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49화 (49/224)

#049. 천재성의 대가 (4)

“다시.”

[불꽃이 다시 타올라~]

“다시 해.”

[불꽃이 다시 타올라~]

“발음 뭉개지 말고 똑바로 하라고.”

[불꽃이 다시 타올라~]

“음이 튀잖아. 집중 안 해?”

여기서 더 험악해질 수 있을까 궁금했던 분위기가 더 처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환장하겠네….’

첫 타자였던 나나 두 번째였던 제현호가 큰 지적 없이 수월히 녹음을 끝낸 반면, 진짜 시작은 세 번째 네놈부터라는 듯 은찬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유지원 보컬이 아직 완성형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긴 한데….’

슬슬 그때부터 지적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더니 주혜성을 거쳐 임희록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영환도 지적을 두드려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임희록과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자아 없이 폭군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할까.

은찬이 지적하면 지적하는 대로 ‘네!’ 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순순히 따랐다.

덕분에 한참을 붙들고 늘어지긴 했어도 폭군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지는 않았다.

‘반면 저쪽은….’

은찬의 가이드를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못 따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계속 가이드와 다른 발음이나 톤을 반복하는 바람에 정은찬의 표정 또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하게 굳어 있었다.

‘…….’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 있는 임희록과 밖에서 굳은 표정으로 부스 안을 노려보고 있는 은찬.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여섯 명의 희생자들.

‘노답이다.’

둘이 화해하기를 바라느니 임희록이 중도 하차해 주기를 기원해야 하는 수준의 냉전이었다.

그때 같은 파트 녹음을 15번째로 빼먹은 임희록이 헤드셋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부스를 뛰쳐나왔다.

“형 저 마음에 안 드시죠?”

우리 머리 위에 촬영용 카메라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야만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X됐네.’

임희록이 헤드셋을 던지고 나오자 정은찬도 지지 않고 맞불을 놓았다.

“너 같으면 마음에 들겠어?”

이쪽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냐.’

이 상황에서는 아이템을 써도 눈에 보이는 거나 속마음이나 다른 게 없을 터였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 X같은 새끼.

속마음: X같은 새끼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든가.

이 정도의 차이겠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임희록은 정은찬의 당당한 표정에 할 말을 잃었는지 씩씩 분을 못 이겨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곤 한 번 더 막말을 내뱉었다.

“형이 작곡 좀 만질 줄 안다고 뭐라도 된 줄 착각하는 것 같은데요.”

‘오….’

‘작곡 좀 만질 줄 안다고’, ‘ 뭐라도 되는 줄 착각’.

둘 다 정은찬의 자존심을 직격으로 건드리는 마법의 키워드였다.

“피차 연습생 신분에 갑질하는 거 더 못 참아요. 피디님한테 가서 말할래요.”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그러나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임희록은 그대로 녹음실을 뛰쳐나갔다.

이로써 우리 팀이 진심으로 X된 건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망했네.’

내 소중한 데뷔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는 건가 잠시 아찔했으나 어쨌거나 나는 이 충돌 사태의 주요 당사자가 아니었다.

임희록이든 정은찬이든 한쪽이 나락을 가는 거지 내게는 치명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니까.’

쟤는 리더라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뭐 하냐, 일각에서 까이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피해자로 프레이밍될 확률이 높았다.

기본적으로 팬층이 탄탄하기도 하고 제작진 측에서도 나를 굳이 악역으로 편집하기엔 나는 버리지 못할 패였다.

외려 말 안 통하는 두 사람 사이에 껴서 불쌍해~ 하고 동정표를 받으면 받겠지.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쯧. 속으로 혀를 차고 정은찬을 보자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슥 다른 조원들의 표정을 살핀 다음 대표로 나서서 은찬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3차 미션은 정은찬과 임희록의 어그로 대잔치가 될 확률이 높았다.

제작진으로서도 둘이 이렇게 서로 이미지 생각 안 하고 들이받았는데 당연히 활용하려 하겠지.

최소한 정은찬은 계륵이기라도 하지, 임희록은 본인 말마따나 X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뿐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진짜 하나도 없어, 하나도.’

정은찬이 임희록만 집어서 괴롭혔다기에는, 오영환이 녹음할 때는 더 가관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오영환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쪽으로 자신을 맞췄고.

임희록은 여전히 자신이 다른 조원들보다 수준이 못 미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것 같은데 왜 자꾸 X랄이지? 내내 딱 이런 표정이었지.’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같이 데뷔할 것도 아니고 평생의 운명 공동체는 더더욱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기를 드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은찬이 지독한 놈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쯧. 속으로 혀를 차며 정은찬을 바라보자 은찬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죽겠다….’

은찬과의 면담 아닌 면담과 이후로도 이어진 녹음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배 째. 튀겨 먹든 구워 먹든 마음대로 해라. 침대에 드러누워 있으니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당연하게도 주혜성이었다.

“고생 많았어…!”

우물쭈물하면서도 그 말은 꼭 해야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피곤한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아니에요. 저만 고생한 게 아니라 다 같이 했죠.”

