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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48화 (48/224)

#048. 천재성의 대가 (3)

주혜성과 함께 연습실로 향한 나는 복도를 쭉 지나치며 비어 있는 연습실을 확인하던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어?”

나보다도 주혜성이 먼저 아는 얼굴을 보고 소리를 냈다.

“먼저 하고 있었나 보네요.”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단 연습실부터 잡고 연락할 생각이었던 녀석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곧바로 똑똑 노크를 한 다음 문을 열었다.

“여기 모여 있었네?”

유지원과 제현호, 오영환이었다.

“앗!”

“마침 톡 하려던 참이었어요…! 앗, 하려고 했어!”

맹하니 어미를 정정하는 것이 유지원. 슥 고개를 까딱이는 게 제현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 간식이었던 듯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가 나를 발견하고 어쩔 줄 몰라 캑캑거리는 게 오영환이었다.

“헉, 우웁, 욱, 켁…!”

“아냐, 그냥 천천히 먹어. 인사 안 해도 돼.”

뭐가 목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얼굴이 시뻘게져 있는 영환을 달래자 주혜성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서둘러 꺼냈다.

“잠깐만. 물 여기 있어!”

쟤들이 미니바에서 떠 온 듯한 물도 저기 있다만…. 미처 알려 줄 새도 없이 영환이 주혜성이 내민 텀블러를 받아 들었다.

꿀꺽꿀꺽. 목젖이 꿀렁거리며 영환이 반쯤 비운 텀블러를 내려놓았다.

“헉, 죄송해요. 갑자기 사레가 들려서.”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됐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전에 주혜성이 가방에서 냅킨을 꺼내 건넸다.

“앗. 감사합니다.”

그 과정이 대단히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오영환 말고 주혜성이.

“쓰레기는 저기다 버리면 돼.”

거기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쓰레기통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 어째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좀 주변 챙겨 주는 걸 유독 좋아하는 스타일인가 싶긴 한데….

“…?”

나는 그제야 아까까지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던 주혜성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도 저 가방 계속 들고 다니던데…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지? 나는 멀뚱히 주혜성과 가방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가방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었어요?”

연습실에서 쓸 거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텀블러랑 스포츠 타월, 혹은 운동화 정도 아닌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의 기준이었다.

“그냥 별거 없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겼어.”

그러자 영환도 호기심이 당겼는지 슬쩍 물었다.

“한번 들어 봐도 돼요? 꽤 무거워 보이는데….”

“앗, 별로 상관은 없는데…. 들어 볼래?”

영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으로 혜성의 가방을 받았다. 그리고 가방끈이 영환의 손으로 넘어간 그때.

“어억.”

영환이 균형을 잃고 푹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다 떨어트리겠다. 조심 좀 하지.”

내가 가볍게 지적하자 영환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헉, 아뇨. 형, 이거 진짜 무거워요.”

무거워 봤자 무슨 군장용 배낭도 아니고 옆으로 메는 스포츠 백이 얼마나 무겁겠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팔을 내밀었다.

“나도 한번 들어 볼게.”

일부러 이것저것 많이 싸 들고 다닌다고 장난치려고 저러는 거겠지.

나는 웃으며 영환에게 가방을 건네받았다가.

“엇.”

영환과 같은 꼴이 되지 않기 위해 팔과 허리에 힘을 빡 주고 버텨야 했다.

“헉, 아니… 형 뭐를 이렇게 많이 넣고 다니세요?”

괜히 영환이 휘청거린 게 아닐 만큼 상당한 무게였다.

이깟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못해도 8kg은 될 거 같은데?

여행용 배낭 같은 것이 무겁다고 하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일이지만.

이렇게 심플하게 생긴 가방이 무거우려면 대체 뭘 넣고 다녀야 하나 가늠도 되지 않았다.

“별거 없는데? 그, 그렇게 무거워?”

8kg이 그렇게 뭐 대단한 무게는 아니다만, 기껏해야 옷 정도 들어 있겠지 가볍게 생각했던 물건이 훅 무거워지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형, 가방 좀 구경해도 돼요?”

영환이 불쑥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혜성이 슥, 주위를 둘러보더니 지원을 비롯하여 다른 조원들도 대체 어느 정도기에 저러나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궁금하면, 응… 문제 될 만한 건 없으니까….”

그렇게 제대로 된 연습을 하기도 전에 냅다 왓츠 인 마이 백을 하게 된 우리는 바닥에 앉아 주혜성을 바라보았다.

“이거는 운동화 갈아신을 거고, 이건 노트북.”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이건 스포츠 타월이랑 아까 영환이 줬던 생수, 이거는 비타민 워터. 이거는 탄산 먹고 싶을 때 마시려고 들고 다니는 발포 비타민이고….”

점점 ‘아니, 기껏해야 3시간도 못 할 연습 가는 건데 이런 걸 왜 챙겨요.’ 싶은 것들이 나왔다.

“이건 핸드폰이랑 블루투스 연결해서 쓸 수 있는 미니 스피커고, 손 소독제, 소독용 티슈, 알코올 스왑, 미니 가글, 민트캔디, 그리고 또….”

마침내 갈아입을 여분의 양말/속옷과 일회용 칫솔, 치약 세트, 담요에 목 쿠션까지 나왔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형 여기서 자고 가시게요?”

그러자 혜성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밤샘 연습이라도 하게 되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반짇고리에 옷핀은 또 뭐야. 이걸 연습실에 왜 들고 다녀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속으로 삼켰다.

“이게 진짜 다 필요한 짐이에요?”

그러자 주혜성이 허둥거리며 항변했다.

