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34화 (34/224)

#034. 너는 진짜 아니다 (1)

시작은 가볍게 등을 맞댄 후 턴이었다. 내가 왼쪽으로 팔을 꺾어 허리를 숙이면 이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윗부분을 채우는 식으로 가볍게 합을 맞췄다.

댄스 브레이크에 맞춰 시작된 페어 안무에 조명이 우리 두 사람만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강약을 깔끔하게 조절해서 마치 잘 짜인 격투 씬을 보는 것 같은 안무가 이어지기도 잠시.

문제의 옆 돌기를 해야 했던 파트가 되자 나는 규민의 멀쩡한 손을 꽉 움켜쥐고 그대로 한 바퀴 엎어 치듯 돌렸다.

“와, 미친.”

“뭐야, X발. 미쳤나 봐, 진짜.”

강한 반동에 의해 몸이 돌아간 규민이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하고는 그대로 나를 당기며 반작용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풀고 바닥을 향해 쓰러지기 직전까지 몸을 기울였다가 일어나 규민을 마주 보고 섰다.

그랬다. 옆돌기와 과격한 동작은 빼지 않되 규민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

내가 떠올린 건 규민이 왼쪽 손목을 쓰지 않고도 옆 돌기를 할 수 있도록 페어 안무로 수정하는 것이었다.

‘죽어도 나까지 주목받는 것도 싫다고 버티면 니 잘났다 하고 나도 놔 버릴 생각이었는데.’

이규민은 실익이 뭔지 아는 놈이었다.

놈은 좀 불만스러운 듯 입꼬리를 우물거리더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수정된 것이 지금 안무.

나는 가볍게 놈과 어깨를 부딪히며 뒤로 이동했다. 그 후 규민의 어깨를 누르고 그 위에서 견착하는 것처럼 쭉 뻗은 왼팔의 팔꿈치를 잡고 가볍게 당겼다 되돌렸다.

이걸로 댄스 브레이크는 마무리였다.

‘끝났다.’

마침내 마지막 소절까지 마무리되고.

나는 마지막 센터 차례의 멤버를 둘러싸고 주먹으로 바닥을 찍은 채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건 어떻게 악마의 편집을 하더라도 화제가 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얼굴로 박수 치는 것도 잊은 채 넋이 나가 버린 것이 그걸 증명했다.

‘심사 위원 쪽은….’

영 마뜩잖은 반응이었던 심사 위원들도 거의 뭐에 홀린 얼굴이었고 댄스 멘토는 아주… 너무 놀라서 뭉크의 절규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뭐가 모자라거나 불만스러워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였다.

이거면 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멤버들의 손을 붙들고 무대 아래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슬쩍 고개를 들 때 보인 마선경은 여전히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혹시 뭐 NO한테 지시받은 거라도 있나. 제아무리 마선경이 혹평을 한다고 한들 이제는 틀어막을 수 없었다.

나는 한결 개운한 기분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지친 몸으로 대기실로 내려와 수건으로 땀을 닦자 예의 F등급이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았다.

“…?”

내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들자 F등급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감사, 했습니다….”

뭐야.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어차피 너도나도 잘해야 유리한 한 팀인 마당에 유세를 떨고 싶진 않았다.

“아냐. 너도 잘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마웠어.”

적당히 흘려넘기자 놈이 무슨 감명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뇨! 저는 형이 끌어 준 대로 따라간 것밖에 없어요! 오늘 무대로 제가 얼마나 부족한 건지 알았어요. 더 연습해서 나중에라도 꼭 형이랑 같은 무대에 설게요!”

하나같이 틀린 말이 없긴 하다만. 어쨌거나 좋은 의미로 자극을 받은 것 같은 얼굴에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열심히 해.”

이것도 잘 정리됐고, 이제는 결과를 받을 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마지막 조까지 무대를 마친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이밍 좋게 스태프가 인솔을 위해 대기실로 찾아왔다.

“가자.”

2주간 개고생을 했으니 만점짜리 시험지를 회수하러 갈 차례였다.

[99명의 소년들의 빛나기 위한 위대한 여정! 겟 데뷔 위드 미! 오늘 이 영광스러운 첫 무대에 함께해 주신 평가단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96명이지만.

MC 비안의 경쾌한 안내 멘트와 함께 객석의 방청객들이 와아아 엄청난 함성을 내질렀다.

존재만으로도 장중을 압도할 수 있는 아우라에 연습생들 또한 땀을 훔치며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금부터, 평가단 여러분들의 선택!! 오늘 경연의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안의 등 뒤로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에 온통 물음표로 채워진 점수 판이 떠올랐다.

[자, 그러면! 오늘의 영광스러운 승자는 누가 될지! 채널 고정해 주시고 잠시 후 확인하시죠!]

예의 60초 후에 봅시다, 타이밍이 이어지고 다들 조마조마하게 심장을 졸이며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조가 이기는 건 뭐… 너무 당연한 상황이고, 지원이든 영인이든 이번 무대는 무난하게 잘했다는 느낌이라 걱정이 되진 않았다.

‘유지원 쪽은 조작이나 팬덤 영향이 있지 않은 한 이길 것 같고, 표영인 쪽이 좀 걱정인데….’

저쪽은 전반적인 밸런스가 깨졌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인 하나만을 내세우는 패로 너무 사용했다고 해야 하나.

가볍게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심사 위원단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예상되었다.

‘방청객 투표가 5, 심사 위원단 점수가 5였나.’

정말 까 봐야만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보컬 유닛부터 점수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란 아픔 A조, B조의 심사 위원 점수를 공개합니다!]

