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너랑 나랑은 (2)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지적당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을 텐데.
나는 내 앞 차례에서 다른 그룹들이 보여 준 ‘연습생 1~2년 차’ 수준의 무대들을 회상하며 대답했다.
“부족한 부분 있으면 보완하겠습니다.”
내가 뭔가 놓친 건가?
무대 수준이 문제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뭐가 문제냐 돌직구를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촬영장이니까.
최대한 억울한 마음을 가다듬고 순화해서 묻자 유명 뮤지컬 배우 출신의 멘토가 매섭게 눈썹을 찌푸렸다.
“아~ 기대가 너무 컸나? 이거보다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선뜻 단점은 지적 못 하겠고, 댄스 멘토는 아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시선을 피하기까지.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에 촬영장 전체가 분위기가 싸했다.
“인수도 있고, 규민이도 있고. 둘 다 손꼽히는 장기 연습생들인데 다른 1~2년 차 애들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보여 줘야 되겠어?”
그래서 급이 다른 수준으로 준비해서 보여 줬잖아.
나는 어색하게 떨리는 댄스 멘토의 어깨를 보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그리고 보컬 멘토인 마선경의 차례가 되어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서인수 연습생.”
진짜 아까부터 자꾸 내 이름만 부르는 거 일부러 이러는 건가?
일부러 서사를 연출하기 위해 트집을 잡기 위해 잡는 트집.
나는 침착하게 예의를 한껏 차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나 돌아온 건 예의라고는 콩알만큼도 없는 일방적인 트집이었다.
“메인 보컬 말고는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거기서 이 얘기가 왜 나와. 내가 유지원 도와주다가 멀쩡히 잡았던 보컬 자리 내준 건 다들 뻔히 알 텐데.
“자신만만하게 다른 포지션에 한눈판 것치고는 걱정해야 할 게 많은 거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할 수 있겠냐니….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악담에 세트장은 여전히 찍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기서 내가 멘토를 들이받을 수는 없으니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적절한 문장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최종 리허설 때 분발한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뭐가 아쉽다, 뭐가 잘못됐다도 아니고 이런 트집 잡기에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거지.
심란한 와중 연습생들이 우르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방향으로 슬쩍 웃고 있는 아진이 보였다.
‘뭘 웃어. 뭘 잘했다고.’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합지졸이더만.
멘토들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서 한숨부터 쉬던데 뭘 잘했다고 의기양양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새끼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보컬, 연출 멘토들의 도움도 안 되는 트집 잡기가 겨우 끝나고.
안무를 틈틈이 점검해 줬던 댄스 멘토 차례가 되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어우. 평가가 아주 살벌한데요? 저는 좋았어요. 구성도 좋고, 전체적으로 밸런스도 잘 맞고. 어느 한 명만 센터로 너무 주목받게 하지 않고 다 같이 만들어 가는 게, 취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꽤 마음에 들었고요. 제 기대는 충분히 만족시키신 것 같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돼.”
“기대가 높은 분들이 되는 거죠, 뭐.”
그렇게 유의미한 피드백은 하나도 없이 끝이 나는 건가 하던 찰나.
댄스 멘토가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한다면의 얘기니까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뭔데 저렇게 쿠션을 깔아.
불길함만 잔뜩인 채로 기다리자 댄스 멘토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으면 다른 그룹들은 절대 못 할 만한 걸 하나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팀 잘하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 차별화를 좀 더 확 벌리면 좋을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
‘…….’
아니,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할지도 코칭해 주라고 거기 앉아 있는 거 아니시냐고요.
결국 마지막까지 영양가 있는 피드백은 받지 못한 채로 무대를 내려오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사이다 지수 하락 경고가 나타났다.
[<경고> 사이다 지수가 [보통]으로 하락했습니다.]
저거 낮음으로 떨어져서 높음으로 올린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낮아지면 또 페널티를 걱정해야 하는 거겠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린 1차 중간 평가를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자자, 그럼 일단 다른 부분은 더 빼거나 고쳐야 할 부분 없고, 와우 포인트를 좀 더 늘려야 한다는 거 같은데. 안무 난이도 올려도 괜찮은 사람?”
하…. 방송으로서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맞춰 드려야지.
이대로 기대 이하의 무대를 보여 준 아쉬운 모범생들로 편집에 희생당할지, 아니면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날아오른 천재 조가 될지는 아직 미정이었다.
연습실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 난이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파트부터 부분부분 칼 대기를 시작하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변경된 연출과 파트에 맞춰 음원도 재수정.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 여기 음 안 될 거 같은데요.”
우리 조의 유일한 F등급 연습생이었다.
‘얘는 또 왜 이러는 거야.’
어차피 무대는 음원 틀어 놓고 립싱크로 진행 예정이었다.
중간에 애드리브 부분이나 브리지 정도만 직접 부르고 나머지는 사전 녹음된 음원으로 나가야 했다.
‘그게 지침이니까.’
이 과격한 안무에 라이브까지 하려면 2주 준비로는 턱도 없었다.
나나 제현호 정도면 모를까, 더구나 퍼포먼스 그룹을 택한 연습생들의 대부분이 보컬에서는 자신이 없을 텐데.
