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아직 모르지만 (1)
뭐라는 거야?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지금 고집부릴 때인가. 억지로 더 하다가는 정말 너덜거리는 손목으로 무대 위에 올라야 할 수도 있었다.
“뭐?”
내가 카메라가 붙어 있는 천장을 등지고 인상을 찌푸리자 규민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너만 간절한 줄 아냐고.”
“알아듣게 설명해.”
고집 피우는 게 누구인데 되레 큰소리인지. 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턱을 들고 규민을 마주 보았다.
“너만 그렇게 간절한 줄 아냐고, X발. 나도 연습실에 8년을 박혀 있었어. 리더 롤도 가져가 놓고 뭐? 파트를 바꿔? 위하는 척 가식 떨지 마.”
그러면서 팔을 팍, 아래로 내리더니 그대로 내 손을 뿌리치고 손목을 회수해 갔다.
“짜증 나니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조바심과 초조함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내내 못마땅한 티는 내도 유유자적한 것 같았던 놈이….’
카메라가 뻔히 자동 녹화 중이라는 걸 알 텐데도 숨기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는 꼴을 보고 있으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규민이 아~ 한숨을 크게 내쉬며 머리를 벅벅 헝클어트리고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
내 말문이 막힌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뭔 개소리야. 데뷔 못 하면 ‘NO 박차고 나가 놓고 서바 데뷔조도 못 드는 데뷔도 못 한 퇴물ㅋㅋ’ 하고 조롱당할 나랑, 대한민국 인구 99.9%는 니가 누군지도 모를 너랑 같냐?
반박하려면 할 말이 밑도 끝도 없이 많았지만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죽도록 간절하면서 애써 여유 있는 척, 괜찮은 척,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척, 남들 다 챙겨 주고도 남을 만큼 너그러운 척.
사실은 조바심이 나서, 이대로 데뷔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NO에서 나오고 다른 회사 들어가서 데뷔 직전쯤의 내가 딱 그랬지.’
여기서라면 정말 이상한 일만 없으면 데뷔할 수 있다. 사실은 그 이상한 일이 벌어질까 봐 누구보다 두려워했으면서.
대표 일이 수면 위로 올라와 보도가 되기 직전까지 나는 다른 데뷔조 연습생들을 안심시키는 맏형 역할을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다른 곳 가면 되니까, 다른 녀석들과 입장이 다르다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대형도 아니고 중형에서 8년이라…. 거기다 슬슬 군대까지 걱정해야 할 나이면.
규민에게 과거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물론 불안감을 표출하는 방식이 나랑은 다르긴 한데….’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와 빗대어 보게 되는 이규민의 모습. 그게 놈의 존재가 계속해서 거슬리던 이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더더욱 여기서 고집을 부리면 안 되지.’
파트가 줄어드는 게 걱정인 거면 최소한 안무 수정이라도 해야…. 내가 규민을 병풍 취급하며 곰곰 생각에 빠져 있자 규민이 나를 미친놈 보듯 노려보았다.
“너 내 말이 우습냐?”
아니, 우습지는 않고. 생각을 해야지, 생각을. 나는 고개를 들고 놈과 다시 마주 보았다.
이놈 파트를 안 뺏어 가고, 안무 난이도도 안 낮추면서… 지금까지 안 해 본 방식으로 주목도를 끌어올릴 방법이 뭐가 있지.
나는 내 어깨를 붙들고 흔들기 위해 손을 뻗는 규민의 손목을 빠른 순발력으로 붙잡았다.
“아.”
이거면 되겠다. 그 순간 내내 닫혀 있던 문이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냥 무대만 보러 온 거니까….’
마침내 방청일 당일. 리허설은 비공개로 진행되는데도 인터벌과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이 넘는 녹화를 보기 위해 모인 인원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거 몇 명이지? 한 300 되나?”
승죽은 자신을 친히 방청회까지 끌고 나와 준 지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 500 되지 않나?”
꽤 이른 시간부터 왔다고 생각했는데. 자리는 입장순으로 즉석에서 배정이었기 때문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아마 새벽이나 전날 밤부터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일행도 꽤 있었다.
‘그래 봤자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 보자고 이런 고생을….’
승죽은 자신도 오는 길에 광역 버스에서 내내 ‘서인수 NO뉴페 시절 활동 모음’ 클립을 반복 재생하고 있었으면서 남 말하듯 생각했다.
진짜 괜찮은 싹인지 아니면 고만고만한 연습생인지는 무대 하는 거 보면 알겠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데 오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네.’
전에 왔을 때는 어떻게든 사진 건져서 간다고 가방마다 카메라 하나씩은 담아서 들고 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맨손으로 정말 핸드폰만 달랑 들고 와서일까. 새삼스럽게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진짜 파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말자.’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다른 대기자들을 따라 바닥에 가방을 깔고 앉은 승죽은 곧 대기 장소의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지?”
“아, 헐. 인사하고 들어가나 보다.”
“와, 대박. 실물이 훨씬 낫다.”
오늘 무대를 준비한 연습생들이 한 팀, 한 팀 팀별로 나와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Hip & Geek] A조입니다!”
조별로 자기 팀을 기억해 달라며 짧은 시간에도 부지런히 어필을 하며 애쓰는 모습이 참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 싶었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기다리던 찰나 승죽의 옆에서 인파에 밀려 생기를 잃은 채 찌그러져 있던 XOXO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이런 XX….”
