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설렘보다도 (4)
“진순아, 잠깐만 형 좀 봐주라.”
다급히 애원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나는 얼굴이 흥건하게 침 범벅이 되고 나서야 30kg짜리 털 뭉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축축한 침을 소매로 닦아 내며 묻자 양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아들 이제 완전 연예인인데 어떻게 버스 타고 오라고 해. 촬영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데리러 와야지.”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괜찮은데. 나는 고마운 한편 죄송한 마음이 더 커서 쭈뼛거리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아버지뿐이라는 것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긴데…….’
뒷좌석에는 웬만한 어린이보다 큰 덩치의 진순이가 얌전히 안전벨트를 매고 앉았다. 차멀미는커녕 차 타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나도 그냥 기숙사에 남을 걸 그랬나.’
불현듯 스친 후회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설 때 더욱 선명해졌다.
[<경>105동 서인수 군 겟 데뷔 위드 미 출연<축>]
“…….”
내가 입구에 휘황찬란하게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지자 양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아유,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그래! 동네 주민끼리 응원도 해 주고 그러면 좋은 거지. 그거 뭐, 나중에는 투표도 하고 그런다며?”
나는 필사적으로 좋아서 그러신 거다, 이건 절대 트롤이라든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로 하신 게 아니다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워야 했다.
어차피 본가에서 일상 촬영하면 내부 구조나 전경 보고 다 알아차릴 것 같긴 한데.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크다면 큰 문제였다.
‘왜냐면….’
내가 사용하려는 전략은 어쨌거나 동정심 유발인데, 입양아는 입양아인데 이 새끼 잘사는 집 아들이었네? 하고 알려져 봐야 크게 좋을 게 없으니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부티, 금수저 연예인 그렇게 좋아하더만.
불쌍해서 좋게 봐준 사람이 사실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면 또 싫어한단 말이지.
‘100% 금수저 논란 뜰 거 같다.’
어차피 요즘 시대에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라 감출 생각은 없었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여유가 많은 편이었고 그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친부모님의 빈자리가 있었어도 유복한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그덕에 내가 스물여덟까지 변변찮은 일자리도 없는데도 계속 연습생을 할 수 있었던 거고.’
그즈음엔 오히려 해외 유학을 넌지시 제안하시기도 했었던 게 생각났다.
‘그건 그거대로 도피하는 것 같아서 거절했지만.’
아무쪼록 논란이 일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이 내게 너무 불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최대한 혹시라도 가난하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연습생…… 같은 이미지가 붙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겠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가 주차장에 닿았다. 집에 도착한 것이 아쉬운지 진순이가 뒷좌석에서 끼잉 소리를 냈다.
“끼잉은 무슨 끼잉이야.”
내가 장난스럽게 콧잔등을 간지럽히자 진순이가 작게 짖었다.
“왕-!”
이따 1화 방영도 봐야 하는데 벌써부터 너무 머리 아프게 걱정하지 말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삼키며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올라갔다.
***
간만에 세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마치고 TV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얼마 남지 않은 방영을 앞두고 겟데뷔 예고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를 출신으로만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때마침 사전 인터뷰때 땄던 녹음이 요란하게도 흘러나왔다.
악, 아악. 각종 영상 매체에 내가 나오는 걸 지켜보는 건 그런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또 처음이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야, 우리 인수 예고편에도 나오네!”
그야 아무래도 제가 확실한 어그로를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얼굴에 대고 손부채질을 하며 화면을 외면했다.
1화랑 2화는 아마 등급 평가랑 단체 PV 연습, 촬영 이런 거만 나갈 것 같고.
진짜 잘하거나, 못하거나 양극단만 보여 주는 맛보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한데…….
마침내 길고 긴 드라마 시간이 끝나고 프로그램의 로고가 선명하게 떠오른 순간.
‘이제 시작이다.’
나는 짧게 헛기침을 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
한편 방청객 초청 무대 다음 날. 엄청난 숙취와 함께 비척비척 일어난 승죽은 SNS에 새롭게 로그인되어 있는 계정을 확인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수덕질하는사람]
뭐야, 이 계정명. 바이오에는 심플하게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인덕이라고 부르세묘]
이걸 내가 언제 만들었어.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기억도 같이 휘발된다고. 승죽, 이제는 인덕은 가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조진 고기와 함께 기억을 헤치고 헤쳐 가까스로 어젯밤 일을 기억해 냈다.
‘닉네임 추천받습니다.’
인수 잡을 거면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고 주변에서 하도 닦달을 해 대서, 그래 계정은 만들어 둔다고 대답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걸 그새 계정까지 만들었냐….’
팔로워 0 팔로잉 0의 계정은 그야말로 순백의 텅텅 그 자체였다.
‘당장은 올릴 것도 없는데 뭘….’
까지 생각하자마자 지금까지 공개된 예고편이며 1분 어필 영상이며 자잘한 클립들이 좌르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있구나.’
거기다 새벽 사이에 도착한 메일 알림을 보니 XOXO가 자신이 찍은 인수 사진들을 정리해서 보내 두기까지 했다.
‘하…. 내가 원래 이거 돈 받고 파는 건데 특별히 승죽 님이니까 그냥 드리는 거예요.’
재빨리 컴퓨터를 부팅하고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까마귀답게 사진 찍는 실력 하나만큼은 예술 같았다.
간단히 보정도 하긴 했는데 원판이 워낙 괜찮아서 크게 손댄 부분은 없다는 코멘트가 덧붙여져 있었다.
‘진짜 이 정도면 회사에서 돈 받고 찍어도 될 수준인데….’
