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너랑 나랑은 (3)
“괜찮네요. 표정도 이대로 하면 될 것 같고. 안무도 힘들었을 텐데 잘 익혔네. 연습 많이 했나 봐요.”
일단 안심시키기 위해 칭찬부터 하자 지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반대로 영인이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왠지 열받네….’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지적을 위한 빌드 업이라는 것을 눈치챈 얼굴이었다. 나는 괜히 흠흠 헛기침을 하며 본론을 꺼냈다.
“근데 동작에서 조금만 더 포인트를 살리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현장에서 볼 때는 크게 차이가 안 보이는데 카메라로 보면 확 드러날 거라서….”
곧바로 순살을 발라 주자 유지원의 어깨가 한없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영인이 해맑게 염장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그래도 형 입에서 엉망이란 소리 안 나왔으면 평균 이상은 한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가 째릿 눈을 가늘게 뜨고 영인을 노려보자 지원의 눈이 한 번 더 흔들렸다.
얘는 또 왜 이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 뭐 문제 있어요? 포인트 어떻게 살리는지 모르겠어서 그런 거면 강약을….”
내 딴에는 예상되는 문제를 짚어서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는데 지원이 뜬금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그럼 뭔데. 내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바라보자 지원이 잠시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왜, 저한테는 반말 안 쓰세요? 저, 한테도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마 위로 핏대가 솟았다.
당장 내일이 첫 공개 무대인데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소중한 휴식 시간도 반납해 가면서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만?
나는 분노를 이글이글 담아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여유 넘치나 봐? 그런 거 생각할 틈이 다 있고?”
그토록 원하던 반말로 물어보자 지원이 뭔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어… 앗, 아뇨. 여유는, 없… 는… 데….”
뭐라고 대답하든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여유가 생길 때까지 더 열심히 해 볼까? 상태를 보니까 앞으로 한 시간은 더 하겠네.”
악마의 속삭임이 따로 없었지만 반말이 어쩌고 그딴 생각이나 할 거면 그 시간에 연습을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맞았다.
결국 늦은 시간까지 지원의 연습을 봐주고, 영인까지 돌려보낸 다음 나는 비로소 혼자 거울 앞에 섰다.
남 챙기다가 나는 바보 되고 그럴 순 없지.
기본적으로 보컬은 모두 사전 녹음된 음원으로 대체하긴 하지만 중간중간 애드리브 부분은 라이브 보컬이 나갈 예정이었다.
‘목 상태도 괜찮고, 안무야 진작 몸에 익은 상태니까….’
내일 조원들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된다. 예의 F등급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최종 연습 때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던 점을 회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단체 미션이긴 하지만… 순위 평가는 개인전이니까 너무 목매지 않아도 돼.’
설령 무대에서 그놈이 눈에 띄는 실수를 해서 문제가 된다 한들… 스스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나라도 끌고 가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서로 목표로 하는 지향점이 다른데 수준이 같을 수는 없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
그러나 아까부터 계속 목을 써서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도록 물을 마셔 댄 탓일까.
생수병을 세 병이나 가져왔는데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아까 다른 녀석들도 마셔서 그렇구나.’
나가서 새로 가져오든가 해야겠다. 나는 복도에 설치된 미니바를 떠올리며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아, 저기다.’
따지 않은 생수가 냉장고 안팎으로 쌓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다가간 순간, 대부분의 연습실에 불이 꺼져 있는 와중 반대편 복도의 연습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는 어느 조길래 이 시간까지 연습이야…?’
자정이 다 된 시간. 내일 녹화 일정을 생각하면 슬슬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도 이제 슬슬 정리하려던 참인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다가가자 문틈 사이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솔직히 제가 이 팀에서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오늘 단체 연습 때까지도 나를 계속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장본인, F등급 조원이었다.
“다들 데뷔를 목표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저는 데뷔조 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조원들 하는 거 봐도… 아, 다들 쟤는 저거밖에 못 하는구나 생각할 것 같아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지?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데 조원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지는가 왜 중요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비록 교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지만 여기는 촬영장이지 학교가 아니다.
서로 부딪히고 화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거고.
각자 경쟁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른 경쟁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 될 것도 아닌 일로 멘탈 깨져서 내내 그렇게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단 말야?’
이놈 사정은 사정이고, 답답함에 가슴이 울컥하던 그때.
연습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조바심이 나는 것도 나는 이해가 되는데,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너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기회를 얻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거든.”
저걸 또 왜 받아 주고 있어. 순간 반발심이 일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규민이네.’
마찬가지로 내 신경을 가장 거스르는 놈이었다.
“지원서 내고, 사전 오디션 봤으면 알잖아. 지금 촬영장까지 온 거, 지원서 접수한 사람 중에 5분의 1도 안 되는 소수인 거.”