난데없는 욕설에 승죽은 깜짝 놀라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XOXO가 욕을 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너무 잘생겼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아마 전자이려나? 생각한 순간 고개를 들자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안녕하세요. [Burn it] B조입니다!”
아무리 봐도 한 명이… 아이돌이랑은 거리가 좀 멀어 보이지 않나?
다들 웅성거리는 와중 그 한 명이 씨알도 안 먹힐 멘트를 날렸다.
“애기들아, 오빠 왔다!”
그리고 싸늘한 정적과 함께 뒷줄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오빠는 무슨. 죽빵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진짜.”
“하…. 짜증 나….”
“아니, 개그맨이 왜 나오냐고.”
역효과도 보통 역효과가 아니었다. 같은 팀 멤버들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하려 하지만 모두 울상을 감출 수 없어 보였다.
“안됐다….”
승죽은 저 문제의 연습생이 인수와 같은 조가 안 된 것만으로도 천운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다시금 무미건조하게 몇 팀을 보내고 XOXO가 다시금 욕설을 중얼거렸다.
“XX….”
이번에도 또 후자인가. 별 기대 없이 고개를 들자 오, 이번에는 모처럼 전자였다.
“귀엽게 생겼다.”
승죽이 짧게 감상을 남긴 그때 XOXO는 카메라를 꺼내 무슨 속사포처럼 연속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Thrilling love] A조입니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연습생들 사이, 다른 연습생보다 반 뼘 이상 큰 키의 예쁘장한 연습생이 단연 돋보였다.
얼굴을 보면 아직 성인도 안 된 애기 같은데 키가 꽤 컸다.
“와, 볼살 봐. 미치겠다….”
“진짜 애기 같다. 어떡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익숙지 않은 듯 수줍은 얼굴로 리더로 보이는 멤버 뒤에 숨는데, 키 차이가 그렇게 나는데 숨겨질 리가 없었다.
“이름이 유지원인가 봐.”
“이름도 잘 어울려. 너무 귀엽다, 진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XOXO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한 놈 일단 망태기에 넣었다.”
누가 보면 잘생긴 연습생들을 납치하러 온 망태 할아범 같은 말투였다.
실제로도 XOXO가 하는 짓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게까지 감명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한 승죽은 인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가 되어서야 승죽이 그토록 기다린 순서가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Hater Later] B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수가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승죽은 깜짝 놀라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인수야!!!!!!!!!!”
“1위 하자!!!!!!!!!!!”
“서인수 잘생겼다!!!!!!”
“서인수!!!!”
무대 위에 올라온 건 여덟 명인데 방청객들이 목 놓아 부르는 이름은 하나였다.
‘NO뉴페로 활동해서 기존 팬들 좀 있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구나….’
괜히 차세대 케이팝 유망주로 손꼽힌 게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인파에 떠밀려 아직도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한 승죽은 XOXO의 도움을 받아 겨우 빼꼼 인파 위로 머리를 들었다.
대체 뭐, 실물이 어떻길래 반응이 무슨 거의 절반 이상이 인수 보러 온 사람들 같은 수준인가. 궁금증이 앞섰던 그때 승죽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
인수가 NO뉴페이스로서 공개적인 활동을 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지.
19살 때 같은 회사 걸 그룹 선배님들의 뮤직비디오에 수줍 보이로 출연한 일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아, 잘생기긴 잘생겼는데 그냥 곱상한 게 아니라 되게 귀티 나게 생겼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미친 거 아냐?’
긴장과 떨림으로 굳어 있는 다른 연습생들과 달리 서인수는 자연스러움은 물론이요,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태도가 특유의 느긋한 인상과 너무 잘 어울렸다. 지금 나머지 98명과 데뷔 자리를 놓고 싸우러 나온 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게 오직 서인수뿐인 것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던 그때, 서인수가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끌고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제현호입니다.”
꾸벅. 붙임성 없이 인사를 마치고 멀뚱멀뚱 인수를 마주 보는 연습생 또한 XOXO의 입에서 욕설을 끌어내기에 충분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XX… 진짜 XXX 났네….”
그러면서 무섭게 손을 움직여 사진을 찍어 대는 모습이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모습이었다.
미친 듯이 연사를 터트리는 소리가 전쟁 통이 따로 없었다.
계속해서 리더인 인수가 멤버 한 명씩 짧은 멘트와 함께 소개를 하는 데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승죽이 넋이 나간 것도 있지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비명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질 않았다.
‘반응이 이 정도면… 데뷔는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1위를 못 하는 게 이상한 수준의 열광이었다. 본인도 알고 있을 거고. 진짜 여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겠구만.
승죽이 그런 생각을 하고 30분 뒤, 리허설을 앞둔 당사자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었다.
***
“…….”
나는 팔짱을 낀 채 눈앞의 광경이 악몽이기를 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규민은? 아직도 못 나오겠대? 걔는 리허설을 화장실에서 할 생각이냐?”
내가 한심하다는 듯 묻자 이규민과 같은 회사 출신인 연습생이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곧 나온대요, 곧!”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이규민이 창백한 표정으로 쪼그라든 채 배를 감싸 쥐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굳은 얼굴로 이규민에게 말했다.
“너만 간절한….”
“아아악!”
이규민이 그대로 내게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딜 그 손으로 남의 입을 만지려 들어!”
“손 씻었거든!”
이 악몽의 시작은 오늘 아침 7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