거기까지 하라고 하면 못 한다고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아냐, 어차피 음원으로 나가니까 녹음만 잘하면 돼. 프로듀서님이 잘 잡아 주실 거야.”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완벽한 퍼포먼스지 라이브도 못 할 음원의 음정 한 끗이 아닌데.
갑자기 이상한데 꽂혀서 삽질하는 F등급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했다.
‘지금 그게 중요하겠냐.’
아직도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반박자씩 밀려서 슬로우 걸면 엉망진창으로 보일 녀석이 뭘 걱정하는 거야.
아이돌 판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냉혹하다.
정속으로 보면 문제없는 구간도 굳이 굳이 슬로우를 걸어서 실수한 것처럼 만들어 욕먹이는 게 이 판인데.
‘진짜로 박자 밀리고 있으면서 다른 데 정신 팔리고 있을래?’
나는 쓴소리를 하고 싶은 걸 내리누르며 우선 달래 주는 것을 택했다.
“음원 잘 나왔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연습실 가자.”
여전히 이상한 데 꽂혀 있는 F등급을 어르고 달래서 연습실로 데리고 갔지만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분위기만 어색한 거지 퍼포먼스 자체는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대만 아무쪼록 잘 올리면 된다.’
얘들이랑 내가 평생 갈 것도 아니고. 무대만 잘하면 된다, 무대만.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는 사이 순식간에 경연 날짜가 다가왔다.
“으아~ 피곤해.”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두고 간 짐을 챙기러 기숙사에 들렀다가 영인의 우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너네 뭐 잘 안되는 거 있어?”
중간 평가 때 보니까 나쁘지 않았는데.
“아녀. 뭐가 안 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커버만 할 때보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묘하게 태평해 보이는 낯짝에 나는 가장 의심스러운 지점부터 캐물었다.
“너 막 애들이랑 싸우고 그런 거 아니지?”
이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걸 왜 못 해? 이게 안 돼? 같은 발언으로 속을 박박 긁어서 상대방이 결국 인성을 드러내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거든요. 저희 다 짱친 먹었는데.”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
“진짜 아니라고요. 보실래요? 저희 셀카도 같이 찍었어요.”
나는 영인이 의기양양하게 보여 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는데….
‘다들 필사적으로 머리 작아 보이려고 뒤로 빼고 있군.’
영인이 머리가 너무 작아서 원근법을 파괴하는 바람에 벌어진 사달이었다.
‘아무튼 이쪽은 괜찮은 거 같고.’
문제는 사실 이놈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잘하고 있으려나….’
내가 포지션까지 내줬는데 잘해야지. 확인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당장 내일이 경연인 마당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중간 평가 때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옹기종기 10대 애들이 잔뜩이라서 컨셉이랑 잘 맞는 멤버들만 잘 모였다는 느낌이었다.
‘분위기도 나빠 보이지 않았고.’
이기고 지는 건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방송 초기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유지원도 나름 상당히 상위권이니 설령 이번 무대를 망치더라도 탈락할 걱정은 없을 테고.
자기 매력만 충분히 보여 주면 된다. 그래 그거면 제 역할을 다하긴 한 건데….
‘아오, 진짜 계속 신경 쓰이네.’
계속 이렇게 신경 쓸 거면 그냥 확인을 하자. 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인이 무슨 일이냐는 듯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야, 일어나. 너도 같이 가자.”
봐줄 안목이 하나인 것보단 둘인 게 낫겠지.
나는 냅다 영인을 데리고 유지원이 쓰는 기숙사 호실로 찾아갔다.
똑똑-
가볍게 노크를 하자 안에서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멈췄다.
“뭐야? 누구 왔나 본데?”
“아씨. 니가 스태프 불렀냐?”
“아니야, 나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니가 나가 봐라.”
“으응…!”
안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대충 어떤 분위기였을지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하….’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잠시, 문이 끼익 열리더니 나와 영인을 확인한 지원의 눈이 놀라서 동그랗게 커졌다.
“헉, 무슨 일로 오셨어요?”
무슨 일로 왔긴. 잘하고 있었나 점검하러 왔지.
“연습하러요. 나오세요. 연습실 빈 데 많으니까.”
“네…? 으악, 네? 아니? 잠깐만요?”
지원이 여전히 맹한 얼굴로 이해가 안 됐다는 듯 갸웃거리자 영인이 냅다 지원을 들쳐 업었다.
“!?!?!?”
“자~ 가자~!”
뭔지 모르겠지만 신난 영인을 뒤로하고 나는 문을 닫으며 안쪽을 향해 외쳤다.
“늦게 들어올 거니까 소등할 때 연습실에 있다고 해 주세요!”
그리고는 나 또한 말 한마디도 섞기 싫다는 듯 재빨리 영인에게로 합류했다.
‘하…. 당장 내 무대도 내일인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불안해하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잠시 후 연습실에서 확인한 지원의 상태는 생각보다는 괜찮았고 기대에는 약간 못 미쳤다.
‘괜찮긴 한데…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앗.’
나도 모르게 내가 중간 평가에 들었던 말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만 나는 깨닫자마자 입 안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평균치보다 월등히 잘했으면 칭찬을 해 달라고!’
나는 애써 뾰로통한 심보를 숨기며 입을 열었다.