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설렘보다도 (1)
‘겟데뷔가 망한 이유가 1차 투표 때 조항준이 1위 해서가 아니었나?’
내 기억으로는 분명 그게 맞았다. 1차 투표는 베네핏이니 뭐니 하는 보정 점수 같은 것도 없이 순수 온라인과 앱 투표로 결정되었다고.
실제 시청자가 아닌 사람도 홈페이지 가입만 하면 얼마든지 투표가 가능해서, 이건 애초에 기획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기고 글을 봤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이랑 방식이 다르지?’
첫 번째 순위 변경이 진행되는 이번 투표는 온라인 투표 없이 현장 투표만 반영된다고 했었다.
내가 갑자기 프로그램에 끼어들어 미래가 바뀐 것 말고도, 다른 것도 바뀔 수 있단 뜻인가?
이 시스템이면 조항준이 1위를 차지할 일은 벼락이 내리쳐도 없었다.
조항준이 포함된 조는 혹평 정도가 아니라 심사 위원들이 불쾌감을 표할 만큼 심한 평가를 받았으니까.
‘그럴 만했지.’
춤을 못 출 거면 뚝딱이기만 하든가. 보컬도 엉망, 춤도 엉망, 시선 처리나 표정은 보는 사람이 더 불안할 만큼 총체적 난국이었고, 그만큼 평가도 아주 가관이었다.
‘멤버들 모두 무대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등급 평가 때처럼, 그저 우스꽝스러운 꼴로 주목만 받으려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그것보다는 다들 자포자기해서 연습을 제대로 안 한 것 같다만.’
그 마음도 이해가 안 되진 않아서 입맛이 썼다.
크몬 콤비가 칭찬과 함께 아쉬운 소리를 들었어도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정은찬은 경쟁에서 이기고도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내가 저따위 놈들이랑 겨뤄야 한다니…… 라고 얼굴에 써 놓은 듯했던 것이 떠올랐다.
‘총체적 난국이네, 진짜.’
그 와중에 조항준 팀에서 그나마 기본기가 돋보였던 멤버라면…… 역시 주혜성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기본기가 있다는 거지. 다른 멤버들과 합을 맞춰 본 횟수가 타 팀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티가 났다.
분명 페어 안무인데 아무리 봐도 페어보다는 서로 버퍼링이 걸린 듯 보이는 구간이라든가….
‘이거 방송에 나가면 100% 클립 따여서 2만 RT로 욕먹는다.’
오랜 시간 케이팝에 뼈를 묻어 온 경험이 내게 확신을 주었다.
단체 MV 수준이 생각보다 좋아 먹지 않았던 욕을 거기서 모조리 흡수할 게 분명했다.
‘그 조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걱정되는 한편, 생각의 흐름이 살짝 샌 것이 느껴져 아차 싶었다.
지금 제일 신경 쓸 문제는 그게 아니지.
왜 갑자기 진행이 바뀐 거지? 아진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NO에서 입김이라도 넣은 건가?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다. 초반에 상위권에 머물러야 주목을 받을 수 있는데 두 번째 순위부터 조작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온라인 투표 데이터로 결정짓게 했다간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아진이 아무리 내 기준에는 성에 안 차는 실력이라 해도 다른 연습생들에 비하면 준치였다.
당연히 무대 경험이 없는 연습생들과 비교하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굳이 조작하지 않아도 상위권에 알아서 들 테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투표가 시작될 즈음에는 팬덤이 붙겠지.’
여러모로 아진에게는 온라인 투표가 늦어질수록 이득이었다.
‘당장은 의심뿐이고 심증이라고 볼 수도 없으니….’
일단은 지켜보자. 내가 굳은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자 영인이 느닷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뭐, 뭐야….”
갑작스럽게 끼어든 영인이 내 코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형, 봤어요? 오늘 파이널 사전 예고 올라온 거.”
이제 막 정리하고 자리에 누운 참이라 아직이었다.
“아니, 아직. 유튜브에 안 올라온 것 같았는데?”
“포털뮤직 채널에 먼저 떴어요. 거기 단독 공개인가 봐요.”
“아.”
나는 미니 팬 미팅용 포토월에 새겨져 있던 초록색 로고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괜찮게 나왔어?”
대대적으로 뿌리는 것도 아니고 단독 공개 예고편이라면 크게 영양가 있는 게 들어가 있을 리 없었다.
“저는 1초도 안 나왔어요!”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포털뮤직에 들어가 겟데뷔를 검색했다.
파이널 예고편으로 등록된 영상이 30분 전 업로드 배지를 달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약간의 기대와 함께 재생 버튼을 누르자 곧이어 나온 화면은 지금까지 공개한 영상의 짜깁기였다.
[빛나는 무대를 향한-! 99명의 소년들의 열정-!]
[꿈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마지막 데뷔 무대에 오르기 위한 긴 여정과 함께하라-!]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들 아니까…….]
[두둥-! 두두둥, 두둥-!]
[좀 더 색다른 걸 보여 줄 수는 없어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99명의 소년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여기까지는 무난했으나 그다음에 이어진 장면에 나는 그대로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와…. NO에서 둘이나 나왔어?]
[둘이 아니라 하나지, 저건.]
얼굴도 본 적 없는 연습생들끼리 웅성거리는 장면이 나오더니 곧이어 나와 아진이 교차해서 화면에 잡혔다.
[겟 데뷔 위드 미.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MC인 비안의 깔끔한 목소리와 함께 56초짜리 영상이 끝이 났다.
“…….”
아주 NO로 화제성 뽕을 뽑아 먹으려고 작정했네. 포털 사이트의 뉴스 연예란을 들어가자 대번에 받아쓰기식으로 작성된 기사가 몇 개 눈에 띄었다.
