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이럴 줄 알았지 (1)
‘뭐 나온 게 없는데 굳이 서치를 해 봐야 할까?’
정말 뭐 말할 게 없었다. 서치해 봐야 인수 나올 줄 알았는데 왜 안 나와? 같은 거나 잔뜩이겠지.
“…….”
그래도 첫방인데 반응 정도는 보자.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방으로 들어와 실시간 반응이 올라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오….”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겟데뷔 서인수가 다 씹어 먹을 거라던 X들 뭐임ㅋㅋㅋ?]
(+236)
올라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은 글인데 댓글이 만선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써 놨길래 어그로가 저렇게 끌린 거냐.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호기심에 게시글을 클릭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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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겟데뷔 서인수가 다 씹어 먹을 거라던 X들 뭐임ㅋㅋㅋ? (+236)
[본문]
응 통편집~
8년 연습생 실력파라고 바이럴 오지게 하더니 실력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실ㅋㅋㅋㅋㅋ력ㅋㅋㅋㅋㅋ파ㅋㅋㅋㅋㅋ??(???*)(동영상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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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놓은 영상은….
‘저게 대체 몇 년 전 거야?’
내가 NO뉴페이스로 공개되고 얼마 안 돼서 유명 선배 그룹의 백업 댄서로 올랐던 무대 영상이었다.
‘아.’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원래 춤에는 그렇게까지 소질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봐줄 만하게, 아니 웬만한 댄서 포지션 현역들보다 잘 추는 이유는 단순했다.
‘죽어라 연습했으니까.’
나는 당연히 노래를 시킬 줄 알고 입사한 건데, 회사에서는 보컬은 이미 완성형이니 쓸데없이 건드리지 말고 춤이나 집중하라고 춤 트레이닝을 쳇바퀴처럼 굴렸다.
‘아무리 굼벵이라도 춤 연습만 12년을 하면 성장이라는 걸 할 수밖에 없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못하는 꼴을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잘해야 하는 무대에서는 확실하게 잘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생트집조차 잡히지 않도록. 그게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비웃음당하지 않게.
그게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사는 직업군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게시글에서 첨부한 영상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영상이었다.
‘나 대체 몇 살이었지, 저 때?’
햇수를 카운트해 보니 16살이었다. 어쩐지. 이야… 어리다…. 나는 새삼 보송보송하고 젖살이 남아 있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저 때가 키가 175이었나. 딱 10cm만 더 크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었는데.
결국 10cm는 못 채웠고, 그래도 십의 자리 숫자는 바뀌었으니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뚝딱거리긴 하네. 미치겠다….’
나는 박자가 밀리지 않도록 결연한 표정으로 관절을 삐걱거리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며 거의 울 지경으로 포복절도했다.
이건 오히려 나한테 5년 사이에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모두 나와 고만고만한 생각인지 베스트 댓글의 추천 수가 벌써 500을 넘기고 있었다.
[베스트 1위]
- 생활 정보: 서인수 연습생 저 때 열여섯이었다
└ 지금 몇 살인데?
└ 21
└ 아 미친 동영상 화질 낡은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스트 2위]
- 이거 바이럴인지 어그로인지 진짜 구분 안 가서 10분째 머리 굴리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요즘 바이럴 진짜 신기한 방식으로 하네ㅋㅋㅋㅋㅋㅋㅋ└ ㄴㄴ바이럴 아님 서인수 지금 개인 연습생이라 소속사 없음
[베스트 3위]
- 2화에 몰아주려고 편집한 듯 지인이 방청객 무대 보고 왔는데 진심 서인수와 아이들 수준이라던데 └ 인수바바와 98인의 연생└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립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 누가 빛삭 스포 안 해 주나 무대 너무 궁금함ㅠ
그렇지 않아도 다들 1화에 내 분량이 없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반응은 당장은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고.’
나를 제외한 다른 연습생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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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겟데뷔 달리는 사람? 들어와서 누구 잡았는지 댓글로 말해 보자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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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제일 댓글이 많군. 작성자가 올려 둔 사견은 쭉 패스하고 댓글만 확인했다.
- 서인수
- 서인수
- 공민형
- 서인수
- 아진
- 박하연
- 표영인
- 서인수
- 송한결
- 조영찬
- 서인수
- 서인수
- 공민형
확실히 내 이름이 많이 보였다. 거의 하나 걸러 하나 수준으로.
내가 데뷔조 망태기에 넣어 둔 녀석들도 간간이 보였다.
‘확실히 잘하긴 하니까.’
아직 언급이 안 되는 녀석들은 1화에 방영되지 않은 연습생들이었다.
‘나는 1화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해당 부분을 지적하는 댓글들도 보였다.
- 서인수 재데뷔임? 1화 통편집이라면서 픽 개많네
└ NO 지하실에 오래 처박혀 있어서 그럼
대신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어그로성 글과 마찬가지로 바이럴을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가당치도 않았다.
‘내가 그럴 돈 있으면… 부모님 내복 사 드렸지….’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경황이 없는 분들은 아닌데?’
나는 벌컥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
냅다 아버지를 부르자 거실에서 안마의자에 앉아 노곤노곤하게 졸고 계시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어이구, 깜짝이야. 무슨 일이니?”
나는 부디 아니기만을 바라며 물었다.