어쩜 이렇게 인물이 잘 나오는 각도, 잘생긴 샷을 잘 캐치해 내는지 벌써 수년을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혹시 전문 사진 기자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때 돌아온 XOXO의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승죽 님이 얼굴로는 죽어도 영업할 수 없는 본진을 잡아 보세요. 이건 생존 능력이거든요.’
XOXO는 승재를 잡기 전 꽤 오래 실력파 그룹을 덕질 했었다고 했다.
‘그땐 제가 아직 남자 볼 줄을 몰라서. ㅎ’
깔끔하고 쌈박하게 과거의 덕질을 정리한 그가 나중에 보여 준 옛 사진들을 보니 승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재창조다…. 이 수준이면 진짜 회사에서 홈마한테 돈 줘야 한다.
그런 험난한 덕질을 거쳤기 때문일까. 20대 후반의 찍덕이 된 XOXO는 모든 걸 초월한 채 얼굴만 보는 지옥의 얼빠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잘생겼으면 돼. 음치고 뚝딱이고 실력 모자란다고 욕하면 걔네 본진 찾아서 내가 찍은 실물 사진 한 5번쯤 보내 주잖아? 그럼 내려 달라고 울면서 욕한다니까?’
누가 이 여성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나….
승죽은 그런 XOXO를 보며 역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탈케이팝을 해야 한다 생각했으나….
결국 본인도 이렇게 다시 연어처럼 돌아와 버린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데이터는 다 정리해 두자.’
요청하지도 않은, XOXO가 망태기에 넣은 픽들도 몇 명 섞여 있었으나 이들은 승죽의 알 바가 아니었다.
일단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맘대로 써도 된다고 했으니까… 메인으로 걸어 둘 이미지부터 만들자.
[인수덕질하는사람]
아무리 봐도 세련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닉네임을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로고로 디자인하자 그럴듯한 워터마크가 만들어졌다.
미니 팬 미팅 때 찍은 사진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컷으로 골라 로고를 박은 승죽은 심호흡을 한 다음 게시글을 올렸다.
[@인수덕질하는사람
Since 1X0621~
네 목소리가 세계에 닿을 때까지]
아래의 적을 문구는 세 번쯤 지웠다가 다시 썼다. 오만 낭만적인 시구와 글귀들을 승재를 덕질 할 때 다 써 버리는 바람에 괜찮은 멘트가 없었다.
하지만 인수 보컬이 월드 베스트 클래스인 건 부정 불가능한 팩트니까.
메인용 게시글을 올리고 클립을 따서 편집해 둔 1분짜리 영상과 GIF 파일, 다운로드 링크 등을 정리해서 올리자 서치로 찾아낸 듯한 팔로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늘이 1화 방영이었나……. 그럼 팔로워 붙는 거 봐서 바로 광고 서포트 모집부터 할까.’
사진은 예쁘게 찍어 둔 게 많으니까 특전이랑 이것저것 준비하면 될 거 같고.
본격적인 본진으로 삼고 나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아진 인덕이었다.
***
그리고 잠시 후, 1화 방영을 앞두고 방송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은 인덕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이었다.
‘하… 전부 빨리 감기로 넘기고 인수 거만 보고 싶다.’
승재를 덕질 하는 기간 내내 기적의 개인 팬 마인드로 모든 활동을 견뎠던 인덕은 기본적으로 최애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몇 년 전이었으면 개인 팬은 팬 취급도 안 했을 텐데 세상 많이 좋아졌지.
마음에도 없는 올 팬 연기만큼 고역인 게 또 없었다.
서바이벌이면 데뷔 전까지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개인 팬이니 인덕에게는 최적화된 덕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수는 언제 나오는데.’
한참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개인기 수준의 연습생들이 F등급을 우르르 받아 가는 걸 지켜보던 인덕은 방송이 끝나 갈 때에야 자신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수 언제 나오는데!?’
60분짜리 방송이 시작되고 정확히 59분 43초 후, 바로바로 예고편에서야 겨우 등장했다.
“아, 개새끼들 진짜.”
예고편은 1화부터 당장 나올 것처럼 굴었으면서.
1화에서 인수가 잡힌 컷은 원경으로 찍힌 배경의 면봉만 한 얼굴뿐이었다.
‘처음부터 1위 앉았구나….’
역시 자신감…. 자기 객관화가 되는 놈이군. 마음에 들어.
입장 컷조차 없는 그 짧은 힌트 하나로 필사적인 착즙을 돌리며 TV 전원을 끄자 허무한 탈력감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면봉 컷이라도 계정에 올려야지.’
인덕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나 인수나 화면에 잡힌 18초를 편집해서 올렸다.
그중에는 손이나 발만 나온 컷도 포함되어 있었다.
‘2화도 이 꼴이면 진짜 방송국에 불 지르러 간다.’
내가 못 할 거 같아? 인덕이 이를 가는 사이 그 당사자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뭐냐, 이거?’
예고편에서 제법 의미심장하게 비중을 줬길래 1화부터 나오나 기대했었는데.
농담이 아니고 자신이 제대로 확대돼서 나온 컷은 단 1초조차 없었다.
‘장난해?’
내가 빡친 만큼 부모님도 실망하신 건 마찬가지인지 내 눈치만 보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 여기서 아무 말도 안 해서 집안 분위기까지 개판 만들 수는 없지. 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부모님을 달랬다.
“저 2화 때 많이 나올 거라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등급 평가 안 끝난 거라서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안 나올 줄은 몰랐지. 나 또한 속이 쓰렸다.
‘내일모레 촬영 오면 그때는 확실히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핸드폰 화면에 뜬, 촬영 일정을 조정하는 문자에 생각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