“…네.”
“아직 연습생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커버 무대 준비해서 사람들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부터가 너한테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인 거니까. 남은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보여 주면 되는 거야. 너 지금 엄청 잘했어. 너랑 같은 조건이 아닌 사람들과 비교해서 스트레스받지 마.”
저걸 저렇게 커버 치네…. 답답한 한편 가슴 한구석이 찔렸다.
쟤는 저만큼 하는데. 쟤는 저렇게 하는데.
타인과 나를 비교해 봐야 나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숱하게 많은 동료 연습생들의 데뷔와 포기를 지켜본 나는 알고 있지만.
‘이제 1년 차라고 했나…. 그럼 모를 수밖에 없지.’
이제 막 시작점에 선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알아서 척척 잘하는 거 같지, 내 실력이 부족한 건 스스로가 제일 잘 알지.
여기서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의문이 드는 지점이 가장 고비다.
회사 연습실 안에 있을 때는 붙잡아 줄 관계자라도 있지 여기는 각개 전투나 다름없으니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 조에서 제일 잘하는 걸 목표로 하지 말고, 한 명이라도 널 보게 만들어서 이번 미션에서 살아남는 거만 생각해. 내일 조원들한테는 내가 잘 말해 둘 테니까 파트 잊어버리지 않게 계속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마지막은 또 무슨 소리야?’
소곤소곤 이어지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규민이 F등급에게 자기 단독 파트의 일부를 나눠 준 듯했다.
‘그걸 누구 마음대로?’
기껏 적재적소에 갖다 박아 놨더니 멋대로? 자기 파트니까 어차피 비중 문제니 누가 해도 남들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한 건가?
불만이 끝도 없이 치미는 것과 별개로 F등급을 달래는 데는 그게 특효약이었던 모양이었다.
“네, 감사해요, 형…. 진짜 형 아니었으면 저 그만두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규민의 조언이 마음에 와닿은 것일까. F등급이 훌쩍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썩 내키는 건 아니었으나 규민의 입장에서도 그게 최선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는 퍼져서 의욕 없지, 리더 롤은 나한테 밀렸지. 그 안에서 최대한 균형을 잡으면서 팀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다만.’
그리고 규민의 판단은 정답이었다. 잠시 후 우렁찬 감사 인사와 함께 발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재빨리 불 꺼진 맞은편 연습실로 몸을 숨겼다.
‘아니, 내가 왜 숨은 거지…?’
나도 이제 정리하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한 그때, 이규민이 남은 연습실에서 다시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 바로 끌린 feeling 잊지 못해]
[이 분위기에 빌린 one step 다시 내게로]
F등급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자기 시간이 되었다는 듯 개인 연습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점검하듯이 동작을 반복하는 규민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놈이었나… 싶기도 하면서, 괜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마음속에서 아른거렸다.
‘나 왜 이렇게 심술이 나 있지.’
문득 묘한 찝찝함이 들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규민의 연습을 지켜보던 순간, 규민의 하이라이트인 댄브 파트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손으로 짚고 밀어내며 반동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했다가 착지하는 동작이었다.
‘뭐… 저건 연습 때 잘했으니까 괜찮겠지.’
안심하고 바라보기 무섭게 규민의 몸이 흔들리며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악.”
연습실의 마룻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른 규민이 손목을 움켜쥐었다.
“하….”
놈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음원을 20초 앞으로 되돌려 다시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윽….”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였다.
‘뭐지? 낮에는 분명 잘했는데?’
나는 그제야 규민의 손목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테이핑과 파스가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 손목과 비교했을 때 부기가 올라 있었다.
몇 번을 더 시도했을까. 다섯 번은 더 실패한 것 같은 즈음 나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규민의 앞에 나섰다.
“너 손목 다쳤어?”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규민이 흠칫 뒷걸음질을 치며 손목을 뒤로 숨겼다.
“뭐야, 왜 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말 돌리지 말고, 손목 보여 줘 봐.”
내가 손을 달라는 듯 오른손 손바닥을 내밀자 규민이 곧장 거부했다.
“그럴 필요 없어.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져.”
괜찮기는 무슨. 내일 되면 수습이 안 될 만큼 땡땡 부어오를지도 모른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손목 내놔.”
내가 성큼성큼 다가가 힘으로 팔을 잡아채자 한눈에 봐도 상태가 나빠 보이는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
규민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너 파트 나랑 바꾸자.”
내 파트가 훨씬 난이도가 쉬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댄브 안무를 만든 건 나고, 내가 직접 만든 안무를 소화 못 할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자 규민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했다.
“너는 내가 XX인 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