“혹시 저 뭐 댓글 알바 같은 거 고용하신 거 아니죠?”
아직 부모님은 ‘서인수’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계신 상태는 아니니까. 괜한 의심이 떠올랐다.
계속 신경 쓰고 찝찝해하느니 확실하게 물어보는 게 나았다.
다행히 아버지의 반응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그 자체였다.
“응? 댓글 알바? 그게 무슨 소리냐?”
본래 거짓말을 잘 못 하시는 분이라 사기를 어디서 당하고 왔으면 당했지, 칠 일은 없는 분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이건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신데.’
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하셨으면 됐어요. 주변 분들한테 저 뽑아 달라고 뭐 주고 이러시면 안 돼요? 밥 사 주시는 것도 안 돼요! 저 프로그램에서 짤려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일부러 겁을 줬더니 아버지가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가 절대 너 피해 갈 일 없게 얌전히 있으마!”
한번 말씀드린 건 허투루 듣지 않는 분이시니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고.
일단은… 안심해도 되는 건가. 앞으로 방영이 계속되면서 어떻게 엎치락뒤치락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당장은 내가 압도적이긴 하니까…. 조금 안심이 되자 바로 다음 무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순서대로면 다음엔 뭐였지?’
통상적으로 1차 무대는 커버, 2차부터는 오리지널곡을 준다.
‘그편이 저작권 활용하기 편하니까.’
명곡이 터져서 음원 차트 순위에 오르면 홍보가 되니 좋고, 나중에 투어 돌릴 때도 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진다.
‘데뷔하자마자 콘서트 돌리길래 대체 뭘 하는가 했더니 다 오리지널곡 가져와서 하더만.’
이번에도 공식적인 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이번엔 보컬곡 하고 싶다.’
아니면 최소한 보컬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역발상으로 힙합곡을 받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나머지 멤버들 다 랩 파트로 보내고 내가 브리지랑 코러스 다 하면 되니까.
아니면 락 발라드 같은 것도 좋아. 밴드 컨셉으로 각자 연주하는 모습을 연출만 해도 괜찮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잠이 쏟아졌다.
간만에 영인의 그 X같은 모닝콜, 해피모닝걸-대선배님 리미의 10년 전 2집 수록곡-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일주일 후.
다시 짐을 싸서 태복 수련관으로 향한 나는 한결 수가 줄어든 연습생 무리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찾아냈다.
“오, 오랜만… 이에요!”
반말을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 무심코 반말을 썼다가 버벅거리는 건 유지원,
“Hi~.”
쓸데없이 원어민 발음으로 인사하는 건 영인이었다.
“둘 다 잘 지냈어?”
내가 안부를 묻자 거짓말을 못 하기로는 우리 아버지 못지않을 것 같은 지원이 안절부절 대답을 얼버무렸다.
“네, 잘… 지낸 것 같아요.”
같아요, 는 뭐야. 너 뭐 사고 쳤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영인을 바라보자 영인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공지를 붙여 놓는 게시판 쪽을 가리켰다.
[주방 무단 사용 엄금]
[- 적발 시 퇴실 조치 예정 -]
“……?”
이 새끼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영인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불났어요!”
“뭐?”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누구인지 모를 연습생이 밤에 몰래 라면을 끓이려다 냄비를 태워 먹었다고.
물을 올려 두고서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대로 잊어버리는 바람에 시설 관리자가 화재 경보음을 듣고 달려와 불을 껐단다.
‘진짜 누구인지 미친 짓을….’
이건 외부로 유출되면 무개념이라고 욕먹고 데뷔도 전에 이미지가 방화범으로 굳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너네가 불낸 거 아니지?”
그러자 영인이 누굴 뭘로 아냐며 억울해했다.
“저는 잘 먹고 설거지까지 해 놨거든요!”
“저는 진짜 안 했어요!”
반응을 보니 둘 다 범인은 아니군.
64명의 생존자 중 기숙사에 남은 건 4분의 1 남짓. 용의자가 될 만한 수가 많지 않았다.
‘설마 걔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나는 혹시나 싶어 대기실에서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제현호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무뚝뚝한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 불낸 거 너 아니지?”
본인도 나랑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제현호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아니에요.”
“그럼 됐다.”
아무튼 내 관리하에 있는 녀석이 저지른 게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제 공지될 2차 공개 무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거냐지.
‘제발 조 편성 이번에도 자율로 하게 해 줘라.’
나는 간절히 빌었다. 슬슬 추첨이 나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추첨은 안 돼. 추첨은 안 돼. 반 배정 모자를 머리에 쓴 모 판타지 소설 주인공처럼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다 떠나서 아진과 같은 조에 걸릴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곧 본촬영을 위해 연습생 모두 세트장으로 이동해 달라는 지시가 있어 나는 머리가 복잡해진 채로 걸음을 옮겼다.
[반갑습니다, 연습생 여러분!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소년들의 무대! 겟 데뷔 위드 미!]
[지난주 1차 탈락을 앞두고 다들 멋진 무대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겟데뷔의 3차 미션! 2차 탈락을 앞두고 여러분은 절반으로 줄어들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조 편성은 어떻게 할 건데.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MC를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영광스러운 세 번째 무대! 3차 미션의 주제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힘껏 손짓하는 비안의 뒤로 스크린에 커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Legend]
영문을 알 수 없는 키워드에 다들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