 어그로가 끌려 관심을 주고 있었다.
[└ 타 연생이랑 비교하는 글 때문에 속상하신 거 알겠는데 써방 부탁드립니다. 가수 본인이 볼 수 있잖아요.]
[└ ㅋㅋ데뷔도 못 했는데 가수? 그러니까 니들이 처맞는 거임]
[└ 말이 좀 심하신 거 같은데 글삭 해 주시면 안 될까요?]
[└ 연생 주제에 구정물 팬이나 붙어서 회초리질하고 다니는 거 봐라ㅋㅋㅋ 수준 알 만하다]
‘그냥… 그냥 무시하시면 돼요.’
이 정도의 하급 어그로 정도는 몇 번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면전에 대고 듣는다면 좀 신경 쓰이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욕은 뭘 어떻게 해도 먹는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은 좋아해 주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한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위해 보답하기도 바쁜데… 시비 걸기 위한 시비에 상대해 줄 시간이 어디 있어.’
서인수 연습생의 하차를 요구합니다. 시위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 헤이터들의 트집은 성공의 BGM 같은 거였다.
나는 그런데… 아직 팬들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시하면 되는 악플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대응하는 걸 보니 혹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행위가 즐거운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를 지키기 위해 팬들이 괴로워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었다.
‘당장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나는 그나마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압도적이기라도 하지.
어제 방영된 3화분까지 이렇다 할 활약 없이 편집되거나 혹은 자극적인 부분, 또는 엉망진창이었던 부분만 짧게 등장한 연습생들은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었다.
‘……화이팅.’
여기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기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짧은 응원을 하고는 제일 걱정이 많았던 유지원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예상한 것보다 평이 좋았다.
일단 음색이 이렇게 거슬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깔끔한 미성의 보컬이 흔치 않은 것도 있었고.
[-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이 유지원인지 구분이 안 됨. 오른쪽이 좀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다들 인정하는 바이신지?]
인터넷에서 몇 년 전 귀여운 걸로 유명했던 강아지와 쏙 빼닮은 외모가 화제가 되어 사방에서 난리였다.
위 사진의 오른쪽은 예의 강아지였다.
‘주접도 나날이 진화하는군….’
거기다 단체 PV 촬영과 첫 조별 무대 조 편성과 연습 과정을 담은 3화에서 유지원이 꽤나 비중 있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밀어주는 만큼 피드백이 돌아왔다.
와중에 우리 조에 기대주가 몰려 있다던 비안의 말이 과정이 아니었던 걸까.
한창 연습 중인데 연습실에 방송국 국장이 찾아오는 바람에 라면을 먹다 뱉을 뻔했다.
연습실에서는 냄새나는 음식물의 취식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따로 단속을 하거나 적발된 사례는 없어서 암암리에 다들 눈감아 주는 걸 믿고 먹는 편이었다.
‘컵라면 먹으면 안 된다고 제작진이 내쫓으러 온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국장이 나를 콕 집어서 만나서 격려하고 싶다고 했단다.
느닷없이 면발을 끊고 일어나서 인사를 받은 나는 해맑게 웃으며 국장과 셀카를 찍어야 했다.
‘뭐… 그럴 만도 한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방영사 중에서는 비교적 후발 주자에 해당했기 때문에 KMB는 제대로 히트시킨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내가 압도적인 화제성으로 시청률을 끌고 가고 있으니 난데없이 효자 취급을 받게 된 것이었다.
‘제작진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 건 확실히 좋은 일인데….’
얼굴이 알려진 만큼 그림자도 드리워지는 상황에서 다른 조원들이 위화감을 느낄까 뒤늦게 걱정이 됐다.
‘특히 임희록 너 말이다.’
국장과 어깨동무를 하고 셀카를 찍은 다음 꾸벅 고개를 숙여 배웅하는 모습을 본 임희록이 쳇, 소리가 들리게 혀를 찼다.
‘제작진이랑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야?’
확인하고 싶었지만 막상 본인이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무슨 죄짓다 걸린 사람처럼 반응하는 바람에 캐물을 수도 없었다.
“…!”
봐. 지금도 저쪽이 쳐다봐서 마주 본 것뿐인데 뭐 저렇게 화들짝 놀라냐고.
‘하여간….’
어쨌든 임희록도 당장은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고 있고.
정은찬도 면담 이후 실시한 특단의 조치가 성과를 발휘하고 있는지 상당히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
임희록 따위는 무시한 채 박자를 쪼개는 디테일한 동작을 배우기 위해 주혜성과 제현호에게 둘러싸여 있던 정은찬을 바라보자 정은찬이 픽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귓불이 단풍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먹혀서 다행이야.’
충분히 능력이 있는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다뤄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도한 방법이 기대 이상으로 잘 먹혀들었다.
일명 칭찬 감옥에 가두기 작전.
‘저는 형이 부러운데요. 저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어요. 하지만 형은 아니잖아요.’
박하연과는 잘 지내는 것에서 착안한 전략이었다.
“와, 형 지금 스텝 너무 깔끔하고 좋았어요.”
“아… 그래?”
“네!”
“은찬아! 너 그 연습복 어디서 산 거야? 네가 입어서 그런가, 완전 귀엽다!”
“…감사합니다.”
물론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임희록을 제외한 팀원들에게 협력을 구했다.
“엇, 형 신발도 새로 샀나 보다! 엄청 예쁘네요!”
“…이건 원래 있었어.”
“그래요? 전에는 왜 못 봤지? 전에 신고 왔던 것도 귀여웠는데!”
정은찬도 처음엔 농도 짙은 불쾌감을 표하며 기분 나빠했다.
“다들 미친 거야? 연습이나 똑바로 해.”
하지만 그 표정의 근간이 자기방어인 것을 알아 버린 이상 멈출 수 없지.
은찬을 둘러싼 주입식 귀여움은 멈추지 않았다.
“헐, 혹시 매워서 진순이 말고는 못 먹는 거예요? 달걀까지 넣어서? 와, 대박 귀엽다.”
일개 라면 끓여 먹는 것까지 부둥부둥하기 시작하니 점점 본인도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귀여울 리가?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어쩌면 진짠가? 하고.
매사에 ‘너는 잘하고 있고 귀여워.’를 주입시키기를 수일, 예상외의 반향이 있기도 했다.
‘이게 다른 연습생에게도 퍼질 줄은 몰랐는데….’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는 물론, 식당이나 피트니스실에서도 꾸준히 ‘우리 귀여운 천재 아티스트 정은찬’을 어필했더니 다른 연습생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귀엽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해하던 정은찬이 정말 객관적으로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싫어하진 않는 것 같으니 다행이지, 뭐….’
불안한 요소가 전무한 건 아니지만, 초반의 개판 상태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수준이었다.
이대로 중간 평가도 잘 넘기고 무대만 끝내면 된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몇몇은 다신 보지 말자! 헤어지려던 나의 계획이 틀어진 건.
바로 그 문제의 중간 평가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