이건 사실이었다.

임희록이 그렇게 나가 버린 이후 모두 그대로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나는 정은찬을 데리고 다른 연습실로 갔다.

정은찬을 완전히 버리고 갈지, 아니면 데리고 갈지 결정해야 했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을 해결해야 하기도 하고.’

정은찬과 단둘이 녹화 표시가 돌아가는 연습실에 들어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 혹시 여기 출연하기 싫었는데 회사에서 시켜서 나오시는 거예요?’

이 인간한테는 돌려서 말해 봐야 의미가 없다. 시작부터 직구를 꽂자 정은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나는 정은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아이템을 사용했다.

[사용할 아이템을 선택해 주세요.]

[아이템 목록]

[▷진심의 통역기(A)]

[▷호구 방지 안경(B)]

[▶진심의 통역기(A)]

[지금부터 5분간 사용 대상의 생각이 메시지로 나타납니다.]

나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정은찬이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그걸 왜 말해야 하는데?’

그리고 동시에 메시지가 팟 나타났다.

[짜증 나.]

아니, 그건 나도 알아요.

나를 바보로 아나. 허무하리만치 투명한 메시지에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살살 캐 보기 시작했다.

‘형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싶어서요.’

‘왜?’

[왜 이렇게 귀찮게 굴지.]

아니, 진짜~~~ 내가 이런 거 보자고 아이템 썼냐고.

얼굴만 봐도 아는 걸 연달아 뻔히 보여 주고 있으니 속이 탔다.

‘저는 이 무대도 기대해 주신 팬분들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서요. 형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정확히 알아야 같이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형이 원하시는 게 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다른 조원들이랑 얘기해서 최대한 맞춰 볼게요.’

내가 정말 간절하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리며 불쌍한 척을 하자 정은찬이 픽 고개를 돌렸다.

[내가 원하는 거….]

그래, 좀 생각을 하시라고요. 이상한 불평만 투덜투덜하지 말고.

나는 빙긋 쓰게 미소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쓰잘데기없기 짝이 없었다.

‘없는데.’

하… 나는 이마 위로 삐죽 솟으려 하는 핏대를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저희가 모두 군말 없이 형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걸 원하시면 형도 저희를 설득하셔야 하는 거예요. 경쟁이지만 협업이잖아요.’

원론적인 이야기에 은찬이 입을 다물었다. 말을 아예 안 하겠다 이거지.

원래 협상은 강강약약이다.

나는 어차피 어그러진 김에 내 쪽도 세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고 싶으신 게 프로듀싱이면 지금이라도 연습생 하차하고 프로듀서로 합류하세요. 형 작곡도 편곡도 잘하시니까 프로듀서로서 커리어 쌓고 싶으시면 그쪽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만약이라도 정은찬이 정말 나가겠다고 해 버리면… 죄송해요. 제가 말이 지나쳤습니다. 형 없으면 저희 망해요. 안 돼요. 나가지 마세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야 하는 입장이지만.

자긴 아쉬울 게 없으니 멋대로 하겠다는 사람의 진심을 끌어내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는지 정은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안 돼.]

그래,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사람이 좀 말을 하고 소통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요.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은찬을 노려보며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요?’

내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쏘아붙이자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가 잘하는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

‘…?’

뭐야, 왜 갑자기 이런 자낮 같은 생각이…. 당황하기도 잠시 정은찬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말 돌리지 말고 얘기해 보세요.’

순식간에 대화의 주도권이 나에게 넘어온 것이 느껴졌다. 내친김에 정은찬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정은찬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데?]

조개처럼 꾹 다문 입술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말하기 싫어.’

진짜 뭐라는 거냐고. 나는 한 번 더 강수를 두기로 했다.

‘그럼 저도 가서 피디님한테 말씀드릴게요. 도저히 조 협업이 안 돼서 형 빼고 가는 걸로 해야 할 것 같다고요.’

결국 참지 못하고 빼 든 칼에 부러진 건, 다행히도 내가 아니라 정은찬이었다.

‘너는… 너는 아무것도 몰라.’

정은찬이 두 눈 가득 고인 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눈을 홉뜨고 입술을 꽉 깨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비를 쫄딱 맞은 생쥐처럼 불쌍한 얼굴로.

‘?????’

[나는 보컬이 되는 것도 아니고 춤도 별로고 비주얼도 랩도 전부 애매한데. 이게 아니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는 그제야 왜 하연과 이야기했을 때 미션이 완료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돌봐 주기 위해 회사에서 묶어서 보낸 게 정은찬이 아니라 박하연 쪽인가? 아이돌을 하고 싶어서 출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게 정은찬이고?’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팟 밝아지며 축하 메시지가 나타났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클리어!]

[꽁꽁 싸맨 임금님]

[보상 수령]

[등장인물 - 정은찬]

[등장인물 - 박하연]

[호감도 시스템 개방]

[개연성 지수가 [높음]으로 상승했습니다.]

겨우 물꼬가 터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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