[NO 현역과 NO 출신의 대결]
[홍 실장의 Check it Point - 첫 시즌인 겟데뷔가 기대되는 이유]
[NO뉴페이스 출신 서인수, 고향 같은 회사에 칼끝 겨누나]
겨누긴 뭘 겨눠. 내가 혼자 나가려고 했던 걸 저놈이 끼어든 거지.
이건 뭐 댓글로 반박을 할 수도 없고….
말없이 브라우저를 내리고 SNS 알림창에 들어가자 메시지와 멘션이 쌓여 있었다.
[인수야 밥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지? 너의 도전을 항상 응원하고 함께할게! 인수 덕분에 언제나 힘을 얻는 누나가]
[누구보다 열심히 인수! 날씨 점점 더워지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항상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최선을 다하자 화이팅!]
[예고편만 봤는데 벌써부터 잘했을 거 생각하니 너무 기대된다]
하나하나 쭉 내용을 확인하고 캡처해서 이미지 폴더에 저장해 놓자 영인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우와. 이런 게 벌써부터 와요?”
벌써부터… 라고 해도. 공개 연습생으로 활동한 시간이 워낙 길어서 많진 않아도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 주는 분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감사했고, 수년이 지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그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아이돌 연습생으로서의 인생이 완전히 끝났음을 실감했다.
“너도 SNS 공개하면 올걸. 이렇게 직접 보내는 메시지 말고도 이런 식으로도 많이 해.”
내가 예시로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을 하나 콕 집어 소통용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여 주자 영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아아아, 이게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그럼 뭔 줄 알았는데?”
다른 건 빠삭하게 꿰고 있으면서 이건 또 자세히 몰랐다니. 의외다 싶어서 물어보니 영인이 생각도 못 한 답을 내놓았다.
“이거 그… 돈 내고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건 따로 있어. 벌룬이라고.”
“아, 따로 있는 거예요? 어쩐지 디자인이 다르더라.”
나는 벌룬 앱을 켜서 각 소속사별로 정리되어 있는 리스트를 보여 주었다.
“여기서 결제해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보내면 아이돌이 읽고 답을 해 주기도 하고 그냥 공지 같은 걸 보내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어떻게 쓰는 건지는 저도 알아요. 아아, 이게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이 자식 꽤 골수 오타쿠처럼 보였는데 덕질을 뭘 어떻게 해 온 거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럼 너 지금까지 이런 거 어디서 봤어?”
그러자 천진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사는 친구가 타임라인에 올려 주는 걸로 봤어요!”
“앞으로는 결제해서 봐. 이것도 다 유료 서비스야.”
“얼마예요?”
나는 친히 이놈의 핸드폰에 벌룬 앱을 깔아서 결제까지 해 줄 생각으로 폰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곧 왜 이놈이 벌룬과 SNS 소통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너 이거 대체 언제 산 거야?”
액정에만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갈라진, 사망 선고를 내리기 직전 수준의 아이폰 초기 기종이었다.
“삼촌이 쓰던 걸 선물로 받아서 잘 몰라요.”
앱 폴더에는 웬 알 수 없는 각종 영어로 된 앱이 잔뜩 깔려 있었고 대체 얼마나 오래됐는지 브라우저를 한 번 여는 데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그럼 평소에는 핸드폰으로 뭐 해?”
“노래 듣고 유튜브 보고 인터넷하고?”
“인터넷은 뭘 하는데.”
“팬 카페 돌고 팬 커뮤 보고 동영상 봐요.”
진짜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겨우 벌룬 앱을 받아서 메인 화면에 들어가자 소속사와 아티스트 목록을 본 영인이 흥분해서 외쳤다.
“저 리미 구독할래요. 아, 주원이랑 경주도요!”
나는 이 녀석이 또 어디서 말실수를 할까 두려워 재빨리 정정했다.
“이제는 리미 선배님, 주원 선배님, 경주 선배님이라고 해.”
그러자 영인이 납득이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도요?”
“이제 일반인은 아니잖아. 선배님이라고 해.”
“넵.”
일단 영인이 말한 아티스트들을 찜 리스트에 넣고 구독권을 결제하려 하자 짧은 멘트가 떴다.
[결제 수단을 등록해 주세요.]
“너 뭐로 결제할 거야?”
내가 빨리 카드라도 내놓으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자 영인이 냉큼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제 전 재산 2분의 1이에요!”
“…….”
이 새낀 일부러 바보인 척하는 호랑이인가 아니면 진짜 바보인가 헷갈릴 때가 많았는데.
‘가끔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는 바보였군.’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 정도는 맞을 때가 있으니 빈도수도 비슷했다.
“이걸론 안 돼. 나중에 은행 가서 카드 만들어 와.”
얘 입소하기 전에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낸 거지? 이건 뭐, 외국인이 아니라 자연인인가? 나도 모르게 경악한 그때.
누군가가 똑똑 기숙사 문을 두드렸다.
“……? 뭐지?”
슬슬 소등 시간이라 다들 어련히 숙소에 틀어박혀 있을 시간인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문을 열자 조금 전까지 지겹도록 봤던 얼굴이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뭐야?”
“셀카 좀 찍자!”
“뭐?”
조금의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는 뻔뻔한 낯짝. 이규민이었다.
“아, 셀카 좀 찍자고. 사진 몇 번 찍는다고 얼굴이 닳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느닷없이 들이밀어진 카메라에 훅 허리를 숙여 화각에서 몸을 숨겼다.
“야. 아니,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얼굴을 가린 채 규민의 셀카 렌즈를 쥐고 손으로 덮은 다음 물었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자 규민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친한 척 좀 하려고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