“그치만, 들고 다니다 보면 쓰는 때가 있으니까…! 방금도 냅킨 잘 썼잖아…!”

아니, 그건 냅킨이고.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다고요.

조금 전 냅킨도 있으면 좋은 거지, 없어도 그만이었다.

“음… 정말 세심하시구나…. 다 봤으면 이제 정리하고 연습 시작할까요?”

굳이 지적을 해서 안 그래도 낮아 보이는 주혜성의 자존감을 건드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 가길 잠시, 조금 전 경악한 것이 무색하게 도움을 받을 일이 생겼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 안의 진실을 찾아봐~”

연달아 이어지는 고음과 애드리브 브리지에 계속 목을 쓰다 보니 목이 금세 칼칼해졌다.

미니바에서 떠 온 생수로 계속 목을 축이고 있긴 하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뭔가 상큼한 거 마시고 싶다.’

미니바까지 나가기 귀찮기도 하고 미니바에 있는 제로 콜라는 별로 안 당기는데…. 잠깐 주어진 휴식 시간에 미니바를 다녀올지 말지 고민하던 그때.

“…!”

주혜성이 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뭐 마실래? 물 말고 다른 거.”

“음….”

나는 잠시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한 주혜성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뭐, 뭐 있어요?”

왠지 리스트가 하나만 있을 것 같진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응! 발포 비타민 레몬 맛이랑 오렌지 맛, 그리고 제로 레모네이드랑 아이스티 있어!”

그러면서 슥 생수에 타서 마시기 좋게 스틱 형태로 포장된 음료 파우더를 종류별로 내밀었다.

‘예감이 아니라 합리적인 예측이었군.’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혜성이 내민 아이스티 스틱을 받았다.

“아이스티요. 감사합니다.”

“이거 가지고 뭘.”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주혜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 덥다….”

에어컨이 적정 온도로 틀어져 있음에도 계속 목을 쓰다 보니 금세 땀이 났다.

유지원이 손등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자 주혜성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

저건 또 뭐야 했더니만.

다름 아닌 핸디 선풍기였다.

“앗, 감사해요.”

선풍기를 받아 든 지원이 얼굴을 식히는 사이 주혜성이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뭔가를 더 꺼내며 물었다.

“이것도 쓸래?”

파스처럼 붙이는 형식의 쿨링 패치였다.

“아뇨! 괜찮아요!”

지원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자 주혜성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었다.

‘진짜 희한한 인간이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혜성이라고밖엔 말할 방법이 없었다.

저건 뭐 딱히 부정적인 부분은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곧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며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

그렇게 한창 은찬이 배분해 준 파트대로 연습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래서 이유를 어떻게 찾아낸담….’

눈꺼풀을 닫기 무섭게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남은 문제가 떠올랐다.

‘뭔가… 이럴 때 도움이 될 만한 게….’

곰곰이 떠올려 보던 그때, 나는 받고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아이템의 존재를 떠올렸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나는 서둘러 시스템창을 불러냈다.

‘아이템 보기.’

그러자 두 개의 여분 슬롯에 남아 있는 아이템이 깜빡거리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진심의 통역기]

[등급] A

[5분 동안 지정한 대상의 진실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호구 방지 안경]

[등급] B

[5분 동안 열람한 문장의 속내를 해석해 주는 안경. 계약서 등을 작성할 때 사용하자.]

꽤 오래전에 뽑아 둔 아이템 중 전자가 빛을 발할 때였다.

‘내일 써 보자.’

일단 음원 나왔으니까 내일부터는 녹음 시작할 거고, 녹음 나오는 대로 안무 정리해서 같이 공유하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쭉 정리해 보는데 슬슬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설마 누구 하나가 탈주하거나 제작진한테 바꿔 달라고 떼를 쓰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기존 서바이벌 포맷 프로그램에서 1차 탈락 이후 하차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드문 일이기는 하지.’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잠이 들었다.

***

그날 아침, 터벅터벅 식당으로 향해 밥을 먹고 조별 연습실로 향한 나는 묘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꾹꾹 누르며 조원들과 둥글게 모여 앉았다.

‘진짜 꿈까지 개꿈을 꿔서는….’

피로가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나는 꿈에서 내내 까마귀와 못생긴 비버에게 물어뜯기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둘이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하며 싸우는 바람에 말리다가 둘의 공격을 내가 온몸으로 받아 내고 말았다.

‘왜… 하필 까마귀랑 비버지….’

의문을 떨치지 못한 채 연습실에 도착한 나는 정은찬이 어제 입은 프린팅 티셔츠에 까마귀가 그려져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 비버는….’

역시 저놈이군.

나는 흘끔 임희록을 바라보았다. 옹졸한 하관과 두드러진 앞니가 나쁜 의미로 비버 상이었다.

‘제발 오늘은 둘 다 좀 얌전히 넘어가라.’

나는 아이템을 언제 쓰면 좋을까 타이밍을 재며 정은찬에게 협력했다.

“우선 어제 나눈 파트대로 쭉 맞춰 보고 이의 없으면 바로 녹음하러 갈까요?”

다른 조들은 아직 편곡 음원이 나오기 전이라 지금 연락하면 별도 예약 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희록이 상당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큰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녹음만 하면 이제 큰 변동은 없을 테니까….’

최대한 안무에서 포인트를 줄 수 있게 내가 조절해 보든가 해야겠다. 살짝 마음을 내려놓은 그때.

녹음실에 폭군이 한 번 더 요란하게도 강림했다.

‘아, 제발요, 좀!’

이번에는 나도 눈감아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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