순서는 심사 위원 점수를 먼저 공개하고, 심사평을 전해 들은 후 방청객 점수를 공개하여 승패를 보여 주는 방식인 것 같았다.

‘이거 좀 잔인하지 않냐….’

기껏 심사 위원 점수 잘 따고 좋은 소리 잘 들었어도, 방청객 점수에서 밀리면 앞서 공개한 점수와 반전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반전을 팔아먹고 싶어서 그렇게 짠 거겠지만.’

여러모로 입 안이 씁쓸했다.

곧이어 공개된 점수는 A조가 월등히 높았다. 그야… 저쪽에 아진이나 공민형을 비롯해 중대형 출신과 S, A급이 포진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싶었다.

B조가 한창 심사 위원에게 쓴소리를 듣는 사이 카메라는 지독할 만큼 경쟁자들을 찍어 댔다.

‘저러다 잠깐 방청석에 웃어 주기라도 하면 경쟁자 혼날 때 비웃는 것처럼 편집해서 내보내려는 거겠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어서 공개된 방청객 점수에서도 예외 없이 A조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무난하게 공개된 첫 타자를 이어 [Trilling love] 팀들이 무대에 올랐다.

“…….”

슬쩍 유지원의 표정을 살피자 어지간히도 긴장이 되는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 표정 관리 좀 해라….’

걱정하기도 잠시, 그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방청석 여러 곳에서 귀엽다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롤만 겹치지 않으면 저런 캐릭터도 잘 먹히려나.’

나는 무대 위에서의 지원을 떠올리며 턱을 짚었다.

동선을 4명씩 나눠서 놀라게 하는 쪽과 놀라는 쪽으로 표현하는 안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재치도 있고 무대 구성도 좋았지만 그중 제일 눈을 사로잡았던 건….

‘당연히 유지원이지.’

두 눈을 질끈 감고 얼굴 앞으로 꼭 모아쥔 주먹을 흔드는 안무를 할 때는 솔직히 유지원이 부모님의 원수라고 해도 귀엽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제일 매력 포인트인 음색은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는데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키는 멤버들 중에 제일 커서는, 귀여운 척하는 안무가 제일 잘 어울리다니.

아직 어려서 더 귀여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참 부러운 재능이었다.

‘심사 위원도 제대로 봤으면 누가 제일 괜찮았는지 알겠지.’

그리고 그 말 그대로 유지원은 A조의 칭찬 대부분을 독식했다.

연출을 기획해 낸 리더가 그 나머지의 반이고 나머지 여섯 명은 뭐… 이름이나 한 번 불렸나?

아직 순위 재편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지 지금까지는 다들 어쨌거나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에 기뻐 보였다.

‘방청객 점수도 무난하게 이겼고… 등수가 올라가는 걸 기대해도 되겠는데?’

이대로 유지원도 S등급으로 올라와 준다면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뒤이어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착착 힙합 유닛에서도 결과가 발표되었다.

‘눈에 띄는 놈들은… 다들 얼추 좋은 소리 듣고 있네.’

크몬 출신 두 명도 꽤 호평을 받았다. 쓴소리를 들은 부분이라면… 두 명 중 형 쪽이 너무 프로듀서 롤에 치우쳐서 본인 파트를 안 챙긴 것 정도일까.

[정은찬 연습생은… 본인의 퍼포머로서의 능력을 조금 더 보여 줬으면 좋겠어요. 프로듀서로서 유능한 건 이미 증명됐고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여기는 Kill & Hip이 아니니까 아이돌로서의 기량을 좀 더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Kill & Hip이란, 같은 방송국에서 매년 신규 시즌을 내보내는 유명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크몬의 수장인 래퍼가 어드바이저이자 프로듀서로 참가하는 방송이기도 했다.

‘오… 쎈데….’

그게 자존심을 건드리기라도 했는지 정은찬의 표정이 일순 찌푸려졌다.

보통은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우울해하기는커녕 당장이라도 심사 위원을 들이받을 얼굴이었다.

“핫, 네네! 좀 더 발전한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써 박하연이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애잔하기도 했다.

‘이러면 최종 데뷔조 대결 때는 박하연만 살아남을 수도 있겠는데?’

어떻게 되든 알아서 하겠지, 뭐.

나는 곧 우리 차례가 다가온 것을 확인하고는 무대 위의 영인을 올려다보았다.

“…….”

저거 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내가 걱정 중인 걸 아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영인이 손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

이거 미친놈 아냐. 지금 브이가 나와?

그리고 곧바로 심사 위원 평이 이어졌다. 앞선 A조보다 평이 좋긴 한데 연출적으로 아쉬웠다는 지적이 길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이 방청객 투표에서 승패가 반전되었다.

순간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원의 표정이 무슨 먹이 창고를 털린 햄스터처럼 경악으로 물들었다.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저놈 개인 점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을 거고.

지원이 당황해서 나와 영인을 번갈아 바라보자 나는 입술 앞으로 손가락을 세워 진정시켰다.

이제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갈 차례였다.

[자, 이제 마지막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A조, B조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아무런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가 먹먹할 만큼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서 우리는 전체 조 중 최고점을 받아 내며 끝도 없는 찬사를 받았다.

[앞에서 다른 조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센터에서 중심을 꽉 잡아 주고, 맏형들이 계속 받쳐 주는 역할을 하다가 딱 댄브 와서 터지는데 정말 이게 연습생들만의 힘으로 구성된 연출이 맞나….]

[햐~ 중간 평가 때가 99점이라 100점을 만들어 왔으면 해서 조금 쓴소리를 했는데, 그걸 딱 이렇게 200점을 만들어 오고….]

모두가 극찬을 쏟아 내는 와중 마뜩잖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었다.

마선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